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03
803화 이만하면 훌륭하다
이진풍이 답답해하며 소리친 한 마디에 엽현이 붉은 눈을 들어 그를 응시했다. 순간, 한 줄기 혈망이 이진풍의 앞에 나타났다.
빠르다!
이진풍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엽현의 검은 이미 그의 검보다도 더 빨랐던 것이다.
이진풍이 황급히 두 손가락으로 날아오는 검을 막았다.
쾅-!
엽현은 이번만큼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진풍이 수백 장 뒤로 날아갔다. 뿐만 아니라, 그의 두 손가락도 어느새 잘려나가 있었다.
이를 보고 있던 강기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엽현의 실력이 언제부터 이토록 강했단 말인가?
“어떻게 이럴 수가…….”
이때 이진풍의 정면에 있는 엽현이 갑자기 짐승처럼 포효했다.
순간, 그의 입에서 두꺼운 혈광이 쏟아져 나왔다.
이때의 엽현은 이미 이지(理智)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가 되었다.
살육!
오직 이 한 단어만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전부인 것이다.
이윽고 잠잠해진 엽현이 천천히 이진풍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가 흉물스러운 미소를 씩 짓는 순간, 붉은 혈광이 이미 이진풍의 앞에 도달해 있었다.
이진풍이 미간을 찌푸리며 황급히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수십 개의 검광이 빠르게 혈광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 검광들은 혈광에 닿자마자 눈 녹듯 사라지고 말았다.
이에 이진풍은 아예 스스로 혈광을 향해 몸을 날렸다.
곧 짙은 혈광 중에 비명 같은 검명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한쪽에선 강기가 마음을 졸이며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진풍이 누군가를 상대로 궁지에 몰린 장면을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진풍, 그는 검종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초절정 강자였다.
꿈?
하지만 꿈이라고 하기엔 눈앞에 장면들이 너무나 생생했다.
혈광을 응시하며 점점 마음이 불안해지는 강기였다.
한편 혈광 안쪽에서의 전투는 점점 격렬해져만 갔다.
이때의 엽현은 이지를 완전히 상실한 야수와도 같은 상태였다. 게다가 그의 손에는 천주검이 들려 있으니, 이진풍이라 해도 섣불리 달려들 수 없었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공격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엽현의 기운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상황이 흘러가면 엽현이 우세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렇게 대략 반 사진쯤 지났을 때, 그들이 위치하고 있던 성역이 쩍 갈라져 나가더니, 검은 그림자 하나가 혈광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이진풍이었다.
이진풍이 천 장 밖에 겨우 멈춰 선 순간, 엽현의 혈광이 빠르게 그의 주위를 감쌌다.
콰쾅-!
혈광 안에서 재차 검명 소리가 귀신처럼 울려 퍼지고, 사방의 공간이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강기는 이미 수만 장 밖으로 피신한 상태였다. 둘의 싸움에 휘말렸다간 뼈도 추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때 그는 한 가지 기이한 점을 발견했다. 주변의 성역은 이미 반쯤 초토화 된 상태인데도 유명전은 금 간 곳 하나 없이 멀쩡했던 것이다.
평범한 곳이 아니군!
유명전을 바라보는 강기의 눈빛이 점점 진중해졌다.
바로 이때, 성역 전체에 깔려 있던 짙은 혈무가 쩍 갈라지면서, 사람 하나를 토해냈다. 그는 다름 아닌 이진풍이었다.
이진풍은 밀려나면서도 수십 개의 비검을 날려 보냈지만,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혈광 사이로 사라졌다.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 멈춰 선 이진풍.
그의 몸 이곳저곳에는 이미 여러 개의 검흔이 만들어져 있었다.
문득 고개를 들자 혈광 사이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붉은 눈빛을 발하며 다가오는 엽현의 모습은 광인 그 자체.
심지어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검의와 그의 손의 천주검 마저 이미 핏빛으로 변해 있었다.
붉은 혈무를 배경 삼아 이진풍에게 다가오는 엽현.
이때 계옥탑 팔층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시무시한 혈맥이로구나. 네 부친은 도대체 어떤 자이기에…….]혈맥지력!
이 괴물 같은 힘은 이진풍뿐 아니라 팔층 존재마저 놀라게 했다.
게다가 혈맥지력이 발동한 후 엽현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바뀐 상태였다.
도대체 어떤 혈맥을 이어받은 것인가?
팔층 존재는 처음으로 엽현에게 호기심이 들었다.
그가 속해 있던 오유계에도 혈맥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 그들은 혈맥의 힘을 극한으로 끌어 올리는 방법을 연구했으며 그중 어떤 혈맥들은 보통 혈맥에 비해 매우 강한 잠재력이 있다는 것도 밝혀냈다.
그런데 엽현의 혈맥은 비단 강대한 것뿐 아니라, 매우 기이하기까지 했다.
자신의 주인을 광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혈맥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단 말인가?
뭐 이딴 게 다 있지?
한편 팔층 존재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이진풍의 안색은 이미 시체처럼 죽어 있었다.
결국 우려했던 대로 엽현에게 우위를 빼앗겨 버린 것이다.
자신보다 수만 년은 늦게 태어난 젊은 무인.
게다가 상대 역시 자신과 같은 검수라는 점에서 이진풍은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마저 들 지경이었다.
이때 이진풍의 몸에서 한 다발의 검의가 솟구침과 동시에 검광이 장내에 번뜩였다.
엽현은 거침없이 검광을 향해 달려들었다.
쉭-!
엽현의 붉은 천주검이 단숨에 검광을 튕겨냈다.
바로 이때, 이진풍이 양손을 모으자, 반투명한 검 한 자루가 그의 머리 위에 응집됐다. 이와 함께 크게 한 발 앞으로 내딛는 이진풍.
“참(斬)!”
윙-!
검명 소리와 함께 그의 머리 위의 검이 날카롭게 공간을 가르더니, 순식간에 엽현의 붉은 검광과 마주했다.
쾅-!
붉은 검광이 파괴된 이 순간, 붉은 혈무가 빠르게 이진풍의 주위를 에워쌌다.
이윽고 붉은 혈무 속에서 검이 부딪치는 소리, 검명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강기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를 바라보면서도 함부로 출수할 수 없었다.
이진풍 같은 절정고수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자칫 그의 심경을 깨뜨릴 수도 있는 위험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강기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바로 이때, 먼 성공으로부터 검명 소리가 들리더니, 중년인 하나가 장내에 나타났다.
바로 검종 종주 목청봉의 분신이었다.
목청봉의 등장에 강기의 마음도 다소 진정됐다.
유명전으로 들어오기 전 수상한 점을 눈치챈 강기가 검종에 통보했고, 이 덕에 목청봉이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 혈무를 응시하던 목청봉이 가볍게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의 검지에서 한 줄기 검광이 방출됐다.
순간, 혈무가 좌우로 길게 갈라짐과 동시에 그 사이에서 엽현이 튕겨져 나갔다.
타격을 입은 엽현은 그대로 유명전까지 밀려났고, 가슴에는 커다란 검상이 자리 잡았다.
이때 엽현의 정면에 목청봉의 분신이 나타났다.
“보면 볼수록 놀라운 놈이로구나.”
거짓이 아니었다.
이진풍을 압도하는 엽현의 모습은 그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한편 이지를 상실한 엽현은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붉게 변한 천주검을 붙잡고 살의를 내뿜을 뿐.
살(殺).
이것이 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유일한 한 글자였다.
천천히 고개를 든 엽현이 검을 치켜 올렸다. 그가 붉은 안광을 뿜어내며 막 뛰쳐나가려는 이때, 하얀 손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됐다. 이만하면 아주 훌륭하다.”
순간 엽현의 몸에서 강대한 살의가 휘몰아쳤다. 하지만 그의 몸에 차가운 기운이 흘러들더니, 온몸에서 날뛰던 악기와 살기를 단숨에 잠재워버렸다.
아무도 말릴 수 없을 것 같았던 혈맥지력이 순식간에 제압당한 것이다.
이때 엽현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여인.
삼베옷에 아무것도 신지 않은 하얀 발.
그녀는 다름 아닌 엽현이 유명전에서 만났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정상으로 돌아온 엽현은 그대로 바닥에 스르르 쓰러졌다.
이와 함께 붉게 빛나던 그의 눈빛도 빠르게 원래 색을 되찾았다.
한편, 목청봉 등의 시선은 온통 여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의 안색은 하나 같이 어두웠는데, 심지어 목청봉조차 눈빛이 매우 무거웠다.
이때 마침내 여인의 고개가 세 검수에게로 향했다.
“검수…….”
“사유계의 강자는 내가 모두 알고 있건만, 그대는 기억에 없군.”
여인은 목청봉의 말을 무시한 채, 그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바로 이때, 이진풍이 돌연 여인을 향해 검광을 날렸다. 그러나 이 검광은 그녀에게 채 닿기도 전 눈 녹듯 사라졌다.
이 장면을 보자 이진풍의 안색이 잿빛으로 변했다.
자신의 검광을 손짓 하나 없이 막아냈다는 것은 상대가 그보다 훨씬 고수라는 의미였다.
바로 이때, 여인이 이진풍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이진풍의 머리카락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속도로 하얘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흐르자, 중년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백발에 얼굴이 쭈글쭈글한 노인만이 자리에 남게 되었다.
자신의 손을 들여다본 이진풍이 너무 놀라 몸을 떨었다.
“이, 이게 대체…….”
목청봉 역시 이 장면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순간 그의 눈동자 속에 두려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이오!”
여인은 이진풍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목청봉에게로 돌렸다.
이때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목청봉이 소리쳤다.
“너희 둘은 어서 여길 빠져나가거라!”
목청봉은 눈앞의 여인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본체로 온다 해도 마찬가지이리라.
이제야 그는 엽현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깨달았다.
이런 강자가 뒤에 버티고 있으니 죽으려 해도 죽을 수가 없는 것이다!
목청진의 말에 강기와 이진풍이 황급히 돌아섰다. 그들이 막 떠나려는 순간, 이진풍의 몸이 마치 고목처럼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무거운 표정으로 서 있던 이진풍이 목청봉을 향해 돌아섰다.
“사형, 이쯤에서 헤어져야 할 것 같소. 보중하시오!”
목청봉이 채 말릴 틈도 없이 한 자루 검이 이진풍의 머리부터 수직으로 관통했다.
제검(祭劍)!
그는 알고 있었다. 이대로 끝이라는 것을.
기왕 이렇게 죽을 바에야 여인이 도대체 얼마나 강한지 한 번 확인 해 보고 싶었다.
이진풍이 발끝을 튕기자, 그의 몸이 한 줄기 검광으로 변해 날아갔다.
그의 검이 스치고 지나가는 공간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 검에 내 모든 것을 담는다!”
여인은 맹렬한 기세로 날아오는 이진풍을 바라보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평온한 얼굴로 자리에 서 있을 뿐.
이진풍과 여인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져 갔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몸에서 생기가 빠져나가는 속도도 빨라지더니, 결국 검광과 검의가 완전히 소멸되고 말았다.
그렇게 현기도 생기도 고갈 돼 버린 이진풍은 여인에게서 반 장을 남기고서 무릎을 꿇었다.
간신히 고개를 든 이진풍이 흐리멍덩한 눈으로 여인을 올려 보았다.
“내가… 이렇게나 약했던가?”
검종 최강자 중의 한 명인 이진풍이 이렇게 허망하게 패배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심지어 상대는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여인은 그를 지나쳐 목청봉에게로 향했고, 뒤에 남겨진 이진풍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진풍의 죽음을 확인한 목청봉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여인을 노려보았다.
“그대가 누구이든 간에 우리 검종은 이 원한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검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