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65
865화 왜 기를 죽이는 거야?
문득 회의감이 든 진천은 그대로 아무 말 없이 장내를 빠져나갔다.
이를 본 임소서가 출수하려 할 때, 류사적이 그를 잡아 세웠다.
“비록 멍청한 일을 하긴 했지만, 그간의 노고와 선각자의 얼굴을 봐서 보내주도록 합시다.”
“…….”
“그보다 급한 건 외부에 떠돌고 있는 만유서원 강자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오.”
“그들이 돌아오려 하겠소?”
“흥! 사문이 멸문의 위기에 처했다는데 돌아오지 않고 배기겠소?”
그 말에 임소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일은 내가 하도록 하겠소.”
이 말을 끝으로 임소서가 장내를 빠져나갔다.
그가 떠난 후, 류사적이 한쪽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은 다름 아닌 만유서원 최고의 보물, 만유서옥이 있는 곳이었다.
한참 동안 같은 방향을 응시하던 류사적은 잠시 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편, 만유서원이 수라여제를 건드려 멸망 직전까지 갔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오유계 전체로 퍼졌다. 만유서원은 그야말로 만인의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수라여제!
세상에 건드릴 사람이 따로 있지, 수라여제의 코털을 건드릴 자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도 용케 살아남은 것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리라.
* * *
이 시각, 어느 구름 위.
엽현이 검을 들고 검령과 대련 중이다. 그의 등에는 한 눈에도 무거워 보이는 거대한 검이 꽂혀 있는 반면, 손에는 바늘처럼 가느다란 검이 들려 있다.
그는 대련 도중에 수시로 검을 바꿨는데, 경검을 사용할 때면 그 공격이 마치 뇌전처럼 번뜩이고, 중검을 사용할 때면 단숨에 천지를 찢어발길 듯한 위력이 뿜어져 나왔다.
엽현의 수련은 꽤나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끝났다.
자리에 멈춰선 엽현은 그야말로 온몸이 땀에 절여 있었다.
죽겠다!
이것이 엽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중검과 경검을 변환하는 일은 생각보다 소모가 상당했던 것이다.
중검을 사용할 때면 체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경검을 사용할 때면 반대로 심력의 소모가 대단했다. 왜냐하면 경검은 곧 비검이기 때문이다.
“제법 습득이 빠르구나!”
정면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엽현이 고개를 들어 검령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직 자만하긴 이르다. 검의 변환은 상대가 반응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빠르게 이뤄져야만 한다. 알겠느냐?”
“무슨 뜻인지 알겠어. 노력해 보지.”
고개를 끄덕인 검령이 엽현의 허리춤에 있는 천주검을 향해 눈을 돌렸다.
“그 검… 내가 한 번 볼 수 있겠느냐?”
“물론!”
대답과 함께 천주검이 검령을 향해 천천히 날아갔다. 천주검을 받은 검령이 검신을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정말 예리한 검이로구나!”
“하하, 그나저나 너 역시 검이라 하지 않았나?”
검령이 엽현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렇지.”
“너의 본체가 어떤지 한 번 볼 수 있을까?”
엽현의 부탁에 검령이 고개를 저었다.
“예리함으로 치면 이 검에 뒤처지고, 경지로 치면 내게 부상을 입혔던 다른 검에 한참 모자라다.”
말과 함께 검령이 천주검을 엽현에게 돌려보냈다.
“남들은 평생 만져 보지도 못할 검을 지녔으니,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살피도록 하거라.”
“이 검도 한 번 살펴 봐주지?”
천주검을 회수한 엽현이 이번에는 진혼검을 꺼내 들었다.
진혼검의 출현에 검령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 검의 영은 도대체…….”
검을 응시하던 검령의 시선이 엽현의 얼굴로 옮겨갔다.
“한 자루는 모든 것을 자를 만큼 날카롭고, 다른 한 자루는 영혼체와 상극이로구나.”
“하하, 운이 좋았지!”
“그런 만큼 귀중하게 여기도록 하거라. 그런데…….”
검령의 눈이 다시 진혼검으로 향했다.
“네가 만약 이 검으로 검혼기(劍魂技)를 사용할 수 있다면… 아마도 엄청난 위력을 낼 수 있을 텐데.”
이때 엽현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렇지? 나도 그런 생각 한 적이 있어! 그런데 그 검혼기라는 게 익히기 쉬운 건가?”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니나, 우선은 검규를 익히는데 집중하도록 하거라. 너는 아직 중검과 경검의 전환 시기에 있어 미흡한 점이 많다. 특히 일검무량은 반드시 일검에 상대를 죽일 수 있을 때만 사용해야 한다. 알겠느냐?”
일검무량!
엽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가 일검무량을 펼칠 때의 성공률은 아직 극한에 이르렀다고 할 수 없었다.
검령이 알려준 심법을 익힌 후, 일검무량은 훨씬 더 빠르고 멀리 뻗어 나갔다. 하지만 결국 성공의 관건은 얼마나 시기적절하게 검기를 펼치느냐에 달려 있는 법이다.
적절한 시기를 찾는 것!
이는 오직 충분한 실전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부분이리라.
“네가 좀 도와주거라. 너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검령의 말에 연만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침 손이 근질근질했다.”
연만리가 외침과 동시에 청룡도를 꺼내 들었다. 엽현과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의 청룡도가 반원을 그리며 떨어져 내렸다.
청룡의 포효 소리가 산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이때, 엽현의 신형이 사라짐과 동시에 한 줄기 검광이 번뜩였다.
쾅-!
한편 두 사람이 대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검령이 돌연 한쪽 방향을 응시했다.
잠시 후 검령은 동굴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정면에는 허리에 장도를 찬 중년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검령을 발견한 남자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을 건넸다.
“여기는 어딘가?”
“그럼 너는 누구냐?”
“나는 진일몽이라 한다.”
진일몽.
만약 다른 이가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엉덩방아를 찧었을지도 모른다.
오유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수이자, 만유서원 육대교존 중 하나인 진일몽을 만날 기회는 흔치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검령은 전혀 그를 알지 못했다.
역시나, 검령은 진일몽이란 이름을 듣고도 별 반응이 없었다.
“네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여긴 외부인이 올 곳이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 내가 찾는 자가 있다.”
순간 검령의 눈썹이 위로 솟구쳤다.
“엽현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
진일몽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검령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 대신 한 줄기 검광이 진일몽을 향해 떨어졌다.
이에 진일몽이 가볍게 뒷걸음질 쳐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하지만 이때, 종으로 떨어지던 검광이 돌연 횡으로 방위를 바꾸며 날아들었다.
쉭-!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공간이 찢겨 나간 순간, 진일몽은 어느새 열 장 밖까지 신형을 물린 상태였다.
의외라는 눈빛과 함께 검령의 모습이 다시 사라졌다. 순간 진일몽 정면 공간이 갈라지며 한 줄기 검광이 날카롭게 튀어 나왔다.
이에 진일몽이 표정 없는 얼굴로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의 두 손가락 사이에 검광이 잡힌 순간, 진일몽이 손에 힘을 주었다.
쾅-!
검광이 수만 개의 파편으로 부서지는 가운데, 그림자 하나가 뒤편으로 튕겨 나갔다.
다름 아닌 검령이었다.
자리에 멈춰선 검령. 진일몽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엔 처음과 달리 경계의 기색이 역력했다. 눈앞의 저자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이미 자신을 압도하고 있었다.
내 상대가 아니다!
이때 손을 거두며 한 걸음 다가서는 진일몽.
“너를 죽일 이유는 없다. 엽현을 데려오너라!”
“그건…….”
바로 이때, 동굴 입구에 엽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엽현을 발견한 검령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조심해. 매우 강한 자다.”
고개를 끄덕이며 진일몽을 향해 선 엽현.
이때 그의 머릿속에 연천의 음성이 들려왔다.
[도군(刀君)이다. 너는 이 자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그 말에 엽현의 표정이 다소 시무룩해졌다.
[연천, 아직 해보지도 않았는데 왜 기를 죽이고 그래?] [기를 죽이는 게 아니라, 정말로 네 상대가 아니라 그런 게다!]이에 엽현이 눈앞의 진일몽을 가만히 바라보며 연천에게 대꾸했다.
[그래도 할 수 없잖아. 싸울 수밖에.] […….]이때 엽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진일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연 진천이 실패할 만할 실력이군. 아깝지만 할 수 없지, 검을 뽑아라!”
출검!
그 말에 엽현이 진일몽을 응시하며 서계를 꺼내 들었다. 그가 막 서계를 운용하려는 순간, 진일몽이 소리쳤다.
“그럴 필요 없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진일몽이 스스로의 경지를 건곤경으로 낮췄다.
이는 엽현과 같은 수준이었다. 당시 엽현이 서계에서 상대했던 진천의 경지보다 더욱 낮은 것이었다.
“흥, 꽤나 자신만만하군.”
[조심해라!]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그의 신형이 사라지고 날카로운 검 끝이 진일몽에게로 향했다.
이를 본 진일몽이 가볍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이는 마치 산책하는 듯한 움직이었지만, 엽현의 검은 허공을 베고 말았다.
공격이 무위로 끝나는가 싶은 이 순간, 엽현이 돌연 손목을 비틀어 진일몽의 목을 향해 검을 곧게 찔렀다.
벼락처럼 날아드는 검.
이에 진일몽이 가볍게 몸을 젖히자 검은 다시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하지만 바로 이때, 검이 엽현의 손을 벗어나 비검으로 전환됐다.
일검무량(一劍無量)!
찰나의 순간, 엽현은 상대가 두 번의 공격을 흘린 후, 방심하고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때문에 세 번째 검은 자신감 있게 일검무량을 펼쳤던 것이다.
그러나 검이 손을 떠난 순간 엽현은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진일몽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여유롭게 도를 빼들어 그의 검을 막았던 것이다.
막혔다!
이 장면을 목격한 순간 엽현은 겉으로는 평정을 유지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큰 풍랑이 일었다.
“흠… 나쁘지 않군. 속도와 위력, 그리고 검을 뽑는 시기까지 최상급이로구나.”
“…그대는 진천에 보낸 자객인가?”
엽현의 말에 진일몽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내게 명령할 수 없다. 그저 내가 원해서 온 것일 뿐.”
“어쨌거나 날 죽이려 한다는 건 같겠지?”
진일몽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너라, 조금 더 보고 싶구나.”
“원한다면!”
외침과 동시에 엽현이 검을 휘둘렀다. 그의 정면에서 진일몽이 도를 쥔 손을 등 뒤에 놓은 채, 미간을 향해 날아오는 검광을 향해 천천히 두 손가락을 뻗었다.
빠르긴 하지만 결코 그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바로 이때, 엽현의 검이 갑자기 경검에서 중검으로 변했다.
순간 진일몽이 두 손가락으로 검을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그 힘은 조금 전과는 달라진 상태였다.
쾅-!
진일몽이 처음으로 열 장 가까이 뒷걸음질 쳤다.
멈춰선 진일몽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찢어져 버린 손. 하마터면 조금 전 일검에 손이 잘려나갈 뻔했던 것이다!
진일몽의 시선이 엽현에게로 향했다.
“하하하! 재밌는 녀석이로구나!”
바로 이때, 어느새 경검으로 바꿔 쥔 엽현이 몸을 날리며 검을 휘둘렀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일검무량!
쾅-!
뇌전처럼 빠르게 날아간 비검은 진일몽의 도에 의해 가로막혔다. 하지만 엽현은 빠르게 등 뒤의 중검을 빼들고서 진일몽을 향해 내리쳤다.
진일몽은 후퇴하는 대신 도를 들어 자신의 앞을 막았다.
쾅-!
두 개의 강력한 힘이 충돌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이때 진일몽은 전혀 뒤로 밀려나지 않은 반면, 엽현은 원래 자리까지 튕겨나갔다. 엽현의 발이 막 지면에 닿은 이때, 그의 손에서 다시 한번 비검이 날아올랐다.
일검무량(一劍無量)!
땅-!
검이 도에 가로막혀 튕겨 나간 순간, 어느새 진일몽 앞에 나타난 엽현이 튕겨 나온 검을 붙잡고 그대로 내리쳤다. 이에 진일몽 역시 도를 치켜들었다.
퍽-!
검이 채 목표에 닿기 전, 복부에 강렬한 통증과 함께 엽현이 원래 있던 자리까지 튕겨 나갔다.
진일몽을 바라보는 엽현의 표정이 다소 진지해졌다.
여태껏 상대는 제대로 도를 휘두르지 않았음에도 그의 공격을 완전히 막아내고 있었다. 게다가 조금 전에 복부를 가격한 것이 도의 손잡이가 아니라 칼날 부분이었더라면 그는 부상을 면치 못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