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48
848화 내 말이 너무 우스웠나?
희황이 갈망하는 눈빛으로 묻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때가 좋지 않습니다. 봉인 뒤편에 만유학부의 강자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은신술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결코 오유계로 진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말에 희황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그렇다고 실망하실 건 없습니다. 때가 되면 모두 함께 건너갈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건너가? 어떻게 말이냐?”
“저는 지금 사유계가 위기에서 벗어날 방도를 찾고 있습니다. 상황이 진정되고 나면 이곳 사람들도 자유롭게 오유계를 왕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희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당장은 사유계를 수호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럼 두 분께서는 상황을 지켜보시다가 제가 신호를 보내면 다른 무인들을 이끌고 오유계로 넘어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에 희황이 엽현에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
“양계천 강자들을 대신해 너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 싶구나.”
“그런 말 마십시오. 어떻게 보면 제가 사유계에 누를 끼치고 있는 셈이니까요.”
희황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야말로 그런 말 하지 말거라. 만약 네가 아니었더라면 오유계의 금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 또한 오유계 무인들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 기회를 빌어 사유계는 반드시 하나로 뭉쳐야만 한다. 우리가 살길은 그 길뿐이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번거롭겠지만 앞으로도 현황대세계를 잘 돌봐 주시기 바랍니다.”
“하하, 걱정 말거라. 마침 노년에 소일거리가 필요했던 참이다.”
대화를 마친 후, 희황과 죽장노인은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이번에는 소칠과 안란수, 그리고 연만리가 엽현을 찾아왔다. 그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엽현이 품에서 두 장의 자색 부적과 주황색 부적 한 장을 꺼냈다.
“하나씩 골라봐.”
세 여인은 부적을 가만히 살펴보기만 할 뿐 손을 대진 않았다.
이를 본 엽현이 막 무어라 말하려 할 때, 소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것들은 위력이 강하긴 하지만 내 진짜 힘은 아니지. 아무래도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겠어.”
이에 안란수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엽현의 시선은 연만리에게로 향했다.
이때 소칠과 안란수의 눈치를 살피던 연만리가 부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사용하진 않더라도 팔아먹으면 꽤나 비싸게 받을 수 있을 텐데. 너희가 싫다니 뭐, 내가 감사히 챙기도록 하지.”
“…….”
“그나저나, 직접 본 오유계는 어땠어?”
소칠이 화제를 돌리자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저 그랬어. 왜, 가고 싶어서?”
“그렇긴 하지만, 만유서원과 결판을 내기 전까진 기다려야 하겠지.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들이 쳐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그 말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가 자신 있게 오유계로 갈 수 있는 것도 소칠 등이 든든하게 사유계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유서원과 결판을 내는 것은…….
이 생각이 들자 엽현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그의 능력으로는 만유서원을 어찌할 수 없다. 그가 활약할 수 있는 것도 그의 계략이 잘 먹혔기 때문이지, 정면으로 부딪쳤다면 결코 만유서원을 당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한 달 정도면 봉인이 풀릴 텐데, 그때 밀물처럼 몰려들 오유계 무인들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분명한 건 이대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사유계는 큰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대론 안 돼!
“당장 오유계로 돌아가야겠어!”
엽현이 다소 딱딱해진 표정으로 말하자, 소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 만약 여의치 않으면 곧장 도망쳐.”
“하하, 걱정하지 마.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내뺄 테니까. 우선 다음 소식이 있을 때까지 다들 몸조심하고 있어.”
“물론이지!”
이 대화를 끝으로 엽현은 자리를 떠났다.
엽현이 떠난 후, 여인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결국 얼마 후 봉인은 사라질 테고, 그럼 사유계와 오유계 사이엔 아무것도 없게 되겠군.”
“왜, 사유계가 걱정돼?”
연만리의 물음에 소칠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사유계는 분명 오유계보다 약할 테니까.”
“에휴……. 나는 그만 생각할래. 자꾸 부정적인 생각만 하니까 흰 머리가 느는 것 같아.”
“…네가 여기서 제일 마음 편하게 사는 거 알아?”
“그런가? 하하하! 인생 뭐 있어, 그저 근심 없이 사는 게 최고지!”
연만리의 말에 소칠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문 밖을 바라보았다.
“그건 그래. 하지만 항상 자기 맘대로 살 수는 없는 법이지.”
* * *
북경을 떠난 엽현은 곧장 오유계로 넘어왔다.
목적지는 다름 아닌 부문종이었다.
현재 계옥탑은 부문종에게 넘어간 상태. 조만간 만유서원이 움직일 것을 생각하면 서둘러야만 했다.
물론 만유서원에 머리가 좋은 자가 있다면 부문종이 아닌 자신을 먼저 제거하려 할 것이다.
혹시라도 그렇게 되면 굉장히 골치 아파질 것이기에, 한시 바삐 부문종으로 가서 방법을 강구해야만 한다.
부문종과 만유서원이 원수처럼 싸우게 만들 방법을 말이다.
* * *
만유학부, 학전(學殿).
오래된 책 한 권을 들여다보고 있는 진천. 그의 앞에는 소엽이 잠잠히 진천을 향해 서 있다.
한참이 지난 후.
“제가 한 번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
“경지를 낮춘다면 봉인을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제야 책을 놓고 소엽을 바라보는 진천.
순간, 그의 머릿속에 소복을 입은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유계를 지키겠다고? 후후… 어디 네가 어떻게 지키는가 한 번 구경이나 해 볼까…….”
혼잣말을 마친 진천이 소엽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원하니 한 번 다녀오도록 하거라.”
그 말에 소엽이 예를 차린 후, 곧장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로부터 한 시진 가량이 지났을 무렵, 사유계와 오유계의 경계 사이에 소엽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대로 경지를 강제로 낮추자 봉인을 통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사유계에 발을 디딘 소엽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 원래의 경지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순간, 강대한 기운이 그의 전신에서 터져 나와 사유계 전체 공간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이때, 매우 멀리 떨어진 성역을 지나치던 소복의 여인 하나가 걸음을 멈춰 세우고 한쪽 방향을 응시했다.
“내 말이 우스웠던 게로구나…….”
이때 어둠 속을 응시하던 여인의 눈에서 한 줄기 검광이 튀어나오더니, 성공을 뚫고 어디론가로 빠르게 날아갔다.
* * *
양계천.
막 경지를 회복한 소엽이 순간 깜짝 놀라며 황급히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성하어(星河御)!”
그의 외침이 울려 퍼지자, 사방에서 엄청난 양의 성광이 몰려들어 순식간에 그의 주변을 빽빽하게 에워쌌다.
이는 소엽이 자랑하는 만성지력(萬星之力)이었다.
그리고 이때, 한 줄기 검광이 공간을 뚫고 나와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소엽을 둘러싼 두터운 빛의 장막 앞에 이 검광은 그저 얇은 바늘처럼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겉보기와 달리 이 바늘은 꽤나 날카로웠다.
그 단단해 보이던 빛의 장막을 가볍게 뚫은 것도 모자라, 순식간에 소엽의 미간을 관통해버린 것이다.
순간 딱딱하게 굳어버린 소엽.
그의 커다래진 눈동자 속에서 불신의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이렇게 쉽게 당할 줄은 몰랐다는 듯.
만약 몸에서 생기가 빠져나가지 않았더라면 꿈이라고 착각했을 법한 상황이었다.
초살!
마지막 순간의 소엽은 그야말로 억울하고 황당할 뿐이었다.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려고 그 오랜 시간 수련해 왔단 말인가!
비통한 가운데 자조 섞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 자는 절대로…….”
오유계를 향해 무언가 이야기하려던 소엽은 채 말을 끝맺지 못하고 소멸됐다.
말 그대로 세상에서 제거가 돼 버린 것이다.
이로써 소엽의 존재는 현생에도 없을 것이고 후생에도 찾아볼 수 없으리라.
이 시각, 만유학부의 진천이 불현듯 손에서 책을 내려놓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내가 너무 얕보았던 걸까…….”
한편, 소엽을 제거한 천녀는 자신의 손끝에 응집된 백광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백광은 곧장 오유계로 날아갈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만약 이 백광을 날려 보낸다면 오유계에 있는 엽현이 혹시 피해를 입진 않을까?
그가 과연 이 일격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심 끝에 천녀는 손을 거두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엽현이 불안했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걸음을 재촉하는 천녀.
이때 그녀의 곁으로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의 가느다란 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수많은 실들의 교차점은 다름 아닌 천녀였다.
인과선(因果線).
이는 많으면 많을수록 얽혀있는 인과가 많다는 것을 뜻한다.
천녀가 손을 뻗자 가느다란 실선 하나가 딸려 올라왔다. 실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오래전 그날의 장면이 떠오른다.
그때 그 산 속의 작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모습이.
그녀가 눈을 들어 정면을 바라보자, 일일이 셀 수도 없을 만큼의 실선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 모두가 그녀에게 얽매인 인과이리라.
천녀가 성공 깊은 곳을 바라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이번 세상에선 반드시 지켜내야 해…….”
먼 곳을 바라보던 천녀는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얽혀있는 수많은 인과선들 역시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장생(長生)도, 선(仙)도 원하지 않는다.
걸어온 길도, 돌아갈 길도 알지 못한다.
그저 삼척 청봉(青鋒)을 들고서 오늘도 홀로 세상과 맞설 뿐.
* * *
만유학부는 소엽이 죽은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 덕에 그의 죽음은 순식간에 입소문을 타고 오유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사유계에 대한 오유계 무인들의 호기심은 한층 더 깊어졌다.
진천의 오른팔과도 같은 소엽을 죽인 강자가 사유계에 있다?
이는 그들에게 있어 꽤나 큰 충격이었다.
소엽의 경지는 생사경(生死境), 이 경지는 오유계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경지가 아닌가!
이날 이후로, 각 세력들 사이에서는 사유계의 실력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상대가 그들의 생각만큼 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많은 이들은 만유학부가 초절정 고수를 잃은 것에 대해 고소함을 느꼈다.
오래전 선각자가 있었을 때만 해도 만유학부는 모두의 존경의 대상이었다. 선각자는 오유계 전체의 발전을 위해 많은 공헌을 했으며, 그러면서도 세속의 일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진천이 그 뒤를 이으며 이러한 평가는 완전히 뒤집혔다. 선각자와는 달리 진천은 야심이 매우 큰 인물이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 일로 오유계 무인들 중, 생사경 이하의 무인들은 더 이상 사유계를 깔보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 이상의 강자들 역시 마음속에 경각심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 이제, 오유계 무인들의 시선은 다시 부문종으로 향했다.
계옥탑!
선각자의 보물을 얻을 수 있는 열쇠는 과연 누구의 손에 돌아가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