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713
713화 나한테 강도짓을 하겠다?
엽현이 뒤를 돌아본 순간, 그의 앞에 웬 검은 갑옷을 입은 남자 하나가 나타났다.
남자는 손에 긴 창을 쥐고 있었는데, 그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귀신과 같았다.
“…신전인가?”
순간, 남자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에 엽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검을 뽑아 들었다.
쾅-!
첫 번째 공격이 오간 직후, 엽현이 수십 장 뒤로 밀려났다.
반면 남자의 창은 이미 산산조각이 난 상태.
엽현은 검을 쥔 손이 떨려 옴을 느끼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상대의 실력 또한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이때, 남자의 신형이 다시 한번 사라졌다.
쾅-!
이와 동시에 휘몰아쳐 오는 강대한 기운!
양손으로 천주검을 단단히 쥐고 있던 엽현은 상대가 지근거리에 들어오자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쾅-!
또 한 번의 충돌이 발생했고, 엽현과 남자의 신형이 동시에 밀려났다.
자리에 멈춰 선 남자가 다시 몸을 날리려 할 때, 장내에 누군가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멈춰라!”
그 음성과 함께 엽현의 앞에 타는 듯한 붉은 옷을 입은 미부가 나타났다.
여인은 대략 서른 정도로 보였다. 잘 익은 복숭아처럼 농염하고 풍만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소년, 너는 누구인데 이곳을 찾아온… 그대는 엽왕 아니오?”
미부가 자신을 알아보자 엽현이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를 아시오?”
“알다마다! 헌데, 우리 강족(姜族)은 그대와 아무런 원한도 없는 것으로 아는데…….”
“강족?”
엽현이 머리를 굴려보았으나, 들어본 적 없는 세력이었다.
“아무튼. 엽왕, 우리는 그대와 신전 사이의 전쟁에 끼어들 마음이 없으니 돌아가 주시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물건을 하나 찾기 위함이오.”
“물건? 어떤…….”
엽현이 손을 들어 검은 문을 가리켰다.
“이 안에 강족이 있소?”
“…….”
미부가 대답이 없자 엽현은 고민 끝에 손뼉을 마주쳤다. 그러자 한 자루 칠흑의 검이 미부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는 검무문 종주인 아청이 그에게 찾아오라 말한 그 검이었다.
검을 마주한 순간, 미부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이… 검을 찾아왔다고?”
“그렇소. 표정을 보아하니 검이 있는 장소를 알고 있는 듯한데?”
“…물론이오. 이 검은 우리 강족의 신물이니까.”
강족의 신물!
엽현은 다소 난처한 상황에 빠진 것을 깨달았다.
이미 주인이 있을 줄이야!
“우리는 신검을 내어 줄 생각이 없으니 이만 돌아가도록 하시오.”
미부가 퉁명스레 말하자, 엽현이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그럼 한 번 빌리는 것도 어렵겠소?”
“지금 그걸 농담이라고 하는 게요?”
“내가 농담할 사람으로 보이시오?”
“절대 안 되오!”
미부의 단호한 태도에 엽현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때 미부가 엽현을 향해 말했다.
“엽왕, 우리는 그대와 얽히고 싶지 않을뿐더러 신물을 외인에게 함부로 내어줄 수도 없소. 그러니 양해하고 돌아가 주기 바라오.”
“…무슨 말인지 알겠소.”
엽현은 미부를 향해 눈인사를 보내고는 그대로 등을 보이며 떠나갔다.
주인이 있는 물건을 굳이 빼앗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척 봐도 평범한 세력이 아닌 것 같은 강족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물론 마냥 이대로 포기할 수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 검에 자신과 혼돈우주 무인들의 목숨이 걸려 있기에!
한편, 미부는 미련 없이 돌아서는 엽현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 역시 현황대세계 내에서 소문이 자자한 엽현과 어떤 식으로든 적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이때였다.
“엽왕, 잠깐 멈추시오!”
막 어검을 타고 떠나려던 엽현이 미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미부가 다소 언짢은 듯한 표정으로 엽현에게 말했다.
“족장이 그대를 만나 보길 원하시오.”
‘강족의 족장이?’
엽현은 고민 없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를 부탁하오.”
이윽고 미부와 남자는 엽현을 데리고 검은 문 안쪽으로 향했다.
문을 향해 다가갈수록 흡입력이 더욱더 강해졌다.
이와 함께 엽현은 자신의 육신이 점점 갈라지는 것을 느꼈다.
반면 앞서가는 두 사람은 아무런 영향도 없는 듯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엽현이 미부를 향해 도움을 청하려는 순간, 미부가 먼저 말을 꺼냈다.
“듣자 하니 엽왕의 실력은 무쌍이라 하던데… 이 정도 탄서지력(吞噬之力) 쯤은 아무것도 아니겠지요?”
“…….”
“강국이 자랑하는 탄서지력도 엽왕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다니, 정말로 감탄을 금할 수 없구려!”
이때, 엽현이 비장한 표정으로 미부를 향해 대꾸했다.
“우리 둘은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왜 이리 나를 홀대하는 것이오?”
엽현이 이렇게 대놓고 불만을 토로할 줄 몰랐던 여인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만약 내가 무슨 죄를 지었거나 했다면 그대에게 곧바로 용서를 구할 것이오. 그러나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는데 이리 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고하겠소. 본왕의 성격이 그리 좋지 못하니,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오!”
바로 이때, 미부 곁에 있던 남자가 엽현을 노려보았다. 순간, 그에게서 강대한 기운이 흘러나와 엽현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에 엽현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검을 뽑아 들었다.
쉭-!
한 줄기 검광이 어둠 속에서 번뜩인 순간, 남자의 신형이 백 장 밖으로 튕겨 날아갔다. 이때, 그가 입고 있던 갑옷이 산산조각나 떨어져 나갔다.
남자가 자세를 고쳐 잡고 몸을 날리려는 순간, 이미 엽현의 검이 그의 미간에 닿았다.
“조금 전 널 죽이지 않은 것은 그럴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강족의 체면을 살려 준 것이었다. 알고 있는가?”
엽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남자는 엽현을 노려보며 오히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남자가 불복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엽현은 신경 쓰지 않고 천주검을 거둬들였다.
바로 이때, 남자가 돌연 엽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모습을 본 순간, 미부가 안색이 새하얘져 소리쳤다.
“안 돼! 엽왕, 제발…….”
서걱-!
미부의 말이 채 닿기 전, 남자의 머리가 피를 뿜으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엽현이 정말로 살수를 쓸 줄 몰랐던 미부는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엽왕, 여기는 강족의 땅…….”
엽현의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빛을 본 순간, 미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이제야 눈앞의 인물이 어떤 자인지 똑똑히 깨달을 수 있었다.
상대는 엽현. 등봉경 강자도 능히 죽일 수 있는 강자가 아닌가!
바로 이때, 장중에 누군가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예를 갖춰 엽왕을 모시거라!”
이에 미부가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엽현에게 검은색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 흑원석(黑源石)을 지니고 있으면 탄서지력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오.”
흑원석을 받아 든 엽현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그대로 검은 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자리에 홀로 남은 미부는 눈앞에 참혹하게 살해당한 시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한편, 문 안쪽으로 들어온 엽현은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어느 숲속의 골짜기였다. 하늘 위에는 백운(白雲)이 떠 있고, 사방에는 새 소리와 꽃향기가 가득한 평화로운 곳이었다.
이때, 그의 앞에 다시 미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쪽으로 안내하겠소.”
말을 마친 미부는 먼저 성큼성큼 앞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얼마 후, 두 사람 앞에 나타난 것은 산허리에 걸려 있는 누각이다. 이 누각 앞에는 한 남자의 조각상이 허공에 떠 있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엽현이 물었다.
“저 조각은 강족의 조사인 것이오?”
“그렇소.”
미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러더니 엽현을 향해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겼다.
“우리 조사께서는 분명 엽왕을 알지 못할 것이오.”
“…….”
조각상을 지나친 두 사람은 나무로 지어진 어느 대전 안으로 들어섰다.
대전 안에는 두 노인과 중년 남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중년 남자가 바로 강족의 족장인 강목풍(姜木風)이었다.
강목풍은 엽현을 보자마자 대뜸 한소리를 했다.
“엽왕, 강족에 오자마자 살인을 저지르다니, 과연 대담하구려!”
“그럴 이유가 있었소. 첫째, 그가 먼저 선공을 했소. 둘째, 강족의 체면을 보아 한 번 살려 주었으나, 재차 공격을 감행했소.”
“그러나 그대가 좀 더 너그러웠다면 강족의 인정(人情)을 하나 살 수 있지 않았겠소?”
“존중은 상호적인 것이오. 강족이 처음부터 나를 존중했더라면 애당초 검을 뽑을 일도 없었소.”
엽현이 한 마디도 지지 않자 강목풍이 잠시 엽현을 노려보았다.
엽현은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웃으며 물었다.
“강 족장, 그나저나 왜 나를 보자고 한 것이오? 하고 싶은 말이 있소?”
이에 강목풍이 눈짓을 하자 노인들과 미부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대전에 두 사람만이 남게 되자 강목풍이 입을 열었다.
“듣자하니 엽왕에게 오유계의 보물이 있다던데…….”
“그렇소. 그대도 관심이 있는 것이오?”
강목풍이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 있겠소? 우리 강족은 그런 신물을 감당할 수 없소.”
말을 하는 와중에 강목풍이 엽현의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엽왕, 한 가지 거래를 합시다.”
“들어보겠소.”
“그대가 원하는 대로 강족의 신검을 빌려주겠소. 대신, 그 오유계의 보물을 한 번 보게 해 주시오. 가능하겠소?”
“…그냥 한 번 보는 걸로 말이오?”
“그렇소! 그거면 족하오!”
“하하, 별 어려운 부탁도 아니구려.”
엽현이 손을 펼치자, 그의 손안에 계옥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계옥탑이 나타난 순간, 강목풍이 탑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검은?”
엽현의 말에 강목풍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찌, 내가 식언을 할 것 같소?”
“검부터 봅시다.”
강목풍이 엽현을 한 번 바라보고는 소매를 펄럭였다. 그러자 그의 손 안에 상자 하나가 나타났다.
엽현이 고개를 들어 검은 상자 안을 들여다보니 과연 그 안에 칠흑의 검 한 자루가 누워 있었다.
아청이 그에게 찾으라고 했던 바로 그 검이었다.
시선을 거둔 엽현이 손에 힘을 풀었다. 그러자 계옥탑이 강목풍을 향해 천천히 날아갔다.
드디어 계옥탑을 손에 넣은 강목풍.
이때 그의 눈동자 속에 불길이 일었다.
“오유계의 신물…….”
강목풍이 다시 엽현을 바라보았다.
“이 물건이 있으면 정말 오유계로 갈 수 있는 것이오?”
이에 엽현이 대답 대신 손을 펼쳤다.
“검!”
그 순간 강목풍 손 안에 있던 상자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더니 강목풍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엽현을 향해 말했다.
“무슨 검?”
순간 엽현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진심이오?”
“하하하하! 엽현, 네가 우리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계산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물건을 넘겨준다면 과거의 일은 묻지 않을 것이다. 어떠냐?”
“후후, 내게서 강도짓을 하겠다?”
엽현의 말에 강목풍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강도짓이라니, 네 손으로 직접 넘겨준 것 아니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