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781
781화 언제 끝나냐고?
노인이 갑자기 표정을 바꿨다. 엽현을 진중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너처럼 총명한 아이에게 애써 에둘러 말할 필요 없지.”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대는 신전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오?”
“그렇게 생각해도 좋다.”
“주사가 말하길, 그대들은 나와 타협을 하고 싶어 한다고 했소. 자세히 들어볼 수 있겠소?”
“그 전에, 신물을 보여줄 수 있겠느냐?”
“그 정도야 문제없소.”
엽현이 손을 펼치자, 계옥탑이 손바닥 안에 나타났다.
이어 그는 노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노인은 계옥탑을 받아드는 대신, 복잡한 눈빛으로 탑을 응시했다.
“오유계의 물건이 확실하구나…….”
노인이 엽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쩌다 이런 행운이 네게 떨어진 것이냐?”
그 말에 엽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행운이라고 하기엔 그간의 인생이 참으로 어려웠소.”
“기연과 화가 함께 온 것이로군.”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제 말 해 보시오.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타협할 수 있는지.”
“그건 간단하다. 우리가 오유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이 탑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려주면 된다. 그 대가로 너는 신전의 조력을 받게 될 것이다.”
“음? 겨우 그것뿐이오?”
“물론 원한다면 탑을 우리에게 넘기는 것도 상관은 없다. 하하!”
엽현이 재차 계옥탑을 노인에게 내밀었다.
“자, 받으시오.”
“…진심이더냐?”
노인이 기이한 눈초리로 바라보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이 아니오.”
“…후, 보아하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구나.”
“받지 않을 생각이오?”
엽현이 태연하게 계속해서 권하자, 노인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생각을 좀 해봐야겠구나. 우선 먼저 가서 여독을 풀도록 하거라.”
“그럼, 기다리겠소.”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곧장 성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엽현이 떠나고 잠시 후, 노인의 곁에 주사가 다가왔다. 그녀의 곁에는 꽤나 젊어 보이는 남자도 함께였는데, 백의 장포를 입은 남자의 이마에는 검은 각인이 새겨져 있었다.
“주청(誅青), 어떻게 생각하느냐?”
노인이 묻자 백의 남자가 잠시 고민한 후 입을 뗐다.
“할아버님께 신물을 넘기겠다고 한 건 진심인 것 같습니다.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요.”
“그럼 받지 않아야 옳겠느냐?”
“…그렇습니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느냐?”
“할아버님이 받지 않으신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허허, 제법 말솜씨가 늘었구나.”
노인이 고개를 들어 엽현이 떠나간 방향을 응시했다. 눈 속에는 복잡한 기색이 역력했다.
“신전은 그 물건을 탐해선 안 된다.”
“어째서 말입니까?”
주청이 물었다.
“저 탑에 어떤 인과가 묻어 있는지, 전혀 꿰뚫어 볼 수 없었다. 다만 오유계의 신물인 만큼 미지의 인과가 깃들어 있을 것인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구나.”
“정말로 어떤 기운을 느끼셨단 말입니까?”
“후후, 녀석. 그 정도도 느끼지 못한다면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 수련을 해 왔겠느냐?”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최대한 이용한 다음 빨리 여기서 보내야 할 것이다. 저 녀석을 이곳에 두는 것이 조금 겁나는구나.”
주청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어째서 말입니까?”
“왜냐하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놈이 어떻게 신물의 인과를 견디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신전은 결코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까, 정보를 알아낸 다음 쫓아 보낸단 말입니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대답하는 노인의 안색은 매우 딱딱해져 있었다.
계옥탑을 직접 본 순간부터 이미 그는 탑을 뺏고자 하는 생각을 버린 상태였다.
신전의 것이 아니라 확신했던 것이다.
야심을 갖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자기 주제를 알아야 한다. 주제에 맞지 않는 물건을 걸쳤다가 패망하는 것이 어디 하루 이틀 일이던가?
이때 대화를 듣고 있던 주사가 입을 열었다.
“저 역시 그 말에 동의합니다. 신물을 노렸던 자들의 대부분은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물론 엽현의 처지도 특별히 좋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탑을 얻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야 했으니까요.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적이었던 자들 중, 지금까지 살아 있는 자는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혈조… 혈조는 어떻게 되었느냐?”
노인이 불현듯 묻자 주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습니다.”
“흠… 과연 보통 녀석이 아니로구나.”
“곁에서 지켜본바, 확실히 그렇습니다.”
“주사, 너는 가서 성 전체에 내 명을 전해라. 엽현은 나의 귀한 손님이니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고. 또한, 그가 원한다면 신서전(神書殿)으로 데려가 비서들을 볼 수 있게 배려해 주거라.”
“그, 그건……”
주사가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자, 곁에 있던 주청이 끼어들었다.
“할아버님, 신서전은 우리 신전의 모든 무학과 비술을 보관해 놓은 곳인데 그곳을 개방한다는 건…….”
“그저 내 말대로 따라주면 안 되겠느냐?”
“할아버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노인이 주청과 주사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적으로 삼을 수 없는 바에야 친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 * *
신성(神城).
엽현과 주사가 나란히 성 안을 거닐고 있었다.
“신성에 관심이 좀 가느냐?”
주사의 말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흥미로워. 좀 더 자세히 둘러보고 싶군.”
엽현은 연신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성은 규모가 결코 크진 않았으나, 고풍스러움이 곳곳에 묻어나 있었다.
성 안을 그들 말고도 많은 인파로 붐볐는데, 대부분 인간이었다.
“음… 너희는 정말로 신은 아닌 거지?”
그 말에 주사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또한 인간이다. 그저 사유계 안에서 강한 것뿐이지. 엄밀히 말해 인왕과의 싸움은 인간 간의 내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긴 것이 우리였던 것이지.”
“흠… 그렇다면 소위 신이란 존재는 실재하지 않는 걸까?”
주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당연히 신은 존재한다. 네가 말하는 소위 진짜 신 말이다.”
“…….”
“후후, 못 믿겠다는 표정이구나. 스스로 한 번 생각 해 보거라. 이 우주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우주의 수많은 생명체는 어디서 온 것일까?”
“하하, 생명의 기원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건가?”
“그런 셈이지. 사실 무도인들의 최종 목표는 장생(長生)이 아니라 영생(永生)이다. 아직 그 누구도 해결해내지 못한 문제지.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유계로 가길 희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명이 더 발달한 그곳이라면 영생의 비밀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지.”
오유계라…….
지금 당장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연천이 말한 것처럼 아직 사유계도 모두 이해하지 못했는데 오유계를 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것은 아마 스스로를 곤경에 몰아넣는 일이 될 것이다.
게다가 오유계에도 이미 그의 목숨을 노리는 적들이 있다고 했으니…….
모르긴 몰라도, 사유계 내에서 가장 오유계로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을 꼽자면 분명 엽현의 이름이 들어가리라.
그렇게 성 안을 다 둘러본 후, 주사는 엽현을 데리고 어느 대전으로 왔다. 대전의 사면에는 신비한 기운을 가진 검들이 경비를 서는 것처럼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여기는?”
“신수성의 금단의 구역이라 불리는 곳이다. 나라 해도 일 년에 겨우 한 번 들어가 볼까 말까다. 그것도 맡은 임무를 모두 완수한다는 조건하에. 그런데 이번 임무는…….”
주사가 엽현을 바라보며 다소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다만 너는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 제재를 가하는 자도 없을 것이다.”
“뭐? 왜지?”
“후후, 이미 이야기된 것 아니었나? 이것이 타협에 대한 보상이다.”
“아… 그렇군.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도록 하지!”
“얼마든지! 다만 안에 내용물을 보기만 할 뿐, 가져가거나 필사하는 것은 금지다.”
“물론이지. 나도 그 정도 양심은 있다.”
주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들어가 보도록.”
“그러지.”
이때 주사가 머뭇거리다가 재차 입을 열었다.
“들어가면 가장 마지막 줄의 오른쪽 구석을 확인 해 보거라.”
이 말을 끝으로 주사는 돌아섰다.
마지막 줄?
엽현이 고개를 갸웃하고는 대전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이때, 갑자기 엽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여러 개의 신식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중 가장 경지가 낮은 것은 무려 명경이었다.
엽현은 신전의 저력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대전 안으로 진입한 엽현은 빽빽이 들어차 있는 책장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과연 금단의 구역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고서들이 존재했다.
대단하군!
이윽고 엽현은 어느 책장에서 오래된 고서 한 권을 꺼내 들었다. 대강 책을 훑어보던 엽현의 눈동자가 순간 번뜩였다.
그것은 어느 권사(拳師)의 권도심득(拳道心得)을 대단히 자세히 기술해 놓은 것이었다.
엽현은 점점 책에 빠져들어 갔다.
왜냐하면 그 역시 권도를 연마하던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의 장권은 여전히 꽤나 위력적이었다.
“육신이 근본이다. 육신의 잠재력은 무한하며, 권도는 인도(人道)와 다를 바 없다…….”
책장을 하나하나 넘길 때마다 엽현은 놀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권도심득에 대해 설명한 내용은 검존의 검경에 비해서도 결코 하등하지 않았던 것이다.
각종 권기(拳技)의 원리와 이론에 대해 상술 한 부분은 검경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사용하는 매개체가 다르기 때문에 무도의 방향이 다소 상이하다는 것이었다.
엽현은 보면 볼수록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권도야말로 무인이 핵심인 무도다. 다른 무도와 달리 어떤 외물이나 천지의 힘을 이용하지 않고 오직 육신의 수련을 통해 높은 경지에 다다르는 것이다.
그리고 엽현의 강점은 바로 이 단단한 육신이다.
무려 조극경에 달하는 육신!
물론 강한 육신을 지니고 있긴 했지만, 엽현은 그 힘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결국 검수인 까닭에 권도에 많은 관심을 쏟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집어 든 지금, 그는 다시 권도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책에서 설명한 내용을 완전히 머릿속에 넣은 다음, 넓은 공간으로 나와 실제로 발현하는 것을 반복했다. 생각처럼 되지 않을 땐 다시 책을 보면서 잘못된 부분을 연구했다.
그동안 엽현을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칠 일 째 되던 날, 여느 때처럼 대전을 빠져나온 엽현은 막 장권을 펼치려는 중이었다. 이때, 그의 앞에 주사가 나타났다.
“따라서 오너라. 수련할 만한 장소를 안내해주마.”
엽현이 장권을 연습하는 동안, 어둠 속에 있는 강자들은 각자의 힘으로 공간을 봉쇄해 왔었다. 충격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다만 일주일 사이에 장권의 위력이 놀라울 정도로 증가하는 바람에 더 이상 그들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인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엽현이 수련할 수 있도록 공간을 따로 마련해 주기로 한 것이다.
잠시 후, 주사는 엽현을 데리고 어느 연무장에 도착했다.
“이곳은 진법이 둘러져 있으니, 마음 놓고 수련하도록 하거라.”
“하하! 이렇게 배려해줘서 고맙군!”
이때 주사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언제쯤 끝낼 생각인가?”
엽현이 서고에 틀어박힌 지도 벌써 일주일.
하지만 전혀 떠날 기색이 없었던 것이다.
“끝내?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