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52
852화 선전포고
조사의 제자!?
그 말을 들은 순간 심성하는 자칫 까무러칠 뻔했다.
조사의 제자라니, 그럼 자신에겐 무엇이 되는가?
응당 엽현이 말한 대로 그는 자신의 사조가 되는 셈 아닌가!
“조, 조사……. 외람되오나 어찌 된 일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심성하는 엽현이 자신이 조사가 된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에 부소천이 웃으며 반문했다.
“안 될 것이라도 있느냐?”
“그, 그것이… 엽현은 계옥탑을 이유로 만유서원과 적이 된 상태입니다. 게다가 그에게는 수많은 인과가 얽혀 있으니 자칫 그와 인연을 맺었다간 우리 부문종에 안 좋은 일이…….”
심성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이에 부소천이 말했다.
“이는 부문종에게 있어 하나의 기연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조사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현재 부문종은 그와 관련된 분쟁에서 발을 빼려 하는 차였습니다.”
부소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종주로서 종문의 안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지. 그러나 살다 보면 원하지 않아도 의외의 일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어쨌거나 여기 이 아이는 이미 내 제자가 되었으니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종주인 네가 판단할 일이다. 물론 네가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즉시 떠나보내도록 할 것이다.”
부소천의 말에 심성하가 쓴웃음을 지었다.
“조사께서 결정하신 일에 어찌 제자가 토를 달겠습니까? 부문종은 조사의 뜻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허허, 그거 잘 되었구나. 내 이미 이 아이에게 나의 전승을 모두 전해 주었다. 다만 아직 부문도의 심오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으니 네가 앞으로 곁에서 잘 보좌해 주길 바란다.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심성하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허허, 그나저나 지금 부문종 안에서 칠색 부문을 그릴 수 있는 자가 있느냐?”
칠색 부적?!
순간 심성하가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후손들이 무능하여 조사가 입적하신 이후로는 단 한 명의 제자도 칠색 부문을 그리지 못했습니다.”
“음……. 대충 예상은 했다만.”
“조사께서 우매한 제자들을 위해 가르침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심성하가 다시 고개를 숙이자 부소천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흠……. 사실 칠색 부적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너희의 자질이 부족한 것 때문이 아니니 자책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 세상에 한 가지가 부족해 만들지 못했을 뿐이다.”
심성하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부족한 한 가지라면… 그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기(氣)다. 한 세계가 창조될 때 모두 자신만의 선천지기(先天之氣)를 간직하게 된다. 우리 쪽 세상의 선천지기는 바로 혼돈지기였지. 세상의 창조와 함께 생겨난 혼돈지기는 무인들에게 커다란 효능을 가져다준다. 비록 그 양이 소량이긴 하지만, 얼마든지 재생되는 만큼 아껴 쓰기만 한다면 모두에게 충분히 돌아갈 수 있었다.”
부소천이 헛기침을 한 후 말을 이어갔다.
“당시 선각자께서 계실 때만 해도 오유계의 질서가 안정적이었던 터라 혼돈지기를 독차지하려는 자가 없었지. 하지만 그 분이 사라지자마자 질서는 무너지고 무인들이 탐심을 드러낸 탓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혼돈지기가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 혼돈지기가 없으면… 제 아무리 부문도에 대한 조예가 깊어도 칠색 부적을 만들어 낼 수 없다.”
혼돈지기!
부소천의 말에 엽현은 속으로 다소 놀랐다. 그 사라졌다는 혼돈지기는 바로 자신의 몸에도 있지 않은가. 단지 그 혼돈지기는 아무리 사용해도 고갈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소천이 말한 혼돈지기와는 달랐다.
이때 연천의 음성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네게 있는 그것은 바로 혼돈지기의 기원(氣源)이다. 그것만 있으면 얼마든지 혼돈지기를 생산해낼 수 있지. 다만 과도하게 뽑아 쓰면 영영 사라질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혹시 혼돈지기를 탑에 넣어 둔 것은 선각자였어?] [선각자가 아니라 큰 언니였다. 당시 탑이 우리를 데리고 떠나려 할 때, 큰 언니가 부탁해 혼돈지기의 기원을 탑 안에 보관할 수 있었지. 물론 이는 독점하려 했던 게 아닌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군.]고개를 돌린 엽현은 부소천과 눈을 마주쳤다. 부소천은 그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엽현은 직감적으로 상대가 자신에게서 혼돈지기를 느꼈음을 알아차렸다.
이때 심성하가 엽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엽사…조는 칠색 부적을 쓸 수 있습니까?”
이에 엽현 대신 부소천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 아마도 현재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칠색 부적을 만들 수 있는 자는 이 아이뿐일 게다.”
그 말을 듣자 심성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어쨌거나 이 부문종은 계속해서 너희 세대들이 잘 이끌어가길 바란다. 단, 기억하거라. 부문종은 천하제패를 추구하진 않지만, 누구에게 멸시받아서도 안 된다는 것을.”
말을 마치자 부소천의 모습이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부, 이제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엽현의 물음에 부소천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인간의 삶은 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 태어난 날이 있다면 돌아가는 날도 있지 않겠느냐? 죽음은 두렵지 않다. 다만 두려운 것은 의미 없이 살다 가는 것이다. 그러니 하루를 살더라도 세상을 즐기고 주변 사람을 아끼며 살아가거라. 사람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의미 없이 사는 것이고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죽을 때 아쉬움이 남는 것이니라.”
이 말을 마친 부소천은 결국 장내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엽현과 심성하는 그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잠시 후, 심성하가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 저… 사조…….”
“하하, 사조가 아니라 그저 엽현이라 부르시오.”
심성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조사의 적전제자이시니 응당 작은 사조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하하, 심 종사. 마음은 알겠으나 이러지 마시오. 알다시피 만유서원과 나의 관계가 껄끄러운 상황에서 부문종에 폐를 끼치고 싶진 않소.”
“어디 그런 말이 있습니까? 작은 사조께서는 조사의 전승을 이어받으신 적전제자이십니다. 그러니 무어라 하시든 우리 부문종은 사조로 받아들일 것이며 누가 사조를 괴롭히거든 최선을 다해 보호해드릴 것입니다!”
“아니, 그러지 않아도 되는…….”
엽현이 무어라 말하려 할 때 심성하가 그의 말을 잘라냈다.
“작은 사조, 사조께서는 전승을 이어받으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으니 아직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러니 이곳에 머무르시면서 저와 다른 장로들의 도움을 받으신다면 부문도의 조예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 그래 주면 고맙긴 하겠소만……. 알겠소!”
엽현은 심성하의 제안을 수락했다. 심성하의 말대로 그의 부문도는 아직 미흡한 점이 많았다. 만약 부문종에 한동안 남아 수련을 할 수 있다면 부소천의 전승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을 듯했다.
이때 엽현은 잊고 있던 뭔가가 떠올랐다.
“그나저나 저 만유서원은…….”
“그건 제가 나서서 처리하겠습니다.”
“괜찮겠소? 그래 주면 고맙긴 하겠소.”
잠시 후, 두 사람은 조사전 밖을 나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진천이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엽현과 심성하가 나란이 서 있는 것을 본 진천은 심성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심 종주, 이게 무슨 뜻이오?”
“진 부주, 탑은 이제 이곳에 남아 있지 않으니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어떻겠소?”
그 말에 진천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어찌, 설마 부문종이 이 자를 보호하기라도 하겠다는 것이오?”
“그렇소!”
심성하가 진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하자, 순간 장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변했다.
부문종이 엽현을 옹위한다!?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다름 아닌 만유서원의 체면을 살려주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
이때 한참을 심성하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던 진천이 웃으며 말해다.
“심 종주, 이유나 알려 주시오. 왜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이오?”
“그는 이미 우리 부문종의 사람이 되었소. 그러니 종문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소.”
“하하하, 진심으로 하는 말이오?”
“진심이오. 진 부주야 말로 물건도 이곳에 없는데 굳이 살계를 열어야겠소?”
“그건 안 될 말이오. 그대도 알지 않소? 엽현을 살려두면 큰 위협이 되리라는 것을!”
“그대 입장은 이해하지만, 이미 부문종의 사람이 되었으니 어쩔 수 없소.”
이에 진천이 미친 듯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부문종 놈들! 그동안 오냐오냐해 주었더니 기고만장을 하는구나! 네 눈엔 만유서원이 그리 만만해 보였더냐!”
“…….”
진천이 주변에 있던 부문종의 무인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좋다! 기왕 너희가 엽현을 보호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어디 함께 죽어보아라!”
이 말을 끝으로 진천이 떠나갔다.
심성하는 진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색이 어두워졌다.
진천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만유서원은 공식적으로 부문종을 향해 선전포고를 발표했다.
부문종 뿐 아니라, 그와 교류하는 세력들 또한 적으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부문종과 거래하고 있던 수많은 세력들이 하나둘 관계를 끊기 시작했다. 다만 몇몇 강대 세력들이 부문종을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오유계의 구도는 부문종 측과 만유서원 측으로 양분화되어 갔다.
* * *
부문종, 부문전.
전 내에는 부문종의 장로들은 물론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전대 무인들까지 모인 상태였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종주인 심성하 곁에 자리한 엽현이었다. 엽현의 뒤편으로는 각각 부문종 이인자인 소목천과 삼인자인 류웅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보다 상석에 앉아 있는 엽현을 바라보며 다소 언짢은 듯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왜?
이처럼 느끼는 것은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무인들은 심지어 엽현이 이 자리에 있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종주가 어찌하여 만유서원과의 일전을 불사하면서까지 엽현을 보호하려 하는지, 모두의 머릿속에는 의혹이 가득할 뿐이었다.
이때 한 노인이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종주,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저 녀석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입니까? 아니, 그 이유는 둘째 치고 우리 부문종이 어째서 저 녀석 때문에 만유서원과 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이는 결코 종문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습니다!”
이때 반대편에 있던 중년인이 나섰다.
“만유서원은 선전포고와 동시에 제자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세가와 종문들 역시 저들의 압박을 받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갈수록 불리한 것은 우리 부문종이 될 것입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저희들의 공통적인 생각은 만유서원을 적으로 돌릴 정도로 엽현이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무인들의 불만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종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저 불길한 녀석을 당장 내쳐버리고 만유서원과…….”
“조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