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909
909화 인간도 돼지와 같다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던 엽현이 순간 멈칫했다.
여인의 눈길이 자신의 소중한 그곳(!)에 닿아 있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화들짝 놀란 엽현이 양손으로 중요 부위를 가렸다. 이에 여인이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징그러운걸 뭐 하러 달고 다니느냐? 내가 대신 제거해주면 어떻겠느냐?”
“뭐, 뭐요!? 뭘 제거해? 이건 남자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오! 이게 없으면 어찌 남자라 할 수 있단 말이오?”
“…너는 네가 왜 약한 줄 아느냐?”
여인의 뜬금없는 질문에 엽현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갑자기 그게 무슨… 내가 약한 건 아직 어리기 때문 아니겠소?”
“네가 너만한 나이 때 이미 세상에 적수가 없었다. 그러니 네 말은 틀린 것이다.”
“그럼 그대는 어째서 그렇게나 강했던 것이오?”
“왜냐하면… 나는 욕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욕망? 사람이 욕망이 없는데 어찌 강해질 수 있소?”
“욕망이 제거된 상태여야만이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자연으로 회귀할 수 있기 때문이지.”
“…….”
“네가 싫다면 강요하진 않으마. 강해지는 법을 알려줘도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차라리 덜 강해지고 남자 구실 하는 게 낫지 않겠소!?
엽현은 이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내뱉지는 못했다.
이때, 여인이 엽현을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나체의 여인과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지자, 엽현은 온몸의 피가 한 곳에 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 그게 무슨 뜻이오?”
“입혀라.”
입혀?
엽현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입히라니, 이 여자가 지금 자신에게 옷을 입히라고 명령하는 건가?
“아니, 다 큰 어른이 스스로 옷 하나 입지 못한단 말이오?”
“그럼 설마 날 더러 손을 움직이라는 게냐?”
“그편이 더 정상…….”
“그래서, 필요 없어?”
여인의 시선이 다시 엽현의 아랫도리로 향했다. 순간 엽현은 감히 거부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위압을 느꼈다.
“조, 좋소!”
엽현은 황급히 장포를 주어 들고서 여인에게 입히기 시작했다.
엽현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몸을 건들게 되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감촉은 눈으로 볼 때보다 훨씬 더 부드러웠다. 그녀의 몸은 마치 유능한 장인이 깎아 놓은 조각상을 보는 듯했다.
대단하구나!
이미 아름다움을 넘어서 감탄 밖에 나오지 않는 경지!
이런 여인을 두고 피가 끓지 않는다면 어찌 남아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엽현은 젖 먹던 힘을 발휘해 마음을 진정시켰다.
자칫 잘못하다간 변태로 몰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엽현은 마지막으로 여인의 옷고름까지 정리해 주고선 한편으로 비켜났다.
이때 여인이 갑자기 손을 들어 엽현의 주변을 더듬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 안에 실같이 가느다란 것이 걸려 올라왔다. 엽현의 눈에 비친 실들은 매우 기이했다.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는 듯 도무지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인과선…….”
“인…과선?”
여인이 고개를 돌려 엽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구나. 처음 보는데도 익숙한 느낌… 게다가 죽이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으니 어찌 된 일일까…….”
원래는 죽이려 했었나!?
여인의 말에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여인이 어째서 자신에게 친밀감을 느낀단 말인가?
“그대도 무적종의 무인이오?”
“아니다.”
엽현의 질문에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다만 연관은 조금 있다. 내 손으로 이곳을 멸망시켰으니까.”
그 말을 들은 엽현은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그대가 바로 그 신비인이었단 말이오?”
“신비인? 그게 무슨 말이냐?”
다소 머릿속이 복잡해진 엽현은 여인의 질문에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분명 연무는 한 신비인이 나타나 단숨에 무적종을 멸망시켰다고 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을 줄이야.
아니, 그보다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건, 그녀가 왜 이곳에 잠들어 있었단 말인가?
“그럼, 하나 물어봅시다. 무슨 이유로 이곳을 멸한 것이오?”
여인이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말했다.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작 그런 이유로?”
“왜, 이유가 부족한가?”
“아니, 당연히…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 죽인 것은……. 너무 잔인한 것 아니오?”
“그래서 죽이면 안 됐었다?”
여인이 빤히 바라보며 묻자 엽현은 말문이 턱 막혔다.
원래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성격인가?
“돼지를 먹어본 적 있느냐?”
“돼지? 물론 먹어보았소.”
“맛있다는 이유만으로 돼지를 죽인다. 이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건 돼지라서 그런 것 아니오! 사람과는 다르잖소?”
“사람은 먹기 위해 돼지를 사육하고 죽인다. 이 과정에서 돼지는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지. 내가 한 짓을 잔인하다 하지 말아라. 인간 자체가 원래 잔인하게 태어난 족속이니.”
여인의 말에 엽현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때 여인이 말을 이어갔다.
“어느 날, 인간 역시 다른 생령들에게 돼지 취급을 받을 날이 올 것이다. 하늘은 죄를 잊고 넘어가는 법이 없다. 너희 인간들이 저지른 죄악은 언젠가 인과가 되어 스스로의 멸망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대도 인간이면서 어찌 그런 말을 하시오?”
“내가? 언제 너더러 인간이라 했더냐?”
“그럼… 인간이 아니란 말이오?”
“그런 불결한 말은 입에도 담지 말거라.”
“그럼 그대는 어떤 종족이오?”
“흠…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나는 네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종족도 아니다.”
“그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요?”
자신이 알고 있는 종류의 존재가 아니라니, 그럼 귀신이라도 된단 말인가?
여인은 대답 대신 어디선가 원판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녀가 원판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자 원판이 발광하며 미친 듯 회전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원판이 멈추고 여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혈겁까지 고작 십 년 남았군.”
“혈겁? 십 년?”
여인이 고개를 들어 어리둥절해 하는 엽현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십 년 후, 너희 인간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결국 너희의 종말을 지켜볼 날이 오다니,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보람이 있었구나! 하하하!”
“이보시오, 그대는 왜 인간이 멸망하길 바라는 것이오?”
“후후, 그것이 바로 내가 태어난 이유니까.”
“그게 무슨…….”
엽현이 의아하게 바라보자, 여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처음에는 나도 이것이 나의 운명이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인간들과 오랜 시간 함께 부대끼다 보니, 너희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존재인지 알게 되었지. 그때부터 나는 인간들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그럼 나도 증오하시오?”
“음?”
엽현의 질문에 여인이 순간 당황한 듯 눈을 깜빡였다.
“너는… 증오하지 않는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오래전부터 알았던 사이처럼 친근한 느낌이 든단 말이지… 이런 느낌을 주는 자를 만난 건 네가 두 번째다.”
“어째서 그런 느낌이 든단 말이오? 그리고 첫 번째는 누구였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 모른다. 두 번째, 말할 수 없다.”
“…….”
엽현은 가만히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신비한 존재가 아닌가.
“다 말해 줄 수 없다면, 이름이라도 알려 주시오.”
“9호(九號).”
“9호? 그게 이름이오?”
“그렇다.”
9호!
엽현의 표정이 기괴해졌다. 이 숫자 같은 게 이름이라는 건가?
바로 이때 9호가 돌연 팔을 휘둘렀다.
찰나의 순간, 대전 전체의 벽이 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소, 소저! 지금 뭐 하는 짓이오?”
“그럼 언제까지 여기 있을 게냐?”
엽현이 막 무슨 질문을 하려는 순간, 사방의 공간이 유리처럼 산산 조각났다. 정신을 차렸을 때 엽현은 처음 그가 서 있었던 대전 앞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게다가 엽현의 정면에는 연무가 똑같은 자리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작스런 엽현의 등장에 연무가 까무러치듯 소리쳤다.
“너, 너! 네가 어떻게…….”
바로 이때, 엽현 곁에 있던 9호가 소매를 펄럭였다. 그러자 연무의 영혼이 마치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초살!
멍청한 눈으로 9호를 돌아보는 엽현.
이때 9호가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인간은 얼굴만 봐도 토할 것 같아.”
“…….”
바로 이때, 그들 주변의 공간이 일렁이더니, 멀지 않은 곳에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인은 다름 아닌 무승남이었다.
마찬가지로 9호가 출수하려 하자, 엽현이 깜짝 놀라며 그녀의 팔을 붙들었다.
“잠깐, 잠깐! 좀 진정하시오!”
“음? 아는 사이냐?”
“그렇소! 나와 같이 이곳에 온 동행이오!”
“그럼 삼 초 줄 테니 어서 치우거라. 꾸물거리면 바로 죽일 거다.”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오?”
9호가 고개를 저었다.
“인간은 보이는 족족 잡아 죽여야 한다.”
“무슨 이유로?”
“그냥, 내가 원래 이렇게 태어났으니까.”
“…….”
“삼 초 지났다.”
말을 마친 9호가 정말로 무승남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녀가 막 출수하려는 순간, 엽현이 황급히 달려들어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지면을 굴렀다.
“무 소저, 어서 도망가시오! 빨리!”
무승남은 여전히 상황 파악은 되지 않았지만, 새하얗게 질려버린 엽현의 얼굴을 보자 지체없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본능적으로 죽음의 기운을 맡았던 것이다.
무승남이 사라지고, 장내에 남은 것은 엽현과 9호뿐.
9호가 자신을 깔고 누워있는 엽현의 얼굴을 가까이 바라보았다.
“이상해……. 왜 죽이고 싶지가 않을까?”
아니었더라면 진작에 죽였을 거란 말인가?
엽현은 달콤하면서도 섬뜩한 한 마디에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렸다.
이때, 엽현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을 죽이지 못해 근질거리오?”
“그렇다.”
“그럼 내가 아는 곳이 있소. 나보다 역겨운 자들이 우글거리는 곳인데, 그곳에 데려가 줄 테니 마음대로 하시오. 어떻소?”
“듣던 중 반가운 말이로구나!”
9호가 순순히 승낙하자 엽현이 활짝 웃으며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곧, 9호와 함께 어두운 성공을 질주하는 엽현.
그의 얼굴엔 웃음기가 만연했다.
“하하하! 기다려라, 서영족. 너희에게 굉장한 선물을 선사해 주마! 하하하하!”
9호가 인간을 증오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엽현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서영족이었다.
아직 그녀의 실력을 아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엽령 등 오유계 육대강자에 비해서 절대 밀리지… 아니, 그 이상일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수만 년을 살아온 괴물이니만큼 어찌 보면 당연하리라.
한 가지 두려운 점은 인간에 대한 9호의 증오심이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이 여자는 도대체 어떤 종족일까?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9호가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영족의 영역으로 가는 길.
“너도 죽이는 데 취미가 있느냐?”
살인의 취미!?
“흠… 취미라기보다는 가끔씩 내 자신을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소.”
“그렇다면 우리에게 공통분모가 있는 셈이로구나.”
9호가 싱긋 웃으며 말하자 엽현은 염통이 쫄깃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공통분모… 까지는 좀 그렇고. 세상에는 마땅히 죽어야 할 자들이 있지 않소? 그들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오.”
“…너는 돼지를 잡을 때 좋은 돼지 나쁜 돼지 구분하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