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644
644화 긴말은 필요 없다
“공자, 제 말은 사실입니다. 그들은 현재 우리 현창대륙을 거리낌 없이 약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전에는 다른 여러 개의 우주를 거쳐 온 상태이구요.”
“거리낌 없이 약탈하고 있다?”
엽현의 말에 흑의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북경군(北境軍)입니다. 현황대세계의 일개 군단이지요. 이들은 이미 예전에도 다른 작은 우주들을 약탈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엔 풀 한 포기조차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순간 엽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잔학하단 말이오?”
“잔학?”
흑의여인이 냉소를 지었다.
“북경군은 일개 변경군으로 현황대세계의 주력군과 비교하면 아직 잔학 근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주력군이 지나간 자리엔 그저 망자의 영혼만 남을 뿐이니까요.”
엽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소칠을 바라보자, 소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엽현이 가볍게 웃으며 흑의여인을 향해 말했다.
“앞장서시오.”
“겨우… 그대들 둘 뿐입니까?”
“둘이면 충분하오.”
“그건 안 됩니다. 이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예요.”
“어째서 말이오?”
“그들은 수도 많은 데다 하나 같이 매우 강하단 말입니다.”
“하하, 그건 그대가 걱정할 일이 아니니 어서 길이나 안내해 주시오!”
흑의여인은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엽현과 소칠을 응시하더니, 결국 어디론가로 두 사람을 데려갔다.
“그나저나 이건 무슨 물건이오?”
현창대륙으로 향하는 길.
엽현이 옥새를 살펴보며 물었다.
“그것은… 한국의 옥새입니다.”
“이 안에 무슨 보물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습니다.”
흑의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떻게 여는 것이오?”
“…….”
“하하, 아직 아쉬운 마음이 남아 있는 것이오?”
“후… 그 옥새는 우리 한국이 마지막까지 빼앗기지 않으려 했던 물건입니다. 안에는 한 줄기 초신품(超神品) 용맥(龍脈)이 흐르고 있지요.”
초신품(超神品) 용맥!
이때 한편에 있던 소칠이 귀를 쫑긋 세웠다.
“초신품?”
“그렇습니다.”
“흠… 초신품이라면 우리 신국에도 단 하나밖에 없는 건데.”
이때 엽현이 소칠에게 옥새를 건넸다.
“자, 받아.”
소칠이 고개를 저으며 다시 옥새를 튕겨냈다.
“필요 없다.”
“어째서?”
“넌 하나도 없지 않느냐.”
소칠의 말에 엽현은 가슴이 따듯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이런 귀중한 물건을 홀로 꿀꺽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엽현이 다시 옥새를 건네려 할 때 갑자기 소령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육층의 늙은이가 말하길, 그걸 탑 안에 놓으면 탑의 영기가 진해져 영과나무에게나 탑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대!”
“음? 선생, 정말 그렇습니까?”
엽현은 소령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재차 마주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순수하기만 한 소령이었는데 누구한테서 배웠는지 자꾸 거짓말이 늘어갔던 것이다.
이때 들려오는 목소리.
[그 말이 맞다. 용맥 정도라면 탑이 필요로 하는 영기를 충분히 보충해 줄 수 있을 것이다.]마주의 말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령에게 옥새를 건넸다. 그러자 소령이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냉큼 탑 안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계옥탑 이 층에는 한 줄기 하얀 강이 흐르기 시작했다.
초신품 용맥이 탑에 자리 잡음으로 인해 계옥탑 내의 영기는 한층 짙어질 수 있었다.
이 모습을 보자 소령은 매우 흥분해서 탑 곳곳을 뛰어다녔다. 용맥의 영기는 탑 안에 있는 영과나 영초에게도 매우 좋은 거름이었던 것이다.
다시 계옥탑 밖.
엽현 곁에 있던 흑의여인이 문득 입을 열었다.
“내가 볼 때 그대들은 아직 그들의 실력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엽현은 그 말에 가볍게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현황대세계.
엽현은 당연히 현황대세계가 강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매우 오래전부터 여러 우주의 고혈을 빨아먹어 왔던 그들이니 약하다 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현황대세계와 대적하려는 것이죠?”
“음… 왜냐하면 우리도 그들에게 갚아주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오. 그건 그렇고 얼마나 더 가야 하오?”
“앞으로 반 시진 정도면 도착할 거예요.”
“적의 숫자는?”
“백 명 남짓.”
‘백 명!?’
“겨우 백 명으로 한 개 대륙을 강탈할 수 있단 말이오?”
엽현의 말에 흑의여인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왜냐하면 그들 백 명의 실력은 대륙 전체보다 강하니까요.”
“흠… 그렇다면 대부분 봉제경 정도는 되겠군.”
흑의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봉제경은 삼십여 명뿐이에요. 그러나 그들의 전투력은 일반 무인보다 훨씬 더 강하고, 장비 역시 최상급으로 갖춰 놓았죠. 게다가 그들에겐 천도경(天道境)급 천랑(天狼)도 한 마리 있어요.”
여인이 엽현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에 도착하게 되면 그들의 무서움을 똑똑히 알 수 있을 거예요.”
“물론, 너무 약한 것보다 강한 편이 낫겠지.”
엽현이 여유롭게 대답하자, 흑의여인은 말없이 엽현을 응시했다.
그렇게 다시 한 참 항행하고 있던 때, 여인이 정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바로 저곳이에요!”
엽현과 소칠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정면에 푸르스름한 성역이 눈에 들어왔다.
이 성역 전체에선 피비린내가 진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에 엽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온 성역의 사람을 다 죽이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게 정확히 그들이 하고 있는 짓이에요.”
그 말에 소칠도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보통 사람도 다 죽인단 말인가?”
“화근을 제거하는 것이죠.”
화근을 제거한다고?
소칠이 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신국 역시 무수한 전쟁을 치러왔지만, 일반 백성을 상대로 살육을 벌인 적은 없었다.
반면, 이 현황대세계의 무인들은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한 채, 그저 살육을 즐기고 있던 것이다.
“다 죽여버려야겠어.”
엽현이 소칠의 안색을 살폈다. 말하지 않아도 그녀가 매우 화가 난 상태란 걸 알 수 있었다.
이내 세 사람은 제성함에서 내려 현창대륙에 발을 디뎠다. 이 순간, 엽현과 소칠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짙은 피 냄새.
그들이 서 있는 대륙 전체에서 피 냄새가 진동하고 있던 것이다.
이 정도 짙은 냄새가 나려면 분명 무수히 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먼저 한국으로 안내하겠습니다. 한국은 현창대륙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니만큼, 그들은 반드시 그곳으로 몰려갔을 것입니다.”
“안내하시오!”
흑의여인은 곧 두 사람을 데리고 한국의 수도로 향했다. 잠시 후, 어느 성 앞에 내려선 그들은 성 전체에서 흘러나오는 피비린내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엽현이 반쯤 부서진 성문으로 안쪽을 들여다보자, 겉보기에도 무수히 많은 시체들이 바닥에 너부러져 있었다.
산처럼 쌓인 시체, 그리고 피의 강.
진정한 살육이 성 안에서 자행되고 있던 것이다.
바로 이때, 갑옷을 입은 한 무인이 세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의 시선은 곧장 흑의여인의 몸을 구석구석 훑기 시작했다.
“고것 참 깜찍하구나, 흐흐…….”
남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흑의여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흑의여인은 냉정한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며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느새 여인과 지척 거리로 들어온 남자.
그가 여인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 그의 머리가 뎅겅 잘려나갔다.
피를 쏟으며 지면에 굴러떨어진 남자의 머리.
그의 두 눈은 동공이 잔뜩 확장된 채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의문을 품고 있는 듯했다.
흑의여인 역시 경악에 찬 눈빛으로 엽현을 돌아보았다.
엽현과 소칠은 거침없이 성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걷는 곳마다 온통 시체 천지였는데, 그중에는 힘없는 노인들과 어린이도 보였다.
이를 보자 엽현의 눈빛은 점점 차갑게 얼어붙었다.
무인의 길을 걷는 이상 누구나 살인은 피할 수 없다. 다만 반항할 능력이 없는 약자들을 죽이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었다.
엽현은 사람이 도대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자들이 혼돈우주로 쳐들어가게 되면 닥치게 될 미래까지도.
바로 이때, 창을 든 중년인 하나가 세 사람을 막아섰다. 중년인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어디…….”
이때, 엽현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윙-!
“커, 컥…….”
중년인이 채 반응하기도 전, 한 자루 검이 날아들어 그의 목을 꿰뚫었다. 거의 동시에 엽현이 가볍게 손목을 비틀었다.
서걱-!
그대로 힘없이 굴러떨어지는 중년인의 머리.
“건방진!”
바로 이때, 장내에 노호성이 울려 퍼지면서, 강대한 기운이 공중에 나타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소칠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검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얼마 후, 소칠이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다음 순간, 피에 절은 머리통 하나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흑의 여인은 이 모습을 보자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엽현과 소칠 두 사람의 실력은 그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때, 먼 곳으로부터 대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넓게 난 관도를 통해 강대한 위압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엽현이 고개를 드니, 천랑을 탄 백 명가량의 기병들이 막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중이었다.
이 백 명의 기병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는 소칠의 근위군에 비해서도 결코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이때 엽현이 지면에 가볍게 오른발을 비비고는 자세를 잡았다. 순간, 사방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대지지력이 홍수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엽현이 오른손 주먹을 가볍게 쥐자, 한 줄기 강대한 기운이 그의 전신을 타고 주먹에 집중됐다.
이제 엽현과 기병들의 거리는 십여 장가량 남은 상황이었다.
기병들의 기세가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찰나의 순간, 엽현이 일보 전진하며 주먹을 뻗었다.
장권(葬拳)!
콰쾅-!
순간 성 전체가 뿌리 뽑힐 듯 뒤흔들리며, 대지가 요동쳤다.
이때, 세 사람 앞으로 달려오던 백 기의 기병들은 장권에 위력에 막혀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순식간에 장내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만약 상대의 기세가 장권의 위력을 상쇄해 주지 않았더라면, 한성은 그대로 무너졌을 것이다.
장권.
그 위력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바탕 모래바람이 가라앉은 후, 한 중년인이 천랑을 탄 채로 엽현에게 다가왔다. 엽현을 내려다보는 천랑의 새빨간 눈은 그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질실 시킬 정도였다.
중년인이 엽현을 향해 막 운을 떼려고 하자, 엽현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무 말도 필요 없다. 우리가 죽든지, 너희가 죽든지 둘 중 하나일 테니까!”
말과 동시에 엽현이 지면을 가볍게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 순간 한 줄기 검광이 백 명의 무인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엽현이 무리 사이로 파고드는 순간, 한 줄기 검광이 백 명의 병사들을 뒤덮었다.
하지만 일백의 북경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죽여라!”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의 명령에 백 인의 병사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흑의여인은 그대로 등을 보이며 달아났다.
한 검수와 일백 병사의 대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