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3
83화 내 어찌 빚지고 있을 수 있겠는가
엽현과 일행들은 저국으로 향하는 운선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웬 노인 하나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엽 공자, 노부는 이 운선의 책임자입니다. 공자께서는 저를 이(李) 지배인이라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배인이 말을 이어갔다.
“현재 운선엔 안전상의 이유로 공자님 일행 단 네 분만을 모시고 항해할 것입니다. 운선 곳곳엔 이미 취선루의 강자들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구 루주께서도 운선의 동태를 주시하고 계십니다. 혹여 창목학원이 지난번처럼 암수를 쓰려 한다 해도 우리 취선루는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말에 묵운기 등 세 사람의 눈엔 놀라움이 비쳤다.
알다시피 취선루의 패도함과 오만함은 창목학원에 비교해서 결코 뒤지지 않았다.
지금 그들은 엽현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엽현이 지배인에게 포권을 취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소!”
그 말에 지배인이 활짝 웃었다.
“엽 공자, 또한 루주께서 명령을 내려 창목학원의 음모를 알아내고 계십니다. 네 분께서는 저국에 도착하시기 전에 만족할 만한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감사하오!”
“별말씀을. 그럼 네 분께서는 쉬시다가 하명하실 일이 생기면 저를 불러주십시오.”
노인이 공손이 예를 취한 후 그들을 떠나갔다.
이때, 묵운기가 놀란 눈으로 엽현을 향해 물었다.
“너 혹시, 취선루 높은 사람의 숨겨둔 아들 같은 뭐 그런 거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저들의 이런 호의는 모두 천녀의 존재 때문이었다.
“자, 피곤들 할 텐데 일찌감치 들어가 쉬자고!”
엽현이 선실로 내려가자 기안지가 그의 뒤를 따랐다.
묵운기가 엽현의 뒷모습을 향해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 자식…… 그때 창목학원에 들어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어. 창목학원 놈들이 이렇게도 파렴치할 줄이야.”
“맞아!”
백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묵운기가 백택을 향해 말했다.
“덩치, 이번에야말로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랄지 몰라. 알지?”
“… 너랑 같이 묻히게 된다니… 그건 너무 싫을 것 같다.”
“…….”
엽현이 막 방문을 열었을 때 기안지가 그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왔다.
기안지는 엽현의 얼굴을 마주했다.
“창목학원은 그 아이를 건드릴 수 없을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엽령은 창목학원의 방파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것을 스스로 무너뜨려 버린다면 창목학원은 기 원장이라는 큰 태풍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창목학원은 스스로 무덤을 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역시 엽현이 이대로 성장하도록 가만히 놔 둘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장래 창목학원의 미래는 밝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안지가 엽현을 향해 말했다.
“일단 푹 쉬어. 령이는 곧 우리 곁에 돌아올 거야.”
“이번엔 정말로 위험할지도 몰라.”
기안지가 엽현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위험하지 않으면 따라오지도 않았지.”
기안지가 보따리에서 하얀 찐빵 두 개를 꺼내 내밀었다.
“굶지 말고.”
“…….”
기안지가 떠나고 홀로 남은 엽현은 품 안에서 작은 나무 인형을 하나 꺼냈다. 그것은 바로 엽령의 인형이었다.
잠시 인형을 바라보던 엽현의 눈빛이 점점 안정을 되찾아갔다.
‘아직 내가 너무 약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젊은 세대 중에 안란수와 겨룰 수 있는 것도 자신이 유일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허황된 것이었다.
현재 그의 앞에 닥친 이 가혹한 현실은 그의 실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뼈저리게 깨닫게 해 주었다.
이현창이 엽령을 납치할 때 자신은 무얼 했는가?
그저 바라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기 원장이 없었더라면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그저 스스로가 약함을 탓할 뿐이다!
‘너무 약해!’
엽현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약한 자는, 말할 권리도 없고,
약한 자는, 그저 고통을 받는다.
약한 자는, 온갖 불평등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다!’
굳게 쥔 주먹 사이에서 선혈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몸 안의 영수검이 점점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엽현의 전신이 미친 듯이 떨려왔다.
그런데 그의 몸에서 한 줄기 옅은 기운이 흘러나오면서 웬 종이 한 장이 그의 눈앞에 떠올랐다.
종이에는 한 자루의 검이 있었다. 검의 주변에는 검의가 있었다.
그 위에 커다랗게 ‘?’ 로 된 표시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그것이 무슨 검의인지 맞춰보라는 질문 같았다…….
* * *
황성.
창목학원이 엽령을 납치했다는 사실은 부지불식간에 황성 전체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의 민심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감정은 바로 ‘분노’ 였다.
사람들은 창란학원 보다는 창목학원을 더 선호했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창목학원이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
약자인 그들이 강자의 편에 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나 지난번, 창목학원에서 강국의 원수인 당국의 무인들까지 엽현을 죽이기 위해 끌어들이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동안 당국과 수차례 전쟁을 치루면서 얼마나 많은 강국 사람들의 피를 흘렸는가?
강국의 백성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당국 사람들에게 가족이나 친지를 잃었다.
자신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원수 국가 무인까지 초청했다는 사실을 백성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를 계기로 엽현과 창란학원에 편에 서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창목학원에서 엽현의 여동생을 납치한 것은 백성들을 다시 분노케 했다.
그 아이는 단지 평범한 여자아이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 일 이후로, 황성의 사람들은 창목학원을 향해 공공연히 손가락질 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노자거리에 나서면 모두가 창목학원의 파렴치한 행위들을 지탄하곤 했다.
엽현을 잡기 위해 둔 무리수로 인해 순식간에 창목학원의 명성은 바닥에 떨어졌던 것이다.
창산. 창목전.
“누구냐!”
누군가의 분노한 목소리가 창산 전체를 울렸다.
대전 안에는 이현창이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분노에 몸을 떨고 있었다.
“우리를 모함하는 놈들 뒤에 어떤 세력이 있는 것이냐?!”
이때 여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했다.
“취선루 혹은 강국 황실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창란학원의 편에 설 이유가 없지 않느냐!”
여수가 이 원장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엽현이 저국으로 향하는 동안 취선루의 구 루주가 친히 그와 동행한다고 합니다. 그 외에, 황실에서도 암암리에 그의 호위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모든 사람의 얼굴이 모두 시커메졌다.
이는 명백히 창란학원의 편에 서겠다는 뜻이 아닌가!
강국의 삼대 세력 중 취선루와 강국 황실이 창란학원 편에 섰다?
이는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
모든 이의 시선이 이현창에 입에 쏠린 가운데, 그는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여수, 엽현의 내력에 대해 알고 있느냐?”
“그렇습니다. 그는 청성 출신으로…….”
“헛소리!”
이현창이 목소리를 높였다.
“청성 같은 작은 마을에서 검수, 그것도 대검수를 배출해 낸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 아이는 창란학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검수의 몸이었다. 게다가 양계성에서 돌아온 후로는 분절마저 손쉽게 제압한 아이다. 그런 자의 내력이 평범할 리가 있느냐? 정보국엔 온통 놀고먹는 놈들뿐이라더냐!?”
여수는 얼굴이 창백해져 고개를 떨궜다. 현재 창목학원에서 가장 천덕꾸러기를 고르자면 바로 여수였다. 당시 그가 엽현을 받아들이기만 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일도 없었을 것이다. 엽현만 있었다면 창목학원의 기세는 향후 수십 년간 확고부동했을 것이다.
감히 창란학원이 이렇게 창목학원과 대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오히려 창목학원이 곤욕을 치루고 있는 상황이다.
이 모든 것은 당시 창목학원이 한 소년을 놓친 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제 발로 창목학원에 가입하겠다고 찾아온 바로 그 소년 말이다!
당시 창목학원 뿐 아니라 황성의 모든 사람이 엽현을 쓰레기라며 비웃었다. 그런데 그 쓰레기가 돌아와 창목학원 학생 중 최강자를 죽였으니,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됐다. 이미 지난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해 봐야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현창이 장중의 무인들을 한 번 훑어보았다.
“지금부터 우리는 단결하는데 힘을 써야 한다. 엽현의 배후에 누가 있든, 그 내력은 또 어떻든, 우리는 반드시 그를 죽일 것이다. 예전에 창란학원이 어떻게 몰락했는지 모두 똑똑히 알고 있을 것이다.”
무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일수록 내부 단결이 중요하다. 지금 누군가를 질타하는 것은 상황을 타개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이 원장은 알고 있었다.
“막송, 준비는 잘 되고 있느냐?”
이현창의 질문에 막송이 대답했다.
“거의 완료 되었습니다. 이미 저국의 국주 척발언도 우리의 계획에 동참할 것으로 보입니다.”
“좋다. 대운제국의 학생들은?”
“그들이 천계 무기를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요구를 들어준다면 그들은 곧 학생들을 파견할 것입니다.”
“조건을 받아들이겠다고 전해라. 만약 엽현만 죽여준다면 천계 하품 무기뿐 아니라, 천계 하품 공법 그리고 명계(明階) 최상급 영기까지 주겠다고 전해라.”
천계!
그의 말에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천계 무기의 가치는 성 하나와 바꿀 수 있는 정도다!
천년의 세월 동안 창목학원에 전해지는 천계 무기는 겨우 다섯 권뿐이다. 그나마도 세 권은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리고 명계급의 영기는 창목학원 내에 단 여섯 개뿐일 정도로 귀한 것이다!
천 년 동안 모아온 보물들을 단 한 사람의 목숨과 바꾼다니! 창목학원 학생들이 술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현창이 차가운 눈빛으로 장내를 진정시켰다.
“엽현이 죽지 않으면 창란학원이 굴기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된다면 우리 창목학원은 옛날의 창란학원이 그랬던 것처럼 쇠락할 것이다. 물건이야 다시 구하면 되지만, 학원 자체가 사라지면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
그의 말에 장내가 다시 숙연해졌다.
“막송, 그 외의 세력들은?”
“대운제국 외에 다른 나라의 학생들 역시 이번 일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 중엔 무방에 이름을 올린 자도 속해 있습니다. 그 외에도 몇몇 산수 무인들도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엽현의 실력이 알려진 이상, 이번에 오게 될 자들은 모두 보통내기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몇몇 살수 조직들 또한 사람을 보낼 듯합니다.”
이현창의 눈이 가늘어졌다.
“암계(暗界)에서도 사람을 보낸다 하느냐?”
“그 점은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이현창이 음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을 보내 전하거라. 만약 누구라도 엽현을 죽이는 자가 나오면, 그에게 천계 하품 무기를 주겠노라고. 아니, 그 외에도 천계 하품 공법과 명계 하품 영기까지!”
“하 하지만… 그 정도의 조건이라면 열 명의 신합경 고수를 죽이기에도 충분한 것입니다… 어쩌면 저 늙은 괴물들조차 혹해서 달려들 수도 있습니다….”
장내 모든 이들의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막송의 말대로 그 정도의 보수라면 설령 기 원장을 암살하기에도 충분할 정도였다. 물론 암살이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이현창의 입꼬리가 점점 흉악하게 올라갔다.
“창란학원이 엽현을 그렇게 지키고자 한다면, 우리는 창란학원을 천하의 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반 시진 후, 엽현의 목에 걸린 보상이 각 나라에 공표되었다.
그러자 청주 전체가 들끓기 시작했다. 그 보상이 너무나도 거대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강국 근처의 몇몇 산상 세력에서도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 * *
양계성의 한 막사.
강구는 자신 앞으로 전달된 밀첩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너는 부황께 가서 임로(林老)를 파견해 양계성의 통솔을 맡기라고 요청해라.”
강구가 막사 밖으로 나와 말에 올라탔다.
그러자 한 명의 노인이 뒤에서 달려왔다.
“전하, 최고사령관이신 전하께서 이곳을 떠나신다는 것이…….”
이때, 강구가 노인의 눈앞에 황금색 명패를 내밀었다. 이미 그 안의 돈은 모두 꺼냈으나, 명패는 여전히 보관하고 있었다.
“받은 것이 있는데 내 어찌 빚지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는 그녀는 이내 말을 타고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