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688
688화 이렇게 죽는다고?
조사!
검십봉은 마지막 순간까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최강의 패이자, 한 번 소환하면 다시 불러낼 수 없는 최후의 무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선검종이 멸망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법!
검십봉의 음성이 떨어진 순간, 선검종 깊숙한 곳에서 한 줄기 검광이 터져 나왔다. 이윽고 눈부신 검광 사이에서 황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선검종 상공에 나타났다.
여인이 등장한 순간, 위엄 넘치는 검세가 선검계 전역을 뒤덮었다.
이와 함께 선검계 안에 있는 모든 검들이 요란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구름 속, 여인을 바라보던 헌원기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과연 미지경…….”
이때, 헌원기 뒤편에 이십여 명의 무인이 나타났다.
모두 지경 절정의 무인들이었다.
잠시 후, 소복을 입은 여인이 모습을 드러낸다면 선검종의 조사가 그녀를 견제할 것이고, 그 틈에 자신과 지경 무인들이 엽현을 처리할 것이다.
차도살인(借刀殺人)!
한편 선검종 상공, 장내를 둘러보던 여인의 시선이 엽현에게 멈췄다. 엽현을 발견한 순간, 여인의 눈동자가 갑자기 흔들렸다.
“너의 그 혈맥… 어찌하여 큰 오라버니와 같은 것이냐…….”
혈맥!
막 여인을 향해 출수할 생각이었던 엽현이 그 말을 듣고 자리에 멈춰 섰다.
나와 같은 혈맥?
바로 이때, 순식간에 엽현 앞에 나타난 여인이 반응하지 못하는 사이 엽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엽현의 체내에서 날뛰던 혈맥이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그의 붉은 눈동자도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이때 엽현을 응시하고 있던 여인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엽현의 어깨를 쳤다.
“나오너라!”
그 한 마디와 함께, 계옥탑 꼭대기에 꽂혀 있던 검 한 자루가 여인의 앞으로 튀어나오더니, 마치 인사라도 하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에 엽현이 다소 당황했다.
적인 줄 알았던 여인이 탑의 검과 친분이 있단 말인가?
복잡한 표정으로 검을 바라보던 여인이 손을 뻗어 가볍게 검을 쥐었다.
“이런 방식으로 재회할 줄은 미처 몰랐구나……. 네 주인은 어디 있느냐?”
검이 가볍게 울자, 여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검과 인사를 마친 여인은 다시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엽현을 훑어보는 그녀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풍마(瘋魔)…….”
“풍마?”
“…자신의 혈맥을 모르고 있는 것이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네 부친은?”
“만나 본 적도 없습니다. 부친을 알고 계십니까?”
엽현의 대답에 여인이 살짝 아미를 찌푸렸다. 다만 곧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가 그리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선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
“그나저나 네 검도의 깊이가 얕지 않구나. 조금 더 정진하면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여인의 오른손이 다시 엽현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순간, 강대한 검이 엽현의 몸 안으로 쑥 들어갔다.
이 장면을 보자 장내 무인들의 표정이 기이해졌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엽현을 처리하라고 불러냈건만, 왜 오히려 그를 돕고 있는 건가!
구름 위, 헌원기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여인을 불러낸 검십봉 역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자신들의 조사가 왜 엽현의 경지를 챙기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가짜를 불러낸 것일까?
그중에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바로 당사자인 엽현이었다.
여인이 나타났을 때, 엽현은 벌써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 상대가 자신의 검도에 도움을 주려 한다니…….
게다가 여인은 선검종의 조사 아닌가.
이때, 멀리 있던 검십봉이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여인 앞에 나타났다.
“조사를 뵙습니다.”
“무슨 일로 날 불러냈느냐?”
여인의 물음에 검십봉이 엽현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 자는 감히 선검종의 영역에 쳐들어와 제 육신을 파괴하고 제자들을 무참하게 살해했습니다. 이는 죽어 마땅한 죄입니다.”
“음?”
여인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엽현을 돌아보았다.
“그런 대담한 짓을 벌이다니.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말 해 보거라.”
“…….”
잠시 머뭇거리던 엽현은 결국 일련의 과정을 소상히 설명했다. 거짓은 없었지만, 과연 포장은 일품이었다.
엽현이 말을 마쳤을 때, 여인이 차가운 얼굴로 검십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검수라는 놈이 파렴치하게 어린 소녀를 인질로 삼으려 했단 말이냐!”
그 말에 얼굴빛이 변한 검십봉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조사, 우리 선검종은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을 한 자는 따로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이 아이를 노린 것이냐!”
“여, 엽현 말씀이십니까?”
검십봉이 잠시 멍청한 얼굴로 엽현과 여인을 번갈아 보았다.
그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선검종의 조사일 텐데 도대체 누구 편을 드는 것인가!
바로 이때, 여인이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구름 속에 숨어 있던 헌원기가 깜짝 놀라 황급히 달아나려 했다.
이때 여인이 손가락으로 헌원기를 가리키자…….
윙-!
검명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구름 속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아가씨를 보호하라!”
음성과 동시에 이십 명의 지경 강자들이 헌원기 앞을 막아섰다.
이십 명의 지경 강자들이 일제히 출수하니 이 위용이 어찌 대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여인의 검이 도달하자, 이들의 머리는 썩은 나뭇가지마냥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이들의 희생으로 헌원기는 수만 리 밖으로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이때 여인의 손이 다시 헌원기가 사라진 방향을 가리켰다.
“쫓아라!”
그 순간, 한 줄기 검광이 순식간에 헌원기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수만 리 밖, 상대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헌원기가 몸을 돌리고는 황급히 부적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금색 부적이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는 순간, 찬란한 금광이 공중에서 폭발했다.
쾅-!
엄청난 충격과 함께 헌원기의 신형이 수천 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
그러나 이 거대한 폭발 사이에서 여인의 검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보자 헌원기의 눈동자가 순간 쪼그라들었다.
죽음을 예감한 순간, 웬 노인 하나가 헌원기의 앞을 막아섰다. 노인이 자신의 오른팔을 정면으로 쭉 뻗은 후 가볍게 회전시키자, 그 공간 전체가 검은 소용돌이로 변했다.
이때 검이 도착했다.
쾅-!
노인과 헌원기가 동시에 천 장 밖으로 밀려났다.
커다란 폭발이 있었지만, 여인의 검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다만 이때 노인과 헌원기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후.
다시 선검종 상공.
여인의 시선이 검십봉에게 떨어졌다.
“방금 그자는 누구냐?”
“헌원가의 무인입니다…….”
“헌원가?”
검십봉이 쭈뼛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여인의 눈동자의 짙은 의혹이 일었다.
“헌원가의 무인이 왜 너를 노리는 것이냐?”
여인이 엽현을 향해 물었다.
“실은 제 몸의 오유계의 신물이 있습니다. 저들은 아마도 그것을 노리고 있는 듯합니다.”
“내가 한 번 볼 수 있겠느냐?”
엽현은 주저 없이 계옥탑을 꺼내 들었다.
계옥탑이 등장한 순간 여인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이건…….”
이때 여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가볍게 소리쳤다.
“나오너라!”
그 말이 떨어지자, 탑 안에서 검 한 자루가 튀어 나왔다.
그 검은 바로 얼마 전 천녀가 남겨주고 간 검이었다!
천녀의 검을 본 순간 여인이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엽현을 돌아보았다.
“이 검이 어찌 네게 있는 것이냐?”
“그게… 누군가에게서 받았습니다.”
“그 누군가란 소복을 입은 여인을 말하는 것이냐?”
“그걸 어찌…?”
엽현의 대답에 여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그녀가 이 검을 누군가에게 넘길 줄이야…….”
말을 하던 여인이 돌연 검십봉을 향해 물었다.
“헌원족과 무슨 거래를 했던 것이냐?”
순간 검십봉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실은 조사께서 소복의 여인을 막는 동안 그들이 엽현을 죽이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여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를 막다니… 너는 내가 죽길 바랐던 것이냐?”
“조사… 그런 것이 아니라…….”
“너는 사사로운 이익 때문에 선검종 전체를 절경에 빠뜨렸다. 네게 종주의 자리가 어울린다 생각하느냐?”
말을 마친 여인이 사방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지금부터 검십봉을 폐하고 엽현을 선검종 종주로 추대하겠다!”
순간, 선검종 무인들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종주 자리에 엽현을?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란 말인가!
특히 검십봉은 머리가 새하얘져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도와달라고 불렀더니 자신을 폐한 것도 모자라 적을 종주 자리에 앉힌단 말인가!?
“저기…….”
이때 엽현이 망설이듯 입을 열자, 여인이 엽현을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냐?”
“아무래도 저는 이 자리에 적합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정한 것에 토 달지 말거라.”
“하지만, 남은 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엽현의 말에 여인이 날카로운 눈으로 선검종 무인들을 내려다보았다.
“혹시 불복하는 자가 있느냐?”
“…….”
조용하기만 한 장내.
이때 여인이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검종은 내 손으로 직접 창립한 것이니, 내가 멸망시킨다고 하더라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순간 선검종 무인들의 표정이 거뭇거뭇해졌다.
자신들의 조사가 화가 난 상태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때, 선검종 무인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조사의 결정에 따르겠나이다!”
장내를 둘러보던 여인이 다시 엽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만약 불복하는 자가 있다면 내 손으로 직접 처리할 것이다.”
“…어째서 제게…….”
“왜냐고 묻는다면, 당시 내가 그에게 큰 빚을 지었기에…….”
여인이 머뭇거리며 하던 말을 멈췄다.
“지나간 일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여인이 하늘로 고개를 치켜들며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저 헌원족은 결코 만만한 자들이 아니다. 그들에겐 한 자루 신검(神劍)이 있는데, 이는 바로 ‘그’가 사용하던 것이다.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건 헌원족의 후예가 왜 너를 노리느냐는 것이다…….”
“저… 지금 무슨 말씀을…….”
엽현은 도무지 여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때 여인이 엽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 전 출수한 것으로 분신에 있는 내 영기가 모두 소진됐다. 만약 연이 있다면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자꾸나. 그럼.”
말을 마친 여인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한편,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던 엽현이 검십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 동생을 데려간 것이 헌원족인가?”
“…….”
검십봉이 말하기를 꺼려하는 순간, 엽현의 검이 번뜩였다.
서걱-!
검십봉의 머리가 피를 흘리며 솟구쳤다.
이때 검십봉의 눈은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이렇게 죽을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