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741
741화 너는 이제 자유다
이를 본 순간 임해가 사색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몇 발 뒤로 물러섰다.
외눈박이 남자와 간자재의 표정 역시 딱딱하게 굳었다.
비록 조금 전 신 하나가 손쉽게 살해당하긴 했지만, 이것이 자칭 신이라는 존재가 약하다는 증명은 될 수 없었다.
청아 앞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겠지만, 다른 인간들에게는 여전히 신이기 때문이다.
이때 조각상과 눈이 마주친 엽현이 씩 웃었다.
“뭐?”
“…애송이 녀석, 나는 황신(荒神)이다. 기억해 두거라.”
이 말을 끝으로 조각상이 갑자기 희미해지더니 금세 사라져버렸다.
황신……
엽현은 그의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 두고는 자리를 떠났다.
* * *
북경.
이날 북경의 대전에는 현황대세계의 거의 모든 강자들이 한데 모였다.
그 중 미지경 강자는 단둘. 바로 간자재와 외눈박이 남자였다. 엄밀히 말해 간자재는 아직 반보미지경이긴 하지만 미지경과 차이가 없기에 편의상 이렇게 편성 해두었다.
그 외에 반보미지경은 헌원가 족장, 무족 족장, 그리고 현황계에서 온 정체불명의 노인까지 셋이었다.
이 노인은 현황주가 불러온 것이니 응당 현황계의 무인으로 쳐야했다.
기타 등봉경 강자들 역시 그 수가 많진 않았는데, 원래 북경에 있던 무인들과 새로 투입된 현황계 무인들을 합치면 모두 서른아홉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중 절반이 현황계 무인들이라는 것이다.
이에 다른 세력의 무인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비록 명목상 현황대세계의 주인이라 하지만 오랫동안 잠잠했던 현황계가 이토록 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니.
인고!
그들이 모르는 동안 현황계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내실을 다져왔던 것이다.
물론 이는 자의는 아니었다.
만약 그들이 대놓고 실력을 향상시켰더라면 필시 다른 세력들의 연합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현황계의 지반과 사업을 집어삼킨 몇몇 거대 세력에서 이를 달갑게 여길 리가 없었을 테니.
현황계 외에도 새로 합류한 세력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신전의 패잔병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미지경 강자인 임해를 필두로 반보미지경 일곱, 등봉경은 열셋이나 되었다.
단일 세력으로는 가장 강력한 진용이었다.
물론 이제는 엽현의 꼭두각시 신세가 되었지만.
* * *
고요한 대전 안.
상석에는 엽현, 그의 정면에는 현황주가 서 있었다.
전쟁은 모두 끝났건만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그것은 바로 현황대세계의 구역을 어떻게 개편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게다가 엽현과의 관계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계속해서 연맹의 형태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엽현을 현황대세계의 왕으로 추대할 것인가.
이는 설령 혼백을 저당 잡혀 있는 신전 무인들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일단 왕으로 모시게 되면 자신들의 가족들 역시 자자손손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이니까.
신전도 이럴진대 다른 세력들이야 오죽할까.
이때 드디어 엽현이 침묵을 깼다.
“자자, 나는 이런 일로 얼굴 붉히고 싶지 않소. 그러니 모두가 모여 하나의 연맹을 만드는 것을 제안하는 바이오. 그래, 간단하게 ‘북맹’이라 하면 좋겠군.”
엽현의 말에 무인들이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때 현황주가 웃으며 나섰다.
“엽왕, 모두가 이해하기 쉽게 조금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겠소?”
“다시 말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각자 그대들 영토에서 통치행위를 하다가 무슨 일이 닥쳤을 때 연맹 안에서 합심하여 해결하자는 것이오.”
엽현이 무인들과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어갔다.
“북맹에는 맹주와 일곱 명의 장로를 두는 것이오. 맹주는 일을 처리할 때 반드시 장로들의 동의를 구해야 하며, 장로들은 맹주가 자격이 없다고 판단될 시 맹주를 파면할 수 있소. 어떻게 생각하시오?”
엽현의 제안에 장내에서는 활발한 토론이 벌어졌다.
얼마 후, 헌원가 가주가 엽현을 향해 물었다.
“의논해본 결과 대부분 동의하는 바이오. 허나 만약 어느 날 연맹을 탈퇴하고자 한다면…….”
“후후, 붙잡지 않을 것이오. 연맹에서 빠지고 싶은 자는 언제든 나갈 수 있으며, 아무런 보복도 받지 않을 것이오.”
헌원가 가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이들은 연맹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현재 현황대세계는 신이라는 공통의 적과 맞서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이 더 간절했다.
유일하게 신들과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엽현의 배후뿐이니까.
엽현이 빠지게 되면 누가 신들을 막아낼 수 있을까?
“좋소! 이견이 없으니 이렇게 결정하도록 하겠소. 나는 자리에 없는 날이 많으니 필요한 것이 있다면 상관선아와 소칠을 찾아 상의하도록 하시오.”
할 말을 마친 엽현은 그대로 대전 밖을 빠져나갔다.
그가 떠난 자리, 남은 무인들은 자리를 지키며 토론을 이어갔다.
* * *
경내의 화원.
엽현과 현황주가 어깨를 나란히 걷고 있다.
엽현이 먼저 침묵하는 현황주를 향해 말을 꺼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소.”
“후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소?”
“그대는 야심이 큰 인물이오.”
“야심을 갖는다는 건 나쁜 일은 아닐 것이오. 그렇지 않소?”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와 달리 나는 권력에는 큰 욕심이 없소. 그러니 이 맹주 자리에서도 조만간 내려올 것이오.”
“그다음은 소칠이 되는 것이오?”
“그녀의 의중은…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구려.”
그가 아는 소칠은 권력에 다소 의미를 두고 있었다.
물론 이는 신국을 위함이기도 했다.
그러니 엽현으로서는 소칠이 이 맹주 자리를 원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순 없었다.
오히려 현황대세계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갖게 될 맹주 자리를 노리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현황주의 표정이 다소 굳은 것을 본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껏 그대 이름도 모르고 있구려.”
순간 현황주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청설(李青雪)이라 하오.”
이청설…….
“좋은 이름이군.”
말을 하며 엽현이 성큼성큼 앞서 나아갔다.
그 뒤를 이청설이 뒤따랐다.
“이 소저,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묻는 건데, 현황대세계의 맹주가 되는 것이 그리 의미가 있는 일이오?”
“…무슨 뜻이오?”
엽현이 멀리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설령 그대가 현황대세계 최고의 권력자가 된다 한들, 누군가의 눈에는 한 마리 개미에 불과하지 않겠소?”
“…….”
“그대가 추구하는 것이 잘못됐다 하는 것은 아니오.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대가 원한다면 실력으로 다음 맹주 자리를 차지해 보시오. 나는 소칠을 돕지도 않을 것이며, 누가 되든 받아들일 것이오.”
잠시 동안의 침묵 후, 이청설이 말했다.
“연맹의 형태를 띠었다고는 하나, 맹주는 실질적으로 현황대세계의 왕이 될 것이오. 그런데 그대는…….”
이청설이 할 말을 알고 있다는 듯 엽현이 가볍게 웃어 보이고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제 자리에 우뚝 선 이청설은 잠시 후 그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맹주 자리에서 내려온다고 할지라도 현황대세계에서 그를 건드릴 자는 아무도 없다.
배후에 있는 여인은 차치하더라도 엽현 본인의 실력 또한 대단하기 때문이다.
당시 신전 최고의 고수였던 교천아가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탑 안으로 사라진 것을 모두 보지 않았던가.
실력!
실력이 어느 지점에 이른 후부터는 힘과 권력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청설은 그제야 엽현이 어떻게 권력 앞에 초연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멈춰 서서 엽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청설은 그대로 반대편으로 몸을 돌려 사라졌다.
* * *
대전 안으로 돌아온 엽현은 곧장 계옥탑으로 진입했다.
계옥탑 일 층엔 백발의 그녀가 있었다.
교천아!
이때 교천아의 이마에는 ‘囚(수)’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그녀가 아직 살아있는 이유는 엽현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엽현이 나타나자 교천아가 표정 없이 그를 응시했다.
“교천아, 밖에서 일어난 일은 짐작하고 있겠지?”
“흥! 네가 살아있는 걸 보니 신전이 패했나 보군.”
“후후, 지금 무슨 생각이 드는가?”
교천아의 눈동자가 순간 흐릿하게 변했다.
여인의 일검에 신이 죽고 난 후, 그녀의 신앙은 이미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
신이라고 믿고 있던 존재가 실상 무적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생각은 무슨 생각……. 모욕하지 말고 어서 죽여라.”
이때 엽현이 교천아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교천아, 너는 분명 총명한 여인인데 지금은 왜 이리 어리석은 게냐?”
“뭐?”
“지금부터가 시작이란 생각이 들지 않나?”
교천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엽현을 응시했다.
그러자 엽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청아가 이곳을 떠날 때, 신들이 쳐 놓은 금제를 파괴했다. 그 말은 앞으로 열심히 수련하기만 하면 미지경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상의 경지에도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지?”
“…….”
엽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교천아는 똑똑한 사람이니 이미 그의 의중을 파악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공짜로 기회를 주는 건 아니었다.
그는 다 잡은 적을 풀어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으니까.
“…조건은?”
엽현은 예상했던 대답이 흘러나오자 미소를 지었다.
역시 살길이 보이는데도 죽음을 택할 멍청한 여자는 아니었다.
“미리 말하는데 노예가 되라 한다면 이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자진할 것이다.”
“후후, 노예가 되라고 한 적 없다. 다만 내 곁에서 삼 년만 머물면 된다. 그 기간 동안 내 일을 돕다가 시간이 되면 떠나고 싶은 곳으로 떠나도 좋다.”
“삼 년!”
교천아가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자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이봐, 지금까지 삼 년이 아니라 그보다 긴 세월을 신의 노예로 살았잖아? 심지어 너는 노예가 아니라 조력자로서 내 곁에 있을 텐데 남는 장사 아닌가?”
“…좋다.”
교천아가 승낙하자 엽현이 소매를 펄럭였다. 그러자 그녀 미간 사이에 박혀 있던 붉은 낙인이 사라졌다.
다시 자유의 몸이 된 교천아.
“내가 배반하는 것이 두렵지 않나?”
“너는 못 해.”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왜냐면 그럴 가치가 없으니까.”
자존심!
모름지기 어느 지점까지 도달한 강자라면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약속을 어기고 등 뒤에 칼을 꼽는다? 이런 일은 엽현의 말대로 그녀에겐 하등 득이 될 것이 없는, 자존심을 해치는 일일 뿐이다.
“교천아, 너는 이제 자유가 되었다.”
“여기는… 그 오유계 신물의 안인가?”
교천아가 주변을 둘러보며 묻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 둘러볼 수 있을까?”
“안될 건 없지. 일단 나가자.”
엽현은 곧장 교천아와 함께 탑 밖으로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온 엽현이 소매를 펄럭이자, 교천아의 눈앞에 계옥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고 작은 탑을 본 교천아의 시선이 순간 차갑게 식었다. 그녀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