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35
835화 다음 계획은?
엽현이 소칠 등 세 여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는 곧바로 도망칠 수 있지만, 너희는 그럴 수 없으니 여기서 기다리는 게 좋겠어.”
소칠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
엽현의 공명경과 같은 도주 기술이 없는 세 여인은 아쉽지만, 엽현의 말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조금 이따 봐!”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긴 엽현은 그렇게 한 줄기 검광으로 변해 봉인된 구역 안쪽으로 날아갔다.
“후… 눈앞에 오유계가 있는데 이렇게 보고만 있어야 한다니…….”
소칠이 아쉬운 표정으로 말하자 연만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실력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지.”
이때 소칠이 문득 두 눈을 감으며 말했다.
“최근에 머릿속에 나도 모르는 기억들이 드문드문 스치고 지나갈 때가 있었어.”
그 말을 들은 순간 연만리와 안란수가 동시에 소칠을 바라보았다.
“소칠……. 설마 너도 엽령처럼 무슨 각성이라도 하는 건 아니겠지?”
소칠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다만 어떤 장면이 지나가고 난 뒤에 전보다 강해진 느낌이 들 때도 있어…….”
“강해진다고? 그거 좋은 일 아냐? 갑자기 괴물로 변해버리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하하하! 걱정하지 마, 나는 절대 변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소칠은 두 여인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뒤로 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 그녀의 머릿속에선 시시때때로 어떤 화면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이 잔상인지 아니면 오래전의 기억인지 모르겠지만, 꽤나 신경이 쓰였다.
설마 나도 무슨 각성인지를 하는 건 아니겠지?
소칠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나야. 절대 변하지 않아.”
그녀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자, 그녀의 검이 동의하듯 가볍게 몸을 떨었다.
한편, 이때의 엽현은 이미 봉인된 구역 깊숙한 곳에 도착해 있었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봐도 희뿌연 공간뿐이었다. 달리 보이는 것은 없었다.
검을 쥔 채 한참 동안 주변을 경계하던 엽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연천, 혹시 근처에 느껴지는 거 없어?”
“…….”
“이쯤 되면 뭐라도 나와야 하는 거…….”
“몸을 숨겨라, 어서!”
연천이 갑자기 소리치자, 엽현은 황급히 발을 굴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육신은 곧바로 공명경으로 진입했다.
바로 이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듣자 하니 놈은 하나뿐인 여동생을 끔찍이 아낀다던데, 우선 그 아이부터 잡아두는 게 어떤가?”
“하지만 회(回) 책사, 녀석의 동생은 이미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없어졌으면 찾으면 될 일 아닌가? 일단 초상화를 만들어서 뿌리도록 해라.”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 공명경 속에 숨어 있는 엽현의 앞에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하얀 깃털을 엮어 만든 옷을 입고 있었고, 이마에는 하얀색 방건에, 손에는 마찬가지로 큰 깃털이 꽂혀 있는 부채를 쥐고 있었다. 그는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바로 이때, 남자의 뒤편에서 웬 여인 하나가 천천히 다가왔다.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에 녹색 치마를 입은 여인은, 팔뚝에 금색으로 된 비단 천을 감고 있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가볍게 휘날리는 것이 꽤나 고풍스러운 모습이었다.
남자의 곁에선 여인이 물끄러미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위치에선 양계천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책사, 결국 실패했군요.”
책사라 불린 남자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방심한 게지. 사유계를 너무나 얕잡아 본 게야. 저들 중에서도 최강자에 속하는 이들은 결코 만만하지 않더군.”
여인이 고개를 들어 책사를 바라보았다.
“우리 만유학부가 조롱거리가 된 것은 알고 계십니까?”
“훗, 비웃을 테면 그러라지. 어차피 최후에 웃는 자가 승자 아닌가?”
“…그나저나 부주(府主)는 왜 수배령을 내려서 모두가 알게끔 한 것입니까?”
책사가 양계천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왜냐하면 저들은 정말로 만만치 않거든.”
“혹시, 차도살인계를…….”
“후후, 그리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엽현과 그 배후에 있는 여인의 기운을 빼놓는 정도만 되어도 대성공일 것이다.”
“저들이… 그렇게나 강하단 말입니까?”
여인이 눈살을 찌푸리자, 책사가 여인을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임랑(林琅), 선각자의 좌우명이 뭐였는지 기억하고 있나?”
“스스로를 낮추지 말되, 누구도 무시하지 마라?”
“잘 아는구나. 강자들은 종종 방심으로 인해 목숨을 잃고 만다. 호랑이도 토끼를 사냥할 땐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이거늘.”
“…그래서 그의 여동생을 찾으라 한 것입니까?”
“어찌, 너도 내가 비열하다 생각하는 게냐?”
임랑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책사가 웃으며 말했다.
“적을 상대함에 있어서 항상 정직한 대결만을 고집할 순 없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상대의 약점을 찾아 단숨에 절명케 해야 한다. 그렇다면 답이 나오지 않았느냐? 우리가 그의 최대 약점인 동생을 확보한다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책사가 아래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죽고 죽이는 싸움에 그 수단이야 어찌 되든 무슨 상관이냐. 결국 이기는 것만이 중요할 뿐.”
“잠시 내려갔다 오겠습니다. 소위 사유계의 천재란 자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군요.”
말을 마친 임랑이 양계천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잠시 후, 책사 역시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엽현은 이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엽령을 노린다고?
예전의 그였으면 엽령의 엽자만 나와도 이를 갈며 검을 휘둘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금 엽령은 누구도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는 상태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의 미쳐버린 혈맥조차 아주 간단하게 제압해버리지 않았던가!
물론 그녀가 어떻게 변했던지 엽령은 그의 동생이었다.
이 사실엔 영원토록 변함없으리라.
곧 자리를 벗어난 엽현은 성공 깊숙한 곳을 향해 전진했다. 이윽고 그의 눈앞에 거대한 제단 하나가 나타났다. 제단 각 귀퉁이에는 검은 옷을 입은 무인들이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피처럼 붉은 구슬 하나가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네 무인이 끊임없이 주문을 외우는 가운데 붉은 구슬은 천천히 어디론가로 이동했다. 구슬의 목적지는 다름 아닌 연천이 설치해 놓은 봉인이었다.
치이익-!
붉은 구슬이 봉인 주변에 이르자 매캐한 냄새와 함께 봉인이 부식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구슬을 이용해 봉인을 파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엽현이 네 흑의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잠시 후, 무언가를 느낀 네 흑의인들이 깜짝 놀라며 출수하려는 순간, 한 줄기 검광이 제단 주위로 번뜩였다.
푸확-!
엽현이 손을 내밀자 네 개의 머리를 소리소문없이 베어낸 천주검이 피를 잔뜩 머금은 채 손 안으로 돌아왔다.
이윽고 봉인을 부식시키고 있던 붉은 구슬을 수거한 엽현은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 하나가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의 왼쪽 가슴에는 작은 글씨로 ‘維(유)’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잠시 목 없는 시체들을 응시하던 노인이 제단 오른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물이 가득 차 있는 수정 구슬이 놓여 있었다. 노인이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이자 수정 구슬 안에 있던 물이 촥 펴지며 하나의 화면을 만들어 냈다.
화면을 응시하는 노인.
이때, 어둠 속에서 검수 하나가 나타나 일검에 네 무인을 살해하는 장면이 화면을 통해 흘러나왔다.
물론 이 검수의 정체는 다름 아닌 엽현이었다.
“…놈이 이곳에 나타났다. 경계를 강화해라.”
“예!”
어둠 속에서 짧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가 사라졌다.
“…겁도 없구나,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잠시 부리부리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던 노인은 곧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장내를 빠져나간 엽현은 공명경에 은신한 채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의 눈앞에는 붉은 구슬이 잠잠하게 공중에 떠 있다.
이때 연천의 음성이 그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파명주(破界珠)라는 것이다. 혈기와 사기(邪氣)를 가득 머금은 놈이지. 만약 흡수하게 되면 네 혈맥을 더욱 강화…….]연천이 중간에 말을 멈췄다. 잠시 엽현의 혈맥에 대해 깜빡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던 것이다.
지금도 미치광이처럼 날뛰는 혈맥인데 이에 기운을 더한다면?
상상만으로도 눈앞이 아찔해지는 연천이었다.
엽현 역시 파명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다. 아무리 강해지는 게 좋다 하더라도 일단은 살고 봐야 할 것 아닌가.
[흠, 흠! 놔뒀다가 위험할 때 사용하면 되겠구나.]“아……. 차라리 그냥 죽는 게 나을지도.”
엽현은 조심조심 파명주를 집어다가 계옥탑 가장 깊은 곳에 보관했다.
[그나저나 두 달 후면 봉인도 풀릴 텐데 무슨 계획이 있느냐? 너도 알다시피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으니, 그때가 되면 오유계 무인들이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다. 너희 사유계는 그들에게 있어 한 덩이 탐스러운 살코기일 따름이니 말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탑을 노리는 자들의 수는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오유계 최상위 포식자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는데 승냥이 떼가 끼어들 수는 없겠지. 그러니 상대적으로 약한 자들의 시선은 자연히 사유계로 향할 것이다. 다시 말해 빼앗고 노예로 만드는 일에 몰두하리라는 것이다.]“…오유계는 사유계와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어떤 세계든 다를 건 없다. 한 문명이 강한 이유는 그만큼 강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쪽보다 더 잔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강자가 생존하고 약자가 도태되는 원칙만큼은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똑같이 적용되지.]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우리는 오유계에 와 있는 건가?”
[여기는 사유계와 오유계의 접경지라 할 수 있다. 이곳을 벗어나야 진정한 오유계로 진입하는 것이지. 어찌, 한 번 구경 해 보고 싶으냐?]“아니, 그냥 궁금해서.”
[엽령이 궁금한 거겠지.]엽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아마 수라지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지금 너의 상태로는 갈 수 없는 곳이란 것만 알아 두거라.]“내가 그렇게 약한가?”
[아주 약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딱히 오유계를 활보하고 다닐 정도라 볼 수도 없지. 아무튼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게다. 널 죽일 수 있는 자들은 차고 넘치는 곳이 오유계니까.]“알았어…….”
[그래서, 다음 계획은?]“다음 계획은… 일단 닥치는 대로 죽이는 거지.”
말을 마친 엽현이 고개를 돌려 어둠 속 어딘가를 응시했다.
“벌써 손님이 왔군.”
바로 이때, 엽현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앞에 있는 것은 검을 쥐고 있는 남자였다. 그가 양계천 쪽을 내려다보며 먼저 말을 꺼냈다.
“듣자 하니 저쪽에 엽현이라는 검수의 성취가 꽤나 대단하다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인지 모르겠군.”
남자의 옆, 화려한 장포를 입은 남자가 웃으며 대꾸했다.
“저급한 세상에서 태어난 자가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하하하!”
“아대(阿大), 함부로 상대를 무시하지 마라.”
남자의 말에 아대라 불린 남자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장풍(長風), 무시한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거다. 사유계 무인들이 고작 ‘도’를 쫓느라 평생을 보내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