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51
851화 내가 너희 사조겠구나
밀정.
이는 일종의 특수한 물질로 부문사나 철기사들이 재료로 가장 선호하는 것이었다.
밀정에 대한 부문사들의 관심은 광적이라 할 수 있었다. 자색 이상의 부적을 쓰기 위해선 반드시 밀정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이 밀정을 구할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 허무계의 변경뿐이었다.
허무계에서는 매년 일정량의 밀정을 생산해 내고 있었다. 이 양은 정말 극소량이어서 이를 차지하기 위한 무인들의 치열한 혈투가 종종 벌어지곤 했다. 간단히 말해 오유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물질이 바로 이 밀정인 것이다.
밀정 한 줌만 있으면 신기(神器)든 주황색 부적이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니고 있는 자가 극히 드물었다.
심성하의 말에 대부분 무인들의 안색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자, 낭비할 시간이 없으니, 당장 경매를 시작하겠소. 시작가는 밀정 천 개로 하고, 그다음부터는 백 개 단위로 제시해주면 되겠소.”
심성하가 말을 마치자 대전 안이 고요해졌다.
하지만 심성하는 조급하지 않았다. 급한 것은 자신이 아닌 경매에 참가하려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때, 검은 장포를 입은 노인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천 이백 개!”
장내 무인들의 시선이 곧 노인에게로 향했다. 검은 장포로 전신을 가린 노인은 얼굴에도 반쪽짜리 면구를 착용 한 상태였다.
신분을 숨길 생각이었던 것이다.
심성하는 아무 말 없이 노인을 흘깃 쳐다보았다.
반면, 반대쪽에 자리해 있는 진천은 두 눈을 감은 채 경매에 참여할 의사가 없어 보였다.
그렇게 경매가 시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매가는 밀정 이천 오백 개까지 불어났다. 게다가 그 가격은 계속해서 높아져 갔다.
* * *
같은 시각 부문종 조사전 내.
엽현은 부소천의 지도를 받으며 자색 부적을 쓰는데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세 번의 실패를 거듭한 상태였다.
이에 보다 못한 부소천이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하고 지적하기도 하며 이해를 도왔다. 그 결과 마침내 엽현은 자색 부적 한 장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부소천은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충분하지 않다. 한 장을 그리더라도 완벽해야 한다. 그래야만 부문의 위력이 십분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찢어버리고 다시 그리도록 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엽현은 곧장 부적을 찢어버리고 다시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이때 무언가를 느낀 부소천이 고개를 들어 문밖을 바라보았다.
“저 탑이 왜…….”
마침내 멀리 떨어져 있던 탑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이다.
* * *
다시 부문전.
경매가는 미친 듯이 불어나 어느새 밀정 오천 개를 돌파한 상태였다.
대부분의 무인에게 밀정 오천 개는 듣도 보도 못한 천문학적 가치였다.
이는 제 아무리 부유한 부문종이라도 한 번에 마련할 수 없는 숫자이기도 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진천은 경매 장면을 지켜보고만 있을 뿐, 아직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성하는 진천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계옥탑을 얻는 것이 누가 되었든 결국 만유서원과 협의를 해야만 하기에 진천은 이토록 여유로울 수 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만유서옥은 만유서원 안에 있으니까.
급하지 않은 것은 심성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계옥탑을 포기할 뜻을 내비친 이상 나머지 세력이 자신들을 공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편하게 경매를 지켜보며 밀정이나 챙기면 그뿐이었다.
잠시 후, 계옥탑의 경매가는 밀정 팔천이백 개가 되었다.
가격을 제시한 이는 처음 호가를 불렀던 그 흑의 노인이었다.
그러자 이 노인에 대한 무인들의 호기심은 점점 높아져 갔다.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렇게 많은 밀정을 보유하고 있는 것일까?
“밀정 구천 개!”
흑의 노인이 구천 개를 부르자 더 이상 따라오는 이는 없었다. 그리하여 계옥탑은 결국 흑의 노인에게 낙찰되었다.
경매가 끝난 후, 심성하가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노인이 손가락을 튕겨 납계 하나를 날려 보냈다.
심성하가 납계를 확인하자, 과연 밀정 구천 개가 들어 있었다.
심성하는 고개를 들어 노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밀정 구천 개를 한 번에 내놓을 세력은 오유계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심성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펼쳤다. 그러자 작고 희미한 검은 탑 하나가 노인의 앞에 떨어졌다.
계옥탑!
“과연 심 종주께선 결단력이 있으시구려.”
진천의 말에 심성하가 가볍게 웃어 보이고는 장내 무인들을 향해 돌아섰다.
“자, 경매는 끝났소. 계옥탑은 이제 우리 손을 떠났으니, 앞으로 두 번 다시 이 일로 부문종을 찾는 일이 없었으면 하오!”
이에 대전 안팎의 시선이 일제히 흑의 노인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노인은 이런 관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떠나가려 했다.
이때, 진천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디의 누구인지 물어봐도 되겠소?”
하지만 노인은 진천마저 무시한 채, 순식간에 먼 하늘로 날아갔다.
이 모습을 본 무인들은 이내 뿔뿔이 흩어졌다. 그중에 몇몇은 노인의 뒤를 쫓기도 했다.
대전 안.
노인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진천이 심성하에게 말했다.
“심 종주,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소?”
“물론이오. 어디 말 해 보시오.”
“후후… 내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엽현 그놈은 분명 부문종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오. 놈을 잡고자 하는데 그대 부문종이 날 좀 도와줬으면 하오.”
“…….”
“물론 대가는 치르겠소.”
진천이 손을 펼치자 검은 책 한 권이 그의 손 위로 떠 올랐다.
“이는 ‘그분’이 떠나시기 전 남겨 놓으신 것이오. 내용 중에는 부문도에 대한 심득과 강해도 들어 있소. 내 생각엔 그대들 부문종에게 매우 유익할 것 같소만…….”
그 말을 듣자 심성하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선각자가 남긴 심득!
그동안 부문종은 선각자가 남긴 고서를 계속해서 요청해 왔으나, 만유서원 측은 그때마다 핑계를 대며 번번이 고사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진천이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물건을 선뜻 보상으로 내놓은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심성하는 여러 번 생각 하지 않고 협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만큼 선각자의 부문도는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저 책 안에는 전설 속의 칠색 부적을 만드는 법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심성하가 수락하자 진천이 웃으며 대답했다.
“간단하오. 그저 부문종의 어떤 물건을 한 번만 이용하면 되오.”
“…천안부(天眼符) 말이오?”
“바로 그렇소.”
“…….”
심성하가 즉답하지 않자 진천이 손 안의 고서를 눈앞으로 들어 보였다.
“한 번이면 족하오. 그러면 이 책은 그대의 것이 될 것이오.”
심성하는 잠시 침묵했다.
천안부.
이는 오래전 그들의 조사인 부소천이 제작한 칠색 부적이었다. 이 천안부의 주된 능력은 다름 아닌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이었다.
엽현이 천하무쌍의 은신술을 사용하는 이상, 그를 찾아내기 위해선 이 천안부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엽현만 찾아 준다면 그다음부터는 내가 알아서 하겠소. 부문종에 손해 갈 일은 하등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
“심 종주, 내가 알기로 그대의 부문도는 꽤나 오랫동안 정체된 상태로 알고 있소. 이 책을 손에 넣는다면 그대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게 되는 것이오. 그대뿐이 아니라, 부문종 전체의 기회를 걷어찰 작정이오?”
이 말에 잠시 고민하던 심성하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하겠소!”
“하하하, 잘 판단하셨구려!”
심성하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 위로 일곱 가지 색을 영롱하게 뽐내는 부적 한 장이 떠올랐다. 이 부적을 보자 진천의 안색이 매우 어둡게 변했다.
칠색 부적!
제아무리 진천이라 할지라도 칠색 부적 앞에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이때 심성하가 두 눈을 감고서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를 중심으로 파동이 일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부문종 전체로 뻗어 나갔다.
이때 심성하가 눈을 번쩍 떴다.
“조사전!”
말을 뱉은 순간 심성하의 신형이 사라졌다.
진천 역시 이와 동시에 사라졌다.
순식간에 조사전 앞에 이른 두 사람.
심성하가 거침없이 전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갑작스레 어떤 무형의 기운이 그를 휘감았다.
깜짝 놀란 심성하가 자리에 멈춰 섰다.
무슨 일이지?
이때 진천이 소매를 펄럭이자, 강대한 기운이 조사전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갔다.
그러나 이 기운은 조사전에 닿기 직전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를 본 순간 진천의 두 눈이 심각하게 가늘어졌다. 그는 곧 심성하를 바라보았지만, 심성하 역시 영문을 알지 못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바로 이때, 조사전 문이 활짝 열리더니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남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엽현이었다.
두 사람 앞에 멈춰 선 엽현은 처음에는 진천을 응시하더니, 이내 심성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후후… 내가 너의… 사조(師祖)가 되겠구나.”
“……?”
사조(師祖)!?
순간 심성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네가 내 조사부라니, 갑자기 정신이 돌아버리기라도 한 것이냐?”
이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심 종주, 네가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으니 들어오너라.”
이 말을 남기고 엽현은 조사전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 했다.
바로 이때, 진천이 엽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강대한 기운이 날아들어 엽현이 자리한 공간을 응고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 조사전 안에서 무형의 신비한 기운이 튀어 나왔다. 그러자 엽현의 공간이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간 것은 물론, 진천의 공력을 완전히 소멸시켜 버렸다.
이 장면을 본 진천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조사전 안에 또 다른 강자가 있었던 것이다.
“진천, 왜 그러고 서 있나? 어디 또 공격해 보시지?”
“…….”
엽현의 도발에 진천은 다시 주먹에 힘을 주었다.
이때, 조사전 안에서 가장 낮은 등급인 파란색 부적 한 장이 튀어 나왔다. 부적이 자신 쪽으로 날아드는 것을 본 진천이 깜짝 놀라며 황급히 주먹을 뻗었다.
쾅-!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파란 부적과 맞선 진천이 순식간에 부문종 밖으로 튕겨 날아가 버린 것이 아닌가!
순간 모든 무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한편 멀리 튕겨 나간 진천은 갈가리 찢겨 나간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부문종 조사전을 향했다.
대관절 누구이기에 고작 파란 부적으로 자신을 날려버릴 수 있단 말인가?
대체 누구지!?
다시 조사전 앞.
안색이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진 심성하는 심호흡을 가다듬고는 조사전 안으로 들어섰다.
이에 다른 무인들 역시 그 뒤를 쫓으려 했지만, 신비한 힘에 가로막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실내로 들어온 심성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엽현, 그리고 그의 곁에 자리하고 있는 한 중년인이었다. 이 중년인을 본 순간 심성하는 돌연 손과 발을 떨기 시작하더니, 감격스런 얼굴로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조사를 뵈옵니다!”
부소천은 발밑에 있는 심성하를 잠시 내려다보고는 웃으며 말을 꺼냈다.
“천부사(天符師)?”
“그렇습니다!”
“성취가 꽤나 대단하구나. 일어나거라.”
부소천은 웃으며 곁에 있는 엽현을 가리켰다.
“여기 이 녀석은 얼마 전 내가 거둔 제자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