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05
805화 세상에 좀 친절해졌으면…
엽현은 할 말을 잃었다.
신경 쓰지 말라고?
괴물 같은 자들이 몸 안에서 살고 있는데 어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자, 더 이상 낭비할 시간 없다. 따라서 오너라.”
여인은 엽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마디 툭 던지고서 탑을 빠져나갔다.
엽현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탑 밖으로 나온 여인은 대전 앞에 서 있는 조각상들을 잠시 응시하더니 어디론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수련할 만한 곳으로 간다.”
“무슨 수련 말입니까?”
“가 보면 안다. 그리고 이제 좀 조용히 하거라.”
“…….”
잠시 말이 없던 엽현이 재차 질문했다.
“그런데 대전에 서 있는 저 조각상들은 얼마나 강합니까?”
“너보다는 강하겠지.”
“그럼 천녀 누님보다도 강합…….”
엽현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의 몸의 생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잘못했습니다! 조용히 하고 가겠습니다! 제발 이것 좀 어떻게…….”
생기가 빠져나가자 순식간에 쭈글쭈글 변해버린 엽현.
이때 여인이 그를 쳐다보자 그의 몸이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이에 엽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예전에 그는 여인을 두고 그렇게까지 강하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이는 강한 것을 넘어서 거의 두려울 수준이었다.
두려움!
이것 말고는 그녀를 형용할 단어가 없었다. 조금 전 생기가 빠져나갈 때 엽현은 분명 두려움을 느꼈다.
어떤 검기나 검의로도 이 여인에게는 대항할 수 없다는 그런 두려움.
엽현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다시는 입을 놀리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렇게 한동안 조용히 이동하던 두 사람.
얼마 후 엽현이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조금 전의 그 법칙, 어찌하여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까?”
여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막을 수 없는 게 아니라, 네 검이 아직 부족한 것뿐이다.”
“그럼 대체 어느 정도의 실력이 돼야 대항할 수 있습니까?”
“그 소복의 여인 정도면 충분하겠지.”
“……저와 그녀 사이의 실력 차가 그리도 큰 것입니까?”
엽현의 물음에 여인이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 굳이 네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
그 뒤로 엽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천녀와 자신과의 격차는 누가 말 해 주지 않아도 명확한 것이기 때문이다.
천녀를 떠올리니 엽현은 또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면 바로 그녀가 아닐까?
이때 여인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네가 너만의 검도를 계속 발전시켜 나간다면 혹시 먼 훗날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으로써는 단 두 명만 그리할 수 있다.”
“탑에 있는 다른 두 검의 주인 말입니까?”
“알고 있구나.”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고민하던 엽현이 물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오면서 많은 강자들이 저를 알아보고 도와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들을 만난 기억이 없으니…….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혹시 아십니까?”
이는 줄곧 엽현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의혹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 때마다 그는 점점 자신의 신분이 비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건… 네 신분이 다소 특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너는 커다란 인과를 짊어지고 있다.”
“그 인과란 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건… 나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엽현이 무어라 더 말하려 하자 여인이 그의 말을 끊었다.
“인생과 운명은 언제나 무상하기 마련이니, 너는 그런 것에 휘둘리지 말고 제 길을 가면 될 뿐이다. 알겠느냐?”
엽현이 여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인생은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는 그저 평정심을 유지한 채 묵묵히 할 일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어쨌든 너는 무얼 선택하고 말고 할 힘이 없다. 그러니 그저 운명을 받아들이거라.”
“…….”
그렇게 두 사람은 어두운 성공 속을 끊임없이 걸어 나갔다.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한 번 더 물었다가 이번에는 뼈만 남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 *
검종.
검종은 검허계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어찌 보면 사유계에 속한다고 보기도 어려웠고, 그렇다고 완전히 오유계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둘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양계천보다는 오유계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검종이 이곳에 위치하기까지 역대 많은 검수들의 희생이 있었다.
각 대(代)의 강자들이 끊임없이 오유계에 도전했고, 비록 아무도 성공한 자는 없었지만, 지금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평화로운 오후, 검허계 상공 위에 목청봉의 분신이 나타났다. 잠시 후, 검허계 전체에서 검명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십여 개의 검광이 빠르게 그를 향해 다가왔다.
잠시 후.
외딴 섬처럼 공중에 불쑥 튀어나와 있는 땅 위에 커다란 전각 하나가 지어져 있다. 이것이 바로 검종의 검종전으로 그 앞에 커다란 조각상 하나가 우뚝 솟아 있었다. 이 조각상은 청색 장삼을 입은 남자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평온한 얼굴로 정면을 주시하는 남자의 어깨 위에는 하얀 털의 아이가 앉아 있었다.
검종의 조사!
청삼남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이곳에 있던 것이 너무나 오래전이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그의 실력이 어떠한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검종의 검수들은 자신들의 조사에 대해 큰 감흥이 없었다.
검종전 안.
상석에 앉아 있는 목청봉. 그리고 그 아래쪽에 십이 인의 검수들이 자리하고 있다. 검종을 움직이는 실세들이었다.
“진풍이 죽었다.”
목청봉의 한 마디에 무인들의 얼굴이 검게 물들었다.
목청봉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원한을 갚아야 한다.”
아래쪽의 한 늙은 검수가 검을 번쩍 들었다.
“당연히 복수해야 합니다!”
“너희들은 하고 있는 일던 일을 중단하고 내 명령을 기다려라.”
이 말과 함께 목청봉이 사라졌다.
대전 안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였다.
검종에서 손꼽히는 강자인 이진풍.
그런 이진풍이 죽었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가 만만하지 않다는 뜻이 아닌가.
한편, 대전을 빠져나온 목청봉은 검종 뒤에 있는 산에 올랐다. 산꼭대기에는 돌로 지어진 작은 석실이 있었다.
석실 앞에 도착한 목청봉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잠시 후, 석실 밖으로 누군가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날 내가 너희 사형제에게 한 말을 기억하느냐?”
목청봉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사부께선 사람 위에 사람,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 하셨습니다.”
“그래, 그 말을 새기고 살았더냐?”
“…….”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자만이다. 자만은 눈을 가리고, 결국엔 길을 잃게 만들지.”
이때 석실 문이 열리며 노인 하나가 걸어 나왔다.
새하얀 머리에 검은 장포를 입은 노인은 손에 나무를 깎아 만든 검을 쥐고 있었다.
노인을 본 순간, 목청봉이 깜짝 놀라 물었다.
“사부… 드디어 범검에 도달하신 것입니까?”
“범검?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하지만 제가 보기에 사부께선 이미…….”
“아직 입구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고개를 흔들며 하늘을 바라보는 노인. 그의 눈 속엔 막연한 감정이 실려 있었다.
“진풍은… 순식간이었느냐?”
“…그렇습니다.”
“그래, 내가 한 번 다녀오마.”
그 말과 함께 노인은 한 줄기 검광으로 변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목청봉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의 사부는 자신을 보고도 일어나라고 하지 않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부는 화가 난 것이 틀림없었다.
이에 대해 목청봉은 할 말이 없었다. 이진풍의 죽음은 확실히 자신의 책임이 컸기 때문이다.
만약 처음부터 자만하지 않고 본체를 보냈더라면, 충분히 이진풍을 구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만한 그는 고작 분신 하나만을 보냈고, 그렇게 하나뿐인 사제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참을 침묵하던 목청봉이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엽현…….”
* * *
양계천.
이진풍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진시일은 곧장 진노인을 찾아갔다.
“진노인! 엽현의 배후가 드디어 출수했습니다!”
“이미 알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며 진시일을 반기는 진노인.
“검종이 이번에 입은 피해는 단시간에 복구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 이진풍을 제거하다니, 엽현의 배후는 과연 두려울 정도로구나.”
그 말에 진시일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이진풍 정도 되는 강자는 웬만해선 잘 죽지 않는다.
즉, 상대는 이진풍을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찍어 눌렀다는 말이었다.
엽현.
“만약 엽현에게 적대적으로 대했더라면 당하는 것은 우리 쪽이었을 것입니다.”
“네 말이 맞다. 계속해서 엽현을 잘 살펴보거라. 그리고 검종의 동태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말거라.”
진시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떠났다.
구름 위, 홀로 남은 진노인이 무거운 숨을 내뱉었다.
“사유계의 하늘이 정말로 바뀌려는가…….”
현재 검종과 양계천은 사유계에서 가장 강한 세력들이라 할 수 있었다. 생명 금구도 빼놓을 순 없지만, 그들은 예전의 검종처럼 바깥일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 영원할 것만 같던 힘의 구도가 깨지려 한다는 것을 진노인은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진노인은 어디론가로 향했다.
검종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려면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 * *
한편, 양계천에서 지극히 멀리 떨어진 어느 우주.
여인과 엽현은 여전히 어둠 속을 뚫고 전진하고 있었다. 엽현은 이미 자신이 어디쯤에 와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저… 혹시 그때 사용하셨던 도칙, 저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엽현이 묻자 여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보단 검에 정진하거라. 네 검도가 일정 수준에 오르면 나의 도칙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엽현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입니까?”
“옛 친구가 살고 있는 곳. 네 운을 시험하러 가는 것이다.”
옛 친구!
“그분은 강합니까?”
“물론이다.”
엽현이 무언가 더 물으려 할 때 여인이 돌연 걸음을 멈췄다. 엽현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망망한 우주 공간만 있을 뿐, 달리 보이는 것이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꼬리가 붙었다.”
추격자!
엽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검종입니까?”
“그런 듯하구나.”
그 말에 엽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때 여인이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자 엽현이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나중에 그녀를 만나게 되면… 이 세상을 좀 더 친절하게 대하라고 권해 보거라.”
“천녀……. 그분이 무슨 나쁜 짓을 하기라도 했습니까?”
“나쁜 짓? 하긴, 그녀 입장에선 벌레 몇 마리 죽인 것뿐인데 죄책감이 들 이유는 없겠지.”
이 순간 여인의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하얀 소복을 휘날리며 구름 위에서 세상을 내려 보고 있던 그 여인.
멸도(滅道).
이 경지를 발명한 것도, 실행에 옮긴 것도 그녀가 처음이었다.
중생을 멸하고 도(道)를 구한다.
이것이 소위 멸도경이라 하는 것의 요체.
이는 수련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도를 숭상할 때, 그녀는 도에서 벗어났고, 결국 도를 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