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739
739화 네가 있는 세상, 더 살고 싶어
말과 동시에 여인이 한 줄기 검광이 되어 솟구쳤다.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남자가 인상을 구겼다.
“겁도 없구나, 감히…….”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그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너……”
남자는 말을 아끼는 대신 황급히 일권을 방출했다.
순간 그의 주먹에서 멸천의 권세가 용암처럼 터져 나왔다.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인의 검이 권세를 관통했다.
어느새 남자 앞에 나타난 여인.
찰나의 순간, 여인이 남자의 머리를 잡고서 가볍게 비틀어 올렸다.
푸확-!
몸통과 분리된 머리에서 시뻘건 피가 아래쪽으로 흩날렸다.
이를 본 무인들은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눈앞에 벌어진 일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던 것이다.
여인이 남자의 머리통을 쥔 채로 씩 웃으며 말했다.
“신?”
여인이 돌연 아래쪽의 엽현을 바라보았다.
“이런 신이라면 백 명이 몰려와도 두렵지 않아.”
“…….”
일당백!
무인들은 엽현 앞에 있는 여인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신이란 게 원래 이리 약한 존재였던가?
엽현 역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강할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정말 예상치 못했다.
초살(秒殺)!
조금 전 그것은 무인 간의 대결도 아닌,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게다가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전설 속의 신!
북경의 무인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신전의 강자들은 거의 반쯤 미쳐 있었다.
자신들이 신봉하던 신이 단칼에 죽어버린 순간, 그들이 평생 일궈 놓은 것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때, 여인이 신이 걸어 나왔던 공간의 틈을 향해 소리쳤다.
“아직 올 자가 더 있는가?”
이는 반대쪽 공간에 있는 자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후후, 너희들은 운 좋은 줄 알거라. 지금은 여기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구나.”
이때 여인이 불현듯 신전 무인들이 몰려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희가 믿고 있던 신을 보았느냐?”
신전 강자들은 여인에 대한 두려움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후후, 너희의 신은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다.”
말을 마친 여인이 엽현을 향해 말했다.
“조금 걸을까?”
엽현은 대답 대신 걱정스런 얼굴로 하늘에 길게 열린 공간의 틈을 바라보았다. 이때 공간 통로는 천천히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실 그는 여인이 저리로 건너가 남아 있는 신들을 모두 처리해주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기엔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그 시간 동안은 너와 함께 있고 싶어. 게다가 강해지기 위해선 결국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길을 걸어야 하니까. 무슨 뜻인지 알겠지?”
“알겠소!”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여인이 웃으며 엽현의 팔을 붙들었다.
“가자, 가자!”
그렇게 두 사람은 순식간에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장내에 남은 무인들은 다소 혼란스러웠다.
전쟁이 이렇게 마무리된다고? 이렇게 싱겁게?
한쪽에 말없이 서 있는 간자재 역시 조금 전 일어난 일이 마치 꿈만 같았다.
첫째, 전설 속에나 등장하던 신을 보았고 둘째, 그 신이 허망하게 죽어버렸다.
무슨 이따위 황당한 꿈이 있단 말인가?
간자재가 고개를 흔들며 자리를 떠나려 할 때, 그녀의 시야에 아죄가 들어왔다.
“그대도 엽현과 싸우러 왔소?”
“도움을 구하러 왔소.”
“그렇군.”
짧은 대답과 함께 간자재의 신형이 멀리 사라졌다.
장내에는 이제 북경과 신전 강자들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싸우지도, 그렇다고 떠나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아무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 * *
어느 성공 중, 엽현과 여인이 어깨를 나란히 걷고 있다.
여인은 아주 자연스럽게 엽현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엽현은 여인의 몸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여인이 먼 성공을 바라보며 웃으며 운을 뗐다.
“정말이지 세상일은 모르는 것 같아. 그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이렇게 다시 볼 수 있다니. 하지만 아쉽게도…….”
“저…….”
“청아(青兒)라 불러! 말도 편하게 해도 돼!”
“청아…….”
이때 걸음을 멈춘 여인이 웃으며 엽현을 올려다보았다.
“그거 알아? 오늘 너무 즐거운 거!”
“…아마도 너와 나는 전생에 인연이 있었던 거겠지?”
“맞아!”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전생은 전생, 현생은 현생. 네가 알던 그와 나는 어쩌면…….”
“아니, 둘은 동일인이야.”
엽현이 다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네 말대로 전생과 현생은 엄연히 구분이 되지. 그러나 너는 다른 사람과 달라.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는 말해주지 않을게. 그편이 더 재밌으니까.”
엽현은 장난스럽게 말하는 여인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따라 웃던 여인이 다시 먼 성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우주는 매우 넓고 네가 가야 할 길은 점점 더 거칠어질 거야.”
“아마도 그렇겠지.”
“내가 남아 도와주면 좋겠지만… 너의 이번 생은 누군가가 도와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야. 설령 그녀라 할지라도…….”
이때 여인이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청아,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튼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만 해. 스스로 강해져야만 네 운명을 통제할 수 있으니까.”
이때 여인이 다시 어느 성공 깊숙한 곳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저쪽 끝에… 약하지 않은 기운이 느껴져. 그리고 그 너머에도 미지의 기운이 보이는군……. 이들은 훗날 너의 적이 될 거야. 아니, 몇몇은 이미 너를 노리고 있군.”
“무슨 말인지 알겠어.”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계옥탑이 있는 한 어느 곳에 가든지 적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걸.
다행히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버텨왔지만, 만약 오유계의 인물들까지 나타난다면 그땐…….
훨씬 힘들어지겠지?
이때 엽현의 고민을 알고 있다는 듯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살면서 너무 쉬운 것도 재미없어. 고난도 좀 있어야 강해질 수 있지 않겠어?”
여인이 헤헤 웃으며 몇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때 여인이 갑자기 다시 돌아오더니, 엽현의 팔을 끌어안았다.
“같이 가자!”
이 순간 엽현은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이면서도 매우 익숙한 것이 마치 엽령과 함께 있는 것만 같았던 것이다.
어째서 이 여인에게 호감을 느끼는 걸까? 유독 이 여인에게만…….
이해할 순 없었지만, 굳이 이해하려고 고민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던 중, 청아가 갑자기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사실 이 우주는 이미 말라가고 있어.”
“마르다니? 영기가 이렇게나 풍부한데?”
엽현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청아가 웃으며 말했다.
“혹시 돼지사육에 대해 들어봤어?”
“돼지사육…? 무슨 뜻이지?”
“후후, 잘 들어. 우주에는 한 번 흡수하면 재생되지 않는 영기와, 그런 영기를 흡수해 강해지는 생령들이 존재해. 예를 들어 우리 인간들처럼 말이지. 이는 마치 먹이사슬과 같은 것인데… 여하튼 먹이사슬 가장 꼭대기에는 소위 신이라는 자들이 있어. 생령들은 그런 신의 먹잇감이고, 이 우주는 그들의 거대한 양식장이라 할 수 있지.”
“우리가 그들의 먹잇감이라고? 정말 그렇다면 신은 왜 곧바로 생령들을 잡아먹지 않고 굳이 키우려는 거지?”
“바보, 정말로 먹는 게 아니라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이야기야.”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
이에 청아가 웃으며 설명했다.
“소위 신들이라 하는 자들은 우리와 수련 방법이 완전히 달라. 인간들과 달리 그들은 사람의 신앙심을 먹고 자라지. 다만 그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장 강한 몇몇 무인들의 신앙심이 필요해. 신전 무인들이 강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어. 무인들이 신앙심을 바치면 신은 그들을 위해 각종 수련 자원을 제공하는 거야. 마치 돼지를 사육하는 것처럼.”
이 말을 듣자 엽현은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신앙의 힘!
신은 신앙의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세상의 강자들이 더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앙을 바쳐야만 했다.
신들의 도움 없이는 제한된 경지 즉, 미지경 이상을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돼지가 먹이를 구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신들에게 필요한 것을 갈구하는 것이다.
이는 청아의 말대로 가축을 사육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이때 문득 뭔가 생각난 엽현이 물었다.
“청아, 그런데 이 세상에 영기가 고갈되려 한다는 건 무슨 말이야?”
청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곳은 보기엔 영기가 충만해 보이지만, 사실 이미 골수까지 빼 먹은 거나 다름없어. 왜냐하면, 태초부터 있었던 선천본원지기(先天本源之氣)가 거의 사라진 상태거든. 게다가 평범한 영기를 생성하는 원천은 이미 신들이 장악해 버린 지 오래고. 참고로 선천본원지기는 절대강자의 수와 관련이 있고, 평범한 영기는 무인들의 질과 관련이 있지.”
엽현은 다소 멍청한 느낌이 들었다.
청아가 하는 말이 너무 충격적이라 한 번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청아가 씩 웃으며 말했다.
“내가 조금 도와줄게.”
청아가 손을 뻗자 한 줄기 검광이 어느 공간을 향해 빛처럼 뻗어 나갔다.
윙-!
청아한 검명 소리가 사유계 전체에 울려 퍼진 순간, 먼 성공으로부터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와 함께 주변의 영기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폭증하기 시작했다.
한편, 이 시각 사유계 전체에서도 이런 현상이 관측됐다. 사람들은 갑자기 풍성해진 영기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바로 이때, 엽현과 청아의 앞에 흐릿한 남자의 형상이 나타났다.
청아는 자신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남자를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넌 또 왜 이리 약해?”
“…….”
남자는 청아와 엽현을 한 번씩 번갈아 보고는 아무 말도 없이 그대로 사라졌다.
남자가 떠나간 후, 엽현은 청아의 몸이 더욱 희미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얼마 못 가 완전히 소멸하고 말리라.
“청아, 네 실력이라면 충분히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지?”
“헤헤, 내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 수… 있지?”
“이렇게 널 본 것만으로도 더 이상 바랄 게 없어.”
“하지만 나는 너무나 아쉬워. 왠지 모르겠지만 널 떠나보내선 안 될 것 같아.”
이에 청아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어떤 경우에는… 바꿔선 안 되는 것들이 있어.”
청아의 몸은 이제 바람 불면 사라질 것처럼 투명해진 상태였다.
“하, 하지만…….”
“사실 나 역시 조금 더 살아보고 싶기도 해. 그때는 정말 사는 게 지겨웠는데… 차라리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청아가 채 말을 잇지 못한 채, 엽현의 품을 파고들었다. 엽현은 문득 자신의 품 안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이란 어찌나 간사한지……. 네가 없을 땐 그렇게 죽고 싶었는데, 지금은 살고 싶은 마음이 드네. 살아서 함께 웃고, 함께 떠들고, 함께 세상의 아름다움을 즐기면 참 좋을 텐데…….”
품속에서 빠져나온 청아가 눈물을 훔치고는 슬쩍 머나먼 성공을 바라보았다.
“네가 있는 세상은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안녕히…….”
결국 청아는 마지막 한 마디를 마치지 못하고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홀로 남은 엽현은 청아가 서 있던, 지금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공간을 보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