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55
855화 어찌 이럴 수가
만유서원, 서전.
진천이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의 앞에 정체 모를 흑의인 하나가 나타났다.
“죽었느냐?”
진천의 물음에 흑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라여제가 명하길 우리 만유서원 무인이 수라지옥에 발을 딛는 즉시 죽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어째서 말이냐?”
진천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묻자 흑의인이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알지 못합니다.”
“흠……. 그건 그렇고 그녀의 소식은 아직 없느냐?”
“그것이… 사방팔방으로 수소문하고 있지만,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이에 진천이 한숨을 내쉬며 서전 문 앞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선 진천이 하늘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옥개(阿改),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부주,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지금은 엽현을 노리기에 적합한 시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후후, 계옥탑도 그에게 없으니 굳이 부문종과 껄끄러워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냐?”
옥개라 불린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주께서 무엇을 염려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놈의 잠재력이 대단한 것은 사실입니다. 허나 그가 우리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우리 만유서원이 충분히 강해진다면 놈이 얼마나 강해지던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닙니까?”
이에 진천이 고개를 저었다.
“놈의 잠재력 따위는 두렵지 않다.”
“그럼 어째서 굳이 엽현을 제거하려는 것입니까?”
진천이 반문했다.
“옥개, 너는 오유계에서 우리 만유서원의 위치가 어떠한 것 같으냐?”
“…예전만 못합니다.”
그의 말대로 현재의 만유서원의 명성은 선각자가 있던 시절에 비하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었다. 옥개 역시 이 점을 모를 리 없었다.
진천이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 만유서원은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고 있다. 특별한 천재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이대로 가다간 채 백 년이 지나기 전에 오유계에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이는 허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만유서원엔 오유계 전체가 군침을 흘리는 물건이 있으니까.”
만유서옥!
선각자가 남겨 놓은 오유계 최고의 보물. 이 만유서옥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자는 온 세상을 통틀어도 몇 되지 않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유계의 강자들이 여전히 만유서옥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선각자와 여부자가 어딘가 살아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끝내 오유계에 나타나지 않고, 만유서원의 실력이 계속해서 약해진다면 어느 날 그들은 이빨을 드러낼 것이 분명하다.
가장 좋은 것은 만유서원에 천하를 호령할 만한 천재 무인이 등장하는 것이지만,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에 희망을 걸고 있을 순 없었다.
이때 잠시 침묵하던 진천이 입을 열었다.
“엽현을 죽이려 하는 것은 탑이 이미 그를 주인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저, 정말로 그가 탑의 주인이 됐단 말입니까?”
“확실하다.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계옥탑이 그에게 그리 협조적으로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계옥탑을 얻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이 바로 엽현이라는 것이다.”
옥개는 생각에 잠겼다.
만약 진천의 짐작대로 엽현이 탑의 주인이라면, 그들의 가장 큰 적은 엽현이 된다. 왜냐하면 만유서옥을 얻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이 엽현이기 때문이다.
설령 다른 이가 계옥탑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탑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만유서옥으로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진천이 말을 이어갔다.
“그뿐 아니다. 현재 모든 이들이 우리 만유서원을 주시하고 있다. 우리의 실력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고 싶은 게지. 만약 이번 부문종과의 대결에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들은 주저 없이 우리 만유서원을 물어뜯으려 들지도 모른다.”
“…….”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이다. 다만, 이미 일이 엎질러져 버렸으니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부주, 하지만 이는 서원을 걸고 도박하는 거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도박? 하하하!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서서히 죽어갈 것이 뻔한데 도박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진천이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어갔다.
“세인들은 모두 나 진천이 부주 자리를 찬탈했다고 여긴다. 하지만 재밌는 사실은 그녀가 내 권유를 뿌리치고서 만유서원을 떠났다는 것이지…….”
“…….”
옥개는 당시 사정을 제대로 아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진천의 말대로 그는 자신보다 훨씬 유능한 여부자를 두고 부주 자리를 다툴 생각이 없었다.
즉, 그녀가 원하기만 했더라면 그녀가 부주가 되었을 것이란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런 지위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휴……. 그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소식이라도 알고 싶습니다.”
만약 여부자가 건재하다면 만유서원의 상황도 지금과는 확연히 다를 터였다. 옥개를 포함한 만유서원의 무인들은 이 점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되었다. 지금은 그녀를 찾는 일보다 엽현을 해결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그가 탑의 주인이 된 이상 제거하지 않을 수 없다.”
“부주, 사유계의 그 여인은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하얀 소복의 여인!
순간 진천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잠시 후, 평정을 찾은 진천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당장은 그녀를 건드릴 필요 없다. 때가 되면 내가 직접 찾아가 상대할 것이다.”
옥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듣자 하니 이미 꽤나 많은 세력들이 부문종 편에 붙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부문종이 외부에 있는 우리 만유서원 제자들을 노리고 있다는 소식도 간간이 들리는 중입니다.”
“지금이라도 밖에 나가 있는 제자들에게 복귀 명령을 전달하거라. 삼 일 이내에 돌아오지 않을 시 반역자로 취급한다는 조항을 달아서. 그리고…….”
진천이 다소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
“무전각(武殿閣)의 무인들을 준비시켜 놓거라.”
무전각!
그 말에 옥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무전각이 나선다는 것은 완전히 끝장을 보겠다는 뜻이 아닌가!
하지만 현재 만유서원이 처해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결코 무리한 결정이 아니었다. 만약 자신들이 자신감 있게 치고 나가지 못한다면 오유계 내에서 그들의 위상은 실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 *
부문종.
어느 대전 안, 엽현은 여전히 부적을 제작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가 집중해서 만드는 것은 바로 공간류의 주황색 부적이었다.
공간에 대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엽현은 다른 종류의 부적을 시험하기보다는 우선 공간부적에 익숙해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주황색 부적은 자색 부적에 비해 과연 그 난이도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다. 조금만 방심하면 곧바로 찢어 버려야 하니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엽현이 이렇게 애를 쓰는 동안 심성하는 그의 곁에 붙어 부족한 점을 지적하며 일과를 보냈다.
이날도 오랫동안 엽현을 지도하던 심성하가 대전 밖을 나섰을 때, 류웅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종주, 좀 어떻습니까?”
“…….”
“왜 그러십니까?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심성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히려 너무 순조로워서 탈이다. 공간에 대한 그의 이해는 이미 놀라울 정도의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부적을 쓰는 것도 우리와는 확연히 다르다.”
“어떻게 다르단 말입니까?”
심성하가 대답 대신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주황색 부적 한 장이 떠올랐다.
“사조가 만든 것이다. 네가 직접 보거라.”
순간 부적을 들여다보던 류웅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이 부적……. 보통 부적에는 없는 기운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혼돈지기다. 이제 알겠느냐?”
“어, 어떻게 사조가 혼돈지기를…….”
“그건 나도 알 수 없다. 우리가 모르는 신비한 내력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흠… 어쨌거나 우리 부문종에게는 좋은 일입니다.”
심성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유서원 쪽의 동태는 어떠한가?”
“확실하진 않지만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흥, 그가 원한다면 우리도 그의 장단에 맞춰 줘야겠지.”
심성하가 류웅을 돌아보며 말했다.
“현재 주황색 부적이 얼마나 있는가?”
“대략 이백 장가량입니다.”
“절반을 가지고 죄악성(罪惡城)에 다녀오너라. 가능한 많은 병력을 데리고 와야 한다.”
죄악성!
“조, 종주. 하지만 그들은 다루기 쉬운 종자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심성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돈이면 무엇이든 하는 자들이다. 이런 일에는 오히려 적합하다 할 수 있지. 그리고 한 가지 더, 사유계에 가서 사조의 친구들을 데려오너라. 그들이 합류한다면 우리 부문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사람을 보냈으니 조만간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언제나 의외의 변수가 생길 수 있는 법이니 네가 직접 다녀와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구나.”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종주!”
이 말을 끝으로 류웅은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심성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엽현이 있는 대전을 바라보았다. 바로 이때 그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엽현의 곁에 방금 전까지 없었던 주황색 부적이 놓여 있던 것이었다.
그것도 매우 완벽한 모습으로!
완벽한 주황색 부적이었다.
이번 만큼은 심성하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완전한 자색 부적은 비록 다루기가 까다롭긴 하나 부문종 내에도 제작할 수 있는 자들이 적잖이 존재했다.
하지만 주황색 부적은 달랐다. 완벽한 주황색 부적을 만들 수 있는 이는 자신 외에 다른 장로 한 명뿐이지 않은가!
말도 안 돼!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때 심성하는 어째서 부소천이 엽현을 적전제자로 거둬들였는지 확신할 수 있었다.
엽현은 부문도에 있어서만큼은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천재였던 것이다!
한편, 엽현은 녹초가 된 모습으로 의자에 반쯤 누워있는 상태였다.
부적 제작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장 세 시진 이상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집중해야 하기에 그 어느 검기보다 체력 소모가 극심할 수밖에 없었다.
엽현조차 살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집중해 본 적이 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볼 정도였다.
하지만 한 획이라도 잘못 긋게 되면 부문의 효과가 크게 떨어지는지라 감히 딴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 바로 부적 제작의 어려운 점이었다.
이때 심성하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괜찮으십니까, 사조?”
“하하하, 피곤해 죽겠소. 그대들은 어떻게 평생 이런 일을 하고 살 수 있소?”
“하하, 사조께서는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보통 주황색 부적을 그리려면 최소 한 달은 걸리고, 이처럼 완벽한 부적을 만들려면 꼬박 석 달을 앉아 있어야 하니 말입니다.”
“왜 그리 차이가 나는 것이오?”
“후후, 그건 바로 체력 때문이지요. 부문을 그리는데 체력과 심력 소모가 엄청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조께서 남들보다 오래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육신과 영혼이 강하다는 반증입니다. 다시 말해 사조께서는 부문도를 익히기에 매우 적합한 몸이십니다.”
이에 엽현이 옅은 미소를 띠었다.
“허나, 계속 이렇게 살다간 며칠 안 되어 앓아누울 것만 같소.”
“하하, 이미 훌륭합니다. 이제 사조께서는 능히 천부사(天符師)라 불릴 자격을 갖추셨습니다.”
“천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