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86
886화 누가 감히 내 동생을 건드리는가!
엽령이 지옥 안으로 진입한 순간, 기다렸다는 듯 악령과 원혼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이에 엽령이 무표정한 얼굴로 가볍게 팔을 휘둘렀다.
쾅-!
악령들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지도 못한 채 한순간에 소멸되어 사라졌다.
간신히 살아남은 악령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감히 다가오지 못했다.
엽령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검은 성에서는 강대한 기운이 파도치며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이 기운은 점점 더 강해져만 갔다.
바로 이때, 검은성에서 귀곡성이 울려 퍼지더니, 한 중년 남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중년인의 주변에는 온갖 악귀들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등장한 이는 바로 망자대제였다.
엽령은 망자대제를 똑바로 바라보며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이때 망자대제가 탐욕스레 깊은숨을 들이키더니, 마치 술을 음미하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뱉어냈다.
“후… 이 얼마 만에 만끽하는 자유인가.”
천천히 눈을 뜬 망자대제가 엽령을 발견하고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듣자 하니 네가 인간 사이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황제라던데?”
“…혓바닥이 꽤나 길구나.”
엽령이 손을 펼치자, 그녀의 손 안에 붉은 낫 한 자루가 나타났다. 이와 동시에 엽령의 신형이 장내에서 사라졌다.
순간 회색 하늘에 붉은 혈광이 나타나 공간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그 반경에 들어온 것은 원혼이든 공간이든 한순간에 허무로 변해갔다.
이를 보는 망자대제의 입가에서 옅은 미소가 피어났다.
“어디, 수라여제가 얼마나 강한지 맛 좀 보도록 할까?”
망자대제의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며 천천히 올라갔다.
“황천회신(黃泉灰燼)!”
음성이 떨어진 순간, 돌연 허공에서 검푸른 화염 하나가 나타나 뚝 떨어졌다.
순간, 화염이 지나간 모든 공간이 잿더미로 변했다.
이때, 엽령의 붉은 낫이 화염을 강타했다.
쾅-!
무수한 화염과 혈망이 마치 지옥불처럼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이에 주변에 있던 악령들이 혼비백산하여 흩어졌다.
이를 본 망자대제가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과연, 이전까지의 수라국 강자 중에 제일 쓸 만하구나!”
“흥! 다른 자들은 나오지 않는 건가?”
“수라여제, 널 죽이는 건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하다!”
말을 마친 순간, 그의 손 안에 검은 창이 나타났다. 이와 동시에 망자대제가 한 줄기 묵광으로 변해 쏘아지듯 날아갔다. 이때 창끝에 매달려 있는 악령들이 흉악한 괴성을 터트리니, 마치 지옥을 담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편 엽령은 아직까지 여유가 있는지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겨우 네까짓 게 나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붉은 낫이 반원을 그리며 정면으로 날아갔다.
쾅-!
지옥 전체가 소멸해 버릴 것만 같은 강력한 충격과 함께 망자대제가 원래 있던 자리까지 튕겨 날아갔다.
반면 엽령은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상태.
이 모습을 본 망자대제의 안색이 다소 무거워졌다.
바로 이때, 엽령의 모습이 희미한 잔상을 만들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순간 망자대제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삼중차원!”
말을 뱉은 순간, 망자대제 역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두 사람의 사라짐과 함께 지옥은 잠시 평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허공이 무너지면서 두 사람이 다시 공간 밖으로 튀어 나왔다. 이때 망자대제의 안색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해 있었고, 그 표정 또한 더할 나위 없이 딱딱하게 굳은 모습이었다.
이때 반대편에 서 있던 엽령이 두 손으로 낫을 붙잡고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
“무진참(無盡斬)!”
음성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진 엽령.
서걱-!
공간을 마치 종이 자르듯 잘라내며 날아드는 붉은 낫!
이를 본 망자대제가 황급히 들고 있던 창을 정면으로 깊숙이 찔러 넣었다.
“백혼야습(百鬼夜襲)!”
순간 창끝에서 수천수만 마리의 악령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갔다. 하지만 이 악령들은 엽령의 낫에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재로 변해 사라졌다.
그리고 이때!
우지끈!
쾅-!
창에 균열이 일어남과 동시에 망자대제가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엽령의 공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느새 망자대제 앞에 나타난 엽령이 재차 낫을 휘둘렀다.
쾅-!
결국 망자대제의 창이 견디지 못하고 부러져 나갔다. 이때부터는 엽령의 독무대였다.
그녀는 끊임없이 낫을 휘둘렀고 그때마다 망자대제는 뒤로 물러나기 바빴다. 망자대제의 몸 주변으로 생성돼 있던 검은 광막이 피해를 막아주고는 있었으나, 이마저도 난도질당한 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상태였다.
바로 이때, 엽령의 낫이 광막을 부수며 망자대제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망자대제가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암멸(暗滅)!”
음성이 떨어짐과 동시에 한 줄기 묵광이 엽령이 있는 공간을 집어삼켰다.
잠시 후, 묵광이 사라짐과 동시에 엽령이 백 장 떨어진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 그녀의 낫에는 검은 기운이 묻어 있었는데, 이 부분을 주위로 낫이 천천히 부식되어갔다.
이때, 망자대제의 미간 사이에서 도깨비불 하나가 튀어 나왔다.
“영정분혼(靈燈焚魂)!”
그가 엽령을 가리키며 소리치자, 도깨비불이 파란 광선으로 변해 엽령을 향해 날아갔다.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도깨비불이 지나가는 공간은 예외 없이 허무로 변해 사라졌다.
도깨비불이 막 엽령을 덮치려는 순간, 그녀의 주변에서 돌연 일곱 색깔의 빛이 일제히 하늘로 솟구쳤다. 이 빛의 가운데에는 한 장의 부적이 펄럭이고 있었다.
임계부!
쾅-!
순간 엽령을 뒤덮어 오던 음산한 기운이 녹아 없어지고, 도깨비불 역시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망자대제가 황급히 도깨비불을 자신 쪽으로 거둬들였다.
“칠색 부적! 이미 혼돈지기가 대부분 사라진 이 세상에서 무슨 수로 칠색 부적을 만든 것이냐!”
선각자의 실종 이후로 한동안 실전되었던 칠색 부적.
엽령과 같은 강자가 사용할 때 그 위력은 실로 망자대제조차 놀랄 정도였다.
“…오라버니가 만들어 주었다.”
“오, 오라버니?”
엽령은 말을 섞는 대신 소매를 펄럭였다. 그러자 칠색 부적이 낫에 날아가 붙더니 아직 남아 있던 검은 기운을 완전히 소멸시켰다.
순식간에 정상으로 돌아온 붉은 낫.
이때 엽령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를 본 망자대제가 황급히 양손을 교차했다.
“암멸(暗滅)!”
순간 어디선가 날아든 묵광이 망자대제 자신과 엽령이 있는 공간을 뒤덮었다. 하지만 이도 잠시, 묵광이 길게 찢어짐과 동시에 망자대제가 형편없이 뒤로 날아갔다.
이 순간, 엽령의 손을 떠난 붉은 낫이 장내를 밝게 비췄다.
“무진인(無盡刃)!”
그녀가 외친 순간 돌연 공간 속으로 사라진 붉은 낫.
이를 보자 망자대제가 깜짝 놀라며 양손을 합쳤다.
“수라노(修羅怒)!”
순간 그의 몸 전체에서 강대한 기운이 폭발하듯 흘러나왔다.
콰쾅-!
반경 수십만 장의 공간이 파도를 일으키며 터져 나가는 이때, 붉게 반짝이는 무언가가 파도를 뚫고 튀어 나왔다.
쾅-!
굉음과 함께 뒤로 튕겨나간 검은 그림자.
주인공은 다름 아닌 망자대제였다!
수천 장을 튕겨나가 겨우 자리에 멈춰 선 망자대제는 자신의 한쪽 팔이 허전한 것을 알아차렸다. 조금 전 격돌로 왼팔이 잘려나간 것이다!
“취(聚)!”
짧은 외침과 함께 엽령의 손아귀에 돌아온 붉은 낫.
그녀가 천천히 망자대제를 향해 걸음을 옮기려 할 때, 장내에 누군가의 웃음 섞인 음성이 퍼져 나갔다.
“과연 수라여제의 위명은 허언이 아니었구려!”
엽령이 오른쪽을 돌아보자, 그녀의 시선에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 들어왔다.
여인을 본 순간 엽령의 눈빛에 미세한 변화가 일었다.
“서영족(噬靈族)?”
“하하, 대단하구려. 단박에 내 정체를 알아보다니!”
엽령이 대꾸하지 않고 망자대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뭔가 미심쩍다 싶더니, 쥐새끼처럼 몰래 서영족과 손을 잡은 것이로구나.”
“하하하, 의외인가?”
“별로.”
엽령이 다시 시선을 돌려 붉은 치마의 여인을 향해 낫을 들었다.
“오너라. 서영족의 실력이 어떤지 궁금하구나.”
“후후, 그렇다면야 실망시킬 순 없지!”
말을 마친 여인이 손뼉을 치자, 엽령 주변에 네 명의 백발노인들이 나타났다. 눈처럼 하얀 장포를 입은 노인들의 발밑으로는 기이한 문양을 지닌 광진(光陣)이 빛나고 있었다.
바로 이때, 엽령의 붉은 낫이 그사이 참지 못하고 날아들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진법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낫이 그녀의 손을 떠난 순간, 네 덩이의 하얀 빛이 그녀를 에워쌌고, 공간을 가르던 붉은 낫 역시 허공에 멈췄다.
뒤이어 백발노인들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자 엽령의 주변으로 하얀 부문들이 나타났고, 엽령의 기운이 순간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에 엽령이 눈을 가늘게 뜨는 동시에 양손을 번쩍 들었다.
콰쾅-!
순간적으로 엽령의 전신에서 강대한 기운이 쏟아지려는 찰나, 그녀의 머리 위에 하얀 글씨로 ‘禁(금)’이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이와 함께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던 기운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이에 엽령은 당황하지 않고 두 주먹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그녀를 둘러싼 공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막으시오! 저자가 삼중차원으로 도망치게 놔둬선 안 되오!”
여인의 말을 들은 망자대제가 엽령을 향해 황급히 몸을 날렸다.
망자대제와 엽령이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묵광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큰 폭발과 함께 묵광이 터져 나갔다.
콰쾅-!
사방이 지진이라도 난 듯 격렬하게 진동하며, 그 와중에 망자대제가 뒤로 튕겨 나갔다.
하지만 이때 하얀 광선들은 이미 쇠사슬처럼 엽령의 몸을 꽁꽁 묶어 놓고 있었다. 이와 함께 엽령의 기운은 보통 무인의 수준으로 낮아진 상태였다.
이를 지켜보는 붉은 치마의 여인이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금령진(禁靈陣)이란 것이오. 선조 중 한 분께서 선각자의 육도진언을 참고하여 창안한 것이지. 이 진법을 운용하기 위해 천이백 명의 강자들이 멀리서 힘을 보태고 있소. 이 진법에 한 번 갇히게 되면 경지뿐만 아니라, 영기도 봉인되고, 그 외에 공간이나 비술, 도칙, 법칙, 심지어 육신과 영혼의 힘까지 금제가 가해지게 되오.”
“…….”
“자,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다면 이제 오유계 최후의 여제를 이만 보내드려야 하겠군!”
그녀가 말을 마친 순간, 엽령을 둘러싼 백광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진법의 정중앙.
엽령은 체념한 듯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청성에서의 기억이 스치듯 흘러갔다. 그중에는 지금의 자신보다 어린 소년의 모습도 끼어 있었다.
배고플 때, 아플 때, 울고 있을 때면 언제나 한달음에 달려와 위로해 주었던 그 소년.
엽현!
엽현의 얼굴을 떠올리자 엽령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드리웠다.
“이번 생에 너를 만난 건 행운이었어. 다음에 태어난다면… 역시 네 동생으로 태어나길…….”
바로 이때, 성난 호랑이 같은 포효 소리가 지옥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감히 어떤 개자식이 내 동생을 건드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