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15
815화 살육의 시작
검종 무인들이 아직 상황 파악을 끝내기도 전, 엽현의 신형이 사라졌다.
쉭-!
한 줄기 붉은 혈광이 공간을 집어삼키며 장내에 번뜩였다. 이와 동시에 짙은 살의가 검종 전체에 미친 듯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초점 없는 붉은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엽현의 모습은 마치 살신(殺神)의 현신인 것만 같았다.
한편 목청봉은 이때가 돼서야 검목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엽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정말이지 공포 그 자체였던 것이다.
바로 이때, 목청봉이 소리쳤다.
“칠검(七劍)!”
음성이 떨어짐과 함께, 일곱 줄기의 검광이 목청봉 뒤편에서 나타났다. 이 검광들은 순식간에 서로 교차하더니, 작은 검진이 되어 엽현의 주변을 에워쌌다.
칠검.
이는 검종의 일곱 장로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최소 파명경 강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주로 검진을 연구하며 살아가는 자들로, 그들이 만들어 낸 검진은 구도경 강자라도 손쉽게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엽현의 기운에 두려움을 느낀 목청봉은 주저하지 않고 일곱 장로들의 비기를 꺼내게 한 것이었다.
검진이 형성된 순간, 엽현 주변의 공간이 날카롭게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한 번 소멸된 공간은 영원히 제 모습을 되찾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검진 안에 갇힌 엽현에게로 향했다.
과연 그는 이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다음 장면은 너무나 허무하고도 충격적이었다.
엽현은 스스로 검진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하지만 검진을 뚫고 나올 때까지 그의 몸엔 아무런 상해도 가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검진이 엽현의 몸으로 순식간에 흡수되고 말았다.
이럴 수가!
강하게 쥔 목청봉의 주먹이 부르르 떨려왔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검진을 흡수한다고?
그것도 이렇게 쉽게?
당황한 것은 검진을 만들어 낸 장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검진이었것만, 이렇게 쉽게 파훼 당한 것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이때, 엽현의 모습이 다시 한번 사라졌다. 순간 안색이 하얗게 변한 장로들의 귀에 목청봉의 날카로운 외침이 날아와 꽂혔다.
“조심하시오!”
황급히 검을 빼 든 장로들이 제각기 검을 휘둘렀다. 순간 일곱 개의 검광이 여러 각도로 엽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검광을 보면서도 엽현은 결코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번 이변이 발생했다.
엽현을 뚫은 듯 보인 일곱 자루의 검이 순식간에 그의 몸 안으로 흡수 돼 버린 것이다.
순간 장로들은 머릿속이 하얗게 타올랐다.
검이… 사라졌다?
이때 목청봉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검이든 검기든, 엽현 몸에 닿는 것은 모두 흡수된다는 것을.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혹은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의혹은 둘째 치고, 계속 이렇게 흘러간다면 검종의 검수는 무엇으로 싸워야 한단 말인가!
이때, 일곱 장로 중 가장 앞에 있던 자가 다른 검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순간, 그의 손짓과 함께 날카로운 검광이 엽현의 미간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엽현은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가슴을 내밀었고, 검광은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그의 몸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모두가 멍하니 서 있는 이때, 조금 전 출수한 장로의 몸이 움찔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디선가 날아든 검광에 그의 목이 피를 뿜으며 잘려나갔다. 순식간에 육신을 잃은 장로는 영혼만이라도 탈출을 시도하고자 했다.
하지만 기이한 검 한 자루가 날아와서는 그의 영혼을 집어삼켜 버렸다.
진혼검!
장로는 그렇게 외마디 비명도 없이 완전히 소멸하고 말았다.
그렇게 한 명을 처리한 엽현은 지체함 없이 곧장 나머지 여섯 장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에 여섯 장로들은 눈앞의 엽현을 보고도 출수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공격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 출수할 수는 없던 것이다.
도저히 상대할 방법이 없다!
이때 목청봉이 결단을 내렸다.
“모두 물러나시오!”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 여섯 장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순식간에 장내를 빠져나갔다. 마치 큰 짐을 집어 던진 듯한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검종의 모든 제자들은 대전이 있는 계봉(界峰)으로 들어간다. 내 명이 있기 전에는 결코 출수해선 안 된다!”
목청봉의 명령에 사방에 있던 검수들이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졌다. 숫자가 아무리 많아야 의미가 없었다. 결국 공격이 먹히지 않으니 후퇴할 수밖에.
그렇게 모두가 떠나간 후, 홀로 남은 목청봉이 엽현을 마주했다. 목청봉이 주먹에 힘을 주자, 그의 손 안에 한 줄기 검광이 순식간에 응집됐다.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떼는 엽현을 바라보며 목청봉은 연신 마른 침을 삼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존경하는 사부의 육신을 파괴해 버린 엽현.
목청봉은 검목만큼 강하지 않았다. 즉, 엽현에게 살해당한다 해도 별 이상할 것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한 줌의 의심이 남아 있었다.
강자의 자존심일까. 그는 시험해 보고 싶었다.
눈앞의 괴물이 정말로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것인지를.
게다가 그에겐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누군가는 검목이 육신을 회복할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만 한다. 하지만 보통의 검수를 내보내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설 수 있는 것은 목청봉 자신뿐이었던 것이다.
이때 엽현이 아무런 말도 없이 한 줄기 검광으로 변해 날아왔다.
기다렸다는 듯 들고 있던 검을 날려 보낸 목청봉.
검은 아무 형체도 없이 마치 바람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이에 엽현은 조금 전처럼 몸으로 검을 받는 대신 천주검을 종으로 내리쳤다.
쾅-!
붉은 검광이 터져 나가면서, 엽현은 이날 처음으로 뒤로 밀려났다. 그가 수백 장 뒤에 멈춰 섰을 때,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양의 검기가 그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이에 엽현 역시 붉은 검광으로 응수했다.
팡팡팡팡…….
처음 엽현은 가까스로 검기를 쳐내는 듯했으나, 점점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그중 몇 개는 엽현의 몸을 관통하기도 했다. 비록 치명적이진 않았지만, 이는 분명한 타격이었다.
그렇게 힘겹게 검기를 막아내던 엽현은 결국 검허계 밖까지 밀려나고 말았다.
“하하하! 보아하니 내 검은 흡수할 수 없는 모양이로구나! 그것참 미안한 일…….”
그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 목청봉이 불현듯 위로 고개를 들었다.
순간, 갑작스런 먹구름이 하늘에 낌과 동시에 그의 이마 위에 붉은 글씨로 ‘囚(수)’라는 낙인이 새겨졌다.
불길한 기운을 느낀 목청봉이 황급히 자리를 떠나려 했다. 하지만 이때 또 다른 힘이 날아와 그의 몸을 옭아맸다.
검역!
목청봉이 움직일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그의 눈앞으로 한 자루 검이 날아들었다.
일검정혼(一劍無量)!
빠르게 날아드는 검을 앞에 두고 목청봉은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다. 그저 맞서 싸우는 수밖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목청봉이 괴성을 터트렸다.
순간, 수백 개의 검기들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 검기들은 이내 검역과 육도진언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엽현의 검뿐.
푸확-!
목청봉의 머리가 깔끔하게 허공에 솟구쳤다. 이때 엽현의 검이 재차 그의 머리를 꼬챙이 꿰듯 뚫어버렸다. 목청봉의 영혼은 도망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의 영혼을 뚫어버린 것은 다름 아닌 진혼검이기 때문이었다.
엽현은 잠시 억울한 표정으로 죽어버린 목청봉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은 곧 검종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적막감이 감도는 순간, 그의 입에서 슬픔이 섞인 괴성이 튀어 나왔다.
“으아아아아아악-!”
쾅-!
강렬한 폭발과 함께 검허계의 하늘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목청봉의 죽음.
검종의 모두는 충격에 휩싸였다.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유계 최강이라는 검종, 그 검종에서도 종주의 위치에 있는 목청봉이 젊은 검수에게 죽었다?
심지어 영혼도 남기지 못한 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는 현실이었다.
불신하던 자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검종 전체는 곧 공황상태에 빠졌다.
진혼검에 꽂혀 있는 목청봉의 머리 역시 눈을 부릅뜬 채 불신의 기색을 드러낸 채였다.
죽는 순간까지도 엽현에게 죽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초살!
언제 엽현이 이렇게나 강했단 말인가?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변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목청봉은 마지막 순간까지 의문을 해소하지 못하고 그렇게 죽어갔다.
잠시 후, 엽현은 한 줄기 검광으로 변해 공중으로 솟구쳤다.
피처럼 붉은 검광이 지나는 자리는 순식간에 허무로 변해갔다.
엽현의 주변에선 독기와 살의가 끊임없이 강해져, 이제는 말로 어찌 표현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때의 엽현은 마치 연옥에서 갓 나온 악마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이 모습을 본 검종의 무인들은 허둥지둥 대기 시작했다. 검수와는 상극의 체질을 지닌 엽현을 어떻게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바로 이때, 검전 안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라! 한 시진이면 족하다!”
한 시진!
검목의 음성이 떨어진 순간, 검전 앞의 대지가 좌우로 길게 갈라지더니, 검광 하나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빠르게 날아간 검광은 엽현을 멈춰 세우는 데 성공했다. 이윽고 검광이 흩어지자 노인 하나가 엽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장로가 출수하셨다!”
누군가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대장로 막리(莫離).
검종의 핵심 인사인 그는 파명경 절정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생을 검도에 심취한 탓에 검종 내부의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검종의 고위급 무인들조차 보기 힘든 그가 검종이 위기에 닥치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엽현을 마주 보고 선 막리.
그의 눈빛이 매우 무겁다.
목청봉이 살해당한 것은 그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자타공인, 그의 실력은 사유계 내에서도 정상급에 속하지 않던가.
그런 그가 아직 약관도 되지 않아 보이는 젊은이에게 참수됐다? 막리로서는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막리가 엽현을 향해 경계의 눈빛을 쏘아 보내고 있던 이때, 엽현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와 동시에 번뜩이는 붉은 검광.
일검무량(一劍無量)!
검역도, 육도진언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검기.
하지만 막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위력이었다.
막리 역시 날아드는 검을 피하는 대신 일권을 뻗어 응수했다.
푹-!
쾅-!
서로의 공격이 교차한 순간, 검광이 막리의 미간을 꿰뚫었다. 줄이 끊어진 연처럼 힘없이 날아가는 막리. 입에서 선혈을 쏟아내는 동시에 육신이 빠르게 갈라져 나갔다.
그가 검을 쓰지 않은 이유는 명확했다. 엽현을 상대로 검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엽현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선 검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고, 막리가 가진 것은 주먹이 전부였다.
비록 엽현에게 일격을 가하긴 했지만, 그 대가로 막리 자신은 목숨을 지불해야만 했다.
힘없이 날아간 막리가 간신히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빛은 후회와 회한으로 얼룩져 있었다. 이는 결코 엽현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일생을 검도에만 빠져 살다가 죽는 순간까지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 과거에 대한 후회였던 것이다.
그렇게 죽기 바로 직전에 와서야 막리는 자신이 잘못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바로 이때였다.
쾅-!
별안간, 막리의 체내로부터 쏟아져 나온 검의가 하늘을 뚫고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