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676
676화 어떻게 해 줄까?
이곳으로 유인해라.
순간 엽현은 모든 것이 명료해졌다.
북경왕이 아직 자신을 살려둔 이유가 과연 천녀를 끌어들이기 위함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이번에도 천녀에게 폐를 끼치는 것인가.
“아월, 그녀가 왜 나를 돕는지 알고 있어?”
[…….]“너도 모르는 건가?”
이때 아월이 대답했다.
[아마도 둘의 관계가 특별하기 때문이겠지.]“관계? 특별?”
엽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 어떤 관계도 맺은 기억이 없는데?”
[전생에서.]전생!
단 한 마디였지만, 엽현은 아월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현생에서 인연이 없었다면 당연히 전생에 어떤 관계에 놓여 있었으리라.
헌데……나는 도대체 전생에 어떤 사람이었지?
엽현의 미간의 골이 잔뜩 깊어졌을 때, 아월이 말했다.
[다음에 그녀를 만났을 때 물어보는 게 어떤가?]보아하니 아월도 엽현의 전생에 대해 궁금한 모양이었다.
천녀 정도 되는 강자가 아무 연고도 없는 자를 장난삼아 도와줄 리는 없다. 그녀가 엽현을 신경 쓰는 이유는 반드시 그의 전생과 관련이 있을 터.
“좋아. 다음에 만나게 되면 꼭 물어보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엽현이 불현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로 이때, 북경왕 앞쪽에 거대한 광막이 쳐지더니, 그 위로 어느 어두운 성공의 모습이 나타났다.
광막 속의 화면은 다소 또렷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천녀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느라 그런 것 같았다.
엽현은 이를 보면서 다소 기대감에 부풀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이렇게나 빨리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북경왕 역시 차분한 모습으로 광막을 응시했다.
바로 이때, 소복 차림의 여인이 마침내 화면 속에 잡혔다.
여인의 모습이 나타나자 신국 무인들이 모두 화들짝 놀랐다.
소복을 입은 여인, 그들이 어찌 저 여인을 모를 수 있겠는가?
당시 북경이 신국을 쳐들어왔을 때,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던 여인의 손짓 한 번에 북경 초절정 강자 둘의 목이 단숨에 떨어지지 않았던가!
도대체 누구일까?
얼마나 강한 것일까?
궁금증이 증폭되는 가운데 무인들의 시선은 화면 속 여인에게 고정됐다.
한편, 이때의 천녀는 성공 가운데 홀로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녀의 돌은 백.
이때 화면을 통해 천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소복, 등 뒤로 묶어 단정하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
절세가인(絶世佳人)이었다.
지금까지 모두의 초점은 그녀의 실력에 맞춰져 있었기에 가려져 있었지만, 사실 천녀의 용모는 매우 고상하고 아름다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목을 끄는 것은 그녀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품. 말로는 어찌 형용할 수 없는 그녀의 기품에 장내 무인들은 잠시 자신들이 전투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도 잊을 정도였다.
이때, 천녀가 바둑판 위로 백 돌 하나를 놓았다. 그러자 반대쪽에서 검은 돌 하나가 올라왔다.
광막 정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북경왕.
그의 곁에는 중년 남자 하나와 검을 들고 있는 노인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 자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바로 야왕과 임로였다.
두 사람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천녀를 응시하는 중이다.
한편, 계옥탑 안의 아월과 염가 역시 천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지?”
“대국.”
아월의 말에 염가가 짧게 대답했다.
“상대는?”
“글쎄, 나도 보이지 않는군.”
“이 사유계에 저런 인물이 존재한다니, 흠…….”
“…….”
“내 생각엔 엽현 이 녀석에게 정말 뭔가가 있다.”
그 말에 염가가 아월을 쳐다보았다.
“누군가 엽현을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그리고 저 여자는 그걸 대신해서 막아주고 있고. 과연 이 녀석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아월의 말에 염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수상쩍은 점이 한둘이 아니지.”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대로 우리는 좋은 거야. 저 여인이 관련돼 있는 이상, 이 빌어먹을 탑이 마음대로 설치지 못할 테니까.”
“후후, 그래도 지금은 꽤 조용한 편이지. 그때와 비교하면…….”
그 순간 두 여인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그들의 머릿속에 당시의 흉악했던 계옥탑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잠시 후, 염가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가능하다면 영원히 신지를 되찾지 못하면 좋으련만…….”
계옥탑 밖.
거대한 광막 안에는 천녀가 여전히 바둑을 두고 있었다.
이때, 북경왕이 그녀를 향해 말했다.
“일부러 우리를 무시하는 것이오?”
천녀는 반응 없이 바둑돌로 손을 가져갈 뿐이다.
이에 북경왕이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엽현이 죽든 말든 관심이 없는 모양이구려.”
엽현?!
그 말에 천녀가 바둑판으로 향하던 손을 멈췄다. 그리고는 마침내 고개를 돌려 북경왕을 바라보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가 무심하게 북경왕을 응시했다.
“나를 위협하는 것이냐?”
“그렇소.”
북경왕의 대답에 천녀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결국 천녀와 마주하게 된 북경왕이 웃으며 말했다.
“그대와 겨뤄보고 싶소.”
결투신청!
천녀는 대답 대신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에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떨구었다.
“죄송합니다. 또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이런 개미같이 약한 자들이 몰려온다 해서 내게 폐가 되진 않는다.”
“개미 같은 자들?”
이때 북경왕이 눈살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
“개미 같이 약하다고 했소? 그거 본왕이 살면서 들은 가장 재밌는 농담이구려!”
천녀는 굳이 북경왕을 신경 쓰는 대신 엽현에게 말을 이어갔다.
“나는 항상 네가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길 바라왔다. 하지만 탑의 존재 때문에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또한 이해한다.”
“적들의 수는 계속 불어나고, 더 강한 놈들이 나타나고… 진짜로 아주 죽겠습니다!”
엽현이 죽는시늉을 하자, 놀랍게도 천녀가 가볍게 웃었다.
순간 엽현은 머리가 멍해졌다.
그가 기억하기로 천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웃어 보인 적이 없던 것이다.
처음으로 보는 천녀의 미소였다.
“역경, 시련……. 이는 인생에 있어 필요한 것들이다. 마치 하나의 쇠붙이가 명검이 되기 위해 수천수만 번의 담금질을 견뎌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지. 지금 네가 겪고 있는 고난, 언젠가 이 고난의 시기에 감사할 날이 올 것이다.”
“하하, 고난 같은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다만 고난이 너무 강해 죽어버릴까 걱정입니다!”
이에 천녀가 다시 한번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강해지면 되지 않느냐? 충분히 강해지기만 한다면 어떤 어려움도 웃으며 극복할 수 있다.”
“그런데, 천녀님.”
엽현이 갑자기 진중한 표정으로 천녀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저를 도와주시는 겁니까? 전생에 우리… 서로 알던 사이였습니까?”
천녀가 자신을 도와주는 이유.
엽현은 마침내 이 오래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질문을 던졌다.
엽현은 처음부터 천녀가 자신을 특별대우해 주고 있음을 느껴왔다. 하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이 호의를 베풀 리는 없을 터.
도대체 왜 천녀는 자신을 도와주는 것일까?
아월의 말처럼 둘은 전생에 아는 사이였을까?
궁금했다. 엽현은 정말로 궁금했다.
엽현의 질문을 받은 천녀는 순간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무래도 무언가 고민하는 듯했다.
“말할 수 없는 것입니까?”
쳔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 말해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와 대면하게 되면 그땐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어디 있는지만 알려 주십시오.”
“먼 곳… 아주 먼 곳에.”
엽현이 계속해서 질문하려 할 때, 한쪽에 있던 북경왕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결국 나와 겨루지 않겠다는 것이오!?”
천녀의 시선이 그제야 북경왕을 향해 돌아갔다.
“나와 싸우자고?”
“왜, 나는 그럴 자격이 없소?”
이때 천녀가 엽현에게 물었다.
“사람만 죽이면 되겠느냐, 아니면 세상을 멸망시켜야 하겠느냐?”
사람?
세상?
순간 엽현의 사고 회로가 툭 하고 끊어졌다.
사람만 죽여줄까, 세상을 없애줄까?
엽현은 처음에는 천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이내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북경의 모든 봉제경 이상의 강자들만 정리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다.”
가볍게 대답한 천녀가 북경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는 아직 나에게 도전할 자격이 없다.”
“후후, 정말 그렇소?”
천녀가 말없이 손을 뻗었다.
“검!”
그녀의 음성이 떨어진 순간,
윙-!
검명 소리와 함께 혼돈우주 상공에서 한 자루 검이 나타났다.
이 검을 알아본 엽현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검은 다름 아닌 오래전 계옥탑에서 떠나간 바로 그 검이었던 것이다.
장내에 나타난 검은 곧바로 북경왕을 향해 떨어졌다.
검이 자신에게로 날아드는 것을 보자 북경왕은 문득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찰나의 순간, 강대한 기운이 북경왕 체내로부터 쏟아져 나와 반경 수만 장의 공간을 일순 일그러뜨렸다.
예사롭지 않은 북경왕의 실력을 본 순간, 엽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때, 천녀의 검은 이미 북경왕의 머리 꼭대기에 도착해 있었다.
이에 북경왕이 흉악한 웃음을 보이며 상공을 향해 쌍장을 날렸다.
콰쾅-!
강대한 기운이 방출되자, 땅이 들썩임과 동시에 근처에 있단 무인들이 뒤로 밀려났다.
바로 이때, 검이 지척에 다다랐다.
쉭-!
무언가 날카롭게 잘려나가는 소리.
그리고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천녀의 검이 그대로 북경왕의 정수리를 뚫고 나왔다.
“…….”
순간 고요해진 장내.
막지 못한 것인가?
초점을 잃은 북경왕의 눈동자.
이때 그의 육신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순간, 장내 모든 무인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초살!
단 일검에 저 북경왕을 초살해 버린 것이다.
엽현 역시 말문이 막히기는 마찬가지.
물론 천녀가 강한 것과 그녀가 승리할 거란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검에 북경왕을 죽인 것은 엽현으로서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결과였던 것이다.
일검!
현황대세계의 북경왕이 단 일검에!?
단 일검도 받아 낼 수 없었단 말인가!
북경왕 측의 무인들은 모두 망연자실한 것도 모자라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갔다.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이다지도 허망하게 죽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때 천천히 소멸되어가던 북경왕이 천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차가운 표정으로 북경왕을 내려다보는 천녀.
비록 아무 말 없었지만, 그 눈빛은 마치 하찮은 벌레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곧, 천녀의 시선은 북경왕과 함께 왔던 야왕과 노인에게로 넘어갔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검수 노인이 천녀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그 순간, 그의 검이 격렬히 반응하며 하늘 높이 한 줄기 검의를 쏘아 올렸다.
천녀를 앞에 둔 검수 노인.
그의 눈빛에서는 일말의 두려움도 찾아볼 수 없다.
“가르침을 부탁하오.”
노인의 음성이 떨어진 순간, 천녀의 섬섬옥수가 움직였다.
그 순간, 장내에 한 줄기 검광이 번뜩였다.
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