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54
854화 죽여라
부문전.
대전 입구에 서서 밖을 바라보는 심성하. 그의 곁에는 류웅이 자리하고 있다.
“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는가?”
“공식적으로 우리를 지지하고 나선 것은 청국(青國), 천음전(天音殿), 천가(千家), 그 외에 몇몇 소종문들입니다. 그리고 연기종(煉器宗), 단종(丹宗), 무종(武宗), 무변도(無邊島) 등 주요 세력들은 아직까지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흠…….”
“아무래도 그들은 쉽게 결정하는 대신 관망하는 쪽을 택할 듯합니다.”
“만유서원의 그 ‘여부자(女夫子)’의 동향은 어떤가?”
여부자!
그 말에 류웅의 표정이 딱딱하게 변했다.
비록 현재 만유서원의 부주는 진천이지만, 이 여부자야말로 실력으로 보나 영향력으로 보나 그들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인물이었다.
선각자의 수많은 제자들 중 이 여부자는 단연 군계일학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의 학문적 지식은 선각자 다음이고, 진정한 실력 또한 측정 불가한 상태였다. 다만 그녀가 정이 많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등 많은 선행을 일삼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심지어 부문종조차 그녀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으니까.
만약 그녀가 원하기만 했다면 만유서원의 부주 자리는 진천이 아닌 그녀의 차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더라면 오유계는 지금보다 더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쉽게도 선각자가 사라진 후, 그녀 역시 어느 날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
혹자는 선각자를 찾아 떠난 것이라 하지만, 내막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심성하가 그녀를 언급한 이유는 간단했다. 만약 그녀가 이 시기에 돌아오게 된다면 대부분의 세력들이 만유서원 쪽으로 붙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별다른 소식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녀가 돌아온다면 전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테니까.”
류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써는 시간은 우리 편이다. 사조는 이미 상품 자색부적을 익숙하게 그려 낼 정도가 되었다. 그것도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종주, 그 말이 사실입니까?”
류웅의 얼굴엔 믿기 힘들다는 기색이 흘렀다.
이에 심성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색 부적을 완벽에 가깝게 그린다는 것은 조만간 주황색 부적도 만들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조사의 말처럼 우리 중 칠색부적에 가장 근접한 자는 어쩌면 사조일지도 모른다.”
칠색부적!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때까지 사조를 지켜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네가 연기종을 한 번 다녀오너라.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던 간에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 편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조를 지켜낼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니까.”
“반드시 설득해 내겠습니다!”
“또한 외부에 나간 제자들을 불러들이는 것도 잊지 말거라.”
“이미 그리 일러 놓았습니다.”
“후후……. 역시 일 처리 하나는 완벽하군.”
“만약 사조께서 정말로 칠색 부적을 만들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부문종의 운명을 바꿀 사건이 될 것입니다.”
부문종은 칠색 부적을 보유하고 있긴 하나, 이는 모두 부소천이 남긴 것으로 그 양이 결코 많지 않았다. 그들이 일류 세력을 넘어 초일류가 되지 못하는 주된 원인은 바로 종문 내에 칠색 부적을 만들 수 있는 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 상황에서 만약 누군가 칠색 부적을 만들 수 있게 되면 부문종의 지위는 수직상승하여, 말 그대로 초월적인 세력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조사인 부소천 이후로 그런 부문사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아주 뜻밖에도 엽현이 그들의 염원을 이뤄줄 희망이 된 것이다!
* * *
엽현이 묵고 있는 숙소.
엽현은 시간 가는지도 모른 채, 부적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바로 완벽한 공간부적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소위 완벽한 부적이란, 조금의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것을 말한다.
이 과정이 결코 녹록지 않은 탓에, 엽현은 수십 차례가 넘는 실패를 경험해야만 했다.
그러나 좌절하진 않았다. 실패할 때마다 그만큼 얻는 것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엽현은 방 안에 틀어박혀서 외부 일에 일절 신경 쓰지 않은 채로 부적 만들기에 집중했다.
사흘 후.
방문이 벌컥 열리고 엽현이 잔뜩 흥분된 모습으로 밖으로 나왔다. 손에는 자색 부적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이때 때마침 심성하와 몇몇 부문사들이 엽현 앞에 나타났다. 엽현 손에 들린 자색 부적을 본 순간 무인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이렇게 완벽한 부적을 만들어 내다니!”
“정말로 완벽한 자색 부적입니다!”
흠잡을 데 없는 부적이었다.
이런 완벽한 부적을 만들어 내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부문사인 그들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부문종을 통틀어도 완벽한 자색 부적을 쓸 수 있는 이는 단 두 사람뿐이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심성하였다. 심성하마저 그의 나이 백 세가 되었을 때야 이룩한 경지를 젊디젊은 엽현이 해냈으니, 이 얼마나 놀랄 일인가!
그는 겨우 약관의 나이가 아닌가!
“하하하, 사조, 훌륭합니다. 아주 훌륭합니다!”
감탄한 심성하가 크게 웃으며 기뻐했다.
“사조, 이 부적을 제게 주실 수 있습니까?”
“종주가 쓰려는 것이오?”
“하하, 부문전 앞에 두어 제자들에게 자극을 주고자 합니다.”
“…….”
“우리 부문종에 천재가 탄생했는데 숨길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시오?”
“하하, 물론입니다. 만약 우리의 힘이 약했더라면 적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비밀로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약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부문종에 천재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퍼지면 적들은 우리를 더욱 두려워하게 되겠지요. 특히 이는 종문 내부의 사기를 진작시킬 뿐 아니라, 부문종을 따르는 다른 세력들과의 관계를 더욱 견고히 하는 역할도 합니다. 그러니 전혀 숨길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오.”
“하하, 이제 자색 부적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 다음은 주황색 부적 차례입니다.”
주황색 부적!
엽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색 부적 정도에서 만족할 엽현이 아니었다. 기왕 부문도에 입문한 이상 주황색 부적뿐 아니라, 언젠가는 칠색 부적까지도 그려내길 원했다. 물론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빠른 시일 내에 완성해야 했다.
그날부터 엽현은 주황색 부적 연구에 전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는 계옥탑을 잊지는 않았다.
* * *
부문종에서 매우 멀리 떨어진 어느 황무지.
고요하던 이 땅에 흑의 노인 하나가 도착했다. 그가 막 땅을 밟자마자 그의 앞에 무인 몇이 나타났다.
노인이 무인들을 쓱 훑어보고 있을 때, 무인 중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그대 몸에 있는 그 물건…….”
바로 이때, 흑의인이 돌연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무인들 뒤편으로 십여 장 떨어진 곳이었다.
무인들의 몸에는 칠흑처럼 어두운 기운이 조그마한 흑점처럼 묻어 있었다. 이 기운은 점점 무인들의 육신을 따라 번져 나가더니, 마침내 그들을 모두 집어삼켜 버렸다.
무인들이 모두 사라진 후, 이 검은 기운들은 순식간에 흑의노인의 몸 안으로 돌아왔다.
발걸음을 재촉한 흑의 노인은 곧 피처럼 붉은 문 앞에 도착했다.
그가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문 안에서 웬 여인 하나가 걸어 나왔다. 노인이 여인을 보자마자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주인!”
노인이 주인이라고 부른 여인.
그녀는 다름 아닌 엽령이었다.
이때의 엽령은 붉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전신에서 매우 기이한 검붉은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편으로 두 명의 노인이 호위하듯 자리하고 있었다. 두 발은 지면에 스치듯 공중에 떠 있고, 형체가 희미한 것이 마치 귀신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엽령이 말없이 손을 내밀자, 흑의 노인이 황급히 두 손으로 계옥탑을 바쳤다. 가만히 손 안에 들어온 계옥탑을 바라보는 엽령.
“죽였느냐?”
“죽은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부문종이 경매를 열었고, 밀정을 사용해 쉽게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엽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계옥탑이 그녀의 손 안에서 가볍게 몸을 떨었다. 마치 무슨 할 말이 있다는 듯이.
그러나 엽령은 탑을 응시하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주인, 만유서원이 부문종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그 말에 엽령이 고개를 들어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부문종에 있느냐?”
“그렇습니다. 엽현은 부문종 조사의 전승을 이어받고서 이미 부문종 사조의 대우를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천은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
바로 이때, 그들의 앞에 하얀 장포를 입은 노인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엽령이 그를 바라보자, 백의 노인이 예를 갖춰 입을 열었다.
“만유서원의 천견(千見), 여제(女帝)를 뵙습니다.”
“만유서원?”
“그렇습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은 바로…….”
“이 자를 죽여라.”
말을 마친 엽령은 더는 볼 일이 없다는 듯 곧바로 문 안으로 사라졌다.
“…….”
죽여라!
엽령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그녀 뒤편에 있던 두 노인이 움직였다.
쉬쉭-!
두 줄기 붉은 광망이 백의 노인의 목 주변에서 번뜩이자, 그의 머리가 힘없이 잘려나갔다.
반격조차 해 보지 못한 채 육신과 영혼이 동시에 소멸한 것이다.
이윽고, 지면에 떨어진 백의 노인의 눈동자에선 불신의 기색만이 가득 차 있었다.
이에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던 흑의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백의 노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는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때, 막 문 안으로 들어가려던 엽령이 걸음을 멈췄다.
“만유서원의 무인들이 이곳을 찾거든 하나도 빠짐없이 죽여 버려라. 참, 그 여자는 빼고.”
말을 마친 엽령은 그렇게 문 안으로 사라졌다.
흑의 노인은 그녀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겨우 고개를 들 수 있었다. 그는 물론 자신의 주인이 말한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만유서원의 여부자.
감히 현재 오유계에서 가장 명성이 드높다 할 수 있는 인물.
이때 무언가 떠오른 흑의 노인이 눈앞의 두 노인에게 황급히 물었다.
“주인께서는 엽현을 어찌하길 원하십니까?”
이에 두 노인 중 하나가 대답했다.
“당장은 지켜보기만 하다가 중요한 순간이 닥치면 도움을 주도록 하거라.”
“좌존로(左尊老), 어찌 그래야 하는지 제가 알 수 있겠습니까?”
흑의 노인의 물음에 좌존로라 불린 자가 대답했다.
“이유는 알 필요 없다. 너는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할 뿐. 목수(牧修), 기억하거라. 그에게 절대 해가 될 짓을 하면 안 된다.”
이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엽현…….
목수라 불린 노인은 그의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며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