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897
897화 준비는 됐나?
계옥탑!
엽현은 회오리 속을 응시하며 마른 침을 삼켰다.
과연 계옥탑은 여전히 자신을 주인으로 인정할 것인가!
이 순간, 거대한 물줄기와 함께 계옥탑이 순식간에 하늘 높이 솟구쳤다.
쾅-!
탑 주변으로 강대한 기운이 흘러나오자, 일순 하늘과 땅의 모습이 기이하게 변형 됐다. 이와 동시에 무형의 기운이 사방을 압박하듯 날아들었다.
멍하니 계옥탑을 응시하고 있는 엽현.
그가 느끼기에 탑의 기운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져 있었다!
공중에 걸린 계옥탑이 끊임없이 진동하던 이때,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탑을 향해 날아갔다.
이를 눈치챈 엽현이 황급히 출수하려 하자, 곁에 있던 장문수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다.”
엽현이 손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탑에서 강대한 힘이 흘러나와 그림자를 멀리 튕겨 내 버렸다.
이번에는 노인 하나가 탑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때 계옥탑이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순간 잠시 어리둥절하던 엽현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삼중 차원!
계옥탑은 이미 삼중 차원에 진입한 것이었다!
삼중 차원은 엽령정도 되는 고수들만이 진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던가!
심지어 장문수조차 이중 차원까지밖에 진입하지 못하거늘, 그런데 계옥탑이!?
이때, 탑을 향해 달려들던 노인의 육신에 금이 일더니, 순식간에 허무로 변해 사라졌다.
강하다!
이 순간, 엽현은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 탑의 실력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강했던 것이다.
탑 자체로도 이렇게나 공포스러운데, 아홉 도칙과 융합한 계옥탑은 도대체 얼마나 강할까?
바로 이때, 주변을 정리한 계옥탑이 엽현의 머리 위로 날아왔다.
이에 곁에 있던 장문수가 주먹을 쥐며 언제든 출수할 준비를 했다.
엽현 얼굴 앞에 멈춰 선 계옥탑은 가볍게 웅웅대더니, 돌연 한 줄기 빛으로 변해 엽현의 가슴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멍청하게 있던 엽현이 정신을 차리고 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 위에 나타난 계옥탑이 마치 강아지처럼 그의 손에 몸을 문대는 것이 아닌가!
장문수가 경악에 찬 얼굴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계옥탑의 지금 이 행동은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선각자를 제외하면 거만하기 짝이 없던 계옥탑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엽현에게는 이렇게 친밀감을 표시한다고? 뭔가 이상하다!
이때, 당사자인 엽현 역시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떠나거나 공격할거라 생각했지, 이렇게 응석받이로 변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혹시 내가 하늘이 내린 귀인이기 때문이 아닐까?
히죽히죽 웃으며 탑을 거둬들인 엽현이 고개를 돌려 장문수를 바라보았다.
“도와줘서 고마워. 네 덕이다.”
“…너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신비한 존재로구나. 어쨌거나, 원하던 대로 탑은 완전히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다만 탑의 위력을 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결국 아홉 개의 도칙을 모아야 할 것이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나는 또 볼일이 있으니, 일단 여기서 작별하자.”
“조심히 가거라. 운도 지지리도 좋은 놈.”
“하하하하!”
엽현은 곧바로 호쾌한 웃음소리를 남긴 채, 한 줄기 검광이 되어 장내를 빠져나갔다.
장문수 역시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 그녀가 황급히 신형을 날리려 할 때, 중년 남자 하나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대는 여기 남아 있어야 하오.”
“…그를 죽이려는 게냐?”
“그렇소.”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장문수의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본 중년인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진법을 운용하지 않고는 나를 죽일 수도, 이곳을 떠날 수도 없을 것이오.”
“…….”
중년인을 뚫어져라 노려보던 장문수는 결국 출수하지 못했다.
그저 매우 불안한 표정으로 엽현이 사라진 곳을 응시할 뿐이었다.
* * *
만유서원에서 매우 멀리 떨어진 어느 무덤가.
막 한 무리의 원혼들을 섬멸한 엽령이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이윽고 그의 앞에 나타난 하얀 장포의 노인.
이모백!
이모백의 등장에 엽령이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서영족에 투항했나?”
이모백이 고개를 저었다.
“그저 그들을 위해 두 번 출수해 주기로 한 것뿐이다.”
“무엇 때문에…….”
이 순간, 무언가를 눈치챈 엽령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설마 나를 막는 동안 오빠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모백.
이 모습을 보자 엽령의 표정이 귀신처럼 흉악해졌다.
“다 죽인다-!”
외침과 동시에 엽령이 이모백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이모백이 굳은 표정으로 전투 자세를 갖췄다.
부문종.
이날, 수십 명의 정체모를 살수들이 부문종에 침입했다.
때아닌 암습에 부문종 무인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후, 물러나나 싶었던 살수들은 이차, 삼차 암습을 강행했다.
이 시각, 부문전 안.
쾅-!
“대체 저들은 누구란 말인가!”
심성하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이때, 뭔가 생각하던 류웅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종주, 어쩌면 이것은 시간 끌기일 뿐, 저들의 진짜 목적은 사조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당장 사조에게 연락을 취하거라!”
그 말에 류웅이 지체없이 전음부 한 장을 찢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 종주……. 이미 주변의 공간이 철저히 차단된 것 같습니다! 전음부가 통하지 않습니다!”
“아뿔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심성하.
하지만 그는 이내 절망적인 표정으로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 * *
만유서원을 떠난 지 반 시진.
부문종으로 향하던 엽현이 어찌 된 일인지 자리에 멈춰 섰다. 정체모를 중년인 하나가 그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장포로 몸을 칭칭 두른 남자의 등 뒤에는 고금(古琴)이 달려 있었다.
이때 주변을 살피던 엽현이 재빨리 전음석을 으스러뜨렸다. 하지만 그는 이내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말았다. 어찌 된 일인지 전음이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불량품인가?
하지만 다른 전음석을 사용 해 보아도 반응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
엽현의 얼굴이 점점 까맣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엽령도, 장문수도, 부문종도 그 누구 하나 연락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
서영족이 수를 쓴 게 틀림없었다.
이제 어떡한다?
일단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힌 엽현은 눈앞의 중년인에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그래, 한 명 뿐인 거지?”
“…그럴 리가.”
중년인이 말을 마친 순간, 엽현을 둘러싼 공간이 덜덜 떨렸다. 순식간에 빛으로 된 결계가 두 사람을 에워쌌다.
이와 동시에 중년인의 뒤편에 또 다른 네 명의 백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광막 밖에서도 하얀 갑옷과 창을 장착한 무인들이 나타나 엽현의 주변을 둥글게 에워쌌다.
말 그대로 독안에 든 쥐가 된 셈이다!
하지만 엽현은 이를 보고도 매우 침착한 표정이었다.
“더 있나?”
“왜, 부족한가?”
“훗, 한참 부족한 것 같은데?”
“글쎄… 이 정도면 이미 과분한 대접인 것 같다만.”
이때, 남자의 등 뒤에 있던 고금이 가볍게 몸을 떨었다. 그러자 순간 한 줄기 녹광(綠光)이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엽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순간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강하군!
장문수와 비교해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을 실력이었다.
방심할 여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엽현은 곧바로 계옥탑을 꺼내 들었다.
쾅-!
날카롭게 날아오던 녹광이 계옥탑에 막혀 튕겨 나갔다. 반면 계옥탑은 흠집 하나 남지 않았다.
중년인의 시선이 계옥탑에 향해 있는 이때, 장내에 한 줄기 검광이 번뜩임과 동시에 엽현의 모습이 사라졌다.
일검무량(一劍無量)!
그가 펼친 일검무량은 공격용이 아닌 은신을 하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엽현이라도 이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상대할 순 없기 때문이었다.
비록 엽현을 포위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중년인 등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연천과 공간도칙의 존재였다.
결계? 연천 앞에서 결계가 웬 말인가?
공간 봉쇄? 공간도칙 앞에서는 헛된 희망일 뿐!
엽현이 사라진 이 순간, 중년인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놓쳐선 안 된다!”
중년인이 외친 순간, 결계가 빛을 뿜어내며 크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 광막이 돌연 반으로 갈라지면서 그 안에 존재하던 봉인지력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때, 한 줄기 유성처럼 빠르게 솟구치는 검광!
중년인은 눈 깜짝할 사이에 멀어진 검광을 쫓는 대신 고개를 돌려 오른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작은 성신(星辰)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때 성신 가운데서 한 줄기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어두운 우주 한 편을 비췄다.
빛이 비친 곳은 정확히 엽현이 위치한 공간이었다.
위치가 발각된 엽현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어떻게 찾아낸 거지?
길게 생각할 새도 없이, 속력을 최고로 끌어올린 엽현.
일단은 이곳에서 빠져나가 만유서원으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하지만 성신에서 쏘아진 빛은 마치 뼈다귀에 붙은 파리처럼 계속해서 엽현을 쫓아다녔다.
바로 이때, 이번에는 여인 하나가 엽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얀 갑옷을 착용한 여인은 허리춤에 기다란 도를 지니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엽현이 먼저 검을 뽑아 들었다.
일검무량(一劍無量)!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은 보통 무인이 아니라는 증거.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야만 했다.
엽현이 일검을 방출한 순간, 여인은 도리어 눈을 감더니, 검이 코앞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도를 뽑아 들었다.
“찰나(剎那)!”
도가 모습을 보인 순간,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검도, 공기도, 심지어 시간까지도.
아니, 반대였다.
도의 속도가 극한에 도달했기에 상대적으로 다른 것들이 느려진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쾅-!
그대로 인정사정없이 튕겨져나간 엽현.
백 장을 날아가고서야 멈춰 선 엽현은 앞섬이 찢겨져 있었고, 미간부터 복부까지 피부가 길게 갈라져 선혈을 뿜어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여인을 바라보는 엽현의 안색이 매우 어두워졌다.
쾌도(快刀)!
이는 지금까지 그가 봐 왔던 도 중 가장 빠른 것이었다.
만약 그의 육신이 특별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 쓰러졌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때, 고금을 등에 멘 중년인과 나머지 무인들이 도착했다.
엽현은 다시 한번 적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여인에게 당한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다는 점이다.
한편, 잠시 엽현을 응시하던 중년인이 여인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무(武) 소저.”
바로 이때, 엽현의 머릿속에 현천책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엽 신사, 조심하시오. 저 여인은 무국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여겨지는 무승남(武勝男)이라는 자요. 그녀의 경지는 이미 몇 년 전 천기경에 이르렀고, 도도(刀道) 역시 범도(凡刀) 초입을 넘어섰소. 게다가 그녀는 무국의 자랑인 장신기병의 사령관이기도 하오. 소문에 의하면 당시 그녀의 자질에 반한 이모백이 스스로 사부가 되길 자처했으나, 거절당했다고 알려져 있소. 무승남 같은 천재에게는 사부조차 필요가 없었던 것이오!]무승남!
엽현은 차분하게 눈앞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비록 단 일합이었지만, 그녀의 강함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사실 오유계 젊은 무인들의 실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다만 엽현이 아직 강한 자들을 만나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현, 종주. 혹시 나 대신 만유서원과 동생에게 연락을 취해 줄 수 있소?] [상황이 녹록지 않소. 여제와 서원 모두 적을 상대하는 중이오.]그 말을 듣자 엽현의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
그렇다면 결국 스스로에게 기댈 수밖에 없단 말인가!
이때 무승남이 중년인을 향해 말했다.
“저자와 한번 겨뤄보고 싶소.”
“소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