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12
812화 부끄럽지도 않소!
현황대세계!
엽현은 검목이 현황대세계에 출현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는 분명 자신의 지인들을 인질 삼아 자신을 위협하려 함이 아닌가!
당장 가야 해!
엽현이 눈에 붉을 켜고 떠나려 할 때, 희황에 그의 앞을 막아섰다.
“진정하거라. 지금 가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다.”
“…….”
“정말 모르겠느냐? 이건 널 잡기 위한 함정이다!”
“현황대세계에… 누이와 친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설령 함정이라 할지라도…….”
희황이 무어라 말릴 새도 없이 엽현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그러나 이때, 한쪽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난 기운이 엽현의 이동을 저지했다. 이에 엽현이 출수하려는 찰라, 어느새 나타난 희황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경고망동 하지 말거라. 죽장노인(竹杖老人)이다.”
죽장노인?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울 때, 희황이 아무도 없는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죽장노인, 그대도 이 진흙탕에 발을 담그려는 게요?”
“그렇지 않다. 내가 움직인 것은 검목에 대한 인정(人情) 때문이다.”
“후후, 한낱 인정 때문에 목숨을 걸다니, 어리석구려!”
희황이 엽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는 내가 막을 테니, 어서 가거라!”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희황에게 포권을 취한 엽현은 황급히 검광으로 변해 날아갔다.
이때, 희황이 손을 들어 엽현을 가리키자, 하얀빛 덩이 하나가 엽현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전에 빌렸던 공간도칙이었다.
엽현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희황은 죽장노인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보아하니 검목이 이번에 사활을 걸었나 보구려.”
“네가 검종 종주라면 놈을 살려둘 수 있겠나?”
“근래 들어 검종의 활동이 잦은 듯하오. 그대는 걱정되지도 않소?”
“흥! 실력이 있으니 그만큼 세를 넓힐 생각이 있는 게지.”
희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들의 실력은 예전보다 더 강해졌소.”
아무리 양계천에 많은 강자들이 있다지만, 그들을 다 합친다 해도 검종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그들의 저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아는 이도 정확히 없었다.
즉, 지금 그들이 상대하는 검종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죽장노인, 기왕 먼 걸음 하셨으니 딱히 대접할 것은 없고……. 오랜만에 손이나 섞어 봅시다. 그동안 얼마나 성취를 보았는지 궁금하던 차였소. 하하하!”
웃음소리와 함께 희황의 모습이 하얀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곧 우주와 맞닿은 하늘에서 무형의 기운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이는 양계천의 지면을 뒤흔들었다.
한편, 이 시각 최대 속도로 어둠을 뚫고 나가는 검광.
어검에 몸을 실은 채 북경으로 향하는 엽현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어두웠다.
* * *
양계천 하늘에 검광이 번뜩일 때, 이를 지켜보는 여인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원소도였다.
사실 그녀는 검목이 현황대세계에 나타난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이런 결과는 너무나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엽현에게 긴 시간을 줄 수 없는 검종이 할 수 있는 일은 북경을 불모 삼아 엽현을 끌어내는 것뿐이었다.
‘검종이 끝장을 보려 하는군…….’
엽현의 배후가 매우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 해도 명실상부 사유계 최강이라 불리는 검종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게다가 검종은 아직 비장의 무기들을 꺼내지도 않은 상태였다.
점입가경.
엽현과 검종 간의 대결은 어느새 돌이킬 수 없을 지경에 까지 이르고야 말았다.
결과야 어떻든 간에 양측 모두 큰 손실을 피할 수 없을 터!
이때 하늘을 응시하고 있던 원소도가 어디론가로 몸을 날렸다.
* * *
현황대세계, 북경.
북경 상공에는 불청객 하나가 찾아와 있었다.
다름 아닌 검목.
검목은 표정 없는 얼굴로 북경을 내려다보며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상황이 여기까지 흐른 이상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그의 머릿속에 하루빨리 엽현과의 소모전을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바로 이때, 검목의 정면에 교천아와 관군이 나타났다.
검목을 앞에 둔 두 사람의 안색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본능적으로 자신들의 상대가 아님을 느꼈던 것이다.
검목은 두 사람을 본 척도 하지 않고 지면을 향해 소리쳤다.
“엽령, 안란수, 막사, 소칠, 강구, 상관선아……. 엽현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자는 모두 이리로 나오거라. 두 번은 말하지 않는다.”
바로 이때, 지면으로부터 한 줄기 검광이 빠른 속도로 솟구쳤다.
이에 검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가볍게 손을 떨쳤다.
쾅-!
날아오던 검광은 검목 근처에도 닿지 못하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때, 한 여인이 검목 앞에 나타났다.
소칠!
소칠의 뒤를 이어, 안란수, 막사, 연만리 등 북경을 대표하는 무인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던 검목의 눈에 이채로움이 번뜩였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한 재능들이로군.”
담담한 어투였지만 검목은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젊은 무인들은 당장 검종에 가져다 놓아도 충분히 경쟁력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북경같이 작은 땅에 이런 고수들이 숨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대가 온 이유는 엽현 때문이오?”
소칠이 묻자 검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를 상대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대신 우리를 노리려는 것이겠군?”
“잘 아는구나.”
“하하하! 그대 같은 자도 검수라 할 수 있소? 강자의 자존심은 도대체 어따 팔아먹은 것이오?”
“강자의 자존심?”
검목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계집, 제법 용을 쓴다만 부질없는 짓이다. 우리 검종은 이미 엽현과 불구지천의 원수가 되었는데 자존심이 무슨 말이더냐? 그 말은 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흠… 그렇군.”
소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순간, 그녀의 검이 기습적으로 허공을 갈랐다.
전광석화처럼 날아간 검광이 순식간에 검목의 앞에 도달했다.
이에 검목이 손가락을 튕기자, 검광은 눈 녹은 듯 사라졌다.
하지만 이때, 불쑥 나타난 소칠이 검목의 목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이 일격은 힘, 속도, 시기, 그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한 검이라 할 만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녀의 상대가 사유계 최정상급 검수라는 사실이었다.
검이 채 닿기도 전, 소칠의 신형이 뒤로 튕겨 나갔다. 바로 이때, 검목의 측면에서 창 한 자루가 벼락처럼 날아들었다.
이에 검목이 보지도 않고 손바닥을 펼쳤다.
쾅-!
순식간에 날아든 검광이 창을 강타하자, 안란수가 창을 쥔 채로 멀리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안란수는 몸이 젖혀진 상태에서 용케도 주먹을 뻗어냈다.
콰쾅-!
공간을 가루로 만들며 날아드는 흉흉한 일권에 검목도 뒤로 몇 걸음 밀려나고 말았다. 그러나 이때, 한 줄기 검광이 어느 틈에 안란수의 미간으로 날아왔다. 황급히 허리를 젖혀 검광을 피해 낸 안란수.
하지만 검광은 하나가 아니었다.
안란수가 황급히 몸을 비틀어 보았지만.
서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안란수의 왼팔이 피를 뿜으며 잘려나갔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타격을 입고 성벽 아래로 고꾸라진 안란수의 팔과 두 다리에 세 개의 검광이 날아와 박혔다.
“크흡!”
순식간에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 된 안란수.
바로 이때, 소칠이 검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출수하는 것보다 더 빨리 검광 하나가 날아들었다.
이에 소칠이 이를 악물고 검을 내리쳤다.
“구패(求敗)!”
쉭-!
소칠의 검에서 반달 모양의 검광이 쏟아졌다.
쾅-!
순식간에 뒤로 미끄러지듯 밀려난 소칠. 그녀가 채 멈춰 서기도 전, 또 다른 검광이 요혈을 향해 날아들었다.
입술을 잘근 씹으며 검을 뻗어내는 소칠.
“파건곤(破乾坤)!”
순간 순백의 검망이 검 끝을 통해 방출됐다.
쾅-!
하얀 검망이 흩어지며 소칠이 재차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숨 돌릴 틈도 없이 검목의 검광이 계속해서 날아왔다.
이에 소칠은 어쩔 수 없이 검을 세우고 수비할 수밖에 없었다.
쾅-!
천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소칠이 성벽까지 튕겨 나갔다. 그리고 그녀가 막 반응하기도 전, 네 줄기 검광이 그녀의 양손과 발을 꿰뚫어 성벽에 고정시켰다. 이와 동시에 강대한 검의가 그녀의 전신을 덮으니, 순식간에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장면을 지켜본 교천아와 관군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검목의 실력은 그들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경지, 실력, 전투력까지 모든 것이 압도적이었다!
이때 검목을 응시하고 있던 막사의 기운이 순식간에 불어나더니, 그의 등 뒤로 희미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목은 노인의 허영을 바라보며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선조의 혼이 아니라 본체가 강림한다 해도 노부의 상대가 될 순 없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목이 검을 휘둘렀다. 순간 한 줄기 검광이 눈으로는 도무지 쫓을 수 없는 속도로 날아가 허영을 강타했다.
허영이 허무하게 흩어진 이때, 어느새 검목 앞에 나타난 막사가 통렬한 쌍장을 뻗어냈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검목의 검이 번뜩였다.
서걱-!
두 손을 잃은 채 뒤로 튕겨 나간 막사.
이내 그의 육신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성벽에 내걸리고 말았다.
완패였다.
누구 하나 검목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의 실력은 사유계 내에서 몇몇을 제외하면 무적이나 다름없던 것이다.
순간 쥐 죽은 듯 고요해진 북경.
이때 아래쪽을 훑어보던 검목이 소리쳤다.
“엽령! 나오거라!”
정보에 의하면 엽현이 가장 아끼는 것은 친동생인 엽령.
그렇다면 엽령을 사로잡는 것이 이번 일의 성패를 가르리라.
검목의 음성이 울려 퍼지고 잠시 후, 엽령이 성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바로 이때 교천아가 엽령 앞에 나타났다.
그녀가 막 무어라 하려는 순간 엽령이 고개를 저었다.
“언니, 전 괜찮아요.”
“령아, 엉뚱한 짓 할 생각은 말거라.”
“헤헤, 물론이지요.”
해맑게 대답한 엽령이 고개를 들어 공중의 검목을 바라보았다.
“자, 내가 여기 왔으니, 마음대로 해 보세요. 나를 인질 삼아서 오빠를 협박하면 되겠네요.”
이 말을 들은 순간, 검목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엽령의 한 마디에 심경이 흔들렸던 것이다.
“요망한 계집… 고작 이 정도로 노부의 심경을 깨뜨릴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음성과 동시에 한 줄기 검광이 성 중앙을 가로질러 떨어졌다.
검광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엽령이었다!
확실히 엽령의 한 마디는 효과적이었다.
검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두 말할 것 없이 검수의 마음을 대변하는 검심(劍心)이다.
검목이 지금까지 순탄한 길을 걸을 수 있던 까닭은 검심이 안정된 탓이었다. 그런 그가 가장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즉, 자신의 행위가 본심에 반하는 행위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순간 검심이 깨져 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엽현은 금세 검종의 크나큰 위협으로 성장하고 만다. 게다가 오유계의 신물 또한 포기할 수 없다.
계옥탑은 그들에게 있어서 희망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엽령의 한 마디는 검목을 수치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작은 소녀를 인질로 삼아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탐욕.
이 탐욕을 들킨 것은 분명 부끄러움을 느낄만한 일이었다.
특히나 그와 같은 자존심 강하고 고고한 검수라면 말이다.
어떤 이유도 변명이 될 수 없기에 엽령의 한 마디는 더욱더 그의 검심을 흔들어 놓았다.
때문에 엽령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