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93
893화 수라의 혼
두 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서자 엽현의 표정이 다소 난처해졌다.
물론 수라기병들이 강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마치 부문종의 일원인 것처럼 대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결국 엽령의 수하들이 아닌가!
이때 엽현의 속마음을 알아챈 류웅이 웃으며 말했다.
“사조, 너무 깊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현재 부문종과 수라여제는 한배를 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수라여제는 사조의 동생이니만큼 우리와도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지요.”
사실 수라국과 관계를 맺는 것은 부문종에게 있어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다. 비록 부문종이 약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전투력이 부재한 것은 사실이었다. 더욱이 최근에는 엽현 때문에 적잖은 세력이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게다가 서영족까지 연루된 상황에서, 수라족과의 연맹은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일이었다.
수라기병은 차치하고, 수라여제의 존재만으로도 최강의 우군이 생긴 것이 아닌가!
류웅의 말을 들은 엽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야추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야추, 수라지옥의 전 병력을 이끌고 지금 당장 부문종으로 향하거라.”
“존명(遵命)!”
야추를 포함한 수라기병들은 순식간에 장내를 빠져나갔다.
수라지옥 안에는 수라기병들 외에 다른 무인들도 존재했다.
단지, 수라기병의 전투력이 가장 강력할 뿐이다.
이때 아천과 아지가 다가왔다.
“주인께서 그대의 명을 따르라 하셨소.”
“그대들 역시 나와 함께 부문종으로 갑시다.”
“그리하리다.”
아천과 아지 두 사람은 엽령의 마음속에서 엽현의 존재가 얼마나 큰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엽현은 엽령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엽현은 수라지옥의 전 인원을 이끌고 부문종으로 향했다.
* * *
적선성.
오두막에서 빠져나온 이모백은 곧장 강변에 쭈그려 앉아 낚싯대를 기울였다.
그러자 그의 곁에 이석군이 공손한 자세로 자리를 잡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낚싯대가 세차게 흔들렸지만, 이모백은 생각에 잠긴 듯 반응하지 않았다.
“숙부?”
“…서영족이 나타났다더구나.”
“서영족이라면… 당시 오유계의 모든 인간을 멸종시키려 했던 자들이 아닙니까?”
이모백이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모습을 나타내자마자 수라여제를 노리다니, 생각보다 담이 큰 자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실력으로는 오유계를 어찌하지 못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에 이모백이 고개를 저었다.
“너는 그들을 얕잡아보고 있구나.”
“…….”
“석군아, 내가 왜 엽현이란 아이를 마음에 들어 하는지 아느냐?”
“그야… 나이에 맞지 않게 강해서…….”
“그렇지 않다. 사실 실력이나 자질을 놓고 보자면 너 역시 그 아이에 뒤지지 않는다. 다만 굳이 부족한 점을 꼽자면 그건 바로 배짱과 기백일 것이다.”
“…….”
“녀석은 나를 앞에 두고도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드러낸다. 반면 너는 나에 대한 존경심이 지나친 나머지 모든 것을 내게 의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말에 이석군이 이모백을 향해 예를 차리며 말했다.
“숙부, 사실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허락하신다면 나가서 세상을 둘러보고 싶습니다.”
“음?”
“숙부의 말씀대로 언제나 숙부와 함께 있다 보니 제한적인 생각만 하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밖으로 나가 세상의 견문을 넓혀 보고 싶습니다.”
“그래, 좋은 생각이로구나.”
고개를 끄덕인 이모백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서영족이 다시 등장한 지금, 세상은 곧 매우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난세에 기연이 찾아오는 법이니, 이때, 네 운을 시험해 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숙부… 제가 없는 동안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이석군은 이모백을 향해 큰 절을 올린 후 자리를 떠나려 했다.
바로 이때, 흰 천으로 돌돌 감긴 도 한 자루가 이석군의 발밑에 툭 떨어졌다. 이를 본 이석군이 눈을 크게 뜨고 이모백을 바라보았다.
“숙부, 이건 천도가 아닙니까? 어째서 이걸 제게…….”
“처음부터 네게 주려 했다. 그저 합당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 드디어 그때가 도래했구나.”
“수, 숙부… 하지만 이 물건은 숙부의…….”
이석군이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자 이모백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외물이 필요 없어진 지 이미 오래되었다. 내게 있어 천도는 그저 나뭇가지나 다름없을 뿐이지. 고집 피우지 말고 가져가거라.”
이석군은 황송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여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천도를 소중히 받아 들었다.
“숙부, 가문의 이름에 결코 먹칠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차게 자리를 박차고 나선 이석군은 순식간에 이모백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흐뭇하게 바라보던 이모백이 다시 냇가로 시선을 돌렸다. 이때 어느 순간 이모백의 곁에 나타난 중년인 하나가 냇가에 걸린 낚싯대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후후, 좋은 취미로군.”
“셋, 셋을 센 뒤에도 그 자리에 서 있는다면 목과 몸통이 분리되는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 셋!”
이모백이 막 손을 쓰려는 순간, 중년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날 죽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힘을 빼려는 것이오?”
“…죽일 수 없다고? 한 번 시험 해 볼까?”
중년인은 이모백의 날카로운 눈빛을 여유롭게 받아내며 대꾸했다.
“나도 한마디만 하겠소. 이 한마디를 들은 후에 그대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소.”
“…….”
침묵은 동의라 했던가.
이모백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중년인이 멀리 초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서영족에는 한 가지 신비한 비술이 있소. 이름하야 회혼금술(回魂禁術)이란 것이지. 만약 혼과 백이 완전히 흩어진 것만 아니라면, 즉, 한 가닥의 영혼이라도 남아 있다면 죽은 이를 되살리는 것이 가능하오.”
콰득-!
순간, 이모백이 붙들고 있던 낚싯대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이때 중년인이 이모백을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만약 그대가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비술을 사용해 그대가 사랑하던 그 여인을 부활시켜 주겠소!”
적막한 성 안.
물소리만 간간이 울려 퍼지는 시내 곁에서 이모백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곁에 서 있는 중년인 역시 얼굴에 웃음기를 띤 채,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육대강자의 존재는 서영족이 다시 오유계로 진출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런데 이들을 모두 제거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제거할 자들은 제거하고, 끌어들일 자들은 최대한 끌어들이는 것이 서영족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만약 육대강자가 모두 적으로 돌아선다면 서영족 입장에서는 매우 곤란할 수밖에 없으리라.
바로 이때, 이모백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살아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녀는 내가 누군가의 노예가 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단 두 번!”
중년인이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이자, 이모백이 그를 바라보았다.
“단 두 번만 우리를 위해 움직여 준다면 그대와 우리 서영족 사이에는 빚진 것이 없게 될 것이오!”
“…….”
“빨리 시도할수록, 살아날 가능성이 더 높소.”
이때 냇가에 괴여 놓은 낚싯대가 출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모백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 * *
부문종.
수라족을 데리고 부문종으로 돌아온 엽현은 곧장 부적 제작에 나섰다.
엽현이 자신을 돕는 자에게 부적을 그려주겠다고 공언한 이후로 많은 무인들이 부문종을 찾고 있었다. 실력이 약한 자라면 주황색 부적을 그려 줘야 하겠지만, 그보다 강한 자라면 칠색 부적을 제공해야 했다.
그리고 부문종에서 칠색 부적을 그릴 수 있는 자는 단 하나, 엽현뿐이다.
한편, 부문종의 다른 부문사들 역시 미친 듯이 부적을 그려대고 있었다. 류웅이 말한 대로, 수라기병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문을 새겨 넣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오 일이 흘렀을 때, 엽현은 비로소 처음으로 방문을 나설 수 있었다. 엽현의 안색은 매우 창백해져 있었다. 두 눈마저 퀭한 것이 마치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이때, 심성하가 황급히 그를 향해 다가왔다.
“사조, 괜찮으십니까?”
심성하의 말에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손바닥을 건넸다. 그의 손 안에는 칠색 부적 세 장이 있었다.
오 일을 꼬박 밤새워서 작업한 결과물이 바로 칠색 부적 세 장이었던 것이다.
엽현 역시 최대한 많이 그려내고 싶었지만, 이는 생각만큼 쉬운 것이 아니었다. 칠색 부적을 만들기 위해 소모되는 정신력이 엄청났던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재료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부문종의 재력이 아니었더라면 한 장 만드는 것도 어려웠으리라.
이때 뭔가 떠올린 엽현, 문득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 위로 혼돈지기가 떠올랐다. 순간, 심성하의 눈이 번뜩였다.
혼돈지기!
칠색 부적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성분 아닌가!
엽현이 주변을 살펴보며 말했다.
“심 종주, 나는 부문종의 모든 무인이 혼돈지기를 보유했으면 좋겠소.”
이 말을 들은 심성하가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사조, 그것은 아니 될 말입니다. 혼돈지기는 사조의 것……”
엽현이 고개를 흔들며 말을 끊었다.
“혼돈지기만 있다면 그대도 칠색 부적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다른 제자들 역시 부적의 질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것이오. 물론 내게 있는 혼돈지기의 기원(氣源)이 매우 작은 탓에, 모두가 마음껏 사용할 수는 없소. 때문에 기원을 배양해 혼돈지기를 생성하는 영맥을 만들면 어떨까 싶소. 그렇게만 된다면 부문종의 누구라도 혼돈지기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오.”
“사조…….”
심성하의 심정은 꽤나 복잡했다. 엽현이 기꺼이 혼돈지기를 내놓으려 할 줄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알다시피, 엽현에게 있는 혼돈지기의 기원은 오유계 유일한 혼돈지기가 아니던가!
그 가치는 도무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였다.
바로 이때, 심성하는 류웅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가 말하길, 사조는 도리를 아는지라,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갚으려 할 거라 하지 않았던가.
심성하는 일단 이 생각을 접어 두었다.
“사조, 혼돈지기를 내어 주면 사조는 어찌하려 하십니까?”
“하하! 그건 걱정할 것 없소. 내 몸은 혼돈지기로 가득 차 있으니까!”
심성하는 엽현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혼돈지기의 기원이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던 엽현의 몸은 그 자체로 혼돈지기의 기원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의 혼돈지기가 남아 있을 것이다.
물론 기원을 몸에서 제거한다면, 더 이상 마음대로 칠색 부적을 남용해서 만들 순 없으리라.
하지만 엽현은 이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대접받은 만큼 대접하는 것은 그에게는 매우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엽현이 혼돈지기의 기원을 꺼내놓자, 부문종 전체가 크게 술렁였다.
부문종이 아무리 부유하다 한들 혼돈지기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얼마나 많은 부문사들이 칠색 부적에 대한 한을 품고 죽어갔던가.
하지만 이제 부문종은 혼돈지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 의미는 앞으로 부문종의 전체적인 실력에 큰 향상이 있을 것임은 물론, 칠색 부적을 쓸 수 있는 자가 탄생할 수도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한편, 엽현이 기꺼이 혼돈지기를 내놓았다는 소식에 부문종 장로들은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끼는 한편,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엽현이 부문종에 소속감이 없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완전한 기우였음이 입증된 것이다.
사조 역시 부문종의 일원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