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23
823화 모두 죽일 것이다
엽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하늘 끝에서 노인 하나가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검은 장포를 입고 있는 노인은 손에 기다란 불진(拂塵)을 들고 있었고, 미간 중앙에 새겨진 검은 각인이 눈에 띄었다.
이때 엽현 곁에 다가온 희황이 속삭였다.
“산귀도인(山鬼道人), 매우 강한 자다.”
이때 산귀도인이 엽현을 향해 웃으며 운을 뗐다.
“소년, 그는 이미 육신이 파괴된 상태다. 이쯤 하면 서로 되지 않았느…….”
그가 채 말을 맺기도 전, 엽현의 진혼검이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쉭-!
어떻게 말려볼 새도 없이 진혼검이 죽장노인의 미간을 꿰뚫고는 그의 영혼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죽장노인은 손 하나 꼼짝하지 못하고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영혼체가 되어 진혼검 앞에서 힘을 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멍하니 있는 가운데 죽장노인의 영혼은 깔끔하게 사라졌다.
이를 본 산귀도인은 미간을 찌푸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웃음기까지는 떨쳐버리지 않았다.
한편 진혼검을 회수한 엽현은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그대로 뒤로 돌아 자리를 떠나갔다.
산귀도인은 이를 보고도 출수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었다.
지금까지 엽현의 배후가 얼마나 강한지 정확히 아는 자는 드물었다. 하지만 검종의 멸망 이후 이와 같은 의혹은 깨끗이 해소됐다.
사유계 최강이었던 검종을 멸망시킨 자, 더 말해 봐야 입만 아플 뿐이다.
“쯧쯧… 할 수 없지. 죽장노인 역시 과오가 있었으니.”
산귀도인은 그렇게 혀를 차며 떠나갔고, 이윽고 희황 역시 자리를 떠났다.
한편, 엽현은 약속대로 진노인을 찾았다.
엽현을 본 진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죽장노인은 어찌…….”
“죽었습니다.”
진노인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때 엽현이 물었다.
“오유계를 가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그 말에 진노인이 반색하며 되물었다.
“오유계에 갈 마음이 생긴 게냐?”
다른 이가 말했더라면 코웃음을 쳤겠지만, 엽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에겐 계옥탑이 있지 않은가!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고 싶습니다. 길을 알려 주시겠습니까?”
“좋다. 따라서 오너라.”
이렇게 엽현은 진노인을 따라 한 방향으로 두 시진가량 이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우주의 경계를 가르는 장벽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끝없이 높고 긴 장벽에는 신비한 부문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이 장벽 근처엔 십여 구 정도 되는 시체들이 성별과 나이 구분 없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이게 바로 오유계로 통하는 장벽이다.”
“저 시체들은 무엇입니까?”
“저들은… 역대 오유계의 강자들이었지.”
“그렇다는 것은…….”
진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죄다 실패하고 말았다. 대부분은 육신과 신혼이 모두 사라지게 되는데 저들은 상당한 실력자들이었던 까닭에 시체는 건진 셈이지.”
“저들은 얼마나 강했습니까?”
“후… 경지로 치면 파도경쯤 될 것이다.”
파도경!
그 말에 엽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파도경이라 함은 검목이나 휘황 같은 고수보다도 높은 경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비교가 어려울 정도의 강자들이 아닌가!
그런 자들의 시체가 즐비한 곳이라니…….
“비록 양계천 무인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긴 하지만, 실상 저 관문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때문에 우리나 검종은 끊임없이 신물을 원했던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오유계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 테니 말이다.”
“지금 저의 실력으로 저 장벽을 뚫는 것은 자살행위입니까?”
“물론이다!”
진노인은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엽현이 강해졌다 하더라도 정면으로 장벽을 뚫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노인의 단호한 대답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로 돌아섰다.
떠나가는 엽현을 보며 진노인이 황급히 물었다.
“아이야, 오유계로 가지 않는 것이냐?”
이에 엽현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지금 당장 신물을 이용해 오유계로 간다 한들 그다음은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과연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엽현의 말에 진노인은 아무런 대답도 내놓지 못했다.
오유계로 넘어간 이후의 일은 자신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오유계로 가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그, 그럼 포기한다는 말이냐?”
엽현이 진노인을 향해 완전히 돌아섰다.
“물론 아닙니다. 다만 신물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장벽을 통과할 것입니다.”
정면돌파!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여기 널려있는 시체들을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진심입니다. 모두에게 제 말을 전해 주십시오. 만약 제가 오유계로 넘어간다면 신물을 이용해 오유계로 가는 길을 열어 주겠습니다. 다만 지금은 신물을 완전히 장악한 상태가 아니니 그때까지는 기다려 주셔야 합니다.”
“저, 정말이냐?”
진노인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목소리마저 떨고 있었다.
이에 엽현이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 저를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삼 년, 삼 년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삼 년…….”
엽현을 응시하던 진노인이 돌연 공손히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갖췄다.
“삼 년이든, 삼십 년이든 상관없다. 오유계로의 길만 열어준다면 뭐든 다 들어 주마.”
“좋습니다! 그럼 먼저 검을 좀 모아 주십시오. 가능한 명검들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걱정 말거라. 곧 구해다 주겠다.”
고개를 끄덕인 엽현은 다시 오유계의 장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번만큼은 외물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고 말리라!
잠시 후, 엽현은 한 줄기 검광으로 변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진노인은 장벽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삼 년.
그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실력으로 오유계로 간다면 순식간에 죽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 보고 싶었다. 아주 젊은 시절부터 꿈꿔 왔던 오유계라는 곳을.
아니, 너무 비관적일 필요는 없었다.
어쩌면 오유계로 가서 기연을 얻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어쨌든 사유계에서도 구질구질한 삶을 연명하고 있을 뿐, 그 어떤 성장도 기대도 없다. 게다가 이미 노쇠해 버린 그는 살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다.
삼 년.
그에게 이 정도 기다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 * *
양계천의 어느 산봉우리를 찾은 엽현.
깎아지를 듯한 절벽 위에 선 그는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엽령.
그녀는 떠났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엽령의 생각뿐이었다.
사실 그는 굳이 오유계로 넘어가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수라여제의 환생?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그에게 있어 그녀는 그저 귀여운 동생일 뿐이었다.
이때 홀연히 나타난 연천이 그의 곁에 섰다.
“아월이 큰언니를 찾아냈다.”
“큰… 언니?”
엽현이 시선을 돌리자 연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역시 네게 관심이 있는 듯하구나.”
“그렇군.”
“자, 그럼 우선 검역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지. 현재 너의 검역은 검의를 기초로 이루어져 있다. 즉, 검의가 핵심이라는 것이지.”
이때 엽현이 문득 물었다.
“오유계에도 검수가 있겠지?”
“물론이다. 하지만 사유계의 검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어떤 면에서?”
“오유계의 검수는 주로 검기를 중요시한다. 그들의 검기는 사유계의 것과 다른 점이 많지. 아는지 모르겠지만, 너의 일검무량은 아직 미완 상태에 있다.”
“자세히 이야기 해봐.”
“너는 일검무량이 어떻게 경지와 법칙, 그리고 도칙을 무시하는지 아느냐?”
엽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번에 모든 걸 설명하기가 어렵구나. 간략히 말해 일검무량 안에는 사유계에는 없는 지식이 녹아 있다. 예를 들면… 그래, 일검무량을 펼친 후에는 공명경에 들어서게 된다. 이 공간은 매우 특수하고 독립적인 공간으로 차원에 속한 것이 아니다. 즉, 이 사유계 전체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공명경은 유지된다는 것이지.”
“그럼 공명경에만 있으면 무적이 되는 거 아냐?”
“평생 거기에만 처박혀 있을래?”
“…….”
물론 그럴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공명경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반 시진이 전부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검역에 대한 연구를 해 보자꾸나. 이번에는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공간도칙과 대지도칙도 함께 운용 해 보거라. 물론 혈맥지력은 제외하고.”
지난번 검종에서의 혈전 이후, 엽현의 혈맥지력에 대한 연천의 근심은 더욱 늘어난 상태였다.
비록 그 힘이 어마어마하긴 하지만, 그에겐 양날의 검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수라대제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엽현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연천의 말을 들은 엽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미간에 공간도칙과 대지도칙이 드러났다.
쾅-!
순간 사방의 지면에서 지맥지력이 몰려들었고, 동시에 엽현을 에워싼 공간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엽현이 눈을 떴을 때, 그의 앞에 한 자루 검이 떠 있었다. 이때, 검의 손잡이 부근에 ‘수(囚)’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지더니, 신비한 기운이 검을 휘감았다.
검역, 일검무량, 육도진언, 대지도칙 그리고 공간도칙…….
이 모든 것을 합친 위력은 결코 혈맥지력에 못지않았다. 만약 혈맥지력까지 더한다면 그 위력은 가히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일 것이다.
미쳤군.
엽현은 눈앞에 만들어진 검이 얼마나 강한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온전한 그의 실력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온갖 외물을 합쳐 만들어낸 괴물과도 같은 검!
잠시 검을 응시하던 엽현이 고개를 돌려 연천을 바라보았다. 그가 막 뭐라 말하려는 바로 이때, 돌연 하늘이 쩍 갈라지면서 한 줄기 뇌전이 구름에 걸렸다.
연천과 엽현이 재빨리 고개를 치켜들자, 뇌전 안에 한 중년인이 있는 것이 보였다.
무미건조한 얼굴로 엽현을 내려다보고 있는 중년인.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내가 오늘 널 찾아온 것은 경고를 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났다. 그러니… 너와 네 배후에 있는 여인, 모두 죽일 것이다!”
인내심을 잃어?
엽현의 표정이 순간 심각해졌다.
뇌전과 나타난 남자는 분명 오유계에서 온 것이 틀림없었다. 다만 본체가 아닌 분신일 뿐이었다.
저들은 정말로 자신과 천녀를 향해 출수하려는 것일까?
침묵으로 일관하던 엽현이 남자를 향해 외쳤다.
“그래, 어디 열심히 해 보라고!”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듯 돌아서는 엽현.
이에 엽현을 향한 중년인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버러지 같은 사유계 종자 주제에.”
마지막 한 마디를 뱉은 중년인은 서서히 자리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