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0
80화 싸우다 정이 든다는 말이 있다
각자 상대를 처리한 세 사람은 지붕 위로 고개를 돌렸다. 지붕 위에서 기안지는 화살을 피해 연신 후퇴하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여자는 그 틈을 타 먼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자 순식간의 그녀는 한 마리의 매와 같이 먼 하늘로 날아갔다.
“내가 잡는다!”
엽현이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바로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헤헤헤, 아직 어기경인 걸 깜빡했네…….”
엽현은 아직 능공비행을 할 수 없었다.
백택이 묵운기를 바라보았다. 그들 중 가장 날렵한 것은 바로 묵운기 아닌가!
“방금 기력을 다 소모해서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어.”
“괜찮아, 할 수 없지.”
고개를 끄떡이던 엽현이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여기 있는 줄 안거야?”
“그야 우리 영감탱이가 알려줘서 왔지. 네가 여러 명하고 싸우고 있다고 가 보라고 하더라고.”
묵운기가 잠시 망설이더니 엽현을 향해 말했다.
“엽 강도. 네 실력이 나만큼이나 강한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너를 노리고 있는 놈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돼. 만약 다음에 산을 내려올 일이 있으면 우리와 함께 가자구.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더 안전할 테니.”
“…….”
“내가 네 속을 모를 거 같아? 돈이 되니까 그러는 거잖아. 참나, 낯가죽 한번 두껍다.”
백택이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엽현의 얼굴이 두꺼운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 보니 묵운기의 낯가죽도 못지않게 두꺼웠다.
묵운기가 백택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꼭 너 같은 놈들이 제일 빨리 죽더라.”
“그럼 누가 먼저 죽는지 우리 한 번 해 볼까?”
백택이 한 걸음 다가오자 묵운기가 재빨리 뒷걸음질 치며 손을 까딱거렸다.
“그래, 덤벼봐, 한 번 날려 보라구. 덩어리!”
백택이 그런 묵운기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돌아가자.”
백택의 말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붕 위의 기안지를 바라보았다.
“식충, 아니, 미녀 아가씨! 이만 가자!”
“식충이……?”
기안지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
“하하, 아니 그게… 맞아, 사실 묵운기가 알려 준거야! 묵운기가 너 보고 식충이랬어! 맞지 백택?”
백택이 자신의 옆구리를 찌르는 엽현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그러자 엽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밥 먹기 싫어?”
백택이 근엄한 표정으로 묵운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맞아, 기안지. 저 놈이 그런 거야!”
“망할 놈들!”
묵운기가 펄쩍 뛰려 할 때, 그의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한 줄기 도망(刀芒)이 스쳐 지나갔다.
묵운기가 안색이 변하여 번개처럼 도망치기 시작했다.
“인간 말종들아, 돌아가서 보자아아아악!!”
이때, 백택이 엽현에게로 다가왔다.
“오늘 닭고기가 먹고 싶은데…….”
“문제없지, 친구.”
엽현이 눈을 찡긋하며 그대로 백택과 어깨동무를 한 채 창란학원으로 향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울창한 숲속을 지나고 있었다. 이곳만 지나면 창란산이 나온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두 번의 폭발음이 들렸다. 두 개의 그림자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바로 묵운기와 기안지였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기안지의 양쪽 어깻죽지에는 두 개의 화살이 박혀 있었고, 묵운기의 허벅지에도 화살이 박혀 있었다.
엽현 만큼 육신이 강하지 않은 두 사람은 그대로 화살에 관통당한 것이었다!
엽현과 백택이 화들짝 놀라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이때, 숲속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튀어 나왔다. 하나는 방금 전 도망쳤던 그 검은 무복의 여인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십세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소매가 넓은 검은 장포를 입고 있었다.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트린 그의 어깨에는 뱀 모양의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엽현의 곁에 선 묵운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심해, 저 남자, 강하다!”
엽현이 고개를 돌리자, 자신에게 미소 짓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초국의 창목학원 내원 수석이자 청주 무방(武榜) 19위, 봉일휴(封一休)라 한다.”
엽현이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천천히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어느새 그의 손엔 한 자루의 검이 들려있었다.
“강국, 창란학원, 엽현, 청주 무방 1위!”
“엽 강도, 너 그거 아니잖아?”
묵운기의 초치는 소리에 엽현이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뒤에서 1등!”
“…….”
무방(武榜)!
엽현도 들어본 적이 있다.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무인들의 서열을 기록해 둔 명단이었다.
그리고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자는 청주에서 내로라하는 무인들이었다.
강국 전체를 통틀어 이 무방에 이름을 올린 자는 단 한 명.
안란수!
엽현은 봉일휴라는 자가 강한 자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물론 두렵지는 않았다!
엽현이 상대를 향해 거리를 좁혀갔다. 그의 손에 들린 영수검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를 바라보는 봉일휴는 겉으로는 웃고 있었으나 눈빛은 진중하기 그지없었다.
강국 창란학원에서 엄청난 보수를 내걸면서까지 죽이고 싶어 하는 자였다.
그런 자가 결코 만만할 리 없다!
무방에 이름을 올린 자들 중에서 이 정도 생각도 하지 못하는 바보는 없었다.
수많은 전투를 겪어 온 봉일휴는 상대를 얕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죽음인 것이다!
검은 무복의 여자가 활시위를 당겨 엽현을 겨냥했다.
“나 혼자 한다.”
봉일휴가 그녀를 제지했다.
두 사람의 거리가 몇 장 남지 않았을 때, 봉일휴는 어떤 무형의 기운이 자신을 덮쳐옴을 감지했다.
검세(劍势)!
봉일휴는 마치 보이지 않는 검이 자신을 찌르는 듯한 압박감을 받았다.
검은 무복의 여인 역시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 정도의 기세는 결코 어기경 무인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봉일휴는 담담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손 위로 하얀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며 나타났다. 그의 발아래 땅이 기이한 형태로 일그러졌다.
엽현이 먼저 출수했다.
일검정생사(一劍定生死)!
패도한 검세를 지닌 일 검이 떨어졌다.
그러자 봉일휴의 손 위에 놓인 회오리가 순식간에 엽현의 검을 향해 날아갔다.
쾅-!
두 사람을 중심으로 반경 수십 장의 땅이 요동치며 붕괴되었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의 신형이 동시에 십여 장 밀려났다. 그들이 있던 자리는 반 장 깊이로 구덩이가 패여 있었다.
“통유경!”
엽현이 봉일휴를 향해 외쳤다. 그는 능공경이 아닌 통유경이었던 것이다!
겨우 약관의 나이에 통유경의 경지라니!
봉일휴는 자신의 오른팔을 살폈다. 그의 팔은 이미 여기저기 찢겨져 나가 있었다.
만약 엽현을 얕보고 전력을 다하지 않았더라면 팔 한쪽이 날아갔을 수도 있었으리라!
봉일휴가 고개를 들고 엽현을 바라보았다.
“역시 검수라 이건가…. 이것이 어기경의 파괴력이라니, 믿기지 않는군…….”
엽현이 대답을 생략한 채 그대로 검을 찔러 나갔다.
싸우면서 쓸데없는 말을 섞는 것은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다.
검 하나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말은 필요없었다.
이기고 보는 게 우선이었다.
엽현의 검이 빠른 속도로 나가자 영수검의 검 끝에 맹렬한 검망이 실렸다.
봉일휴는 오히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순간 그의 몸에서 무형의 기운이 방출됐다.
이것이 바로 통유경 강자의 기세!
그와 동시에 그의 발밑에 강한 진동이 발생했다. 무수한 돌의 잔재들이 그의 눈앞에 떠올랐다. 이때 그가 손을 아래로 향하며 외쳤다.
“대지금(大地吟)!”
쾅-!
그의 눈앞에 떠오른 무수한 잔재들이 순식간에 한데 뭉치더니 순식간에 태풍처럼 엽현을 향해 휘몰아쳤다.
이에 백택 등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천지의 기운을 담은 이 일격은 최소한 지계 급의 무기였던 것이다!
통유경 강자의 손에서 펼쳐지는 지계 무기란 분명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때, 청아한 검명이 울리며 한 줄기 검망이 떨어졌다.
쾅-!
천지를 울리는 강력한 충격과 함께, 두 개의 그림자가 돌과 흙에 섞여 각자의 뒤편으로 미끄러지듯 밀려났다.
밀려나던 중, 엽현이 손에서 검을 놓았다. 그러자 영수검이 정면을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봉일휴가 손바닥을 아래에서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다시 한번 그의 발아래 있던 돌과 모래가 한데 뭉쳐 엽현의 일 검을 막아섰다.
퍽-!
봉일휴의 신형이 다시 십여 장의 거리를 밀려났다.
어느 틈엔가, 엽현이 봉일휴의 앞에 나타났다. 봉일휴 역시 발끝에 힘을 주어 정면으로 튀어 나갔다.
쾅-!
두 사람은 서로 일격을 교환하고서 각자 원래 있던 자리로 떨어졌다.
엽현이 바닥에 내려섰을 때, 그의 발밑은 사방으로 금이 생겼다.
반면 봉일휴는 평온하기만 했다.
통유경!
통유경과 능공경 사이에는 거대한 차이가 있었다. 통유경 강자들은 능공비행을 자유자재로 펼칠 뿐 아니라, 공간의 힘(空間之力)을 통제하여 공격력을 더할 수 있다.
가장 극명한 차이는 통유경 강자가 지계 무기를 사용하면 그 위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계 급 무기를 사용하려면 통유경 정도의 실력이 밑받침되어야만 한다. 만약 그 아래 단계에서 지계 무기를 사용하고자 한다면 위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을뿐더러 도리어 무기를 시전하는 자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눈앞의 봉일휴는 아직 통유경에 이른지 오래되지 않았기에 공간지력(空間之力)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만약 그가 공간지력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었더라면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엽현의 표정이 방금 전보다 많이 굳어졌다.
그는 상대를 깔보지도, 스스로 자만하지도 않았다. 그저 상대의 장점과 단점을 철저히 파악할 뿐이었다.
지금 그는 자신의 경계가 남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만약 한시라도 빨리 능공경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통유경 강자들과의 싸움에서 철저히 밀릴 것이 분명했다.
신중해진 쪽은 봉일휴 역시 마찬가지였다. 엽현의 전투력이 그의 상상 이상으로 뛰어났기 때문이다.
엽현을 상대로 그는 처음부터 본신의 힘을 모두 쏟아 부었다. 심지어 지계 무기마저 선보이는 강수를 두었다.
그러나 엽현은 여전히 꼿꼿하게 자신의 앞에 서 있다.
게다가 상대는 겨우 어기경.
만약 그가 능공경 혹은 통유경이었더라면 과연 결과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에게 살심(殺心)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모래알만큼 적은 양일뿐이다. 애당초 엽현과 그는 목숨을 걸고 싸울 만큼 불구지천의 원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목숨을 걸어야 할까?
봉일휴가 엽현의 뒤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엽현 등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 노인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기 원장의 그것과 거의 맞먹는 것이었다!
어느새 엽현의 앞으로 다가온 노인이 복잡한 심정이 실린 눈으로 엽현을 살펴보았다.
“강국의 창목학원에 입학하길 원했다던데.”
노인의 물음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널 거부 했느냐?”
엽현이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쯔쯪… 머저리들이 따로 없구나.”
노인이 이번에는 봉일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싸우면서 정이 든다는 말이 있다. 이대로 친구가 되면 어떻겠느냐?”
엽현이 그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노인이 옅게 미소 지었다.
“네 동료가 다친 것 때문이라면…….”
그때 노인의 손이 움직이자, 묵운기와 기안지의 눈앞에 두 개의 백옥병이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묵운기 앞에 황금색 비도가, 기안지 앞에 활활 타오르는 한 자루의 도가 떨어졌다.
두 병기 모두 최상급 영기(靈器)였다!
묵운기와 기안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노인이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병 안에 있는 것은 상급 금창단(金疮丹)이다. 한 알에 삼십만 냥짜리로 한 병에 다섯 개씩 넣었다. 황급 비도는 최상급 영기로 오래전 노부가 우연한 기회에 얻은 것이다. 그리고 장도(長刀)는 적염(赤炎)이라는 것으로 역시 최상급 영기다. 만약 두 사람에게 기연이 닫는다면 명계(明階)급 무기가 될 것이다.”
기안지가 옥병과 적염이란 도를 받아 들었다. 활활 타는 도를 보는 그녀의 눈에는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담겨있었다.
마찬가지로 묵운기 역시 황금 비도를 보고는 입이 찢어져라 좋아했다.
최상품 영기!
살면서 만져보지도 못한 물건 아닌가!
이때, 백택이 묵운기를 향해 비꼬듯이 말했다.
“속물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