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66
66화 사부에게 가려하오
서청은 악에 바친 눈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안색은 이미 창백해져 있었으며, 표정엔 불신이 가득했다.
그는 정말이지 엽현이 자신에게 출수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뒤에는 취선루가 있지 않은가!
불신의 표정을 짓는 것은 강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멍청이! 취선루의 인물을 상대로 사고를 치다니!’
강구는 마음속으로 엽현에게 욕을 한바가지 퍼부었다.
이때, 서청이 분노에 가득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무슨 짓을 한 지 아느냐!?”
금도를 쥔 엽현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서청의 목으로부터 한 줄기 선혈이 흘러 도신에 맺혔다.
엽현이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
“불복하냐고 묻지 않았는가? 그래서 대답한 것뿐이다.”
서청이 곁눈질로 강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공주님,, 이 자는 공주님의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설마 취선루와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뜻입니까?”
강구가 엽현에게로 다가갔다.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곤란하게 될 지도 몰라.”
“너를 모욕하는 건 참을 수 없다.”
“너 알아? 지금 이 일을 수습하려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어쩌면 수습하지 못할 지도 몰라!”
“내가 수습해.”
“어떻게!? 네가 어떻게 수습한다는 거야!? 취선루가 널 죽이는 건 벌레를 죽이는 것보다도 더 쉬운 일이야!”
대화를 듣고 있던 서청이 그들을 비웃으며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벌렸다. 그때, 뜻밖에도 강구의 일 장이 서청의 목을 향했다.
빠각-!
서청이 입에서 피를 토하며 그대로 맥없이 고꾸라졌다.
이미 숨이 멎은 서청의 눈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뜻밖의 상황에 엽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해. 내가 죽인거야. 너랑은 상관없어. 넌 이대로 창란학원으로 돌아가서 다시는 양계성 근처에 얼씬도 하지마.”
“그럼 너는?”
그러자 강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엽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지금 당장 양계성을 떠나. 알아들었어?”
그녀는 대답도 듣지 않고 막사를 빠져나갔다.
막사 안에 남겨진 엽현은 서청의 시체를 바라보며 작게 읊조렸다.
“이제 취선루와 한 판 붙는 건가?”
한편, 막사를 빠져나온 강구가 몇 발자국 채 떼기도 전이었다. 어느 순간, 그녀의 앞에 검은 장포를 입은 노인이 출현했다.
동시에, 그녀의 뒤로 노인 한 명과 세 명의 흑의인이 나타났다.
강구가 흑포 노인을 바라보았다.
“귀하는 분명 새로 취임한 취선루 구 루주 겠군.”
취선루의 전임 구 루주가 사라지고, 새로운 루주가 들어섰다는 것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렇소. 내가 새로운 구 루주요.”
구 주루가 시선을 강구 뒤에 있는 막사로 옮겼다.
“서 지배인의 혼패(魂牌)가 파괴되었소. 그렇다면 그녀는 이미…….”
“내가 죽였소!”
강구가 외쳤다.
그 말을 듣자 가늘어진 구 루주의 눈에서 차가운 기운이 번뜩였다.
강구가 구 루주에게 한 발 다가갔다.
“내, 일전에 취선루에 지계 상품 무기를 위탁한 적이 있소. 그리고 취선루의 관리 소홀로 인해 물건을 도둑맞았소. 헌데, 서 지배인이 오늘 나를 찾아와서는 되려 한 푼도 보상할 수 없다는 등, 나를 업신여기는 발언을 하기에 죽였소.”
구 루주의 눈가의 살기가 점점 짙어졌다.
“구 공주, 무슨 이유에서든 간에 그대는 취선루의 사람을 죽였소.”
“그렇소! 그러나 이번 일은 강국 황실과는 무관한 일이오. 그대 역시 강국 전체와 불편해지는 것은 부담스러울 것이오. 그렇지 않소?”
구 루주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외람되오만, 우리 취선루는 강국의 황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소만.”
“하하하. 그렇다면 그대는 황실과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것이오? 그대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데?”
구 루주가 강구를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구 공주, 만약 그대가 취선루의 사람을 해한 것에 대한 만족할만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오늘 이후로 우리 취선루는 강국 황실에 어떠한 물건도 팔지 않을 것이오. 거기엔, 그대가 사용할 군량, 무기, 투구와 갑옷 등도 포함되어 있소. 그리고 공주 휘하에 있는 고위 장교들 또한 외출을 자제해야 할 것이오. 까딱하다가는 어깨 위가 허전하게 될 테니!”
강구가 구 루주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구 루주도 결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간 서로 기싸움을 하던 중, 강구가 입을 열었다.
“재차 말하지만, 이번 일은 강국 황실과는 무관한 일이오. 그러니 그대와 함께 취선루로 가서 그들의 처분을 따르겠소.”
“전하! 안됩니다!”
그녀의 뒤에 있던 노인이 소리쳤다.
“전하! 그건 절대 안될 일입니다! 만약 전하가 자리에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당국의 병사들이 순식간에 양계성을 점령할 것입니다. 그러니…….”
강구가 오른손을 들어 노인의 말을 끊고선, 구 루주를 향해 말을 이어갔다.
“지계 상품 무기를 잃어버리고서 오히려 나를 붙잡아 둘 수 있다면 그들에게는 큰 이익 아니겠소?”
구 루주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까지 한다면야, 나와 함께 취선루로 갑시다!”
구 루주가 몸을 돌려 장내를 빠려 나가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잠깐!”
누군가의 목소리에 모든 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강구의 막사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바로 엽현이었다.
그가 나온 것을 본 강구가 화난 표정으로 엽현에게 다가갔다.
“뭘 어쩌려고 나왔어? 영웅 놀이라도 할 셈이야? 너…….”
이때, 엽현이 그녀의 팔을 낚아채며 말했다.
“내가 해결할게.”
말을 마친 엽현이 구 공주를 자신의 뒤에 세워 놓고는 구 루주를 향해 걸어갔다.
구 루주는 자신의 바로 앞에 선 엽현을 무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엽현이 말했다.
“두 가지 조건이 있다. 하나, 공주에게 사과할 것. 둘, 취선루는 공주에게 오천만 냥을 배상할 것.”
구 루주가 비웃었다.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너 따위가…….”
이때, 엽현이 구 루주의 눈앞에 한 장의 보라색 명패를 꺼내 들었다. 그 명패를 본 구 루주의 표정이 삽시간에 변했다.
보라색 명패!
엽현이 꺼내든 명패는 취선루에서 검은색 명패 다음으로 높은 등급의 명패였다. 심지어 구 루주의 신분으로는 감히 발행할 수도 없는 귀한 명패였다.
엽현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구 루주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당장, 삼 루주를 내 눈앞에 데려와라.”
“귀, 귀하께서는 대체 누구시기에….”
“너는 알 자격 없다. 삼 루주를 대령시켜라!”
장내의 모든 이들은 이 장면을 경악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때, 구 루주의 표정은 처참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취선루 구 루주의 신분으로서, 이런 모욕을 받은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색 명패를 내 보인 엽현 앞에서는 그 역시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보라색 명패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구 루주가 고민이 역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 아무래도 뭔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이쯤에서…….”
“내 말을 못 알아 처먹은 것이냐?”
엽현의 눈빛이 한 층 차가워졌다.
“너는 나와 말을 섞을 자격이 없다. 삼 루주를 데려오너라!”
엽현이 언성을 높이자 구 루주는 마음속에 두려운 감정이 생겼다.
취선루의 루주에게 이렇게 소리치는 것을 보면, 저 소년의 뒤에는 분명 누군가 있는 것이다.
구 루주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검은 돌을 꺼내들어 손가락으로 으스러뜨렸다. 눈앞의 소년의 신분을 정확히 알아내지 못한 이상, 자신이 일을 크게 벌일 순 없었다.
엽현은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겉으로는 침착한 척을 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자에게 자신의 배후에 검선이 있다고 말한들 그가 믿겠는가? 아마도 그 어떤 사람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삼루주가 온다면 그 문제가 해결될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내에 백발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취선루 삼 루주였다.
엽현은 그의 모습을 보고는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 마냥 안심하며 반가웠다.
삼 루주는 엽현의 얼굴을 보고는 살짝 놀라더니, 이내 웃으며 아는 체를 했다.
“형제, 오랜만이오!”
그러자 강구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경악에 가득찬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나 친하다고?
엽현은 겸손하게 눈앞의 삼 루주에게 예를 차렸다.
“오랜만입니다.”
엽현의 공손한 대도를 본 삼 루주의 얼굴에 미소가 일었다.
“그래, 그분께서는 안녕하시오?”
“사부님은 잘 계십니다.”
이때, 엽현이 웃음기를 거두며 말했다.
“실은, 청할 일이 있습니다.”
삼 루주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구 루주를 바라보았다. 구 루주의 안색은 이미 까맣게 재가 되어 있었다.
“우리 취선루와 관련된 것이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얼마 전, 여기 계신 구 공주를 대신하여 지계 상품 무기를 취선루에 경매로 내 놓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매 당일, 어느 괴한이 나타나 무기를 훔쳐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는 오늘 취선루의 한 지배인이 찾아와 내게 말하기를…….”
엽현은 서청과 구 주루가 했던 말을 있는 그대로 삼 루주에게 말해 주었다.
서청이 말한 ‘취선루 정도의 힘이라면 남을 업신여겨도 상관없다’ 라는 대목이 나왔을 때, 삼 루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당시, 운선 위에서 한 루주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처참히 죽었던가.
바로 저 말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저 한마디 때문에 취선루 전체가 검선에게 화를 입을 뻔했다. 겨우 불을 끄긴 했으나, 두 명의 루주를 잃는 큰 손실을 입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엽현이 다시 한번 삼 루주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루주님께 제가 드리고자 하는 부탁은, 부디 공정하게 이 일을 처리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삼 루주가 잠시 침묵에 빠졌다.
황금 오천만 냥.
이는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소년의 배후엔 그 무시무시한 검선이 버티고 있다!
삼 루주가 주저하는 모습을 보자, 엽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루주님을 곤란하게 한 모양이군요. 그것이 어려운 요구였다면, 오천만 냥은 없던 것으로 치겠습니다. 제 사부 말 대로, 힘이 없으면 무시 받는 게 당연한가 봅니다.”
엽현이 비통한 웃음을 지으며 강구에게 포권을 취했다
“구 공주, 미안하오. 다음에 또 봅시다.”
그가 막 떠나려 하자, 강구가 어리둥절 해 하며 소리쳤다.
“어디가?”
엽현이 걸음을 멈추고 대답했다.
“사부에게 가려 하오.”
엽현은 미련 없이 돌아서서 앞을 향해 걸어갔다.
이때, 엽현이 눈을 꼭 감고서 간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제발, 망할 영감탱이야, 날 잡아. 잡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