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648
648화 넌 정체가 뭐냐?
다리가 폭발하기 직전 탈출에 성공한 엽현과 소칠은 어느 냇가 앞에 도달해 있었다. 주변은 칠흑처럼 어두웠고, 강물은 속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탁했다.
이때, 그들의 시야에 강 옆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한 노파가 포착됐다.
노파는 큼지막한 솥에 무언가를 끓이는 중이었다.
내용물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진한 향에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콧구멍을 벌렁거리고 있었다.
이때, 노파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씩 웃었다.
“이 염병할 놈들, 어서 와서 한 그릇 하려무나!”
구수한 말투였지만, 엽현은 어쩐지 노파의 미소가 처량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 아닙니다. 저는 아직 배고프지 않습니다.”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거절한 순간, 노파가 순식간에 두 사람 바로 앞에 나타났다.
“이 탕을 먹으면 전생과 단절하고 현생을 잊을 수 있다. 이래도 사양하겠느냐?”
소칠은 얼떨결에 노파가 내민 국그릇을 받아 들었다. 이때, 국그릇 안으로 어떤 풍경이 스멀스멀 펼쳐지기 시작했다.
어느 혼탁한 세상, 소복을 입은 여인이 구름 위에서 무심한 표정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또 다른 여인이 몹시 화가 난 얼굴로 소복의 여인을 노려보고 있다.
“너는 미쳤어! 완전히 미쳤다고!”
그 말에 소복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여인의 미간 바로 앞에 한 자루 검이 멈춰 섰다.
“내가 미쳤다고?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벌써 잊은 것이냐?”
말과 함께 검 끝이 여인의 미간 사이로 손가락 한 마디가량 파고들었다. 그러자 여인의 얼굴은 이내 피로 물들었다.
“하지만 이건 결코 그가 원한 게 아니야!”
절규하듯 소리치는 여인.
소복녀가 여인을 향해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가 살아 돌아온다면 한 번 고려 해 보지. 그렇지 않고는 아무도 날 막지 못한다.”
말을 마친 소복 여인이 뒤돌아 걸어갔다.
이때 여인이 소복녀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이 사유계에는 무수히 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목숨을 너는 도대체…….”
멀리, 소복녀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꾸했다.
“그들의 목숨? 이 사유계를 모두 합한다 해도 그의 머리털 하나만도 못하다.”
소복녀가 떠난 구름 위, 모든 것이 잠잠하다.
여인은 소복녀가 떠난 방향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한 채,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마침내 여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나 말고는 막을 자가 없어.”
“안 돼! 가면 넌 죽어!”
이때, 아무도 없는 장내에 누군가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이에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그와 약속 했어. 약자가 있거든 반드시 지켜 주기로.”
“…….”
문득 구름 아래 세상을 바라보는 여인. 그의 눈빛이 점점 흐릿하게 변해갔다.
“나도… 나도 살고 싶어…….”
이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그릇 속에 화면은 모두 사라졌다.
소칠의 앞, 노파의 안색이 무거워졌다.
“그 소복을 입은 여인… 내 생에 그렇게 두려운 인물은 처음이었다…….”
노파가 소칠의 눈을 들여다보며 들고 있던 국그릇을 소칠의 손에 쥐여 주었다.
“어서 마시거라. 마시고 전생과의 인과를 모두 끊어 내거라!”
“인과… 왜 끊어야 하는 것이오?”
“망할 년이… 마시라면 넙죽 들이킬 것이지 무슨 말이 그리 많은 게냐?”
“…전생은 전생. 현생은 현생. 나는 전생을 신경 쓰지도 않거니와, 굳이 있는 기억을 끊어내고 싶지도 않소. 나는 소칠. 과거와는 상관없는 신국의 신주요.”
소칠을 향해 무어라 소리치려던 노파.
이때 그녀가 안색이 변하더니, 소칠의 오른손을 황급히 낚아챘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고 무언가를 중얼거린 후, 두 눈을 번쩍 떴다.
“너, 너… 인왕이 될 운명…….”
“인왕?”
소칠은 노파의 반응을 보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노파의 눈동자에서는 점점 더 진중해졌다.
“믿을 수 없어……. 이렇게나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인왕의 상이 나타나다니…….”
이때 엽현이 몹시 궁금한 표정으로 둘 사이에 불쑥 끼어들었다.
“그 인왕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아까부터 자구 인왕, 인왕 하는 겁니까?”
그 말에 노파가 엽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인왕은 즉 인간의 왕을 뜻한다.”
“황제… 그런 비스무리 한 건가?”
“멍청한 놈! 무슨 얼어 죽을 놈의 황제란 말이냐? 황제는 하늘이 선택한 꼭두각시, 즉 천자(天子)다. 인왕은 인간의 왕! 그 누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왕이 되어 하늘, 그리고 여러 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존재란 말이다!”
노파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숨이 넘어갈 듯했다. 그만큼 감정이 격해져 있던 것이다.
“저, 어르신. 일단 진정 좀 하시지요. 그저 잘 몰라서 물어본 것뿐입니다.”
이에 노파가 천천히 두 눈을 감으며 분을 삭였다.
“슬프도다, 애석하도다! 이미 인간은 인왕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말았구나!”
“…….”
이때 노파가 눈을 뜨고 엽현을 바라보았다.
“저 아이는 싫다 했으니, 너라도 마셔 보겠느냐?”
“이걸 마시면 전생을 알 수 있는 것입니까?”
“물론이지!”
“흠… 생각해 보니 궁금하긴 하군요. 전생의 나는 어떤 인물이었을지…….”
엽현은 고민 끝에 노파에게서 그릇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서 입을 대려는 순간, 갑자기 그릇이 ‘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펑-!
갑작스런 폭발과 함께 백 장 밖으로 튕겨 나간 노파!
“…….”
예기치 못한 상황에 엽현은 당황했다.
소칠도 눈을 깜빡이며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당황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노파였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순식간에 원래 위치로 돌아온 노파가 호통치듯 엽현을 향해 소리쳤다.
“너는 누구냐! 너의 전생은 무엇이었느냐!”
“어… 전생… 그걸 나한테 물으면 저는 누구한테 물어보란 말입니까……. 흠, 가만 보자. 전생에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뭔가 대단한 인물이지 않았겠습니까? 하하하하!”
“…….”
잠시 엽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파가 품 안에서 오래돼 보이는 거울을 하나 꺼내 들었다. 노파가 거울로 엽현을 비추자 거울 안에서 무언가 꾸물거리며 기이한 조짐을 보였다.
바로 이때, 거울이 ‘펑’ 하고 깨지더니, 노파가 재차 뒷걸음질 쳤다.
“…….”
“…해… 불가능해… 어떻게 이런 일이…….”
얼굴이 사색이 된 노파가 엽현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설령 네 전생이 인왕이었다 할지라도, 이 왕생경(往生鏡)이 부서지는 일은 불가능하다!”
“어, 음… 그럼 전생에 인왕보다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겠습니까? 충분히 그럴만한 거 같은데…….”
“육시럴 놈! 인간의 역사 중에 인왕보다 강한 자가 어디 있다는 말… 헉!”
순간, 노파가 무언가 생각난 듯 경악에 찬 표정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설마… 네 놈은 사유계 존재가 아니구나!”
사유계?
“전생에 어디에 있었는지… 저는 잘 모르지 말입니다.”
“어쩌면… 당시 희왕이 오유계의 인물과 접촉한 적이 있었는데…….”
노파가 긴장이 되는지 손톱을 물어뜯으며 중얼거렸다.
“오유계 사람과 접촉한 게 어쨌단 말입니까?”
“희왕과 오유계의 신비인… 어쩌면…….”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노파는 결국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 둘 모두 보통 내력이 아니로구나.”
이때, 엽현이 노파를 향해 우물쭈물 말을 꺼냈다.
“저… 어르신, 혹시 물려줘야 할 전승 같은 것 없습니까?”
“……?”
“혹시라도 전승자를 구하고 계신다면, 이 엽현을 한 번 믿어 주십시오. 제가 최선을 다해 이어 나가겠습니다!”
이때 소칠이 엽현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좀 돌려서 말했어야지…….”
“…….”
“너는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아느냐?”
노파의 말에 엽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하는 분이십니까?”
이에 노파가 손가락으로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엔 안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문이 하나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마찬가지로 검을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옥.
지옥!?
“지옥이라 함은…….”
엽현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노파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당시 희왕은 인간의 문명과 각종 제도를 정비하면서 윤회에 대한 것도 만들었다. 그때 이후로 병들어 죽거나 수명이 다한 인간의 영혼은 예외 없이 한곳으로 모이게 되었지.”
“그곳이… 지옥?”
“그렇다. 지옥에 들어간 자들이 왕생탕(往生湯)을 마시게 되면 전생과 현생을 잊고 다음 생을 위한 수련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인왕이 타계한 후, 많은 제도들이 삐걱거리게 되었지. 윤회제도 역시 그중 하나다.”
노파가 숨을 들이켠 후,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전승이라 했더냐? 저 문을 들어가면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엽현은 지옥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도무지 안을 알 수 없는 문을 바라보고 있자니,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한발 물러섰다.
“위험하진 않습니까?”
“그건… 말 해 줄 수 없다.”
“…….”
이때 노파가 소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만약 지옥을 장악하게 된다면 훗날 윤회제도를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노파는 소칠이 지옥의 전승을 이어받길 원하는 눈치였다.
지옥은 인왕이 만든 것이니, 소칠이 이어받는 것이 가장 적합했던 것이다.
소칠이 캄캄한 지옥문을 지그시 응시하기 시작했다.
“윤회라…….”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지옥의 십팔악령(十八惡魂)들이 너를 도울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소칠이 엽현에게 물었다.
“관심 있어?”
그 말에 엽현이 노파의 눈치를 살피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계옥탑을 꺼내 들며 말했다.
“나는 이 녀석 하나만으로도 죽을 맛이야. 무슨 지옥이니 윤회니 하는 것까지 감당할 겨를이 없어.”
이 순간, 노파의 시선이 엽현의 손에 들린 계옥탑으로 향했다.
“그, 그건… 오유계의 신물!?”
“하하, 그저 낡은 탑일 뿐입니다. 신물이라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손을 내저어 보인 엽현은 곧장 계옥탑을 집어넣었다.
이에 노파가 잠시 엽현을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보고는 다시 소칠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럼 들어가 보거라.”
소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지옥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제 장내에 남은 것은 노파와 엽현 단 둘.
“네게 어울릴 만한 물건이 하나 있긴 한데……. 안타깝게도 너는 그 오유계의 신물 말고는 관심이 없다고 하니 아쉽게 됐구나.”
“…….”
소칠이 지옥으로 향한 지 반 시진쯤 지났을 때, 소칠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 그녀의 미간 사이에는 붉은 인장이 선명했다.
“성공한 것이냐?”
소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상대하기 까다롭지 않았더냐?”
“어렵진 않았소. 오히려… 다소 기뻐하는 것 같기도.”
소칠의 대답에 노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들도 인왕의 상을 알아보는 것이야.”
“…우리와 함께 가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