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10
810화 다시 생각해 보거라!
주황이 고민에 빠져 있는 이때, 검목이 돌연 엽현을 향해 검을 날렸다.
검에 깃든 검광이 마치 뇌전처럼 들이닥쳤다.
하지만 이때, 엽현의 신형이 증발하듯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백 장 밖의 하늘이었다.
엽현이 어리둥절해 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한 중년인이 천천히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회색 장포를 입고서 커다란 부채를 손에 든 중년인의 모습은 멋스럽고도 점잖게 보였다.
조금 전 엽현을 도와준 이는 바로 이 남자였던 것이다.
“희황(羲皇)!”
중년인을 알아본 검목이 어두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희황은 검목을 무시한 채, 엽현에게 먼저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아이야, 주황이 원하지 않으니, 대신 내가 널 지켜주마. 대신 딱 한 달 뿐이다.”
“한 달 반!”
“하하하! 제법 처세를 아는 녀석이로구나. 좋다!”
이때 검목이 소리쳤다.
“희황, 한 수 겨루겠소?”
“좋소! 그렇지 않아도 손을 놓은 지 오래되어 근질근질하던 참이었소!”
그 말과 동시에 두 사람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엽현이 고개를 들자, 구름 위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녀석아, 그녀가 정말로 오유계 사람인 게 확실하느냐?”
엽현이 주황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내가 그녀를 만나 볼 수 있겠느냐?”
만난다고?
엽현이 게슴츠레 눈을 뜨고 희황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는 발을 빼는 듯하다가 희황이 등장으로 상황이 유리해지자 태도를 바꾸는 것이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주황이 막 무어라 말하려 할 때, 희황과 검목이 다시 장내에 나타났다.
“하하, 그럼 이 아이는 내가 한 달 반 동안 지킬 것이니 그리 알고 돌아가시오!”
이 말과 함께 의황은 엽현을 데리고 순식간에 장내를 빠져나갔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는 검목의 안색이 매우 어두워졌다.
패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희황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도 없었다.
희황을 죽일 수 없다면 엽현을 치는 일도 요원해져 버린 것이다.
한편, 주황 역시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던 것이 아닌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살다 보면 이따금씩 과감한 결정이 필요한 날이 온다. 실패하면 머리가 깨져 버리겠지만, 그만큼 성공할 때의 보상은 예측할 수도 없다.
특히 무의 끝에 막혀 버린 자들에게 이런 기회는 천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일지도 몰랐다.
여기에 생각이 미친 주황은 눈 깜짝할 사이에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검목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만약 엽현에게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을 주게 되면 어떤 변수가 만들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이대로 기다릴 수는 없었다.
검목은 차가운 눈빛을 흘리며 자리를 떠났다.
* * *
이 시각, 어느 구름 속.
희황과 엽현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신물이 네 몸에 있느냐?”
“그건…….”
“말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알고 있으니까.”
이 말과 동시에 강대한 기운이 엽현의 전신을 휘감았다. 다음 순간, 희황의 영혼이 순간적으로 엽현의 미간 사이로 쑥 들어갔다.
내 몸을 뺏으려는 건가?
하지만 엽현은 이내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아차렸다.
그의 몸 안에 들어온 희황의 영혼은 조용히 계옥탑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탑 앞에 도달한 순간 순식간에 튕겨 나가 버렸다.
다시 원래 몸으로 복귀한 희황.
엽현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매우 무겁다.
“이것이 오유계의…….”
“그렇습니다.”
희황이 멋쩍은 미소를 보였다.
“실례했군. 악의가 있던 건 아니다. 다만 네가 순순히 인정할 것 같지 않아 이런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
“세상을 속여 먹으려 하다니, 너도 보통 놈은 아니구나. 우선 장소를 옮겨서 얘기를 계속하자꾸나.”
말을 마친 희황이 엽현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어느 깊은 숲속에 이른 두 사람.
그들이 도착한 곳은 어느 오두막이었는데, 크진 않지만 정교하게 지어진 것이 인상적이었다.
엽현을 집 안으로 들인 희황은 먼저 차부터 대접했다.
“들거라. 입에 맞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오유계의 신물을 가지고 여길 올 생각을 하다니, 생각보다 더 대담한 녀석이로구나.”
“후…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화약을 지고서 불 속에 뛰어들고 싶은 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세상은 그를 이런 극단까지 몰아넣어 버렸다.
“너는 아마 모를 것이다. 그 물건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희황이 다소 촉촉해진 눈으로 창가를 바라보았다.
“나 역시 처음 이곳에 왔을 땐 금세 오유계로 갈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몇 차례 시도 후에 완전히 절망에 빠져버렸지.”
“그렇게나 어렵습니까?”
“어렵냐고?”
희황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거의 불가능하다. 오유계로 가까이 갈수록 한 걸음 떼는 것도 힘들 정도지.”
희황이 다시 엽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 네 신물은 우리에게 있어 어둠 속의 한 줄기 등대와도 같은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무인들은 여전히 네 배후가 두려운 탓에 함부로 나서진 않고 있지만.”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물어보거라.”
“어째서 그렇게나 오유계로 가길 원하는 것입니까? 여러 대답을 들어 보았지만, 어느 하나 가려운 등을 긁어주진 못했습니다.”
희황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녀석아 네가 어찌 절벽 끝에 매달린 우리 심정을 이해하겠느냐? 우리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선 결코 불가능할 것이다. 더 나아가지 못하면 흙으로 돌아갈 우리의 마음을 알 수 있겠느냐?”
그 말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연천, 잠시 나와 봐.”
잠시 후, 엽현의 부름에 연천이 방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를 보자 희황의 다소 놀란 눈치로 엽현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탑을 수호하는 도칙입니다. 오유계에서 왔지요.”
“그런…….”
“연천, 네가 직접 오유계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을까?”
엽현의 말에 연천이 희황을 돌아보았다.
“너는 공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흐음… 공간이란 우리가 살아있는 세계에 일정한 방식으로 구성된…….”
“집어치워라! 그런 대답은 세 살짜리 아이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공간은 물질이 존재하는 특정한 장소로, 길이와 너비 그리고 높이로 표현된다. 엄밀히 말해 너희의 세계는 삼차원이라 명명해야겠지만, 일정 수준에 이른 강자들은 능히 공간에 변형을 줄 수 있기에 사유(四維)라 부르는 것이다. 다만…….”
“다만?”
“너희 사유계 사람들은 공간에 대한 이유가 너무 편협하다. 예를 들어 너만 한 강자도 공간이 어떤 물질로 구성됐다는 건 알지만, 그 물질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있지 않느냐?”
희황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까진 내가 알지 못하오.”
“너희가 알고 있는 것은 세상의 일부분, 그것도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표정이 어두워진 희황이 돌연 질문을 던졌다.
“연천 소저, 만약 내가 지금 이대로 오유계에 떨어진다면 어느 정도나 될 수 있겠소?”
연천이 희황을 살펴본 후 고개를 저었다.
“네 실력은 오유계의 무인들과 비교해 아주 약하다곤 볼 수 없다. 다만 오유계에 도달할 수 없을뿐더러, 설령 도착한다 해도 단숨에 죽고 말 것이다.”
“어째서 말이오?”
희황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엽현도 궁금한 얼굴로 연천을 바라보았다.
“첫째, 두 우주 사이에는 주인이 설치해 놓은 금제가 걸려 있다. 네 실력으로는 결코 금제를 넘어서지 못할뿐더러, 설령 통과한다 해도 육신은 반드시 소멸할 것이다. 둘째, 너희를 반길 리 없는 오유계 무인들로부터 협공을 받을 것이다. 주인이 금제를 설치한 이유는 야심만만한 오유계 무인들로부터 사유계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이 금제가 풀리게 되면 사유계는 지옥으로 변하게 되겠지. 지금 이 순간도 오유계 무인들은 금제를 풀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금제는 우리 사유계 무인들의 한계 역시 제한하고 있지 않소?”
이 말에 연천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간단히 생각할 게 아니다. 너희는 몰라도 사유계의 다른 생령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냐? 그들이 오유계를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하긴, 너희들은 이미 그들이 어찌 되든 상관없겠지만.”
그 말에 희황이 말없이 웃었다.
“물론 너희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무인이 더 강해질 수 없다는 건 시한부 선고나 마찬가지일 테니.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사유계에서 극한에 도달한다면 오유계로 갈 필요가 없을뿐더러, 두 우주를 넘나드는 것도 매우 쉬운 일이 된다.”
순간 희황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유계 극한? 그대가 말하는 극한은 도대체 어느 정도요?”
“혹시 이미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고 여기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야… 극한은 아니더라도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아니, 너희는 아직 한참 멀었다!”
“…….”
“못 믿겠다는 건가?”
“그대라면 믿을 수 있겠소?”
희황이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 연천이 엽현을 향해 말했다.
“이 못난 자에게 탑의 검을 보여 주거라.”
탑의 검!
엽현이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 결국 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천녀의 검이었다.
쿵-!
검을 본 순간, 희황이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와는 상관없이 희황은 불신 가득한 얼굴로 천녀의 검을 바라보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버, 범검… 정말로 범검이란 말인가!”
희황이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검은 누구의 것이냐?”
“내… 사부의 검입니다.”
사부!
눈동자가 휘둥그레진 희황.
그는 이내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어쩐지… 어쩐지…….”
엽현은 희황의 상태를 보고서 양계천에서도 범경에 이른 자가 매우 희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의 삶에서 처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범검의 검수는 양계천에서도 본 적이 없다……. 천하의 검종도 단 한 명의 범경 검수를 배출해내지 못했다. 그저 전설에나 존재하는 줄로 알았건만 정말로 실재할 줄이야…….”
복잡한 표정으로 엽현을 바라보는 희황.
“알았다. 이제 알겠다. 네가 어찌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범검의 사부.
여기에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희황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검종 멍청한 놈들……. 실로 우둔한지고…….”
이때 희황이 불현듯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럼 네 사부는 오유계에 들어갈 수 있느냐? 내 말은, 신물에 의지하지 않고 말이다!”
“가능하다.”
엽현 대신 대답하는 연천.
이에 희황이 연천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내가 말하지 않느냐, 사유계 극한에 달한 자는 오유계에서도 강한 존재라고. 그러니 너희는 이 탑에 희망을 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탑을 이용해 오유계로 간다면 강해지기는커녕, 탑을 노리는 오유계 강자들에게 살해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제 내 말을 이해하겠느냐?”
“…이제 알겠소.”
희황이 고개를 끄덕이자, 연천이 방 한 켠으로 물러났다.
잠시 후,
“아이야, 괜찮으면 그 공간도칙을 나에게 잠시 빌려줄 수 있겠느냐? 직접 한 번 연구 해 보고 싶구나.”
“물론입니다!”
엽현이 웃으며 손가락을 튕기자, 공간도칙이 희황 앞으로 날아갔다.
“고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