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50
850화 참 운이 좋아
이날 부문종은 끝없이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부문종의 신분 조회가 꽤나 까다로웠다. 엽현은 몰래 담을 넘을 수밖에 없었다.
부문종은 거대 종문답게 그 규모가 대단했다. 산문 뒤로는 엄청난 규모의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 평원의 끝에는 그 끝이 구름을 뚫고 솟아있는 거대한 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부문사들의 성지인 부산(符山)이다.
당시 부문종의 조사가 근처를 지나다가 부산의 절경에 마음을 빼앗겨 종문을 세웠다고 했다.
부산 전체에 대전만 열여덟 채, 소전이 백팔 채나 있다고 했다. 이는 웬만한 성 규모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었다.
부산의 주전(主殿) 앞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지만, 그중 일정 신분 이상인 자만이 경매가 열리는 주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엽현은 인파 속에서 철저하게 은신해 있는 상태였다. 이런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간 순식간에 수많은 적들에 의해 에워싸일 수밖에 없었다.
무척이나 주의해야 했다.
바로 이때, 만유서원의 인사들이 도착했다.
만유서원의 대표로 온 자는 다름 아닌 진천이었다.
대전 앞에 선 진천은 뒤로 돌아 사방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가 아는 엽현이라면 분명 이곳 어딘가 숨어 있을 것이라 짐작은 했다.
하지만 그의 능력으로도 엽현의 기운을 감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이미 사람을 시켜 엽현의 은신술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었다. 그의 은신술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알아야만 반격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때였다.
부문종 종주 심성하가 웃는 얼굴로 진천 앞에 나타났다.
“진 부주, 어서 오시오.”
“심 종주, 그간 별고 없으셨소?”
“하하, 너무 건강해서 탈이지요. 어서 안으로 드십시다!”
이에 진천이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심 종주, 그가 이곳에 와 있을지도 모르오.”
진천이 말한 ‘그’ 가 누구인지 알아챈 심성하가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그에 대한 방비는 해 놓았소. 게다가 진 부주가 여기 있는데 놈이 겁도 없이 나타날 수 있겠소? 만약 모습을 드러낸다면 오히려 진 부주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오.”
“후후, 하지만 이곳은 부문종의 영역이지 않소?”
“하하하, 그건 상관없소. 놈이 나타나기만 한다면 누가 되었든 해결하면 그만이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려.”
“하하하, 좋소. 그럼 안으로 듭시다!”
두 사람은 그렇게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어둠 속에서 그들을 응시하던 엽현.
“연천, 혹시 일검무량을 창안한 게 누군지 알아?”
오유계의 초고수인 진천조차 장님으로 만들어 버리는 공명경. 그는 정말이지 이 일검무량을 만든 자가 누구인지 매우 궁금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검수다.]“맹인 검수?”
[그렇다. 오유계의 오래 된 전설 중 하나라 할 수 있지. 그는 주인보다 한참 앞선 시대를 살던 무인이다. 당시 고대의 흔적을 찾아다니길 좋아했던 주인은 우연히 그 검수가 살았던 동굴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때 발견한 것이 이 일검무량이었다.]“맹인 검수라……. 그곳이 어딘지 알아?”
[물론이다. 가 보고 싶은 게냐?]“한번 살펴보고 싶군.”
[흠… 네 놈은 역시 운이 좋아.]“그게 무슨 소리야?”
[당시 주인은 맹인 검수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다른 이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 지역에 봉인을 걸어 놓았다. 그리고 그 봉인을 설치한 것은 바로 나였지. 다시 말해, 그 안을 들어가려면 나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하하하! 그거 참 잘 됐구나!”
[네가 갈 수 있는 곳은 비단 이곳뿐만이 아니다. 넌 역시 운이 좋군.]연천의 말에 엽현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런 곳이 더 있다는 말이야?”
[그렇다. 주인이 방문했던 곳은 대부분 내가 안내해줄 수 있다. 게다가 그곳에는 네가 좋아할 만한 것들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순간 엽현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갑자기 눈앞에 보이는 오유계가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곧 엽현은 자리를 떠나 부문종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차피 경매일은 앞으로 사흘이나 남아 있으니 이참에 이곳저곳 살펴볼 요량이었다.
외부에서 본 것처럼 부문종 내부는 굉장히 넓어 자칫하다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잠시 후, 부문종 뒤편의 산을 거닐던 엽현에게 연천이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이냐?]“글쎄, 그때그때 봐 가면서 생각해야지.”
[아무튼 지금으로서는 진천에게서 계옥탑을 빼내는 것은 쉽진 않을 것이다. 아무리 계옥탑이라 하더라도 그와 같은 강자에게 함부로 도전할 순 없으니 말이다.]“그들은 결국 탑을 차지할 수 없을 거야.”
[왜 그리 생각하느냐?]“아직 그보다 더 강한 괴물들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엽현의 말에 연천은 반박하지 않았다.
계옥탑이 주는 유혹이 대단한 만큼, 아직 움직이지 않은 오유계 최강자들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아니, 그들은 어느 순간엔 반드시 움직이고 말 것이다.
어쨌거나 당장은 전장이 오유계에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엽현과 사유계에게는 희소식이었다.
계옥탑이 있는 곳이 곧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가 될 테니까.
엽현은 계속해서 산맥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로 이때, 그의 눈앞에 커다란 전각 하나가 나타났다.
엽현의 시선이 전각의 현판으로 향했다.
조사(祖祠)
부문종의 조사를 모신 곳인가?
엽현은 잠시 망설인 끝에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등불이 환하게 밝히고 있는 실내에는 서른여섯 개의 영패가 놓여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가운데 놓인 영패였다.
부소천(符小天)
이때 연천의 음성이 또다시 울려 퍼졌다.
[부소천, 부문종의 조사지. 당시 주인을 제외하면 오유계에서 가장 강했던 인물이다. 주인을 매우 존경하고 사부처럼 여겼던 그는 사부가 실종되자 부문종의 전 무인을 풀어 그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별 성과는 거두지 못했었지.]부소천이라…….
부소천의 영패를 잠시 응시한 엽현은 곧장 자리를 떠나려 했다. 바로 이때, 그 영패가 가볍게 떨리더니 백광 하나가 튀어 나왔다.
공명경에 몸을 숨기고 있던 엽현은 백광이 자신의 얼굴 바로 앞에 멈추자 소스라치듯 놀랐다.
백광 안으로는 뒷짐을 지고 있는 중년인의 모습이 보였다. 이 중년인의 시선은 정확히 엽현이 숨어 있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
들켰다!
엽현은 순간 자신이 발각됐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주먹에 기운을 모으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일격을 날리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이때, 엽현을 응시하고 있던 중년인의 눈빛에 짙은 의혹이 일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너는 우리 부문종의 제자인가?”
중년인의 물음에 엽현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혹시 부문도를 배워 볼 생각이 있느냐?”
부문도라고?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지금 자신에게 제자가 되라고 하는 건가?
“원하느냐?”
뜻밖의 제안에 한참을 망설이던 엽현은 마지막에 가서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손을 포개 예를 차렸다.
“제자 엽현, 사부를 뵈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기회를 봐서 취할 수 있는 것을 취해 볼 속셈이었다.
엽현이 고개를 숙인 모습을 보자 중년인이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잘 되었다.”
“저… 하지만 저는 부문종 제자도 아닌데 이래도 괜찮은 겁니까?”
엽현의 말에 중년인이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오래전, 나는 내 인생을 바꿔 준 스승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그의 제자가 아니었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가르침을 내려 주었지. 이에 내가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우리가 만난 것은 인과이자 인연이다’라고 말했다.”
“인과?”
중년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선생께서는 모든 일에는 그 인과가 존재하는 법이라 하셨지. 당시 어리석은 탓에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겠구나.”
말을 마친 중년인이 엽현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부문도는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매우 쉬울 수도 있다. 일단 입문하게 되면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을 보았으면 한다. 지금부터 내가 전수하고자 하는 것은 아직 누구에게도 물려준 적이 없는 것이니 잘 따라오도록 하거라.”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어찌하여 그 전승을 부문종에 전수하지 않으신 것입니까?”
“전수하지 않은 게 아니다. 다만 나의 전승을 받을만한 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엽현이 다소 망설이듯 입을 뗐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미 수많은 인과에 얽혀 있습니다. 혹여나 저와 인을 맺으시려다가 예기치 못한 불운을 당하실까 염려스럽습니다.”
이에 중년인, 아니 부소천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잘못 알고 있구나. 너와의 인연은 그분을 만났을 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는 인을 맺으려는 것이 아니라 과(果)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
그 말에 엽현이 잠시 고민하다 결국 다시 한번 사제의 예를 차렸다.
자신을 향해 절을 올리는 엽현을 내려다보며 부소천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너는 부문종, 아니, 나 부소천의 적전제자가 되었다!”
부문도(符文道).
이때부터 엽현은 부소천에게서 부문도를 배우는데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한 가지 기이한 점은 그들이 수련하는 동안 그 누구도 두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당 근처에 분명 사람이 들락날락함에도 말이다.
물론 이는 부소천의 안배가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엽현은 눈앞에서 그를 바라보면서도 상대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은 진천보다는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한편, 부소천이 말한 것처럼 부문도는 그렇게 배우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엽현에게는 말이다. 거기에 부소천이 직접 지도를 해 주니, 엽현의 성취는 굉장히 빠를 수밖에 없었다.
* * *
그렇게 눈 깜빡할 사이 사흘의 시간이 흘렀다.
바야흐로 경매 날 아침이 밝았다.
그러나 부문도의 매력에 흠뻑 빠진 엽현은 경매장에 가는 대신, 부적 그리는 데 정신을 쏟고 있었다.
그리고 부소천은 한술 더 떠서 처음부터 자색 부적을 쓰는 법을 알려 주었다.
이는 부문종 제자들이 알면 깜짝 놀라 뒤로 넘어갈 만한 일이었다.
부문전(符文殿).
대전 앞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경매가 열리는 부문전 안에는 신분과 실력이 확실한 강자들이 자리했다.
그렇지 못한 자들은 전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지만, 밖에서도 충분히 안쪽의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대전 안에서 심성하가 대중을 한 눈에 훑은 후 웃으며 운을 뗐다.
“오늘 부문종의 경매에 참가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오. 경매 방식은 간단하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자가 탑의 주인이 될 것이오.”
이때 장내에 있던 한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발언했다.
“심 종주, 노부가 듣기론 그대들 부문종에 돈 썩어 넘친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그대들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이오?”
“밀정(密晶)이면 충분하오.”
심성하가 웃으며 대답하자 장내 무인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