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9
89화 싸울건가?
남자의 발밑 십여 장의 대지가 순식간에 가루가 되었다. 뒤를 이어 남자의 몸이 여러 개로 분리되는 것처럼 보이더니 엽현의 눈앞에 무수히 많은 퇴영(腿影)이 날아들었다. 각각의 퇴영은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하나 같이 강대한 힘이 뿜어냈다.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고막을 찢는 듯한 강렬한 폭발음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이 장면을 본 묵운기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지금 남자가 펼치고 있는 무기는 최소 지계 중품 무기다.
그렇다는 것은 상대는 최소 통유경! 만만히 볼 자가 아니었다.
묵운기의 얼굴에 걱정의 기색이 서렸다.
그 순간!
쾅-!
귀에 작렬하는 폭음성과 함께 누군가의 신형이 튕겨 나갔다.
상대를 확인한 묵운기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튕겨져 나간 사람은 엽현이 아닌 흑의인이었던 것이다!
발밑에 깊은 족적을 남기며 그대로 십여 장을 밀려난 남자는 입에서 적지 않은 선혈을 뿜어냈다.
힘이란 상호적인 것이다.
엽현의 가장 패도적인 무공에 남자 역시 자신이 갖고 있던 가장 패도한 무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엽현에게 밀린 그 순간 오히려 자신의 힘에 충격을 입은 것이었다.
자리에 멈춰선 남자가 자신의 가슴을 살펴보았다. 갈가리 찢겨나간 그의 흑포 사이에 은색으로 빛나는 은갑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 은갑은 방금 전의 일격에 의해 가운데가 길게 찢어져 있었고, 그 안으로 남자의 피부가 드러났다.
명계호갑(明階護甲)!
은갑이 아니었더라면 그의 몸은 엽현의 검에 의해 반으로 갈라졌을 것이다.
흑의인이 엽현을 향해 무어라 소리치려는 순간, 엽현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며 자신의 오른발로 지면을 강하게 밟았다.
쾅-!
무수한 자갈과 돌의 파편들이 솟아올라 엽현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갔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엽현의 검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영수검은 그대로 파편들을 뚫고 남자에게로 날아갔다.
이에 흑의인이 뒤로 한발 물러나면서 영수검을 향해 다시 한번 발을 뻗었다. 그의 발은 영악하게도 영수검의 날을 피해 검신을 가격했다.
땅-!
가까스로 검을 비껴낸 남자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일권폭이두(一拳爆你頭)!
권세와 전의를 동시에 담은 엽현의 주먹이 어느새 그의 눈앞에 날아오고 있던 것이다!
“거, 검무쌍수(劍武双修)!”
빠각-!
기이한 소리와 함께 흑의인의 몸이 크게 젖혀지며 하늘을 날았다.
엽현이 상대를 마무리하려 다가가는 순간, 싸늘한 기운이 그의 등 뒤를 덮쳤다.
그러자 엽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재빨리 뒤로 돌아 일 권을 날렸다.
쾅-!
주먹에 부딪친 기운은 순식간에 흩어졌다.
엽현이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공격을 감행한 자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엽현이 적막을 깨고 묵운기를 향해 소리쳤다.
“날 엄호해 줘!”
말과 동시에 엽현이 엽령이 있는 곳을 향해 뛰어올랐다.
바로 그때, 다시 한번 한 줄기 한망(寒芒)이 엽현의 등을 향해 날라 왔다.
그를 본 묵운기가 한망을 향해 재빨리 비도를 던졌다.
펑-!
그러나 바로 이때, 어디선가 검은 우전(羽箭) 하나가 맹렬한 기세로 엽현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왔다.
챙-!
엽현이 급히 영수검을 휘둘러 화살을 튕겨냈다.
쉬익-!
엽현의 정면으로 우전이 또 한 차례 날아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세 대의 우전이었다!
삼연시(三連矢)!
엽현이 손을 펼치자 그의 손안에 영수검이 나타났다. 영수검을 단단히 쥔 엽현이 그대로 정면을 향해 일 검을 휘둘렀다.
검신엔 날카로운 검망(劍芒)이 깃들어 있었다.
퍽-!
첫 번째 화살이 깨끗하게 부서졌다. 이어 두 번째 화살이 영수검의 검 끝에 와서 부딪쳤다.
위잉-
영수검이 격렬히 떨려왔으나, 화살이 완파된 것과 달리 검은 아무 이상도 없었다.
명계(明階) 등급인 영수검의 단단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 마지막 화살이 궤적을 바꿔 엽현의 가슴을 노렸다.
그러자 검을 쥐지 않은 엽현의 왼 주먹이 화살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퍽-!
마지막 화살을 제거한 엽현은 또다시 뒤편에서 날아오는 한망(寒芒)을 느꼈다. 그때, 누군가의 그림자가 엽현의 등 뒤를 막아섰다.
쾅-!
묵운기의 비도가 춤을 추자, 한망이 그대로 소멸되었다.
묵운기가 황급히 주변을 돌아보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상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이때, 엽현이 그의 왼편 멀리 떨어져 있는 큰 바위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곳엔 한 남자가 장궁을 들고 자신들을 향해 서 있었다.
남자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엽현을 노려보며 외쳤다.
“검무쌍수!”
엽현이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고 엽령을 향해 몸을 날렸다. 가까이서 본 엽령은 얼굴이 창백해져 혼절한 상태였다. 그녀의 양손엔 단단히 밧줄이 묶여져 있었다.
엽현이 아무 표정 없이 밧줄을 끊어냈다. 그러자 나무에 매달려 있던 엽령이 힘없이 엽현의 품에 안겼다.
바로 그때였다.
푸욱…….
칠흑같이 검은 한 자루의 검이 엽현의 단전에 들어왔다.
뒤이어 엽령의 뒤편에 숨어있던 하나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 기다렸다.”
단전에 검이 꽂혀 뻣뻣하게 몸이 굳은 엽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참 오래 기다렸다…. 명계(明階) 하품(下品) 검이라니… 오늘 횡재했군…….”
검신지체!
검으로 단전을 삼은 엽현에게 있어 검이란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물론 상대의 검이 엽현의 검보다 더 높은 등급이라면 엽현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만약 같은 등급이라면 절반의 확률로 검을 흡수할 수 있었다. 물론 동일 등급에서도 강약이 나뉜다.
만약 상대의 검이 영수검보다 낮은 등급이라면 무조건 흡수가 가능하다.
엽현의 몸 안에 들어온 검은 순식간에 한 덩이의 힘으로 변해 그대로 그의 체내로 흡수됐다.
바로 앞에서 이 장면을 지켜본 흑포인의 눈은 튀어나올 만큼 커질 수밖에 없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던 그의 머리를 향해 엽현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퍽-!
엽현의 일 권에 맞은 남자가 쓰러졌다.
바로 이때, 엽현이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잠시 후, 그의 몸이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경지의 돌파!
방금 그가 흡수한 검은 명계(明階) 등급의 검이었다. 이는 최상급 영검 열 개를 합쳐 놓은 것보다 더욱 높은 단계다!
그러나 엽현은 몸 안에 넘치는 검의 기운을 억지로 눌러서 진정시켰다. 지금과 같은 때에 경지를 돌파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엽령과 함께 지면에 도착한 엽현은 그대로 엽령을 눕히고 입안으로 금창단 한 알을 집어넣었다. 잠시 후, 엽령의 안색이 점차 편안해지더니 천천히 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눈앞에 엽현이 보이자 엽령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엽현이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이제 집에 가자!”
엽현이 엽령의 손을 끌어당겨 장내를 빠져나가려 했다. 그때, 엽현의 신형이 제자리에 멈췄다.
그의 앞에는 방금 전 엽현에게 중상을 입고 쓰러졌던 무인이 서 있었다. 그가 입고 있던 검은 장포는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그 사이로 은색 연갑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엽현은 방금 전 남자의 목숨을 끊을 수 있었으나, 엽령을 먼저 구하기 위해 상대를 내버려 두었다.
남자의 왼편에는 방금 전 엽현을 향해 활을 쏘던 무인이 있었고, 오른편엔 처음 보는 몸이 비대한 남자가 서 있었는데, 그의 양손엔 커다란 도끼가 각각 한 자루씩 들려 있었다.
이때, 묵운기가 엽현의 곁에 서서 삼인방을 노려보았다.
“방금 숨어서 기습했던 자도 조심해야 해. 그는 아직 전력으로 출수하지 않았어.”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엽현은 아직까지도 자신을 기습했던 자의 위치를 찾지 못했다.
분명히 잘 훈련받은 살수(殺手)이리라!
엽현이 묵운기를 향해 말했다.
“기회를 봐서 령이를 데리고 탈출해. 만약 저들이 계속 령이를 노린다면 우리는 손발이 묶일 수밖에 없어!”
그 말에 묵운기가 잠시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엽현의 말대로 저들이 엽령을 노린다면 세 사람 모두 상당히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엽현 혼자서 이들을 모두 상대해야만 했다.
그것은 아무리 엽현이라 할지라도 분명 위험한 일이었다!
이때 은갑을 입은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저 자는 우리 생각보다 강하다. 만약 여기서 우리가 힘을 합치지 않는다면 다 잡은 먹이를 놓칠 수도 있다!”
잠시 후, 사방에 숨어있던 대여섯 명의 무인들이 걸어 나와 남자의 뒤편에 섰다.
그들은 대부분 능공경 강자였고, 그중 하나는 심지어 통유경이었다.
하나 같이 실력을 갖춘 고수들이었다.
“비겁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구나!”
바로 이때,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무인들이 고개를 돌리자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삼베옷을 입은 무인 하나가 바위 위에 서 있었다. 입에 강아지풀을 물고서 천으로 칭칭 감겨 져 있는 한 자루 도를 든 무인은 연갑의 무인과 그 뒤에 있는 무인들을 향해 경멸의 시선을 쏟아내고 있었다.
“웬 놈이냐!”
은갑을 입은 남자가 묻자 방금 나타난 남자가 조롱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니 애비다!”
은갑을 입은 남자가 안색이 변하여 삼베옷을 입은 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쉬익-!
순식간에 그의 퇴영(腿影)이 삼베옷을 입은 남자에게 휘몰아쳤다.
삼베옷을 입은 남자 역시 뒤지지 않고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도를 휘둘렀다.
쾅-!
무인들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은갑을 입은 남자가 그대로 십여 장 멀리 날아갔다.
은갑을 입은 남자가 몸을 추스르려 할 때, 그는 자신의 다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삼베옷은 입은 남자는 더 이상 출수하지 않고 붕대에 감겨있는 도를 거둬들이며 엽현을 향해 말했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나 검소왕(劍小王)은 너를 죽이기 위해 이곳에 왔다. 하지만 저런 비겁한 자들과 한 패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구나. 네가 저들과 싸워 살아남으면 그때는 내가 너를 상대하겠다. 만약 네가 저들에게 패한다면, 너의 복수는 내가 해 주마! 너는 그럴 자격이 있다!”
이때, 묵운기가 삼베남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보기 드문 사내로군! 좀 이따 엽현에게 죽게 되면 네 시체는 내가 고이 모시도록 하지!”
검소왕의 시선이 묵운기를 향했다.
“너야말로 걱정하지 말거라. 저 자를 죽인 후, 그다음은 네 차례니까. 음… 아니야…. 네 놈의 목은 그만한 가치가 없어 보이는 군… 죽여봐야 손해만 보겠는걸…….”
“…….”
바로 이때였다.
“하하하하! 이거 정말 못 봐주겠군!”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한 남자의 신형이 아주 빠르게 장내에 나타났다.
약관의 나이로 보이는 남자는 별과 같이 반짝이는 눈과 기개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손에는 검은색 진주를 들고 있었다.
검소왕이 청년이 든 진주를 바라보더니 소리쳤다.
“궁청성(宫青城)!”
남자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검소왕을 바라보더니 이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누군가 했더니 검가에서 검은 안 배우고 도를 배운다는 그 검소왕이로구나! 너 역시 여기 왔을 줄은 몰랐다!”
“하! 내가 오든 말든 네가 상관할 바 아니지!”
궁청성은 그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그저 웃으며 엽현을 향해 말했다.
“헤헤, 그 조그만 강국에 안란수 말고도 또 하나의 천재가 나타날 줄이야…”
엽현이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싸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