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6
86화 엽령아, 네가 만든 밥이 먹고 싶구나
어느 협곡 안.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는 관문이 보였다. 태극을 그리며 소용돌이치는 관문은 겉에서 봤을 때 신비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이때, 피 묻은 장검을 이끌고 한 소년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엽현이었다.
엽현의 곁으로 묵운기 등 세 사람이 다가왔다.
“이게 바로 비경(秘境) 입구로군!”
기안지의 음성에 엽현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안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반드시 들어가야 해. 그러나 너희는…….”
“그만, 그만!”
묵운기가 손을 휘휘 저었다.
“네 놈은 입만 열면 잔소리구나! 네가 먼저 들어가서 이목을 집중시켜. 그동안 내가 령이를 찾아올 테니까!”
엽현이 묵운기를 한 번 쳐다보더니 말없이 관문으로 들어갔다.
묵운기가 관문 앞에서 멈춰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령아… 제발 무사해다오… 네가 만든 밥이 먹고 싶구나…….”
순간 묵운기가 관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시 관문 앞.
엽현 등이 사라진 지 약 반 시진 후, 사방에서 무수한 그림자가 출현해 관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중 관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노인이 있었으니, 바로 창목학원의 이현창이었다. 그의 곁으로 흑포인 하나가 다가왔다.
“원장, 보통 놈이 아니오.”
“그렇기때문에 더욱 죽여야 한다!”
이현창이 관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한편,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한 나무 꼭대기에 두 명의 노인이 관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강국 전대 국주 강월천과 취선루의 구 루주였다.
“구 루주, 취선루가 이쪽 편에 서다니 정말 의외로군.”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도박이 실패하면 강국 황실은 창목학원으로부터 엄청난 보복을 감내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하하하! 그건 취선루도 마찬가지 아닌가? 기왕 이렇게 된 거 잠시 손을 잡는 게 어떤가?”
구 루주가 침묵에 빠졌다.
“하하, 구 루주. 이번에는 그 노괴들이 직접 나설 수도 있네. 내가 하고픈 말은, 젊은 것들의 싸움을 망치지 않게 그 노괴들을 막아주자는 말일세.”
“음… 그럼, 좋습니다.”
구 루주의 대답에 강월천이 관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표정에는 진중함이 묻어 있었다.
도박이었다.
구 루주의 말대로 강국 황실은 큰 도박을 걸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성공한다면 황실은 창목학원을 제치고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거기에 엽현과 구 공주의 관계가 돈독하다고 알려져 있는 만큼, 이번 일이 성공한다면 황실은 엽현을 완전히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엽현이 보여준 재질은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환하게 빛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강국 황실은 오랜 기간 그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게 된다.
반대로 만약 실패하면, 황실과 창목학원은 철저히 대립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복수를 위해 당국과 연합할지도 모른다.
결코 실패해선 안 된다!
강월천의 두 눈이 천천히 감겼다.
한 나라의 어른으로서 그는 결코 이런 모험을 자초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강구가 이미 저국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강구의 행동은 강국 황실을 대표하는 만큼, 강월천 또한 어쩔 수 없이 전력을 다해야만 했다!
“에휴… 빨리 시집을 보내든가 해야지…….”
* * *
한 거대한 바위 위. 용포를 입은 한 여인인 꼿꼿한 자세로 뒷짐을 지고 서 있다. 긴 머리를 아무렇게나 등 뒤로 넘긴 그 모습에서 패도와 위엄이 느껴진다.
여인은 바로 척발언이었다.
그녀의 뒤로 노인 하나와 노부인 하나가 보였다.
척발언이 도도한 눈으로 관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동생을 구하기 위해서라지만, 죽을 줄 알면서도 이곳에 나타나다니… 그는 어리석은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감정적인 것인가?”
그녀의 뒤에서 노인이 대답했다.
“물론 어리석은 것이지요. 안란수에 버금가는 자질을 가진 자이니만큼 조금 더 몸을 수그리고 있었더라면 창목학원을 뒤집어 놓았을 수도 있었을 것을…….”
“시끄럽다!”
노부인이 노인을 쏘아붙였다.
“내가 볼 때 네 놈의 안목이 더 어리석은 것 같다!”
노부인의 기세에 눌린 노인이 아무 대꾸하지 못하고 몰래 입을 삐죽였다.
“전하, 이 늙은이가 볼 땐 그 아이는 정과 의리를 중시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진짜 사내입니다.”
“물론 의리도 중요하지만 괜히 애꿎은 목숨만 버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죽고 살고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동생이 죽게 생겼는데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설령 검선이 된다 할지라도 그건 사내놈도 아닙니다.”
노인이 끼어들었다.
“좀 조신하게 말할 수 없어?”
노부인이 도끼눈을 뜨자 노인이 쭈뼛거리며 다시 입을 닫았다.
척발언이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이(江姨)가 말한 것은 그자가 오늘 오지 않았더라면 훗날 검선이 된다 하더라도 진정한 존경을 받지 못할 거라는 얘기다.”
이때, 멀리서부터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달려와 척발언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전하! 강국 창목학원의 원장 이현창이 말하길 왜 약속을 어기고 엽현을 향해 사람을 보내지 않느냐고 합니다.”
척발언이 흑의인을 향해 한마디를 던졌다.
“꺼지라고 해라.”
흑의인이 잠시 어리둥절하다 중얼거리며 사라졌다.
“진짜 그렇게 전하면 되나…?”
* * *
얼마나 지났을까? 관문을 통과한 엽현이 눈을 뜨니 한 초원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사방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머리 위에는 파란 하늘이 훤히 들어왔다.
‘비경?’
소위 말하는 비경이란 사실 바깥세상과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지 특별한 비법으로 인해 외부와 격리되어 있다는 점이 달랐다.
이때, 엽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곁에 있던 기안지 등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각기 다른 곳으로 떨어진 건가?’
그의 이마의 주름이 더욱 깊게 패였다.
걱정은 되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엽현은 빠르게 전방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엽령을 찾는 것은 물론 기안지 등과도 합류해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엽현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남자는 검은창을 쥐고서 엽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무언가 말하려 할 때, 엽현이 몸을 날렸다.
엽현이 순식간에 수 장 거리를 좁혀 들어오자 남자가 재빨리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창을 내리꽂았다.
능공경 절정의 고수!
그의 창에서 피어난 붉은 화염이 순식간에 엽현을 뒤덮었다.
그러나 청아한 검명이 장내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화염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 순간 엽현의 신형이 남자와 수장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다.
그러자 남자가 고개를 돌리며 조용히 읊조렸다.
“내가 먼저 출수했어야 했는데…….”
그때, 남자의 머리가 갸우뚱하더니 그의 발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엽현이 가만히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손바닥은 이미 피로 곤죽이 되어 있었고, 팔 전체에도 선혈이 낭자했다.
만약 그가 먼저 출수하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의 처지는 뒤바뀌었을 수도 있었다. 설령 죽지 않았더라도 적어도 서로가 심대한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방금 전 남자의 창에는 강력한 창의(槍意)가 실려 있었다. 그가 선보인 무기 역시 지계 중품 급의 무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엽현이 상대를 죽일 수 있었던 까닭은 상대가 미처 제 실력을 발휘하기 전에 엽현이 먼저 선수를 쳤기 때문이었다.
만약 상대가 진짜 실력을 드러냈더라면 대지전갑이 없는 상태에서 회생할 수 없는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역시, 각국 최고의 기재들만 모였다는 것이 사실인가 보군!’
엽현이 품속을 더듬어 옥병을 꺼냈다. 그의 손바닥에 한 악의 단약이 떨어졌다.
금창단!
한 알에 황금 수십만 냥을 호가하는 금창단…… 아깝긴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항시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전투는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엽현은 남자에게 다가가 그의 창을 집어 들었다. 과연 평범한 창이 아닌 극상품 영기였다.
엽현은 계옥탑에 획득한 창과 약간의 금화를 던져 놓은 후 걷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던 엽현의 앞에 십 장 넓이도 되지 않는 작은 강이 나타났다.
조심스레 강가로 걸어간 그는 아무 준비 동작도 없이 돌연 강물을 향해 일 검을 찔러 넣었다.
그 순간 강 속에서 물줄기와 함께 남자의 신형이 솟구쳐 오르더니, 재빨리 강 건너편에 착지했다.
검을 장포를 입는 그는 널따란 소매의 자신의 손을 숨긴 채 엽현을 노려보았다.
“어떻게 알았지?”
“글쎄다.”
어려서부터 산속에서 많은 전투를 경험했던 엽현은 어디가 매복하기 좋은지, 어디가 기습하기 좋은지 똑똑히 꿰고 있었다.
사실 비경에 들어선 그 순간부터 엽현은 자신은 사냥감일 뿐이고, 다른 무인들은 사냥꾼이 되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니 자연히 한걸음 한걸음에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던 것이다.
한순간의 방심이 죽음을 불러온다!
이로써 그의 추측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엽현은 더 이상 남자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엽현의 손에서 그의 검이 쏜살같이 날아갔다.
순간 당황한 남자가 정면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챙-!
그의 손에서 금조(金爪)가 나타나 검을 막아섰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영수검은 명계 중품, 겨우 상급 영기인 금조로 영수검을 막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영수검이 격렬하게 진동하자 금조가 산산 조각나 흩어졌다. 대경실색한 남자가 황급히 신형을 물렸다.
이때, 영수검이 갑자기 경로를 바꾸어 강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끄억-!
물속에서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강물이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너… 어떻게 그걸 알았느냐…….”
“너같이 약한 놈이 혼자 덤비는데 당연히 수상히 여기지 않겠나?”
흑포인이 엽현을 노려보았다. 그의 표정엔 놀랍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실력도 대단하지만 지혜롭기까지 했다.
“이번엔 이쯤에서 물러가도록 하지!”
흑포인이 말과 동시에 자리를 떠나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서걱-!
어느 틈에 나타난 엽현의 검이 흑포인의 목을 갈랐다.
강변으로 흑포인이 힘없이 쓰러지자 엽현이 검에 묻은 혈흔을 닦아 내며 중얼거렸다.
“미안하지만, 그렇겐 안 돼.”
그때였다.
바스락!
엽현의 뒤편에서 낙엽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엽현의 앞에 있던 강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발아래 땅이 격렬히 떨려왔다.
의경(意境)!
한 줄기 강대한 의경이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영수검이 손바닥을 펼치자, 영수검이 그의 손안에 들어왔다. 엽현이 영수검을 지긋이 바라보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저 뒤에 누가 있든 단 일 검에 죽이는 거야. 어때?”
위잉-
한없이 고요한 장내에 청명한 검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