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910
910화 갑자기? 이렇게?
엽현은 또다시 말문이 탁 막혔다.
사실 9호의 화법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반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썩 틀린 말은 결코 아니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세상에 어떤 우월한 종족이 나타나 인족을 가축 취급을 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이는 한 번 깊게 사유 해 볼만한 문제이긴 했다.
“음… 그런데 그대는 어째서 계속 이런 주제만 끄집어내는 것이오?”
“후후, 왜냐하면… 네게서 보통 인간들과 다른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너라면 기존 인간들의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라고 해 두지.”
“내가 평범하지 않다고? 어째서 말이오?”
“왜냐고 묻지 말거라. 그냥 내 느낌이니까.”
“…….”
엽현은 더 이상 9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했다. 그녀의 사차원적 논리에 빠져들었다간 정신이 이상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엽현과 9호는 서영족의 영역에 도착했다. 바로 이때, 그들이 지면에 발을 딛자마자 사방에서 십여 명의 강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노인이 엽현을 발견하고선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바로 이때, 9호가 다짜고짜 일장을 방출했다.
쾅-!
그대로 한 줌의 핏덩이가 되어 사라져 버린 노인.
초살!
단 일격에 육신은 물론 노인의 영혼까지 소멸한 것을 보자, 엽현의 눈가가 자신도 모르게 파르르 떨렸다.
일단은 자신에게 호의적이긴 하지만, 그 실력이 너무나도 악마 같았던 것이다.
이때, 웬 중년인 하나가 9호 앞을 가로막았다.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소란을…….”
쾅-!
조금 전 노인과 마찬가지로, 중년인 역시 혈무가 되어 사라졌다.
모든 무인들이 말을 잇지 못하는 이때.
돌연 강대한 기운이 영계 중앙으로부터 솟구치더니, 엽현과 9호를 향해 빛처럼 날아들었다.
공간을 짓이기며 순식간에 두 사람 앞에 도달한 기운.
바로 이때, 9호의 손이 가볍게 움직였다. 그러자 성역 전체를 진동케 하던 기운이 거짓말처럼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때, 멀리 구름 위편에서 잔물결이 일더니 사람의 형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원천(元天).
이는 서영족 최강자 중 하나인 대천존(大天尊), 원천이었다.
다만 이번에 출격한 것은 본체가 아닌 분신일 뿐이었다.
원천의 차가운 시선은 곧장 9호에게로 향했다.
“그대는 도대체 누구시오!?”
이때 9호가 마치 역겹다는 듯 인상을 썼다.
“여기도 인간, 저기도 인간! 이 역겨운 바퀴벌레들 같으니라고!”
말을 마침과 함께 9호가 한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원천이 있던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마치 회오리처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이 회오리 중심에 있던 원천이 깜짝 놀라 황급히 양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주변의 공간이 단단하게 뭉쳐 하나의 벽을 형성했다.
바로 이때, 아래쪽에 있던 9호가 허공에 대고 가볍게 주먹을 내뻗었다.
쾅-!
원천은 그대로 공간의 벽을 뚫고 멀리 튕겨 날아갔다.
원천의 분신은 이 날아가는 과정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쯧쯧……. 약해.”
고개를 흔들던 9호가 엽현의 어깨를 밀쳐냈다.
“저기 옆에 찌그러져 있어. 좀 죽여야 하니까.”
엽현이 황급히 멀찌감치 물러섰다.
9호는 천천히 영계를 향해 이동했다.
그녀에게선 어떠한 기운도, 힘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이때, 서영족 진영 깊은 곳으로부터 하얀빛이 떠올랐다.
9호가 고개를 들어 빛을 바라보려는 순간, 구름 사이에서 거대한 손 하나가 그녀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이 거대한 손에는 조그마한 성역 하나쯤은 가볍게 가루로 만들어버릴 만한 힘이 실려 있었다.
손바닥을 발견한 엽현의 안색이 순간 딱딱해졌다. 과연 서영족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던 것이다.
손바닥과 9호의 거리는 여전히 백여 장 남짓. 그러나 그녀는 거대한 손바닥 앞에서 이미 개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둘 사이의 거리가 거의 십여 장에 근접한 순간, 드디어 9호가 주먹을 내밀었다.
대단히 평범해 보이는 일권.
그러나 이 주먹을 내뻗었을 때, 손바닥 역시 예외 없이 허무로 돌아가고 말았다.
“웬 놈이냐!”
영계 깊은 곳에서 또다시 노기 띤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지 9호가 대꾸하기도 귀찮다는 표정으로 가볍게 발을 굴렀다.
쾅-!
반경 수십만 장의 공간이 그대로 갈라져 나가면서, 이윽고 영계 전체의 건물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 엄청난 광경을 눈앞에서 보자, 엽현은 솜털까지 곤두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여인은 정말로 영계를 멸망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서영족이 그녀의 뜻에 동의할 리가 없었다.
찰나의 순간, 십여 명의 백의 노인들이 나타나 9호의 주변을 에워싸고는 구결을 외우기 시작했다. 곧, 사방에 커다란 균열이 일면서, 붉은 쇠사슬들이 공간을 뚫고 튀어 나왔다. 이와 동시에 듣도 보도 못한 신비한 기운이 순식간에 9호의 몸을 뒤덮었다.
안색이 어두워진 엽현이 황급히 소리쳤다.
“이들은 그대의 경지에 제약을 가하려는 것이오! 조심하시오!”
“경지?”
9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게 뭔데?”
“…….”
이때, 붉은 쇠사슬들이 동시에 9호를 덮쳤다. 그러자 9호가 날아오는 쇠사슬 하나를 붙잡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푸푸푸푸푸푸푹…….
무언가 뚫리고 끊어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하늘이 피투성이로 변했다.
이윽고 장내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9호.
그녀는 여전히 붉은 쇠사슬을 쥐고 있는 상태였는데, 이 사슬에는 백의 노인들의 머리가 마치 꼬치 꿰듯 꿰어져 있었다.
천하의 엽령마저 위기로 몰아넣었던 진법사들이 순식간에 몰살당한 것이다!
엽현은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서영족의 진법사들을 이렇게나 간단히 제거할 존재가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이 여인이 본격적으로 오유계를 쓸고 다니기 시작하면 과연 누가 나서서 막는단 말인가!
게다가 더 충격적인 것은 조금 전 진법사들의 진법이 9호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장내를 깨끗이 정리한 9호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가자, 오랜만에 몸 좀 풀어야겠구나.”
성큼성큼 영계 중심으로 이동하는 9호.
멍하니 있던 엽현이 황급히 그녀의 뒤를 쫓았다.
원래 서영족을 꺼리던 엽현도 오늘만큼은 두려울 게 없었다.
9호 앞에서 서영족 강자들은 그저 한 입 거리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서영족이 이렇게 멸망하는구나!
엽현은 두려운 한편, 속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잠시 후, 영계 중심으로 진입한 9호와 엽현.
이곳까지 오는 동안 9호의 손에 죽은 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이때 허공에서 서영족을 내려다보는 9호의 표정은 환희에 가득 차 있었다.
“인간들……. 여기에 다 모여 있었구나!”
그녀가 주먹을 불끈 쥐는 순간 강렬한 기운이 사방에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아래쪽에서 돌연 도끼 한 자루가 하늘로 솟구쳤다.
서영부(噬靈斧)!
서영부가 나타난 순간, 수십만 장 이내에 있는 영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잠시 후, 엄청난 양의 영기를 빨아들인 서영부가 돌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쾅-!
순간 강대한 기운이 서영부를 통해 방출됐다. 주변의 공간이 균열을 일으키며 부서져 나갔다.
서영부의 엄청난 위력을 본 엽현은 황급히 9호를 바라보았다. 엽현과는 달리 매우 차분한 모습의 9호. 이때 그녀가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서영부가 빠르게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순간 엽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서영부가 머금고 있는 기운이 결코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서영부 자체가 신물인데다 여기에 영기의 힘까지 더해지니 그 위력은 실로 말로 형용하기 어려웠다.
서영족의 진정한 비기 중 하나인 서영부가 출현했다는 것은 9호에 대한 서영족의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때 9호가 날아오는 서영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도끼가 그녀의 손 안에 들어왔다. 찰나의 순간, 서영부 안에서 포악하게 울부짖던 기운이 눈 녹듯 사라졌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9호가 양손으로 가볍게 도끼자루를 쥐자.
쾅-!
서영부가 폭발하더니, 그대로 한 줌의 재가 되어 흩어졌다.
엽현은 이 장면을 정면에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지상에 있던 수많은 서영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건 그냥 도끼가 아닌 서영부 아닌가!
비록 수라척이나 천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서영부 역시 충분히 오유계 최강의 무기 중 하나의 자격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서영부를 이렇게나 간단히 파괴해 버렸단 말인가?
모두가 넋을 놓고 있을 때, 9호가 오른손으로 칼날을 만들어 가볍게 공중에 대고 그었다. 그 순간, 아래쪽에 있던 서영족 무인들의 머리가 마치 비바람에 포도알 떨어지듯 우수수 잘려나갔다.
이 한 번의 손짓으로 목숨을 잃은 자는 수백에 달했다.
하지만 9호는 별일 아닌 것처럼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얼굴에 홍조를 띠며 즐거워하는 게 아닌가!
이런 변태를 봤나!
엽현이 앞으로 어떻게 처신할지 심각히 고민하고 있던 때, 9호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중년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원존이었다.
이번에는 분신이 아닌 본체였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강자는 내가 알고 있건만, 그대와 같은 자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가!”
원천을 마주한 9호가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지겨운 인간,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구나!”
말을 마친 순간 그녀가 허공에 주먹을 뻗었다.
이에 원천 역시 황급히 일장을 내밀었다.
쾅-!
커다란 폭음과 함께 원천이 멀리 날아갔다. 이 일격으로 인해, 그의 육신이 부서지고 영혼이 튀어 나왔다.
단 일격에 원천 같은 고수의 육신이 파괴되다니,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여인이란 말인가!
엽현이 등줄기 가득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 당사자인 원천은 황당함으로 말을 잊지 못할 정도였다.
이건 강해도 거짓말처럼 강하지 않은가!
“도대체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대답 대신 주변을 돌아보는 9호.
이때 웬만한 서영족의 강자들은 전부 그녀를 향해 튀어나오고 있었다.
위기감. 멸족의 위기감을 느꼈던 것이다!
“9호! 모두 죽이시오! 하나도 남기지 말고!”
엽현의 외침을 들은 9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출수하려 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 9호의 안색이 심상치 않게 변함과 동시에 갑자기 지면을 향해 떨어졌다.
이를 본 엽현이 깜짝 놀라 그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엽현은 간신히 9호를 끌어안았다. 가까이서 본 그녀의 안색은 마치 얼음장처럼 식어가고 있었다.
“9호! 이게 어찌 된 일이오?”
간신히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린 9호.
“나… 이제 힘이 없어……. 충전 좀… 끼이익…….”
알 수 없는 말을 한 9호는 기이한 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엽현이 황급히 어깨를 흔들어 보았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니, 심지어 마치 죽은 사람처럼 숨도 쉬지 않는 게 아닌가!
엽현은 순간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충전? …충전? 그게 뭔데?
멍하니 있던 엽현이 불현 듯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는 곧 서영족의 모든 강자들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순간 9호의 어깨를 흔드는 엽현의 움직임이 더욱 간절해졌다.
“9호! 장난치지 마시오! 장난을 쳐도 지금은 아니라고-!”
엽현의 처절한 울부짖음에도 9호는 깨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