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76
76화 나 장난 아니지?
엽현이 일 격으로 세 명의 창목학원 학생들을 몰살시킨 소식은 순식간에 황성 전역에 퍼졌다.
황성의 모든 사람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엽현이 죽인 자들은 창목학원 학생들이기 이전에 당국의 사람들이었다. 당국의 무인들을 죽인 엽현의 이야기는 강국 사람들의 자긍심을 일깨워주기 충분했다.
반면 창목학원에 대한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창란학원과 전쟁을 벌이는 것은 어제오늘 일도 아니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단지, 당국의 사람을 불렀다는 것은 크게 질타받을 일이었다.
물론 불만은 마음속으로만 삭혀야 했다. 하늘과 같은 존재인 창목학원을 대놓고 욕하다가는 언제 머리가 날아갈지 모를 일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창란학원에 대한 시선이 조금은 바뀐 듯했다. 창란산에는 매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중에는 한 무리의 여인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목을 빼고 기웃거리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 * *
창목학원 대전 안.
이현창이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양쪽에 창목학원의 사부들과 장로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창목학원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이현창이 입을 열었다.
“세 명 모두 능공경 강자였는데 엽현의 일 검조차 받아내지 못하고 참수되었소.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대전 안에는 침묵이 맴돌았다.
사람들의 표정 또한 무겁기 그지없었다.
당국의 세 사람은 분절 정도의 무인은 아니었지만 결코 약한 자들이 아니었다.
그런 그들이 일 합도 버티지 못하고 모두 머리를 내어 준 것이다.
게다가 엽현은 겨우 어기경 아닌가!
이는 도전이라기보다는 누가 빨리 죽나 내기하는 것 같았다.
이때, 한 노인이 적막함을 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이미 안 국사 외에는 막을 자가 없을 정도로 성장한 듯 보입니다. 그러니 우선 전서구를 보내 함부로 도전해서 무의미하게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왜 그래야 하는가?”
이현창이 담담한 어조로 말을 잘랐다.
“지금처럼 계속 와서 죽으라고 냅두거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현창을 바라보았다.
“그가 많은 자들을 죽일수록 더 많은 원한을 맺게 되겠지. 그렇게 결국엔 청주 72개 창목학원 모두와 원수가 될 것이야!”
차도살인(借刀殺人)!
장내에 있는 자들은 그제야 이현창의 의도를 파악했다.
이현창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분절이 죽은 후 강국 창목학원을 지탱하는 학생은 북신 단 하나만 남았을 뿐이다.
북신 하나로는 부족했다.
만약 그들이 계속해서 천재들을 중토신주에 있는 본원으로 보내지 못한다면 강국 창목학원이 얻게 될 자원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이 상황은 그들로서는 치명적이라 할 수 있었다.
매년 본원에서는 각 창목학원들에게 공법, 무기(武技), 영기(靈器) 등을 보내온다.
지부에서 천재 무인들을 본원으로 보내야 이런 보물들을 받을 수 있었다.
인재!
지금과 같은 시대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부족한 것이 바로 인재였다.
창목학원 본원 역시 중토신주 안에서 수많은 권력다툼과 암투를 벌이고 있다. 그들이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강국의 창목학원은 이미 분절이라는 절대 고수를 잃었다. 다른 지부들에 비해 뒤처지게 된 상황이다. 다른 학생들을 배양하기까지는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다른 창목학원들의 인재들의 수를 똑같이 줄이는 방법뿐이 없었다.
창란학원을 상대하면서 적지 않은 다른 창목학원의 천재들이 소모될 것이다.
물론 누군가 엽현을 죽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좋은 일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우리 밖에서 맹수들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면 될 일이니 말이다.
‘엽현!’
그 놈을 떠올리자 이현창의 머리가 다시 지끈거려왔다. 그로 인해 잃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보다 이현창을 화나게 하는 것은 원래 엽현은 창목학원의 것이었단 사실이었다.
만약 당초 그를 받아들이기만 했더라면, 이러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창란학원이 그 놈을 품으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현창이 다시 말을 꺼냈다.
“다시 소식을 전하시오. 엽현을 죽이는 자에겐 두 권의 지계 상품 무기, 두 권의 지계 공법, 그리고 백만 개의 최상급 능량석(能量石)을 주고, 우리 강국 창목학원 비경(秘境)에서 수련하는 권한을 주겠다고.”
순간, 장내가 다시 고요해졌다.
두 권의 지계 상품 무기! 두 권의 지계 공법! 그리고 최상급 능량석이라니!
이는 분명 엄청난 출혈이다!
이 정도 보상이면 한 명의 신합경 강자라도 능히 암살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고작 어기경인 엽현을 위해 이런 조건을 내건다고?
“원장, 그건 너무 많은 것이 아닙니까?”
“많아?”
이현창이 차가운 눈빛으로 의문을 제기한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 놈이 죽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리 창목학원 최대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전력을 다해서 그 놈을 없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훗날 학생들이 아닌 우리의 목을 내어 주어야 할 때가 오고 말 것이다!”
천재.
자신의 편으로 만들거나, 죽여야 하는 존재다.
그리고 엽현은 창란학원의 천재다.
현재도 대검수인 엽현이 훗날 검주나 검황이 되어 그들에게 칼을 겨누면 그야말로 창목학원의 존폐가 걸린 문제였다.
‘검주! 검황!?’
이현창의 안색이 더욱더 어두워졌다.
이때, 대전 내에 한 중년인이 숨을 헐떡이며 들이닥쳤다.
“워, 원장……. 엽, 엽현이 왔습니다!”
‘엽현!? 그가 이곳에 왜?’
모든 이들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창산 입구.
한 명의 무인이 검을 들고 입구를 향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와 대치하고 있는 창목학원 학생들의 눈빛엔 경계심이 가득했다.
“너무 긴장들 하지 마. 그냥 글씨 연습하러 온 거니까.”
엽현이 칼을 들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바탕 화려한 춤사위가 끝나자, 자욱한 먼지 사이로 몇 개의 글자가 모습을 드러냈 다.
‘와서 날 죽여 봐라!’
엽현이 쓴 글씨를 보고는 창목학원 학생들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이는 명백히 창목학원을 모욕하는 것이다!
그들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막 출수하려는 찰나, 이현창 원장과 일행이 나타났다.
이현창이 엽현을 향해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엽현이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이때, 엽현이 사라진 자리에는 하나의 문장이 남겨져 있었다.
‘학생 수백 명 중 불알 달린 놈은 한 놈도 없구나!’
이 글귀를 보자 이현창의 표정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나머지 창목학원 무인들의 얼굴도 홍당무처럼 붉게 물들었다.
그들에게 이런 행위는 참기 힘든 치욕인 것이다.
그들 중 몇몇이 엽현을 뒤쫓으려 했으나 사범과 장로들에 의해 저지당했다.
이현도가 차가운 음성으로 소리쳤다.
“다들 산으로 돌아가라!”
학생들은 감히 그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한 여인이 엽현의 등을 바라보며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나를 내보내지 않는 겁니까!?”
그 여인은 북신이었다. 북신의 말에 고막이 고개를 저었다.
“강국에서 지금의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안 국사뿐일 것이다.”
북신이 그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자신과 분절의 실력은 막상막하였다. 그러니 자신 또한 엽현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막이 이제 거의 보이지 않는 엽현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며 말했다.
“그날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났는지… 기이하기 짝이 없구나.”
고막이 북신을 바라보았다.
“너는 결코 마음대로 그를 찾아가선 안 된다. 그는 학원에서 조용히 처리할 것이다.”
북신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편, 창목학원을 떠난 엽현은 곧장 창란학원으로 향했다.
이번에 그가 창목학원을 방문한 것은 기 원장 몰래 한 행위였다. 마음 같아서는 몇 명 죽이고 왔으면 좋았겠지만, 마침 이현창 등이 나타난 통에 몇 마디 적어놓고 온 게 전부였다.
지난번 저들이 자신의 여동생을 납치한 이후로, 창목학원에 대한 엽현의 적개심은 극에 달해 있었다.
만약 길에서 창목학원 학생을 마주친다면 단칼에 베어버릴 것이다.
엽현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의 눈에 길가에 쪼그려 앉아있는 소녀 하나가 들어왔다. 소녀는 대략 열 두어 살 정도 되어 보였다. 해골꽃 한 송이가 그려진 검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소녀는 나무 조각을 깎고 있었다. 그 솜씨가 투박하기 그지없었다.
이때, 소녀가 고개를 돌려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엽현은 그녀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소녀의 외모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음산하고 칙칙한 눈빛은 그야말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유발했다.
잠시 주저하던 엽현은 소녀에게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소녀에게서 나무와 조각칼을 건네받은 엽현이 웃으며 물었다.
“뭘 조각하고 싶니?”
그러자 소녀가 말없이 자신의 치마를 가리켰다.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엔 새까만 작은 새 한 마리가 있었다. 기이하게도 다리가 한 개뿐이었다.
엽현이 잠시 고민하다가 재빨리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마치 살아서 날아갈 듯해 보이는 조각이 완성되었다.
엽현의 손재주가 좋은 데에는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엽령에게 장남감을 사줄 돈이 없던 엽현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나무를 조각해서 동생에게 선물하곤 했다.
그렇게 수많은 조각을 하다 보니, 그는 어느새 조각의 대가가 되어 있었다. 그의 손을 거치면 평범한 나무도 생생한 하나의 조각으로 탈바꿈했다.
물론 그의 이러한 손재주는 크게 쓸모는 없었다. 그러나 엽령을 기쁘게 해 주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는 만족했다.
엽현이 새 조각을 소녀에게 내밀었다.
“받아!”
소녀가 조심스레 조각을 받아 들고서는 엽현과 조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자 엽현이 웃었다.
“조각할 땐 마음의 평화가 중요해.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엉망진창이 되고 말지!”
엽현이 바닥에 있는 나무를 집어 들고서 다시 빠르게 조각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의 손에서 사람의 형상을 한 조각품이 완성됐다.
그 조각은 소녀와 아주 닮아 있었다.
소녀는 홀리기라도 한 듯 조각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받아!”
소녀가 아무 말 없이 조각을 받아 들었다.
그 모습에 엽현이 미소 지으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사실 이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는 비슷한 또래인 엽령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때, 소녀가 고개를 돌려 심상치 않은 눈으로 엽현을 째려봤다.
엽현은 그녀의 반응에 순간 당황하며 손을 뗐다.
소녀는 다시 시선을 나무 인형으로 돌렸다.
엽현이 찬찬히 소녀를 바라보았다. 현기의 파동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보통의 소녀로 보였다.
엽현이 문득 말문을 열었다.
“아이야, 너 혹시 진짜로 강한 절세의 무인이니?”
그 말에 소녀가 엽현을 바라보았다.
엽현이 실없이 웃더니 주위를 한 바퀴 둘러 본 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게 한 가지 비밀을 알려줄게!”
그때 엽현의 손이 움찔하더니 영수검이 나타났다.
소녀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영수검을 바라보았다.
엽현이 영수검을 가리키며 소곤거렸다.
“검수, 나 대검수야. 장난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