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780
780화 그대의 적수는 아니잖소?
엽현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만약 혈조가 정상적인 공격을 했더라면 제아무리 엽현이라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곧바로 혈맥을 흡수하려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다.
엽현의 혈맥이 어떤 존재인가?
엽현 스스로조차 어찌할 수 없는 괴물이 아니던가?
그런 존재에게 겁도 없이 함부로 덤볐으니, 그 결과는 너무나 자명한 것이었다.
“…알겠다. 먼저 몸부터 돌보도록 하거라.”
주사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한쪽으로 물러나 주었다.
그러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천히 눈을 감는 엽현.
비록 혈조를 흡수한 직후였으나, 엽현의 몸에는 별다른 변화가 일지 않았다.
이는 엽현으로서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잠시 후, 그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유추해 볼 수 있었다.
그것은 혈조의 기운이 자신이 아닌 온전히 자신의 혈맥으로 돌아갔을 가능성이었다. 실제로 혈맥지력은 예전과 비교해서 훨씬 더 강해진 반면, 엽현 스스로의 경지는 조금의 변화도 생기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엽현은 혈맥이 자신의 몸에서 독자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물론 몸의 일부분이긴 하지만,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렇게 여기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엽현은 너무나 강해진 혈맥지력을 느끼며 잠시 침묵에 잠겼다.
도대체 이 혈맥은 어디까지 강해지는 것일까?
감히 상상해 볼 수 없었다.
심지어 이 힘을 사용 해 보고픈 마음도 들지 않았다.
예전에는 무리를 하면 혈맥지력을 간신히 제압할 순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혈조를 흡수하고 난 뒤의 혈맥은 감히 그가 건드려 볼 것이 아니었다. 조금 전만 해도 뜬 눈으로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가지 않았던가!
엽현은 가슴 속 깊이 한숨을 뱉어냈다. 안 그래도 신경 써야 할 적들이 많은데, 이제는 혈맥마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니, 억울한 느낌마저 들었다.
만약 다음에 혈맥지력을 사용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적과 자기 자신 모두 죽는 날이 되리라!
한참 뒤 엽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바닥 안에는 혈조가 남긴 납계가 들려 있었다.
다만 그는 납계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납계에는 무려 삼중으로 금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억지로 열려고 하면 파괴될 수도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일단 보관해 두는 수밖에 없다.
납계를 갈무리한 엽현은 한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주사를 향해 다가갔다.
“이거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이제 갈까?”
엽현의 말에 주사가 그를 향해 돌아섰다.
“몸은 회복됐나?”
“거의!”
“그런데……”
갑자기 말하기를 망설이는 주사.
“혹시 그 생명수… 아직 많이 남아 있나?”
“그럴 리가! 방금 털어 넣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공짜로 달라는 건 아니다.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겠다. 어떤가?”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없어. 미안하다.”
주사의 표정은 점점 간절해졌다.
“반병! 반병이면 된다!”
“…….”
“혹시 원하는 게 있다면 말 해 보거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들어 주겠다.”
“뭐든지?”
순간 엽현의 눈빛이 음흉하게 빛났다.
“혹시 내 부인이 될 의향이…….”
쾅-!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엽현의 신형이 수백 장 밖으로 날아갔다.
주사가 재차 주먹을 휘두르려 하자, 엽현이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자, 잠깐! 농담, 농담이었어!”
“…….”
주사는 잠시 엽현을 노려보더니, 차갑게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이때, 엽현이 빠르게 날아와 주사 앞을 막아섰다. 그러더니 가볍게 웃으며 오른손을 펼쳤다. 그의 손바닥 안에는 백옥 병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무슨 뜻이지?”
“하하! 받아, 선물이다!”
“그냥 준다고? 생명수가 얼마나 귀한 줄 모르는 것이냐?”
엽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그걸 알면서…….”
“아, 그래서 받을 거야 말 거야?”
주사는 잠시 엽현의 얼굴을 응시하고는 두 병의 생명수를 받아 들었다.
“이 은혜, 잊지 않겠다.”
엽현은 그저 씩 웃어 보일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원래 자리를 떠나 어두운 성공을 가르기 시작했다.
신허(神墟)!
신전의 진정한 본거지로!
그렇게 현황대세계를 떠난 지 이틀째 되는 날, 엽현은 어둠 속에서 수많은 강자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온 자들인가?”
“그렇다.”
“잘 됐군.”
이때 주사가 문득 물었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다.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뭔데?”
“네 배후에 있는 그 소복의 여인… 도대체 어느 정도로 강한 것이냐?”
천녀!
천녀의 실력.
이는 사유계의 무인들이라면 모두 호기심을 가질 법한 질문이었다.
도대체 그녀의 경지는 무엇이며 어느 정도로 강한 것일까?
엽현이 고민 끝에 대답했다.
“사실 얼마나 강한지는 나도 모른다.”
“모른다고?”
주사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너희 신전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그녀는… 우리가 감히 헤아리기 어려운 존재다.”
범접할 수 없는 존재!
그 말에 엽현이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도 왜 목숨을 걸면서까지 나를 노렸던 거지?”
“우리의 생각은 이렇다. 그녀가 정말로 무적이라면 진작 우리 신전을 끝장내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두 가지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누군가 그녀의 앞을 막고 있을 가능성. 둘째, 사실 그녀는 생각만큼 강하지 않을 가능성. 그리고 우리는 두 번째에 도박을 걸었던 것이다.”
“…….”
“그러나, 이후 조금 더 조사를 진행하면서 어쩌면 우리가 그녀를 너무 낮게 평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더군.”
“그 말에 동의한다. 심지어 그녀는 누군가가 평가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지.”
엽현은 여전히 천녀의 실력을 알지 못했다. 다만 신전이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것쯤은 확신할 수 있었다.
계옥탑 팔층에 있는 존재조차 그녀를 두려워하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지 않은가?
이때 주사가 엽현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왜 원소도가 너를 포기한 것인지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겠구나.”
멀리 갈 것도 없이 그녀는 여전히 혈조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 명경 급의 강자가…….
엽현이 웃으며 무어라 대꾸하려 할 때, 주사가 정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도착했다. 바로 저곳이다.”
신허! 신전의 본거지였다.
엽현이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자, 까마득히 높은 산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산맥 깊은 곳엔 희미하게 사람의 그림자들도 보였다.
“이곳이 바로 신허의 땅, 현재 사유계 최강의 세력 중 하나가 기거하는 곳이지.”
“흠……. 신전 내부의 분위기는 어떻지?”
엽현이 묻자 주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네게 적대적인지 아니면 호의적인지를 묻는 건가?”
“그렇다.”
“그야 물론 전자다.”
그 말을 듣자 엽현이 곧장 걸음을 돌려세웠다.
이때 주사가 엽현의 앞을 막아섰다.
“여기까지 와서 뭘 겁내는 것이냐?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안에 들어갔다가 나가지 못하면 누가 책임질 건가?”
“그럼 내가 널 데리고 나오겠다. 약속하지!”
“약속? 그 말, 진심인가?”
엽현이 의아해하며 묻자 주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대화가 결렬되고 적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그런 비열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안전히 돌려보내 줄 테니, 날 믿어라.”
“정말 그 정도 위치에 있는 게 확실하지?”
“하하, 너 하나쯤은 빼낼 정도의 힘은 있다.”
엽현은 주사의 말투에서 커다란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그녀의 신분은 신전 내에서 결코 낮지 않은 듯했다.
“그럼 결정했으면 들어가자꾸나.”
결국 엽현은 머뭇거리면서도 등 떠밀리다시피 주사를 따라나섰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길게 이어진 산맥 중에서도 가장 큰 봉우리 밑에 도착했다. 산꼭대기에는 위에는 크지 않은 성 하나가 공중에 떠 있었다. 수수하면서도 고풍스러운 것이 고성의 정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신허성(神墟城).
이곳이 바로 신전의 본거지인 신허성이었다.
이때 엽현이 문득 주사를 향해 물었다.
“이봐,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신전에도 조사가 존재하나?”
“후후, 왜 없겠느냐? 그러나 그는 결코 널 알지 못할 테니, 헛된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게다.”
“…….”
“가자, 날이 곧 저문다.”
주사는 엽현을 데리고 성 안으로 들어섰다.
성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과 같은 보통의 사람들이.
이때 주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엽현에게 웃으며 말했다.
“왜, 의외인가?”
“확실히. 너희는 분명 인간을 경멸하는 게 아니었나?”
“하하하! 인왕이 그러더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 신전이 현황대세계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을 적으로 삼을 이유가 점점 사라지게 되었지. 왜 그런 줄 아느냐?”
“왜지?”
“왜냐하면 현황대세계 밖에 더 커다란 우주가 존재함을 깨달았기 때문이지. 우주는 끝없이 넓고,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져 있다. 굳이 좁디좁은 현황대세계 안에서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주사가 엽현을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어떤 곳이든 다툼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당시 우리가 충분히 강하지 않았더라면, 패망한 쪽은 인간이 아닌 우리였을 것이다. 심지어 현황대세계가 몰락한 주된 이유는 우리가 아니다. 먼저 너희 안에서 내분이 일어났기에, 우리가 기회를 잡을 수 있던 것이지.”
“…….”
“하하,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신과 인간간의 원한은 과거에 있었던 일에 불과하다. 너와는 하등 연관이 없으니, 그 일로 네게 해코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때 주사가 걸음을 멈추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도착했다.”
엽현이 고개를 돌리자, 울창한 대나무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나무 숲 앞쪽에는 얕은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마침 삼베옷을 걸친 노인이 태평스럽게도 강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저자가 너희들의 대장…….”
“뭐 의미는 얼추 비슷하군. 가 보거라.”
“…만에 하나 저자가 내 목을 노린다면, 내가 도망칠 수 있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하하 그건 그때 가서 다시 물어보거라.”
주사의 대답에 엽현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노인을 향해 다가갔다.
그가 노인의 곁에 막 다다랐을 때였다.
“앉거라.”
노인의 말에 엽현이 편편한 돌을 찾아 앉았다.
“낚시는 할 줄 아느냐?”
노인이 어느새 낚싯대 하나를 건네며 물었다.
“할 줄 모르오.”
“하하하! 원래 혈기왕성하고 기질이 급한 녀석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잘못된 생각이었구나. 예봉과 기개는 여전히 살아 있지만, 안으로 잘 갈무리 되어 있고… 하하하 근래 보기 드문 녀석이로구나!”
“그래 봐야 그대의 적수는 아니지 않소?”
엽현이 웃으며 말하자,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왜 굳이 나와 비교하려는 게냐? 비교를 하려거든 네 또래의 젊은 무인들과 해야 하는 것이거늘. 부끄럽지만, 내가 너만 했을 때는 지금의 너보다 한참 모자랐었다.”
“겸손하시구려. 사실 나와 신전이 이렇게 앉아 대화를 나누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소.”
“너는 운이 좋았다. 네 뒤의 그 여인의 실력이 조금만 모자랐더라도 내 얼굴을 볼 기회는 전혀 없었을 테니까.”
“하하, 꽤나 직설적이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