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53
853화 한 식구가 되다
이때 침묵하고 있던 심성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심성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이자 발언하던 중년인이 곧바로 입을 닫았다.
잠시 후, 대전 안이 잠잠해지자 심성하가 아래쪽의 무인들을 내려다보며 말을 꺼냈다.
“내게 말 할 기회조차 주지 않을 셈인가?”
“…….”
모두가 침묵하자 심성하가 엽현을 향해 웃으며 물었다.
“사조께서 직접 말씀하시겠습니까?”
사조!?
심성하의 입에서 이 단어가 튀어나오자 부문종의 무인들이 눈을 크게 뜨고 엽현을 바라보았다.
뒤편에 있던 류웅과 소목천 역시 불신 가득한 눈빛으로 엽현을 응시했다.
사조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이에 류웅이 참지 못하고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심성하의 힘 있는 음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그대들 역시 얼마 전 조사전에서 벌어졌던 소동을 기억할 것이다. 예상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날 조사께서 현신하셨다.”
조사의 현신!
무인들의 낯빛이 순식간에 크게 바뀌었다.
조사라면, 그들이 전설로 여기는 그 부소천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 부문종 제자들의 마음속에 부소천은 전설을 지나 이미 신이나 마찬가지인 존재 아닌가!
부문종을 세우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칠색 부적을 사용했던 그 부소천이 종문 내에 나타났다!?
그들의 혼이 나가거나 말거나 심성하의 말은 계속됐다.
“조사께서는 친히 여기 엽현 사조를 적전제자로 삼으시고 모든 전승을 전수 해 주셨다. 사조는 이제 우리의 희망이자 미래가 되었다. 그는 이미 칠색 부적을 다룰 수 있으니 말이다.”
칠색 부적이라고?!
그 말에 엽현을 바라보는 무인들의 표정에 복잡한 기류가 흘렀다.
이때 류웅이 나섰다.
“종주, 조사께서 또 달리 남기신 말은 없었습니까?”
“내게 사조를 잘 보필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물론 첨언하시길, 만약 사조로 인해 종문이 입을 피해가 크다고 생각된다면 내보내도 된다고 하셨다.”
“그건 아니 될 말입니다!”
이때 소목천이 크게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사의 전승을 물려받았다면 이유야 어쨌든 부문종의 식구가 아닙니까? 식구가 된 사람을 어찌 내친단 말입니까?”
류웅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께서 이렇게 안배하신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류웅이 엽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조의 상황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조를 위기에서 구하는 일입니다.”
이에 다른 한 명의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조가 우리 사람이 된 줄 알면서도 죽이려 드는 것은 명백히 부문종을 얕보는 것입니다. 저들이 이렇게 나온 이상 참아선 안 됩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만유서원에서 먼저 전쟁을 일으킨 이상 피해선 안 됩니다. 건의하건대 외부에 나가 있는 제자들을 모두 불러 모아 전투 준비하십시오. 우리 늙은이들도 열심히 손을 놀려서 부적을 최대한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일찍이 우리의 도움을 받은 적 있는 세력들에게도 연락을 취해 우리 쪽에 서도록 설득해야 합니다!”
이에 류웅이 나섰다.
“모두 맞는 말입니다. 누가 진정한 아군인지는 이번 기회로 판명될 것입니다. 전쟁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지금 기세에서 밀려버린다면 아직 중립에 있는 세력들이 만유서원의 편에 서버릴 것입니다. 그러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예 강하게 선공을 가해 우리가 겁먹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모두의 시선이 류웅에게 향했을 때 그가 소리쳤다.
“바로 무인들을 보내 만유서원의 제자들을 쳐 버리십시오!”
“그렇게 되면 정말로 영영 화해할 가망이 없어지는 것 아니오?”
소목천이 근심 어린 얼굴로 말하자 류웅이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보시오. 사조의 재능은 누구와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고 거기에 조사의 전승까지 이어받았소. 그 진천이 사조를 살려 두려 하겠소?”
그 말에 소목천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류웅의 말처럼 엽현은 자질도 그렇고 실력 또한 오유계 무인들과 비교해 발군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사조의 전승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되면 누가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오유계 최강을 자처하는 만유학부로서는 이보다 더한 눈엣가시가 없는 것이다!
이때 류웅이 심성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만유서원은 반드시 사조를 제거하려 들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선공을 취한다면 두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첫째, 방심하고 있을 만유서원의 허를 찌를 수 있고 둘째, 우리가 저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한 세력들을 우리 쪽으로 오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심성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 보거라.”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의 실력은 만유서원보다 조금 못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가 크지 않기에 정면 대결이 벌어졌을 시 설령 우리 부문종이 멸망하더라도 저들 역시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받을 것입니다. 만유학부 역시 이 점을 모르지 않을 터입니다. 저들은 반드시 다른 세력들을 끌어드리려 할 것입니다. 그것도 매우 강력한 세력들을 말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류웅이 한숨 돌리고 말을 이어갔다.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주황색 부적 같은 강력한 부적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다른 세력들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작업도 병행해야 합니다. 이는 제게 맡겨주시면 확실히 처리하겠습니다.”
심성하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준다면 안심이구나. 네게 맡기마.”
심성하는 곧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조, 조금 전 이야기 한 것처럼 당분간은 절대 종문 밖으로 나가지 말고 부적을 제작하는데 집중해 주십시오. 혹시 칠색 부적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이는 전쟁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 놓을 것입니다.”
이때 엽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 우연찮게 사부의 전승을 이어받은 나를 일원으로 받아 주어서 고맙소.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소. 솔직히 말해 나는 그리 재수가 좋은 놈이 아니오. 내가 이곳에 있음으로써 부문종 전체가 끊임없이 시달림을 당할 것이오. 그럴 바에야 모두를 위해 부문종을 떠나는 게 좋다는 게 나의 생각이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부문종을 이용해 만유서원과 싸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부문종 조사에게 은혜를 입은 마당에 폐를 끼치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이때 류웅이 엽현을 향해 말했다.
“사조,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만약 조사의 전승을 이어받은 사조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부문종은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그리되면 우리 늙은이들은 어찌 조사의 영전 앞에 낯을 비추겠습니까? 그러니 사조께서는 여러 생각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비록 만유서원보다 강하진 않으나 그렇다고 쉽게 무너질 정도로 나약하진 않습니다!”
소목천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조께서는 오유계로 넘어오신지 얼마 되지 않아 부문종의 실력을 잘 모르고 계십니다. 부문종이 이곳에 터를 잡은 지도 수만 년입니다. 부문종은 오유계 최강인 적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남의 멸시를 받아본 적도 없습니다.”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내게도 사유계의 친구들이 있소. 그들의 실력은 나에 못지않게 강하니 그들을 이리로 부르면 어떻겠소?”
“그 소칠과 안란수 등을 말하는 것입니까?”
심성하가 웃으며 묻자 엽현이 의외라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하하, 이상하게 여기실 것 없습니다. 사조의 내력에 대해선 우리 역시 조사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그들이라면 분명 전력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럼 그들을 데려와도 좋겠소?”
“물론입니다. 헌데 듣기로 그들은 사조를 대신하여 사유계를 수호하는 중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걱정스럽소. 그들이 자리를 비웠을 때 오유계 무인들이 들이닥치기라도 하면…….”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떻습니까? 제가 그들을 대신할 무인을 파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의 능력이라면 최소한의 방어는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구려! 고맙소!”
“하하, 작은 일일 뿐입니다.”
심성하가 곁에 있던 소목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는 가서 쓸 만한 제자 몇을 선발하고, 주황색 부적 두어 장을 주어 사유계로 보내거라. 그리고 그들에게 아는 이를 만나거든 부문종의 체면을 생각해 돌아가기를 종용하고, 적을 만나거든 죽이라고 이르거라.”
“그리하겠습니다, 종주.”
소목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장내를 빠져나갔다.
심성하가 다시 엽현을 향해 말했다.
“이러면 얼추 준비는 끝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조께서는 당분간 종문을 떠나선 안 된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문에 남아 부문도 연구를 하도록 할 것이오.”
“하하, 그럼 제가 시간이 되는 대로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조께서는 바깥일에 신경 쓰지 마시고 전승을 이해하는데 집중하도록 하십시오.”
이에 류웅이 거들고 나섰다.
“지금까지는 유아독존으로 지내셨지만, 이제는 저희가 있습니다. 부문종이 끝까지 사조와 함께 할 것이니 이제는 마음 놓고 지내십시오.”
사실 부문종의 대부분 무인들은 엽현에 대해 만족하는 편이었다.
엽현 덕분에 부문종에 조사의 전승이 돌아왔을 뿐만 아니었다. 엽현 자체의 실력 또한 대단하기 때문이었다.
부문종 제자 중에는 부문도에 정통한 이들이 제법 되었으나, 전투력 면에서는 다소 부족했다. 그런데 엽현의 전투력은 가히 공포스럽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부문사들만 우글거리는 부문종 입장에서 엽현은 만유서원과 전쟁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낼 가치가 있는 존재인 것이다.
엽현은 부문종이 이렇게나 자신을 지켜주려 하는 것에 대해 대단히 의외라고 느꼈다.
그를 보호하고자 하면 만유서원과 맞붙어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문종 무인들은 하나 같이 진심이었다.
단결.
부문종은 생각보다 내부 결속이 잘 돼 있는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큰 종문이 하나로 단결되지 않는다면 이렇게 오래 유지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느 조직이든 간에 내부적인 마찰이 없을 순 없다. 다만 위기가 닥쳤을 때도 하나로 뭉치지 못한다면 그 조직은 이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엽현은 부문종에서 지내며 부문도를 익히는데 전념했다.
기존의 무공과는 결이 다르기 때문인지, 엽현은 부문도를 익힐수록 더 많은 흥미를 느꼈다.
확실히 부문도는 매우 광오하고 심오한 무공이라 세상의 여러 이치를 두루 알아야만 했다. 예를 들어 공간에 관련된 부적을 쓰려면 공간에 대해 이해를 해야 하고, 화염부적을 제작하고자 하면 불에 대해서 정통해야만 한다.
엽현이 특히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공간부적이었다. 그에게 공간도칙이 있기 때문이었다.
공간도칙이 있음으로 절반 이하의 노력으로도 충분히 공간부적을 만들 수 있었고, 거기에 심성하의 지도까지 더해지니 자색 공간부적 정도는 손쉽게 그려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본 심성하는 감격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의 눈에 비친 엽현은 그야말로 부문을 그리기 위해 태어난 천재였던 것이다!
드디어 부문종에 천재가 나왔다!
물론 그는 엽현의 공간도칙의 존재를 알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이로 인해 부문종 전체가 들끓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엽현은 부문도에 점점 더 빠져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