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905
905화 검 한 자루면 두려울 것이 없노라
쿵! 쿵!
엽현이 자신의 이름을 팔아먹자 화가 난 계옥탑이 난동을 부렸다.
하지만 엽현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무 소저,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에 나의 계옥탑을 걸겠소. 서영족이 만유서옥을 노리는 이유는 바로 그 절정 고수를 풀어주기 위함이오. 일단 그자가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되면 서영족은 그대들과의 약속을 없었던 걸로 할 것이오. 아니, 더 나아가 그대들에게 주종관계를 요구할 수도 있소. 어떻소, 이래도 서영족과 함께 하겠소?”
“…….”
무승남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만약 엽현의 말이 사실이라면 무국에게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피를 흘리지 않고 서옥의 일부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현재 서영족이 저자세를 취하는 이유는 어떻게든 무족의 병력을 이용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약 만유서원이 멸망하고, 그들의 선조가 봉인에서 풀려난다면 분명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될 것이다!
무승남이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무 소저, 그대도 보았겠지만 서영족은 자신들의 전력을 노출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소. 왜 그러겠소? 그대들이 겁먹고 반항할까 그러는 것이오. 지금은 온순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때가 되면 한 마리 늑대처럼 오유계 전체를 집어삼키려 할 것이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선각자가 사라진 후, 반쯤 병신이 된 만유서원에게 힘을 실어 주겠소. 적어도 그들은 오유계 통일 같은 야망은 없으니 말이오.”
엽현의 말을 들은 무승남이 엽현의 눈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그대 말은…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로군.”
“…….”
무승남은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엽현은 그녀를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그녀가 고민을 시작하게 만든 것만 해도 절반은 성공이었다.
애초에 그녀에게 이러쿵저러쿵 말을 늘어놓은 것도 무승남의 지위가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녀를 설득할 수 있다면, 무국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한결 쉬워지리라.
한동안 말없이 걷던 중, 무승남이 정적을 깨뜨렸다.
“그대에 대해 약간의 조사를 해 보았소.”
“하하, 그래서 뭘 알아냈소?”
“그대는… 후안무치, 안하무인, 거기에 음흉한 술수를 즐겨 쓴다고 쓰여 있더군.”
“이런……. 나에 대해 좋게 본 내용은 없었소?”
“정의롭고, 스스로의 원칙을 잘 지킨다고 했소. 한 번 동료가 되면 끝까지 의리를 지킨다는 것도.”
“내가 배신한 적이 있다고 나와 있었소?”
“보지 못했소.”
무승남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때, 엽현이 무승남 앞으로 돌아와 그녀를 멈춰 세웠다.
“무 소저, 그대와 나, 우리 모두 솔직한 사람들이오. 그러니 한 번 솔직해집시다. 서영족과 나, 누가 더 무국에게 이로운 동맹이겠소?”
“…….”
엽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승남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후, 마침내 무승남이 입을 열었다.
“무국을 설득하려거든 조금 전 그대가 했던 말을 믿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오.”
“어떤 거 말이오?”
“그 왜, 만유서옥 안에 서영족의 선조가 갇혀 있다는 거짓말 말이오.”
거짓말!?
“무 소저, 거짓말이라니, 가당치도 않소. 내가 거짓말이라 하고 다닐 상이오?”
“그대는… 거짓말도 모자라 뻔뻔하기까지 하군.”
“…….”
“아무튼 방금 말한 대로, 그대의 뜻을 이루려면 우리 무국의 원로들이 서영족에게 겁을 먹도록 해야 하오. 그래야만이 그대의 편을 들어주거나, 최소한 서영족과의 동맹을 재고해 볼 것이오.”
“무 소저, 그대는 어찌 내 말이 거짓이라 단정 짓는 것이오?”
순간 무승남이 엽현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여자의 직감… 이라 하면 알아들으려나.”
“…….”
“어쨌거나, 나는 서영족보다는 그대와 손을 잡는 것이 낫겠다는 입장이오. 다만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무국이 그대들을 위해 강자들을 보내줄 것 같지는 않소.”
엽현은 무승남의 말을 곧바로 이해했다.
만에 하나 무국이 자신들과 동맹을 맺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서영족과 만유서원 사이에서 줄타기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야만 두 진영이 자신들을 함부로 하지 못할 테니까.
간단히 말해 무국은 가만히만 있어도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엽현 역시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무국이 서영족 편에 붙지 않는 것만으로도 상황은 훨씬 좋아질 테니까.
“무 소저, 무국 원로들을 설득시키려면 어떤 방법을 쓰는 게 좋겠소?”
엽현의 질문에 무승남은 손바닥을 펴 보였다.
“계옥탑을 보여 주시오.”
엽현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그녀에게 계옥탑을 넘겼다.
잠시 탑을 이리저리 훑어보던 무승남이 엽현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들어가 볼 수 있겠소?”
“물론이오!”
엽현은 그대로 무승남을 데리고 탑 안으로 진입했다.
계옥탑 내부.
탑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무승남은 마지막으로 탑 구층 입구에 멈춰 섰다.
“그대는 혹시 내가 찾던 그 사람입니까?”
내가 찾던 사람?
엽현은 어리둥절했으나 일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탑 구층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네가 찾는 자는 십층에 있다.”
십층?
엽현이 황급히 물었다.
“탑은 구층까지밖에 없거늘, 도대체 십층은 어디 있단 말이오?”
“십층으로 올라가는 입구는 내가 있는 이곳 안에 있다. 다만 너의 지금 실력으로는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어떤 종류의 실력 말이오?”
“도칙.”
도칙?
“적어도 팔층의 도칙 정도는 있어야 할 것이다.”
엽현은 대화를 멈추고 무승남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 소저, 이 탑 안에 그대와 관련된 자가 있소?”
무승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무국의 선조 한 분이 갇혀 계시오.”
“흠… 그랬군. 아쉽지만 현재로서는 십층의 봉인을 풀 방법이 없소.”
엽현의 말에 무승남이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이미 억겁의 세월을 갇혀 있었는데, 몇 년쯤 더 갇혀 있겠다고 해도 화내지 않으실 거요.”
“…….”
잠시 후, 엽현과 무승남은 계옥탑을 벗어났다.
이때 무승남이 먼저 앞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만 돌아 가 보시오.”
돌아가?
“가긴 어딜 간단 말이오. 아직 국주를 뵙지도 못했…….”
무승남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잘랐다.
“내가 보장할 테니 신경 쓰지 마시오. 앞으로 우리 무국이 다시 서영족을 돕는 일은 없을 것이오.”
“그대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엽현은 처음 무승남을 만났을 때 이미 그녀의 지위가 결코 낮지 않음을 간파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믿어볼만 하리라.
엽현이 막 작별을 고하려 할 때, 무승남이 갑자기 엽현을 향해 돌아섰다.
“이렇게 멀리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보내긴 그렇고……. 비경을 하나 보고 가겠소?”
“비경?”
무승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국 무인 하나가 어느 성역을 지나다가 우연히 미지의 비경을 발견한 적이 있소. 이 비경엔 수많은 결계와 봉인이 설치돼 있는데, 혹시나 비경 자체가 파괴될까 봐 지금껏 보존만 해 오고 있는 실정이오.”
“참 곤란하겠구려!”
“그래서 말인데… 듣기로는 계옥탑 안에 봉인과 관련된 도칙이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렇소?”
연천?
엽현이 숨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떻소? 내가 길을 안내할 테니 그대가 비경의 봉인을 푸시오. 그런 다음 그 안에서 발견한 것을 나눠 갖는 것이오.”
“좋소!”
엽현은 두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공짜로 기연을 나눠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오. 가기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오.”
말을 마친 무승남은 부리나케 어디론가 향했다.
자리에 홀로 남게 된 엽현.
“연천, 솔직히 말해봐. 도대체 만유서옥 안에는 뭐가 있는 거야?”
많은 무인들이 만유서옥을 위해 싸우고 있었지만, 정작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엽현 역시 처음부터 궁금증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잠시 후, 탑 안에서 연천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서옥 안에는 오래전 주인이 남겨 놓은 물건들이 있다. 오유계에 대한 연구부터 시작해서, 부문, 연단, 주기, 진법에 관한 자료들이 남아 있지. 게다가 각종 무예에 대한 주석들, 그가 직접 창조한 비술이나 무학도 잘 보 돼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주인은 진귀한 신물들을 제작하길 좋아했는데, 하나하나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만큼 대단한 물건이라 할 수 있지.]운명을 바꿀만한 물건들!
“그는 어떻게 그렇게 다재다능할 수 있던 거지?”
[타고나길 그렇게 태어난 게지.]“나처럼?”
[또, 또, 그놈의 주둥이!]“연천… 지금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거야?”
[흠… 언제 어디서나 뻔뻔해질 수 있는 낯짝에 관해서라면 천재라 할 수 있지.]“…….”
엽현이 막 따지고 들려 하는 순간, 때마침 무승남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갑시다!”
무승남이 소매를 펄럭이자, 눈앞에 전송진 하나가 나타났다. 두 사람이 진 안으로 사라지자, 잠시 후 전송진도 감쪽같이 모습을 감췄다.
대략 반 시진 후.
두 사람이 나타난 곳은 어느 이름 모를 성공 한복판이었다.
엽현이 주위를 둘러보니 어둠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사방에서는 강대한 기운이 시시때때로 느껴졌다.
“무 소저, 이 기운은 다 무엇이오?”
“무국의 강자들이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이곳을 지키고 있소.”
말을 마친 무승남이 돌연 손가락으로 어둠 속을 가리켰다.
그러자 갑자기 성공 전체가 들썩이더니, 그들의 눈앞에 검고 큰 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검은 문 한복판에는 날카로운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모양으로 보아 누군가 검을 휘두른 것이 틀림없었다.
“무 소저, 이게 도대체 무엇이오?”
“나도 모르오. 우리도 우연히 발견했을 뿐.”
엽현은 질문을 멈추고 다시 검은 문을 바라보았다. 이때, 엽현의 시선 속에 문 하단에 작게 새겨진 글귀가 들어왔다.
검 한 자루만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노라.
광오하군.
이것이 엽현이 글귀를 본 후 든 생각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기에 이런 글을 남겼단 말인가!
이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엽현만이 아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호쾌하군.”
무승남의 말에 엽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이 글귀를 새간 자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이 문에는 강력한 결계가 쳐져 있어, 함부로 접근조차 할 수 없었소. 그대가 한번 해 보겠소?”
“좋소.”
고개를 끄덕인 엽현은 곧장 연천을 불러냈다.
연천은 곧바로 검은 문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엽현은 연천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발견했다.
“연천, 왜 그래?”
“검계(劍界)다.”
“검계?”
“검으로 결계를 친 것이지. 상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검도의 조예가 상당히 깊은 것이 틀림없다.”
“해체할 수 있겠어?”
“물론! 그러나 네 도움이 필요하다.”
“뭐든 말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