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689
689화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엽현이 너무나 쉽게 검십봉을 처치해 버리자, 선검종 제자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누군가 내 질문에 대답해 줄 사람이 있는가?”
이때 선검종 제자가 엽현에게 다가오더니 예를 차리며 말했다.
“조, 종주… 방금 전 도망친 여인은 헌원족의 장녀, 헌원기라는 인물입니다. 납치가 이뤄졌다면 아마도 그들의 짓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헌원족!
“그들의 위치는?”
제자가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헌원계(軒轅界)로 가시면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좋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장내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조만간 사람을 보내 선검종을 접수할 것이다. 만약 원하지 않는 자가 있거든 떠나도 좋다.”
말을 마친 엽현은 그대로 검광으로 변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목표는 헌원계!
엽현이 떠난 후, 선검종 무인들은 멍하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조금 전만 해도 적이었던 자가 갑자기 종주가 되어 버리다니.
그들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지?”
누군가 작게 중얼거렸고, 무인들은 침묵했다.
어쩌긴 어쩌겠는가.
자신들의 조사가 정한 일이 아닌가?
만약 엽현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 이는 조사의 뜻을 거스르는 꼴이 된다.
바로 이때, 선검종 젊은 무인 중 서열 일위인 월금조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형제들, 조금 전 엽현을 대하던 조사의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그 말을 듣자 무인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아닌 게 아니라, 엽현에 대한 조사의 태도가 너무나 비상식적이었던 것이다.
마치 이모가 조카 보듯 하는 느낌이랄까?
누구도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사이 월금조가 말을 이어갔다.
“내 생각엔 조사께서는 엽현과 어떤 인연이 있었거나, 혹은 엽현의 배후란 자와 아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이유야 무엇이든 조사께서 이리 결정하신 데에는 필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터! 반면 우리와 합작을 하려 했던 헌원족의 태도는 어땠습니까?”
헌원족!
헌원족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무인들의 표정이 차갑게 식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었고, 자연히 이번 일을 일으킨 장본인이 누구인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명명백백, 헌원족은 선검종을 이용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금 전 조사의 말투나 행동을 통해, 저는 오히려 조사의 결정이 선검종을 보호하기 위함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금조, 조사께서 이리하신 것이 모두 선검종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냐?”
누군가 소리치자, 월금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는 일찍이 미지경에 오르신 몸, 그런 강자를 두렵게 할 만한 것은 세상에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아 엽현을 종주 자리에 앉히신 이면에는 물론 그와의 인연이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배후를 의식한 것이 아닌가 사료됩니다. 만약 그자의 실력이 조사를 두렵게 할 만하다면 말입니다.”
순간 선검종 무인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미지경의 조사, 그런 그녀가 두려워할 만한 실력자라면…….
“어찌 됐건, 이미 조사의 말씀이 있었으니 선택은 둘 중 하나입니다. 엽현을 종주로 받아들이던가 아니면 그의 말대로 종문을 떠나던가.”
엽현을 부정하는 것은 곧 청운검제를 부정하는 것.
이는 충성스런 선검종의 제자들에게는 매우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한 가지 더 알아 두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번 일로 인해 우리는 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을 뿐 아니라, 선조의 분신이라는 필승의 패도 허무하게 날려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꾸민 헌원족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한 월금조가 장내를 한 번 둘러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할 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 여우같은 헌원족 혹은 다른 세력이 우리의 선검종을 순식간에 흡수해 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때, 월금조 곁에 있던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헌원족에는 마땅히 응징을 가해야 할 것이다. 헌데 종주를 죽인 엽현은…….”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입니까?”
노인을 바라보는 월금조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는 처음부터 우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필요했다면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우리의 목숨까지도 저버렸을 겁니다.”
그 말에 장내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이와 함께 무인들은 하나둘, 선검종에 엽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 * *
어검을 타고 구름 속을 비행하는 엽현.
이때 그의 체내에서는 하나의 강대한 검의가 끊임없이 발산되고 있었다.
선검종에 있을 때 청운검제가 넘겨준 검의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었다.
엽현은 두 눈을 감고 쥐고 있던 천주검에 서서히 힘을 주었다.
이때, 그의 몸 주변으로 붉은 안개가 서서히 피어나기 시작했다.
몸속의 혈맥이 다시 들끓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엽현이 돌연 두 눈을 번쩍 떴다.
쾅-!
순간 그의 두 눈에서 튀어나온 검광이 공간을 찢으며 날아갔다.
이와 동시에 흑과 백, 두 개의 검의가 나타나더니 엽현의 몸 주위를 맹렬히 돌기 시작했다.
선악검의(善惡劍意).
폭풍이 잦아들 때쯤 엽현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두 개의 검의가 각각 응집되어 두 자루의 검을 만들어냈다.
선악검(善惡劍).
크게 숨을 몰아쉬는 엽현.
바로 이때, 그의 눈앞에 있던 두 자루 검이 빛으로 변해 구름 속을 뚫고 들어갔다.
초범검성(超凡劍神).
이 일련의 과정이 끝나고 엽현이 먼 하늘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이 순간,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헌원계.
헌원세가와 무족은 명실공히 현황대세계 최강의 세가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실력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현황대세계 세력들은 대부분 외부 세계로의 확장, 정확히는 침략행위에 몰두하고 있었다. 현황대세계 내부에서 전쟁이 벌어질 일은 거의 없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헌원세가와 무족의 진정한 실력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헌원계의 어느 구름 위.
헌원기가 공중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흑의를 입은 노인이 음침한 표정으로 구름 밖을 내다보고 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헌원기가 서서히 눈을 떴다. 이때 그녀의 안색은 마치 백지장처럼 창백해 혈색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왜!”
돌연 헌원기가 분을 토해내듯 소리쳤다.
그녀의 머리로는 도저히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선검종 종주를 꼬셔서 그들의 조사를 불러내게 한 다음, 그녀가 소복녀를 막고 있을 때 엽현을 제거한다.
이것이야말로 헌원가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오유계의 신물을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청운검제는 엽현을 두둔했으며, 오히려 검십봉과 자신을 공격했다. 게다가 더욱 참담한 것은 이번 일로 인해서 지경 강자 스무 명이 희생당했다는 사실이었다.
스무 명의 지경 강자!
이들은 모두 헌원가의 정혈을 뽑아 길러낸 고수들이었다.
헌원기의 안색이 곧 죽어가는 사람처럼 어두워졌다. 자신의 인생에서 이렇게 원통하고 억울한 적이 있었던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때 침울해 있는 헌원기에게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청운검제는 이미 엽현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엽현!
“말도 안 돼!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인데 어디서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단 말이냐!”
“그건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확실히 엽현을 알아보았습니다. 혹 엽현 배후의 인물을 알아본 것일지도…….”
소복의 여인!
순간 헌원기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녀에 대해 알아낸 것이 있느냐?”
“…아직 없습니다.”
“우리 헌원가조차 알아낼 수 없단 말인가!”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금까지의 조사로 유일하게 알아낸 것은 엽현에게 그 물건을 준 것이 바로 그녀였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 중입니다.”
“그녀의 실력은?”
“흠… 최소 등봉, 어쩌면 반보 미지경 정도로 보입니다.”
“미지경일 수도 있지 않느냐?”
헌원기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보여 준 실력으로는 미지경에 이르렀다는 증거가 될 순 없습니다.”
“후…….”
헌원기가 깊게 숨을 내뱉자, 그녀 밑에 깔려 있던 구름이 가볍게 흩어졌다.
“원래 계획은 청운검제를 이용해 그녀를 막고, 더불어 그 실력까지 간파하는 것이었는데…….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바로 이때, 헌원기가 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작은 빛이 번쩍였다.
“무슨 일입니까?”
“엽현이… 선검종 종주가 되었다는군!”
“설마 청운검제가?”
헌원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사라지기 전 엽현을 차기 종주로 지목했다 한다. 그리고…….”
헌원기가 고개를 들어 노인을 바라보았다.
“엽현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때 헌원기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준비를 하거라.”
바로 이때, 노인이 무어라 대답하려는 순간, 먼 창공에서 한 줄기 검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이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붉은빛이 빠르게 이쪽으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왔다!
순간 헌원기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정말 미친놈이 따로 없구나!”
검명 소리가 헌원계 상공에 울려 퍼진 순간, 혼원계 전체가 들끓기 시작했다.
적의 침입인가!
이때 헌원계 상공에 천주검을 든 엽현이 나타났다.
이윽고 엽현은 순식간에 사방의 대지지력과 공간지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중년인 하나가 엽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중년인이 막말을 하려는 순간, 엽현의 신형이 움직였다.
중년인이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엽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중년인의 몸에는 하나둘 검상이 생기기 시작했고, 얼마 되지 않아 팔다리 등이 떨어져 나갔다.
이때, 엽현이 원래 있던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몽중일검(夢中一劍)!
중년인의 혼탁한 눈빛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숨이 끊어진 후였다.
초살(秒殺)!
중년인을 죽인 엽현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순간 사방에서 강대한 기운이 그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중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흑의를 입은 노인이었다.
다름 아닌 헌원기를 보좌하던 노인이었다!
이미 축 늘어진 중년인의 시신을 본 노인이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엽현, 이곳은 선검종이 아니다.”
순간 엽현이 눈을 크게 뜨고 노인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내 동생, 너희에게 있느냐?”
“그렇다면? 헌원가 무인들을 다 죽이기라도 할 텐가?”
“…….”
“후후, 헌원가의 전승이 이어져 내려오길 벌써 팔만 년, 그동안 무수히 많은 세력들이 뜨고 졌지만, 우리 헌원가는 여전히 존재한다. 설령 네 뒤의 그 여인이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우리를 어찌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