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796
796화 검 좀 구해주세요
인내!
천녀에 대한 오유계 무인들의 인내심은 이제 바닥이 난 상태였다.
천녀만 아니었더라면 계옥탑은 이미 자신들의 손에 들어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두 우주 간의 통로가 봉인되어 있긴 하지만, 사유계로 건너올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유계의 비전서를 모두 뒤진 그들은 마침내 차원 이동에 관한 비술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는 시전자의 무위가 대폭 깎여 나감은 물론, 금제가 발동할 시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계옥탑은 목숨을 걸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기에 문제 될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사유계로 넘어왔다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나타난 곳마다 어떻게 알았는지 천녀가 귀신같이 찾아왔던 것이다.
오유계 무인들의 입장에서는 고작 사유계 무인에게 번번이 막힌다는 것은 그야말로 크나큰 모욕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들은 결코 천녀를 얕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천녀는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었다.
고요한 우주 한복판.
천녀는 말없이 중년인을 응시했다.
중년인의 몸은 다소 희미했는데, 환영인 것 같으면서도 실체가 있는 듯 보였다.
“이 버러지 같은 사유계 땅에 너 같은 강자가 태어나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중년인의 말에 천녀가 무뚝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네가 왜 아직 죽지 않았는지 알고 있느냐?”
“하하하! 무슨 재밌는 농담을 하려는 게냐? 말해 보거라!”
“그것은 바로… 네가 아직 스스로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말에 웃고 있던 중년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변했다.
과연 이때 그의 목에는 어느새 가느다란 검흔이 만들어져 있었다!
찰나의 순간, 중년인의 육신이 빠르게 희미해졌다. 하지만 소멸되진 않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몸 주변에 칭칭 동여매진 붉은 실이 그의 육신을 붙들고 있었다.
여유 있는 미소를 보이는 중년인.
“제법이었다만, 오유계에 있는 내 본체는 어떻게 죽일 거지? 아무리 너라 해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는…….”
바로 이때였다.
투투툭…….
그의 몸을 부여잡고 있던 붉은 선이 순식간에 끊어져 버렸다.
쾅-!
순간 줄 끊긴 연처럼 힘없이 날아가는 중년인. 천녀를 바라보는 그의 마지막 눈빛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이건… 말도 안 돼.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
천녀는 더 이상 중년인에게 볼일 없다는 듯, 그가 처음 나타났던 공간을 향해 다가갔다.
“이렇게 많은 수고를 해서 겨우 이딴 놈을 보내다니… 나를 뭐로 보는 것이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번뜩이는 그녀의 칼날.
쉭-!
순간 한 줄기 검광이 공간 통로 안으로 빠르게 날아들었다. 스치는 모든 공간을 날카롭게 잘라내며 날아간 검광은 마침내 통로를 빠져나와 어느 고요한 장소에 도착했다.
바로 이때, 칠흑과 같이 검은 손 하나가 검광을 막아섰다.
쾅-!
검은 손이 비틀거리며 미친 듯이 밀려났다. 검광을 붙잡은 채 수십만 장을 밀려난 손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검광은 계속 전진했다. 이내 한 자루 장창이 정면으로 날아든다.
고대의 혼령을 담은 창이 선홍빛 창망을 번뜩이니, 그 강대한 기운에 오유계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쾅-!
거대한 폭음과 함께 창이 담고 있던 기운이 터져 나갔다. 이윽고 기운을 소진한 창이 창신부터 바스러져 먼지로 변했다.
이제 검광은 어느 기이한 공간에 진입했다. 거침없이 밀고 들어가는 그녀를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 후.
검광은 어느 비문과 부적이 가득한 장벽 앞에 도착했다.
사유계와 오유계 사이에 놓인 장벽이었다.
이 장벽으로 인해 사유계 강자는 오유계로 갈 수 없고, 오유계 강자 역시 사유계로 갈 수 없다.
검광이 장벽에 가깝게 날아들자, 장벽이 진동하더니 ‘止(지)’라는 글자를 토해냈다. 그리고 깃털처럼 날아든 글자가 검광에 붙은 순간.
쾅-!
폭풍처럼 질주하던 검광이 마침내 멈췄다.
적막이 흐르고, 검광이 가볍게 몸을 떨었다.
쾅-!
재차 폭발이 일어나며 검광과 ‘止(지)’자가 동시에 소멸했다.
다시 공간 통로 입구.
무표정한 얼굴로 입구를 들여다보고 있는 천녀.
사실 장벽은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다만 무너뜨리게 되면 엽현이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엽현은 아직 스스로를 지킬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잠시 후, 시선을 거둔 천녀가 성공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빛에는 경멸과 멸시의 기색이 가득했다.
“비천한 것들.”
차갑게 내뱉은 그녀가 서서히 걸음을 옮기더니, 이내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천녀가 완전히 사라지고 난 후, 누군가의 한숨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이는 탄식에 가까웠다.
오유계 무인들이 위험한 비술을 사용하면서까지 중년인을 보냈던 것은 천녀를 제거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일말의 가능성도 보지 못한 것이다.
처음 그들은 단순히 천녀를 사유계 최강자 정도로 인식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사유계 뿐만 아니라 오유계에 놓아도 능히 최정상급 고수라 칭할 수 있는 정도였다.
“어쩔 수 없다. 지금처럼 넘어 오지 못하게 견제만 하는 수밖에. 정면 대결은… 무리다.”
어디서 들려오는 걸까?
원근을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중년인이 만든 공간 통로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한편, 천녀는 또 다른 성역에 도착해 있었다.
어두운 성공 속, 천녀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습관일까?
손가락으로 머리카락 몇 올을 배배 꼬는 그녀. 이때 재미난 장면이라도 떠올랐는지, 입꼬리가 가볍게 올라갔다.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
살면서 겪는 조금의 고난과 역경은 인생의 맛을 더욱 깊게 하지 않던가.
인생이란 오직 검도나 영생 따위에 그치지 않는 것.
이제 천녀는 어느 흑동 앞에 이르렀다. 흑동의 중심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기운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흑동을 가만히 바라보던 천녀는 이내 걸음을 돌려세웠다.
이때, 흑동 안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너는… 매우 강하군…….”
걸음을 멈춘 천녀.
“얼마나 강하지?”
“…얼마나 강하냐고?”
상대가 반문하자 천녀가 가볍게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글쎄, 나도 모르겠군.”
“너라면 오유계로 갈 수 있을 텐데 어째서…….”
“오유계? 아무리 천국이라 해도 그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대답을 마친 천녀가 유유히 사라졌다.
“에휴……. 가야 할 놈은 안 가고, 가지 말아야 할 놈들은 죽어도 가려 하니……. 말세야…….”
* * *
양계천.
이때의 양계천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강기가 떠난 이후, 검종에선 어떠한 검수도 보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폭풍전야라는 것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검종이 여기서 물러간다?
하늘이 두 쪽 나도 그런 일은 일어날 것 같지가 않다.
진시일의 나무집.
엽현은 여전히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정신없이 검을 흡수하고 있는 엽현.
돌파가 임박한 듯 기운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조극(造極).
미지경인 그의 다음 경지가 바로 이 조극이다. 그다음은 지선, 명, 파명, 구도, 입도, 파도, 그리고 마침내 멸도였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파도를 사유계 마지막 경지로 여겨야 할 것이다.
멸도경은 그 존재 자체도 불분명하니…….
어쨌든 엽현의 목표는 단기적으로 파명경, 장기적으로 구도나 입도에 이르는 것이었다.
한편, 그를 지켜보고 있는 진시일은 다소 어이가 없었다.
엽현이 어느 날인가부터 자신의 집에 자리를 잡더니 아예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진시일 역시 엽현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만약 계옥탑이 엽현 손에 있다는 단서를 포착하면, 이는 검종과 양계천을 이간질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었다. 그 순간 엽현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요 며칠 철저하게 지켜본 결과 엽현이 정말로 탑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고 있었다.
만약 그에게 있다면 이처럼 태연하게 자신과 얼굴을 맞대고 지낼 수 없었을 테니.
잠시 후, 진시일이 시선을 거두자 이합이 기다렸다는 듯 나타났다.
“검종의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음… 규모는?”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렇군. 우리 쪽도 슬슬 준비를 해야겠구나.”
“정말로 그들과 끝을 볼 생각이십니까?”
“그들의 검수가 이 땅에서 죽었을 때부터 타협의 여지는 없었다.”
“그럼 그들이 정녕 오유계의 신물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입니까?”
사실 양계천 강자들의 관심은 검종이 아닌 오유계 신물에 쏠려 있었다.
신물이 과연 검종의 손에 있는가 하는 것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였다.
물론 검종 역시 양계천을 의심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조금 더 중요한 것은 검종의 검수들이 양계천에서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이 상황에서 반격을 가하지 않는다면, 검종이 쌓아 올린 수만 년의 명성은 물거품이 되고 말리라.
진시일이 문득 바닥에 앉아 있는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엽현, 검종이 곧 도착할 것이다. 너는 어찌하려느냐?”
이에 엽현이 살며시 눈을 뜨고 진시일을 바라보았다.
“검종……. 휴… 나는 그럼 자리를 피하는 게 좋겠소.”
“검종이 그렇게 무서운 게냐?”
이합의 물음에 엽현이 낮게 탄식을 뱉어냈다.
“홀몸으로 어찌 검종 같은 세력을 당해낼 수 있겠소? 게다가 저들은 죽어라고 내게 누명을 씌우려 드니……. 정말 악독하기 짝이 없는 자들이오!”
진시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곳에 가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러지 말고 우리와 함께 검종에 대항하는 것이 어떠냐?”
“…….”
“왜 말이 없느냐?”
진시일이 의아해하자 엽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내 실력이 이렇게나 미천한데 짐이나 안 되면 다행일 것이오. 오해하지 마시오. 싸움을 두려워하는 건 아니니까. 단지 고작 미지경으로 그들을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겠소? 그래서 말인데…….”
“말인데?”
엽현이 두 사람의 눈치를 슬쩍 보며 말했다.
“현재 조극경 까지 아주 조금만 남겨 둔 상황이오. 만약 내게 검 두어 자루만 구해다 준다면 곧장 경지를 돌파해 선봉에 서겠소. 어떻게 생각하시오?”
검 두 자루만 구해 달라고?
진시일과 이합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놈의 전투력은 꽤나 쓸 만합니다. 이번 한 번만 도와주어 우리에게 빚을 지도록 함이 어떻습니까?]이합의 말에 진시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엽현이 계옥탑만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양계천은 굳이 그를 적으로 삼을 이유가 없다.
기왕 적이 되지 않는다면, 작은 은혜를 베풀어 교분을 맺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게다가 엽현의 잠재력은 근래에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진시일의 허락을 구한 이합은 엽현을 향해 소매를 펄럭였다. 그러자 오래되어 보이는 흑검 한 자루가 엽현 앞에 떨어졌다.
“이는 오래전 우연히 얻은 것인데 내가 검수가 아닌지라 보관만 해 둔 것이다. 노부의 작은 성의니 받아 두거라.”
검을 받아 든 엽현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좋은 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