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17
817화 부끄럽지도 않소?
잠시 고민에 빠진 아이.
잠시 후, 눈을 번뜩인 아이가 엽령의 복부에 한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가볍게 손에 힘을 주어 누르자 엽령의 몸이 다소 희미해지면서 체내에서는 신비한 기운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이에 하얀 아이가 만족한 얼굴로 코를 쓱 문지르더니, 재차 복압을 넣었다.
이때 미세하지만 엽령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를 본 하얀 아이는 조금 전 그랬던 것처럼 자색 기운을 조금 떼어 엽령의 코에 흘려 넣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자기가 빠르게 흡수되는 것이 아닌가!
신이 난 아이는 계속해서 자기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한편, 이때의 엽현은 이미 살인귀로 변해 있었다.
그가 지나간 곳은 낭자한 선혈뿐, 두 다리로 서 있는 자가 없었다.
상극!
검이 통하지 않는 엽현을 상대로 검수들은 무기력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바로 이때, 대전 안에서 다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두 번째 상자를 열어라!”
그러자 아래쪽에 있던 흑의인이 기다렸다는 듯 검결을 맺었다. 곧, 지면이 갈라지면서 그의 앞에 검은 상자 하나가 튀어 나왔다.
검종의 두 번째 패!
흑의인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멀리 하얀 아이를 바라보았다. 적을 해치우라고 불러냈건만, 오히려 엽현과 엽령을 돕고 있는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던 것이다.
이는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검종의 모든 검수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머뭇거릴 겨를이 없었다. 왜냐하면, 엽현이 무서운 기세로 밀고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검은 매우 빨랐을 뿐 아니라, 위력 또한 매우 강대했다.
엽현의 천주검은 현존 사유계에서 가장 예리한 검이니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혈맥을 개방한 채 천주검을 휘두르는 엽현은 이미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이때 흑의인이 검은 상자를 열었다. 순간 강대한 기운이 상자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 기운은 엽현마저 제 자리에 멈춰버리게 할 정도였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상자에서 검은빛이 새어 나오더니, 그 안에서 소녀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녀의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엉덩이에는 검은 꼬리가 달려 있었다.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소녀의 등장에 검종의 무인들은 다시금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강하다!
소녀가 내뿜는 기운은 그들이 측정하기 어려울 만큼 강대했던 것이다.
실제로 무인들은 이 기운이 등장한 후로 제 자리에서 밀려나고 있었고, 엽현의 악기와 살기 역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때 소녀가 잠에서 방금 깬 양, 기지개를 켜더니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순간,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너……”
채 말이 끝나기도 전, 엽현의 검이 소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소녀는 피하지도 막지도 않고, 제 자리에 서서 가만히 목을 내밀었다.
퍽-!
검으로 가격했다고 하기엔 너무나 둔탁한 소리.
순간 모두의 시선 속에 오히려 엽현이 튕겨 나갔다.
이를 보자 검종 무인들의 표정이 일제히 딱딱해졌다.
엽현의 검을 맞고도 아무 일이 없다고?
게다가 튕겨내기까지?
검수들은 소녀를 바라보며 불신의 눈빛을 보냈다. 알다시피 지금까지 엽현의 검을 견딘 무기는 전무하지 않았던가! 그런 검을 맨몸으로 막아내다니!
소녀는 뻐근한 듯 목 주위를 어루만지며 엽현의 검을 바라보았다.
“천주검…….”
이내 엽현을 향해 미간을 찌푸리는 소녀.
“왜 그따위 모습이 된 거야?”
엽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소녀를 향해 맹렬하게 검광을 뿌릴 뿐.
일검무량(一劍無量)!
엽현의 손에서 일검무량이 펼쳐지자 그 위력을 알고 있는 검종 무인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소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로 검을 들이받았다.
쾅-!
격돌이 발생한 순간, 두 사람이 있던 공간이 와르르 무너지며 강대한 기운이 태풍처럼 장내에 불어 닥쳤다. 이에 검종 무인들은 감히 눈도 뜨지 못하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 기운이 잦아들 때쯤 무인들이 재빨리 고개를 들어 소녀를 확인했다. 역시나 소녀는 매우 멀쩡하게 제 자리에 서 있었다.
반면, 엽현은 큰 충격을 받은 듯 검을 쥔 손을 크게 떨고 있었다.
이 모습에 검종 무인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결국 저 괴물을 막아 줄 구원자가 나타난 것이다!
이때, 엽현의 검이 재차 소녀의 목을 노리며 날아왔다. 소녀는 맨손으로 검 날을 붙잡는 동시에 오른발로 엽현의 복부를 노렸다.
하지만 뭔가 떠오른 듯 마지막 순간에 공격을 멈추고서 십여 장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엽현의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천주검이 날카롭게 날아들자 소녀는 이번에도 한 손으로 검날을 단단히 쥐었다. 그리고는 멀리 하얀 아이를 향해 소리쳤다.
“소백! 이거 빨리 원래 상태로 되돌려 줘!”
그러자 하얀 아이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이 치료 중인 엽령을 가리켰다.
“제길! 알았어! 빨리 끝내!”
이때 문득 주변을 둘러보게 된 소녀.
“검종…….”
소녀는 엽현을 향해 거칠게 고개를 돌렸다.
“어쩌다가 검종과 싸우게 된 게냐!”
엽현은 대답 없이 손을 비틀어 소녀의 손에 잡혀 있던 검을 빼내려 했다.
이때, 소녀가 엽현 앞으로 접근하더니 그의 어깨에 한 손을 얹었다. 그러자 그의 전신을 휘감고 있던 악기와 살기가 진압되기 시작했다.
엽현의 눈빛이 점점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는 이때, 이를 보고 있던 흑의인이 순식간에 날아와 엽현의 머리를 노리고 주먹을 날렸다.
그의 주먹이 막 엽현의 관자놀이에 꽂히려는 순간, 소녀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쾅-!
노인의 팔이 으스러지며, 그의 신형이 지면에 내동댕이쳐졌다.
이를 본 순간 검종의 강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또 무슨 짓이란 말인가?
흑의인은 소녀의 행동에 다시 한번 큰 충격을 받았다.
같은 편인 줄 알았건만 왜 자신을 공격한단 말인가?
검종 무인들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
혹시 저자도 엽현의 편을 드는 것일까!?
“그대는 우리 검종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니오!”
흑의인이 참지 못하고 소녀를 향해 소리쳤다.
그의 음성에는 분노와 배신감이 뒤섞여 있었다.
먼젓번에는 하얀 아이가 엽현을 두둔하더니, 이번에는 저 소녀까지?
그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때 소녀가 흑의인에게 되려 호통을 쳤다.
“네 놈이야말로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게냐? 저 아이가 오라버니와 관련돼 있다는 걸 모르는 게냐!”
오라버니?
흑의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너희는 무슨 연유로 저 아이를 공격하는 게냐?”
그 말을 들은 흑의인은 머릿속이 멍해졌다.
왜 공격하냐니?
그야 당연히 적이니까 그런 것 아닌가?
아니, 그보다 왜 엽현의 편을 드는 거지?
검종 무인들의 표정도 멍청하긴 마찬가지였다.
조사가 남긴 무기라 해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되려 호통을 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때 참다못한 무인 하나가 차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소리쳤다.
“그런 말이 어디 있소! 지금 상황은 우리가 공격하는 게 아니라, 놈이 우리를 학살하고 있는 게 아니오!”
바로 이때, 계옥탑에서 소령이 불쑥 튀어나와 소녀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주었다.
소령이 말을 마친 후, 소녀는 멀리 쓰러져 있는 엽령을 바라보았다. 이내 안색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진 소녀가 조금 전 발언한 무인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먼저 그의 동생을 건드린 것은 너희였지 않느냐!”
“그… 그대는 대체 누구 편이오!”
무인이 결국 화를 주체하지 못한 순간, 소녀가 돌연 발을 굴렀다.
쾅-!
검수가 채 반응하기도 전, 그의 몸이 순식간에 터져버렸다.
이를 보자 검종 무인들의 안색이 급변했다.
한층 더 싸늘해진 분위기 속에 소녀가 장내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검수가 되어 어린아이를 공격한 것도 뻔뻔한 것인데, 심지어 오라버니의 사람까지 노리다니. 네놈들이 정신이 있는 게냐?”
“그대의 오라비라는 자가 도대체 누구요!?”
흑의인이 소리치자, 소녀가 돌연 대전 앞에 서 있는 조각상을 가리켰다.
“저기 있잖아!”
이를 본 흑의인은 당혹감에 휩싸였다.
오라버니라 하는 자가 정말로 자신들의 조사였단 말인가?
이때 한 검수가 소리쳤다.
“그는 우리 검종의 조사요! 만약 그대가 정말 그의 동생이라면 왜 우리를 돕지 않는 것이오?”
소녀가 검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 않아도 너희와 저 아이 중 누가 더 오라버니에게 중요한지 생각해 봤다. 결론은 저 아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도운 것이다. 이제 알겠느냐?”
“…….”
흑의인의 두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럼 도대체 뭐 때문에 나온 것이오!”
흑의인은 더 이상 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차리라 이럴 거라면 처음부터 나오지 말았어야 하지 않는가!
바로 이때, 소녀 곁에 가만히 서 있던 엽현이 흑의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천주검에 맺힌 검광을 본 순간 흑의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과연 저 검을 막을 수 있을까?
빠르게 결단을 내린 그는 미친 듯이 후퇴했다.
엽현은 도망치는 흑의인을 쫓지 않았다.
어쨌든 주변에 먹이는 널리고 널려 있었으니까.
곧 장내는 다시 한번 피와 비명 소리의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검종 무인들은 엽현을 막을 수 없었기에 그저 이리저리 도망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니면 이쯤에서 협상을 하는 게 어때?”
소녀가 엽현에게 말했지만, 엽현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소녀는 협상을 포기했다.
“아, 뭐, 그럼 너무 심하게 하진 마!”
말을 마친 소녀는 유유히 하얀 아이의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엽현의 학살은 끝나지 않을 듯 계속 이어졌다. 검종의 몇몇 강자들이 저항을 해 보긴 했지만, 결코 위협이 되지 않았고, 종문 안에 설치된 검진 역시 엽현에겐 무용지물이었다.
검종이 아닌 다른 종문이었다면 분명 이야기가 달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혈맥지력의 힘을 받았다 해도 파명경 강자 일고여덟이 달려들면 엽현도 어쩔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종의 파명경 강자들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검을 사용하지 못하는 그들은 그저 엽현의 맛좋은 먹잇감일 뿐이었으니까.
극상성의 천적!
이것이 검종과 엽현과의 관계였다.
한편, 하얀 아이는 소녀가 다가오자 흥분한 기색으로 엽령을 가리켰다.
잠시 엽령을 바라보던 소녀의 눈에서 기이한 눈빛이 번뜩였다.
“아…….”
소녀가 알아차린 듯하자 하얀 아이가 무슨 뜻을 전하려는 듯 양손을 파닥거렸다.
그러자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이런 체질은 나도 처음 봤어. 세상에나…….”
이에 하얀 아이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소녀가 하얀 아이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계속 자기를 주입시켜서 육신을 자극 해줘.”
이에 하얀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엽령에게 자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소녀가 문득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때의 엽현은 피를 뒤집어쓴 살인귀가 되어 장내를 휘젓고 있었다.
그의 붉은 검이 한 번 번뜩일 때마다 검수들의 머리가 나뭇잎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어느덧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고이고 고여, 검종은 하나의 피바다를 이루게 되었다.
엽현은 앞을 막는 자들을 자르고 끊으며 계속해서 전진했다.
그의 목표는 검종의 대전, 검목이 있는 곳이었다.
다만 검종 검수들의 저항 역시 만만치 않았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검목이 육신을 회복할 시간을 벌고 있었다.
그가 등장하게 되면 엽현을 저지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함께.
이때, 대전 안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모든 검종의 제자들은 대전 앞으로 모여서 방어진을 작동시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