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24
824화 무모한 도전
멸시.
그의 눈빛 속에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 벌레를 내려다보는 듯한 경멸이 짙게 깔려 있었다.
이는 사유계에 대한 오유계 강자들의 인식을 정확히 반영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사유계 사람들은 그저 헐벗고 다니는 야인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물론 약한 자들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천녀.
천녀 앞에서라면 웬만한 오유계 강자들은 힘을 쓰지 못한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까지 꺼렸던 이유는 천녀가 강하기도 하지만 그 실력의 끝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차례 희생을 감수하면서 결국 그들은 천녀의 실력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생긴 상태였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과감하게 선전포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점점 희미해지는 중년인.
그가 돌연 고개를 돌려 검종이 있던 방향을 바라보았다.
사실 검종은 그들이 사유계에 심어 둔 눈이라 할 수 있었다. 엽현과 천녀를 감시할 눈을 잃었다는 점에서 그들이 본 손실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었다.
그만큼 수라여제의 등장은 그들에게도 매우 의외의 사건이었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수라여제가 엽현의 편만은 아닌 것이 확실한 만큼 계획을 수정할 필요는 없었다.
차가운 눈으로 엽현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중년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사라졌다.
한편, 숲속 어느 한 편을 거닐고 있는 엽현.
그의 곁으로 연천이 바짝 다가왔다.
“대어를 낚을 생각을 하고 있군. 너뿐 아니라 그 여자마저 노릴 셈이야.”
“혹시 그녀가 위험해지지는 않겠지?”
“글쎄다……. 내 생각엔 주인이 다시 나타난다 해도 그녀를 어쩌진 못할 것 같다만.”
걸음을 멈춘 엽현이 연천을 돌아보았다.
“그런데도 그녀를 노린다니, 뭔가 이상하지 않아?”
“하하, 아마도 뭔가 착오가 있었겠지. 혹은 실력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흠…….”
“그녀의 진짜 실력은 우리도 알지 못한다.”
그 말에 엽현이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위험한 것은 나 혼자뿐이겠군.”
“그렇지.”
엽현이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던 이때, 그의 앞에 진노인이 나타났다.
“하하, 보거라! 네가 부탁했던 검들이다!”
진노인이 엽현에게 납계 하나를 튕겨 보냈다. 엽현이 확인하니, 그 안에는 무려 서른 자루의 검이 들어 있었다.
게다가 하나 같이 쉽게 구할 수 없는 명검들!
순간 엽현은 속으로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이들은 천주검이나 진혼검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충분히 훌륭한 검들이었던 것이다.
만약 그가 흡수하게 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
납계를 거둬들인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하하! 이 정도는 별것도 아니다. 더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내게 말하거라!”
“안 그래도 종종 신세를 져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 역시 최대한 네게 협조하기로 결정했다. 그럼 더는 방해하지 않으마.”
진노인은 그렇게 웃으며 엽현과 연천을 떠나갔다.
“곧바로 경지를 뚫으려 하는 게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경지가 많이 낮아.”
“내 생각엔 아직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서두르다간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하지?”
“음……. 방식을 바꿔보는 건 어떠냐?”
“어떤 방식?”
“실전!”
실전?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우자 연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전이야말로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수단이지. 네게 필요한 것은 실전, 그것도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경험일 것이다.”
“전투라… 누구와 하면 좋을까?”
“그야… 오유계 강자라면 적당하지 않겠느냐?”
오유계 강자와의 전투!
“혹시 죽는 거 아니야?”
“물론! 실전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
“왜, 겁이라도 먹었느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지만…… 단지…….”
“겁먹은 게 아니면 됐다. 가자!”
말을 마친 연천이 앞장서서 어디론가 휘휘 걸어갔다.
이에 엽현은 할 수 없이 그녀의 뒤를 쫓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연천이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잠시 후, 연천과 엽현은 오유계의 장벽이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장벽 주변에는 여전히 무인들의 시체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사실 엽현은 이 시체들을 가져다가 마시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다만 혹시나 영혼이 남아 있을까 하여 섣불리 건드리지는 못했다.
완전히 죽지도 않은 자를 마시로 만들어 버리는 일은 아무리 엽현이라 해도 꺼려지는 일인 것이다.
이때 곁에 있던 연천이 손으로 장벽을 가리켰다.
“저거 보이나?”
“그럼. 그건 왜 물어?”
“한 번 도전 해볼 테냐?”
“정말로?”
“정말로!”
잠시 고민 끝에 엽현이 장벽을 향해 날아갔다.
장벽에 가까웠을 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천주검을 강하게 내리쳤다.
바로 이때, 장벽에서 검은색 뇌전이 흘러나와 엽현의 검 끝에 떨어졌다.
콰쾅-!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 하나가 연천의 곁으로 튕겨 나왔다.
물론 엽현이었다.
이때 그의 몸은 온통 시커멓게 변했고, 전신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으며, 몸 구석구석이 갈라져 처참한 모습이었다.
조금 전 일격으로 죽음까진 이르지 않았지만, 자칫 목숨을 일을 뻔했던 것이다!
죽은 듯 엎드려 있던 엽현이 잠시 후 원망스런 눈으로 연천을 올려다보았다.
“너… 일부러…….”
“느낌이 어떻더냐?”
“느낌…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은 고통이랄까…….”
비록 그의 무적검체가 더 강력한 형태로 진화하긴 했지만, 조금 전의 뇌전 앞에서는 어림도 없었던 것이다.
“자, 할 일을 알려주마. 지금부터 저 뇌전과 싸워 이겨낸다.”
“저걸… 정면으로 맞붙으라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연천.
이에 엽현의 안색이 더욱더 어두워졌다.
“차라리 날 죽여…….”
조금 전 엽현의 검에는 그의 혼신의 힘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는데 여기서 무얼 더 하란 말인가?
이때 연천이 엽현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다. 네가 앞으로 만날 적들은 저 뇌전보다 훨씬 더 강할 뿐 아니라, 경지 역시 너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을 것이다. 지금부터 네가 할 일은 너보다 강한 자를 맞아 이기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
“한 가지 덧붙이자면, 지금 너의 실력으로도 뇌전을 상대할 수 있다. 다만 방법이 틀렸을 뿐이다.”
“방…법?”
“그렇다. 더 강한 자와 맞설 때 정면 대결은 그야말로 자살행위다. 응당 가장 날카로운 부분을 피하는 동시에 약한 곳을 공략하는 법을 습득해야만 한다.”
“방법이라…….”
잠시 후, 엽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 번 해보지!”
“그냥 해보는 걸로는 부족하다. 반드시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좋아! 최선을 다 해 보겠다!”
한숨 돌린 엽현은 생명수를 들이키며 정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장벽 위쪽, 검은 뇌전은 여전히 그를 향해 번뜩이고 있었다.
엽현은 상대가 강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정면 대결이라면 혈맥지력과 검역 그리고 육도진언을 모두 퍼부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으리라.
설령 그렇게 이긴다 해도 자신이 받는 타격 역시 가볍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엽현은 두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연천이 그를 이리로 데려온 데에는 단순히 뇌전을 박살 내는 것 이외의 의미가 숨겨져 있을 것이리라.
한편, 연천은 어두운 표정으로 멀리 오유계의 장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인……. 도대체 어디 계시는 겁니까. 항상 말씀하시길 세상만사에는 언제나 인(因)과 과(果)가 있다고 하셨지요. 우리가 탄생한 것이 인이라면, 과는 또 무엇이란 말입니까.”
오유계의 주인.
오유계든 사유계든 그를 죽일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즉, 그가 원하지 않는 한은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가 어디로 왜 사라졌느냐 하는 것이었다.
연천은 이내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결국 오유계로 돌아가야만 했다.
위험할 순 있겠지만 이것이 주인을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은 확실했다.
연천은 곧 엽현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때의 엽현은 생명수를 들이키며 소진된 영기를 회복하고 있었다.
여전히 검은 뇌전에 고정된 엽현의 눈빛.
정면공격을 피하고, 허점을 찾아 절명시킨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엽현이 돌연 검을 들고 휘둘렀다.
순간 검기가 결을 따라 날아갔지만, 뇌전 근처에 닿기도 전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바로 이때, 무심코 날린 공격이 자극제가 되었는지, 뇌전이 빛을 뿌리며 엽현을 향해 맹렬히 날아들었다.
이를 본 엽현은 그야말로 사색이 되어 황급히 도망쳤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뇌전이 채 도착하기도 전에 그는 사라져 있었다.
“…….”
엽현이 사라지자 검은 뇌전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한편, 뇌전이 쫓아오지 않자 엽현도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가 숨을 고르고 있을 때, 그의 곁에 연천이 다가왔다.
“계속해 보거라.”
고개를 끄덕인 엽현은 멀리 떨어져 있는 뇌전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땅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바로 이때, 연천이 팔뚝 길이의 막대기 하나를 엽현에게 내밀었다.
“이것을 파괴해야 한다면 어디를 공략해야 가장 쉽겠느냐?”
“음… 그야 당연히 중간이 아닐까?”
엽현은 연천이 하고자 하는 말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먼저 약점을 찾으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뇌전은 막대기가 아닌 까닭에 어디가 약점인지 쉽게 찾을 수가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어디지? 도대체 어디를 공략해야 하는 거지?
“너는 범검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느냐?”
연천의 뜬금없는 질문에 엽현이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엽현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그대로 말을 이어갔다.
“소위 범검이란 사실 본질을 꿰뚫는 능력이다. 방금 네가 막대기 중앙을 부러뜨린다고 대답한 것은 틀리진 않았다. 다만 더 깊게 생각해 본다면 불을 사용하는 것이 힘도 덜 들뿐 아니라,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네가 강하고 상대가 약하다면 무슨 방법을 쓰든 상관없다. 하지만 네가 약한 쪽이라면 반드시 너의 장점으로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는 방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연천이 손 안의 막대기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만물에는 응당 상극이 되는 것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내가 들고 있는 이 막대기를 일반인이 악력으로 부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손대신 칼이나 톱, 도끼, 불 등을 이용하는 것이지.”
“…….”
“실력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은 매우 우둔한 짓이다. 그리고 이는 지금까지 너의 방식이기도 했지.”
엽현이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범검……. 만물의 본질을 꿰뚫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검수가 된 이상 결국은 이 과정을 지나쳐야만 한다. 알겠느냐?”
“그럼 천녀 역시 범검 단계에 있는 건가?”
“그럴 리야 있겠느냐. 다만 그녀의 경지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함부로 추측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녀를 평가할 자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군…….”
대화를 마친 엽현은 다시 허공에 떠 있는 뇌전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어떻게 하면 뇌전을 파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