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720
720화 이미 출수했다
엽현이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과연 고요하고 평화로운 것이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는 듯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양의 울음소리보다는 죽고 죽이는 소리에 더욱 익숙하지 않았던가.
이런 잔인한 소리에 엽현은 신물이 났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도 살육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유, 평화… 이런 것들은 오직 강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니까.
약자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말했다. 평범한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간다고.
하지만 그건 평범하게 살 수밖에 없는 자들이 꾸며낸 핑곗거리에 불과하다.
절정에 도달해 보지 못한 자들이 어찌 평범함을 논할 자격이 있겠는가?
두 사람은 계속해서 초원 위를 거닐었다.
한편으로는 걸으며, 한편으로는 이야기꽃을 피우며, 두 남매는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오빠, 그런데 나는 앞으로 몇 명의 올케를 두게 될까?”
“응?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봐봐. 오빠한테는 란수 언니도 있고, 연만리 언니도 오빠를 좋아하는 것 같고, 강구 언니에, 청창계에서 기다리는 언니들까지… 이 사람들 다 어떻게 할 거야?”
“…….”
“그중에 몇 명이나 내 올케가 될지 너무 궁금하단 말이지…….”
“령아,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그럼? 저 언니들 다 버릴 거야?”
“음…….”
엽현은 순간 자신이 나쁜 놈이 돼 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내가 아내를 여러 명 두게 되면 네가 너무 심심할 거야. 그러니까 아무한테도 장가들지 않고 우리 령이랑 둘이서 살래.”
“헤헤,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아무리 부인들이 많아도 오빠 동생은 영원히 나 하나뿐일 테니까. 그렇지?”
그 말을 들은 엽현이 하하 웃으며 엽령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 수련은 안하고 만날 이런 생각만 하고 다니는구나!”
이때, 엽령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엽현을 올려다보았다.
“오빠, 만약 어떤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상대가 오해하지 않도록 마음을 분명히 전하는 게 옳은 것 같아. 반대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다리지 않도록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해야 하고.”
“령아, 갑자기 잔소리가 늘었구나?”
“아이! 나는 진지하게 말하는 중이라고!”
이에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내 처지를 보렴. 나를 죽이려 하는 자들이 청성부터 이곳까지 줄을 서 있단다. 목숨도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내가 사랑을 논할 여유가 있을까? 게다가 내가 누군가와 함께 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괴로운 시간을 보낼 거야. 너만 보더라도 오빠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잖니.”
“…그래도.”
“하하, 이제 그만 돌아가자!”
엽령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아쉬움이 짙게 남아 있었다.
“령아, 오빠가 약속할게. 앞으로도 종종 너와 함께 세상 곳곳을 여행하기로. 어때?”
“좋아!”
엽현은 그제야 기쁜 얼굴을 하는 엽령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남매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초원 위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때, 그의 앞을 가로막는 여인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연천이었다.
“경솔하구나. 내 앞을 막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군. 그 물건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인가?”
“훗, 중요한 물건이 아니면 왜 나를 막고 서 있는 것이냐? 지금이라도 신물을 내놓는다면 신전은 그에게 살길을 열어 줄 용의가 있다.”
그 말에 연천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첫째, 탑을 내어준다고 한들 너희가 그를 내버려 둘 리 없다. 그의 잠재력은 언젠가 너희들에게 크나큰 위협일 테니. 둘째, 오히려 나는 너희가 탑을 가져갔으면 한다. 그래야 너희들이 얼마나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너는… 신전의 실력에 대해 눈곱만큼도 모른다.”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어쨌든 더 할 말이 없다면 나는 이만.”
말을 마친 연천은 곧장 자리를 떠났다.
노인은 그 자리에 서서 떠나가는 연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지금 출수하는 것은 의미도 없거니와, 자신이 연천을 이길 수 있을지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때, 갑자기 멈춰 선 연천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너희는 정말 멍청한 게 틀림없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자리에서 사라졌다.
계옥탑.
이는 아무나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오직 엽현 정도 되는, 무수한 배후와 기연들로 똘똘 뭉친 자여야지만 겨우 계옥탑의 인과를 막아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천녀가 그의 뒤를 받쳐주지 않았더라면, 엽현은 쥐도 새도 모르게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전이 계옥탑의 인과를 감당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했다.
저들 뒤에 천녀 정도 되는 강자가 버티고 서 있지 않은 한, 오유계에서 온 계옥탑을 감당하는 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한 것이다.
온갖 적들이 끊임없이 엽현 주위를 맴도는 건, 그들이 아직 계옥탑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사실 엽현조차 완전히 탑을 장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탑의 주인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오로지 천녀의 결정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녀는 도대체 얼마나 강한 것일까?
현재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초원 위, 백발노인은 엽현 등이 사라진 곳을 한참 동안이나 응시했다.
잠시 후, 노인이 차가운 미소와 함께 크게 소리쳤다.
“그래! 어디 한 번 누가 이기나 해보자!”
솔직히 말하면 신전 역시 천녀가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매번 부딪칠 때마다 어디선가 신비한 강자들을 불러내는 엽현 역시 보통이 아니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신전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어째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실력에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사유계 안에서 자신들보다 더 강한 자가 있다는 사실은 신전 무인들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잠시 후, 백발노인은 고개를 들어 어느 성공 속을 응시했다.
“지금쯤이면 도착했겠지?”
서생!
서생이 그 여인의 실력을 알려오는 순간, 신전은 즉시 움직일 것이다.
먼저 그녀를 죽인 후, 엽현을 처리한다.
이것이 그들의 계획이었다.
* * *
현황대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우주.
신전의 서생이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어둠 속을 질주하고 있다.
이때의 그는 드디어 소복의 여인과 싸울 수 있다는 생각에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이 전의는 목표한 곳에 가까워질수록 더욱더 강렬해지고 있었다.
어느 미지의 성역을 통과하던 중, 그는 마침내 자신이 그토록 만나길 원했던 여인을 발견하게 됐다.
눈과 같이 새하얀 소복을 입고서 양손을 뒤로 한 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여인이었다.
그녀의 시선을 쫓은 서생은 멀지 않은 곳에 둥둥 떠 있는 검은 관을 보게 되었다. 관은 팔뚝만 한 굵기의 쇠사슬로 칭칭 묶여 있었고, 그 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중년인은 기이하게도 팔도, 다리도, 그리고 눈도 각각 한 개뿐이었는데, 여인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는 진중한 기색이 느껴졌다.
이때, 중년인의 눈이 서생에게로 향했다. 바로 이 순간, 서생의 체내에서 강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쾅-!
순간 굉음과 동시에 사방의 천지가 격렬히 떨리기 시작했다.
미지경!
천녀를 발견한 순간 그는 전설과도 같은 미지경에 도달했던 것이다,
이때 미지경이 된 서생이 자신감이 충만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신전의 서생이 고인의 가르침을 청하오!”
자신감!
이때의 서생은 마치 무적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는 단 하나.
미지경!
그가 도달한 이 경지는 현황대세계 역사를 놓고 보아도 엄청난 성취였다.
간단히 말해 그는 현황대세계 무인 중 가장 강한 자의 반열에 든 것이다!
싸우고 싶다!
순간 서생의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전의가 불타올랐다.
처음 천녀를 만나러 나설 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두려움이 존재했다. 그러나 점점 그녀에게 다가갈수록 그런 생각 대신 싸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이와 함께 심경에 변화가 일면서 마침내 미지경에 도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지경이 된 지금, 서생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것은 오직 천녀와 전투뿐이었다.
본능적으로 천녀와의 일전이 그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이때 마침내 천녀가 서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서생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마치 고고한 존재가 땅 위의 개미를 바라보는 듯한 오만함이 가득 차 있었다.
이를 느낀 서생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가르침을 청하는 바이오!”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한 줄기 강대한 기세가 서생의 몸에서 흘러나오더니, 순식간에 천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이 기세는 그녀에게 채 닿기도 전, 깨끗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이 장면을 본 순간 자신감 넘치던 서생의 표정에 어떤 변화가 일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었다.
“날 무시할 생각이오?”
멀리 외눈박이 중년인이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천녀와 서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한편 천녀는 어떤 표정의 변화도 없이 서생을 응시할 뿐이었다.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서생의 표정이 순간 차가워졌다.
“싸우자니까 왜 반응이 없소! 나를 무시하는 것이…….”
이때, 한쪽에 있던 중년인이 서생을 향해 말했다.
“그녀는 이미 출수했다.”
서생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뜻이오?”
“…….”
말없이 서생을 바라보는 중년인.
서생이 의아해하며 다시 입을 여는 순간, 서생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해지면서 양손으로 자신의 목 언저리를 부여잡았다. 이와 거의 동시에 목 부위에서 붉은 선혈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순간 사색이 된 서생의 얼굴!
“도, 도대체… 언제…….”
사색이 된 서생이 간신히 입을 열었지만, 천녀는 대답해 줄 용의가 없다는 듯 다시 중년인을 향해 돌아섰다.
이때 검은 관 앞에 있던 중년인이 측은한 표정을 지으며 서생에게 말했다.
“그녀의 검은 이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경지다. 쉽게 말해, 네 실력으로는 그녀의 검을 보는 것조차 불가능하지.”
“마, 말도 안 돼! 나는 미지경이란 말이오! 그건 불가능…….”
“불가능하지 않다. 그저 네가 너무 약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뿐.”
“쿨럭-!”
서생은 목구멍에 차오르는 선혈 탓에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이와 함께 그의 머릿속에선 평생동안 닦아 온 검도 신념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모든 것을 바쳐 그토록 염원하던 미지경에 이르렀건만, 고작 상대의 일검조차 받아내지 못한 것이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덧붙이자면, 그녀는 하나의 분신에 불과하다.”
중년인의 마지막 한마디를 들은 순간, 서생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뒤로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가 쓰러지는 순간 그의 손아귀에서 황금색 부적 하나가 흘러나오더니, 순식간에 성공을 뚫고 날아갔다. 무수히 많은 우주와 성역을 통과한 부적은 마침내 현황대세계에 도착했다.
* * *
창궁계.
천문 앞에 서 있던 백발노인이 어디선가 날아온 부적을 낚아챘다. 그의 손에 들어간 부적은 곧바로 타오르기 시작했고, 이윽고 익숙한 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불가(不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