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738
738화 잘 봐, 내가 어떻게 싸우는지
합검(合劍).
엽현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눈앞 남자의 실력은 절대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야 했다.
네 자루 검을 합치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두 개의 패 중의 하나였다. 만약 실패했더라면 곧바로 참선검호를 꺼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럴 필요는 없었다.
네 자루 검이 마침내 하나로 합쳐진 순간, 그 검명 소리만으로 백의남자의 기운을 찢어버렸다.
순간 눈가를 파르르 떠는 백의남자.
“이게 무슨…….”
엽현의 앞에 한 자루 검이 떠올랐다.
검은 사 척 가량으로, 어느 시장에 가도 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철검이었다.
엽현이 이 검을 보았을 때 순간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범했다.
도대체 뭐가 변한거지?
바로 이때, 검이 부르르 떨더니, 웬 여인 하나를 토해냈다.
갑자기 검에서 사람이 나온 것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 것은 여인의 모습이 천녀와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둘은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
눈앞의 여인은 천녀에 비해 다소 온화한 인상을 주었다.
다소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여인은 문득 엽현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이 순간, 그녀의 눈에서 맑고 투명한 액체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무인들은 다소 어리둥절했다.
저 여인은 누구지?
또 왜 우는 거지?
“저… 소저. 날 아시오?”
여인은 아무 대꾸 없이 엽현에게로 가까이 가더니, 그의 뺨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
“…….”
“여기서 이렇게 만나다니…….”
“저, 실례지만 뉘신지…?”
이에 여인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가족.”
당황해하는 엽현. 그에게 가족이 있었던가?
여인이 엽현에게 무어라 설명하려는 찰나, 공중의 백의남자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후후 가족이라… 죽는 길이 외롭지 않겠구나, 엽현!”
“…적인가?”
여인이 엽현에게 묻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 순간, 여인은 이미 남자의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놀란 남자가 아직 반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여인의 손이 남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이와 함께 한 줄기 검의가 순식간에 남자의 전신을 휘어 감았다.
“…….”
이를 본 순간 장내 모든 무인들의 표정이 멍해졌다.
엽현 역시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저런 게 가능한 건가…?
한편 여인의 손에 목을 내준 백의남자는 머리가 텅 비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네가 죽이려는 자가 누군지 아느냐?”
엽현을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여인의 표정이었다.
백의남자가 겁에 질린 눈으로 입을 열었다.
“그대는 도대체 누구…….”
이때, 여인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우두둑-!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목이 축 늘어졌다. 이윽고 남자의 머리가 그대로 몸통에서 뽑혀 나왔다.
“……!”
순간 고요해진 장내.
간자재와 외눈박이 남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특히 외눈박이 남자는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째서 최근에 만난 여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강하단 말인가.
여인은 뽑아낸 머리를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순식간에 엽현 앞으로 돌아왔다. 엽현과 마주한 순간, 그녀의 표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온화해졌다.
“놀라지 않았지?”
“…….”
그 말을 들은 무인들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했다.
엽현 역시 눈앞의 여인에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바로 이때, 먼 하늘로부터 공간이 길게 갈라지더니, 황금색 빛이 찬란하게 쏟아졌다.
이에 모두가 고개를 들어 금광이 나오는 곳을 바라보았다.
이번엔 또 누가 등장하는 거지?
엽현 앞에 있던 여인 역시 고개를 돌려 빛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엔 그 어떤 동요도 존재하지 않았다.
“신인가 뭔가 하는 존재가 온 것 같소.”
“신?”
여인이 씩 웃으며 말했다.
“기억해. 이 세상엔 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단지 더 강한 자가 있을 뿐이지.”
“신이… 없다고?”
“신이라고 하는 자들은 단지 남들에 비해 더 강한 것뿐이야. 다만 힘의 차이가 현격히 벌어지게 되면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는 자가 나타나는 거지.”
“그럼 그대는? 그대도 신이라 할 수 있소?”
“후후, 내가 신처럼 보여?”
“…이거 하나만 말해줄 수 있겠소? 그대는 왜 이리도 천녀와 닮은 것이오?”
“천녀? …네 자루 검 중 하나의 주인을 말하는 건가?”
여인이 확인을 구하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그럴 수밖에.”
“그럴 수밖에? 그게 무슨 뜻이오?”
“아니, 아니야……. 아무것도.”
엽현은 여인과의 대화에서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해 다소 얼떨떨했다.
이때, 여인이 손을 펼쳤다. 그러자 손바닥 위에 계옥탑이 날아들었다. 계옥탑의 모습을 본 여인이 눈동자가 순간 반짝였다.
“이건…….”
“계옥탑을 알고 있소?”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처음 보는 거야. 아마 이곳 우주의 물건이 아닌 듯한데.”
“바로 보았소. 놈은 오유계에서 넘어온 물건이오.”
“오유계… 오유 우주를 말하는 건가?”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인이 잠시 침묵했다.
“왜 그러시오?”
엽현의 물음에 여인이 대답 대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때 그녀의 표정은 다소 실의에 빠진 듯 보였다.
“이곳은 더 이상 익숙하지 않게 돼 버렸구나… 하지만 이제 빚진 것도 없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하던 여인이 다시 엽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몸엔 커다란 인과가 달라붙어 있어. 그 안에는 비단 사유계뿐만 아니라, 오유계의 인과도 섞여 있지.”
엽현은 여인의 안색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저… 그대는 살아 있는 사람이오? 아니면 환생한 것이오?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의 분신……”
“후후, 나는 이미 존재하지 않아. 아니, 좀 다른 방식으로 살아 있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면 얼마 못 가 사라진다는 것이오?”
이에 여인이 웃으며 대꾸했다.
“먼지는 먼지로… 흙은 흙으로…….”
“…….”
엽현은 기분이 이상했다.
비록 오늘 처음 본 사이지만 눈앞의 여인에게서 왠지 모를 호감, 아니 그 이상의 친밀감을 느끼고 있던 것이다.
이때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당시 내가 전성기에 이르렀을 때, ‘그 세계’는 내 힘을 견딜 수 없었어.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나는 할 수 없이 내 몸을 네 등분으로 나누었지. 네가 말한 그 여인은 아마 그중 하나일 거야.”
순간 엽현은 멍청해졌다.
그 말인즉, 천녀는 이 여인의 분신이란 말인가?
분신!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나 강한 자가 고작 누군가의 분신이었다니!
“놀랐나 보네. 하기야, 그녀는 이미 내가 전성기에 있을 때보다 강해졌을 테니…….”
말을 하던 여인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곧, 그녀의 눈 속에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어느 성역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 시각, 어느 미지의 성역.
소복을 입은 여인이 갑자기 제 자리에 멈춰 섰다. 잠시 어딘가를 응시하던 여인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를 한 번 보려고 많은 대가를 치렀겠군.”
말을 마친 소복의 여인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현황대세계, 신전의 궁전 앞.
하늘을 보고 있던 여인이 시선을 거두고는 엽현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야, 그녀가 있어서.”
“혹시 네 사람의 기운 모두 느낄 수 있는 것이오?”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에 둘은 지금…….”
말하던 중에 여인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왜 그러시오?”
엽현이 물었지만, 여인은 고개를 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니… 혹시 다시 환생할 순 없는 거요?”
“…내가 살아났으면 좋겠어?”
엽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대에게서 다른 사람에게선 느낄 수 없는 친근함이 느껴지는 것 같소.”
“정말? 기뻐…….”
엽현의 말에 여인은 감동을 받은 듯 활짝 웃었다.
아마 그때 산속에서 헤어진 이후로 이렇게 웃는 것은 처음이리라.
당시 그녀가 ‘그 세계’를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그’의 마지막 부탁도 있긴 했지만, 무엇보다 그곳이 누군가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잠시뿐일지라도 그가 머물다 간 세상이었으니까.
더불어 스스로 분신이 되어 영원히 원래 모습을 상실하게 한 것 역시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검도의 극에 도달한들 그가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분신이 되기로 결심하기 이전부터 이미 검도 추구에 대한 동력은 상실된 상태가 아니었던가.
여인은 다시 고개를 들어 먼 성역 중의 천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천녀가 이리도 강해진 것은 어떤 집착 때문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자신과 달리 강해져야 할 이유가 있던 것이다.
“그녀는 도대체 얼마나 강한 것이오?”
엽현이 말한 그녀는 물론 천녀였다.
이에 여인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아주 강하다는 것밖에는…….”
말을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던 여인은 다시 계옥탑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 탑 안에서 세 개의 기운이 느껴져. 음… 아주 약하지만은 않네.”
그 말을 들은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인이 말한 것은 분명 계옥탑에 갇혀 있는 자들일 것이다.
팔 층, 구 층… 그런데 나머지 하나는 누구지?
물론 이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여인이 말한 ‘아주 약하지만은 않네’라는 발언이었다.
그렇다면 여인이 보기에 팔층과 구층 존재는 별거 아니라는 건가?
엽현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동안, 장내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여인과 엽현에게로 향해 있었고, 그중에서도 북경 무인들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반대로 신전 측 강자들의 얼굴은 말 그대로 사색이 되어 있었다.
여인이 신의 사자를 단숨에 죽여 버린 순간 그들의 마음은 이미 절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때,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더니, 무형의 기운이 장내로 들이닥쳤다.
이 기운은 좀 전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대부분의 무인들이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고 그중 일부는 버티지 못하고 지면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심지어 엽현조차 몸의 떨림을 멈출 길이 없었다.
그가 지금 느끼는 공포는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흘러나온 것이었다.
간자재와 아죄의 표정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어두워져 있었다.
신!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번에는 분명 신이 나타난 것이다!
바로 이때, 엽현 곁에 있던 여인이 갑자기 한 손을 휘둘렀다.
쉭-!
무언가 찢겨 나가는 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모두를 두렵게 만들던 기운이 일순 사라졌다.
그리고 이때, 하늘을 뒤덮은 빛 사이로 남자 하나가 걸어 나왔다.
그가 막 발을 디딘 순간, 하늘과 땅이 크게 진동했다.
이때, 엽현 앞에 있던 여인이 손을 뻗어 엽현의 검을 쥐었다. 그리고는 씩 웃으며 말했다.
“잘 봐. 청이가 어떻게 싸우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