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916
916화 아무나 덤벼
만유서원.
오랜만에 자신의 장원에 돌아온 여부자.
의자에 비스듬히 누운 그녀의 한 손엔 언제나처럼 고서가 한 권 들려 있다.
막 다음 장을 넘기려는 찰나, 그녀의 시선이 책 너머로 이동한다. 그 자리에는 전혀 초대한 적 없는 불청객, 엽현과 엽령이 서 있었다.
잠시 엽현을 응시하던 여부자가 책을 덮고는 엽현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엽현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왜 그러시오?”
“…너는 사유계에서 왔느냐?”
엽현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침묵하던 여부자가 다시 질문했다.
“네 운명을 한 번 점쳐 봐도 되겠느냐?”
운명?
“진심으로 하는 말이오?”
“그렇다.”
“음… 좋소! 점을 치건 전을 부치건, 하고 싶은 대로 해 보시오. 다만 미리 말하건대, 전에도 내 운명을 보려 한 자들이 있었지만, 죄다 실패하고 말았소.”
“후후, 그거참 흥미롭구나. 이번에는 내가 한 번 도전 해 보마.”
“얼마든지!”
엽현이 동의하자 여부자가 곧장 손바닥을 펼쳤다.
“명(命)!”
여부자의 외침과 동시에 하얀 빛이 엽현의 전신을 뒤덮었다. 곧 엽현의 머리 위로 하얀 실선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과선.
인과경에 이른 무인들은 이 인과선을 이용해 전생과 현생을 엿볼 수 있게 된다. 물론 모든 인과경 강자들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여부자가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자, 인과선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의 시선은 그중 하나의 인과선으로 향했다. 이는 엽현의 현생을 기록한 것으로 몇몇 특별한 부분을 제외하면 모든 장면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인과선으로는 오늘까지의 기록만 알 수 있을 뿐, 내일의 일을 예측한다거나 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전생!”
이내 여부자의 시선 중에 한 가닥의 인과선이 떠올랐다.
인과선 안으로 보이는 풍경은 온통 회색의 세상이었다.
그리고 작은 소녀를 업고서 어디론가로 달리고 있는 한 소년이었다.
* * *
이 시각, 머나먼 사유계의 어느 성공.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걸음을 멈췄다.
“음?”
* * *
다시 오유계.
엽현의 앞에 있던 여부자가 순간 안색이 급변하더니, 황급히 몇 발 뒤로 물러났다. 이와 동시에 엽현 주변에 떠 있던 인과선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여부자, 어찌 된 일이오?”
엽현이 놀라 물었지만, 여부자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한쪽을 방향을 응시했다.
그녀의 시선이 오유계를 뚫고 사유계 어딘가를 비춘 순간, 차가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 소복의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죽고 싶으냐?”
여인의 말에 오유계의 여부자가 어두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대가 이 아이의 인과를 막고 있었군.”
“…나쁜 마음을 품은 것 같진 않구나. 다만 한 번만 더 그의 전생을 엿보려 한다면 단칼에 베어 버릴 것이니 조심하거라.”
말을 마친 여인은 고개를 돌려 사라졌다.
오유계.
여부자가 시선을 떼자, 엽현 몸 주변을 덮고 있던 하얀 빛도 사라졌다.
“후… 어디서 저런 강자가…….”
“여 교존! 어찌, 뭐라도 알아낸 게 있소?”
엽현이 묻자 여부자가 웃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생각지 못하게 방해하는 자가 있구나.”
“방해? 누가 말이오?”
여부자가 대답 대신 어느 한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는 그대의 선택이오.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대의 선택을 존중해 주겠소…….”
엽현은 갑자기 혼잣말을 하는 여부자가 걱정스러웠다.
“여 교존, 어디 아프시오?”
“아니다, 하하하! 너는 책을 좋아하느냐?”
책?
“물론이오!”
“그럼 서원에 있는 책들과 내 서재에 있는 책들을 한 번 살펴보거라.”
“정말이오? 하지만 나는 부문종의 사람인데…….”
“하하, 책 보는 거와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그대는 상관없소?”
여부자가 고개를 저었다.
“만유서원은 모든 이에게 열려있다. 이것은 선각자의 뜻이지. 생사경인 네가 앞으로 천기경에 오르려면 많은 지식이 필요할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이해했소!”
“후후, 대신 언제 시간이 나면 그 녀석들과 만나게 해 주거라. 대지도칙, 몽지도칙 그리고 봉인도칙도……. 아, 참.”
여부자가 문득 뭔가 생각난 듯 네 권의 고서를 꺼내 엽현에게 내밀었다.
“이는 오래전 사부께서 도칙을 연구하고 남겨 놓은 기록이다. 잘만 공부하면 도칙의 힘을 완전히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니, 이런 걸 내가 받아도…….”
엽현이 머뭇거리는 이때, 연천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서 받지 않고 뭘 하느냐? 저 책은 우리들 도칙의 성장과도 연관이 있단 말이다!]그 말에 엽현이 황급히 네 권의 책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다소 미안한 표정으로 여부자를 바라보았다.
“여 교존, 우리는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이렇게나 많은 선물을 받았으니…….”
“하하하, 앞으로도 서원은 네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이니 책 몇 권 주는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다.”
“고맙소!”
엽현이 포권을 취하자 여부자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또 다른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이는 사부가 부문도(符文道)에 대해 연구해 놓은 자료다. 너는 모르겠지만 칠색 부적 위로 다른 종류의 부적이 존재한다.
천지부(天地符)라는 것이다. 천지를 종이로, 은하수를 붓으로, 산천하류(山川河流)를 먹 삼아 부문을 그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부적을 만들어 낸 사람은 사부 외에 부소천 뿐이었다. 그만큼 그리기 어렵지만, 그 위력은 네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 책을 네게 줄 테니, 운을 한 번 시험 해 보거라.”
천지부!
엽현은 황급히 책을 받아들고서 살펴보기 시작했다. 곧 그의 표정이 빠르게 변해갔다.
정말로 천지부를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9호 같은 변태를 제외하고 육대강자 정도와는 능히 겨뤄볼 만한 것이다.
굉장해!
엽현이 환하게 웃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여 교존, 고맙소! 이 은혜를 어찌 갚을지!”
“하하,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가서 연구하도록 하거라. 나는 그동안 네 동생과 대화 좀 나누겠다.”
“하하, 여자들만의 대화라 이거요? 좋소. 말씀들 나누시오!”
엽현은 엽령에게 눈을 찡긋 해 보이고는 책과 함께 바람처럼 사라졌다.
장내에는 이제 여부자와 엽령만이 남게 된 상황이었다.
“여제, 그대는 그의 신분을 알고 있소?”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엽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소.”
* * *
여부자의 장원 안, 두 여자가 서로 마주 보고 자리에 앉았다.
탁자 위의 찻잔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부끼고, 향긋한 차 냄새가 고요한 장원 안을 가득 채웠다.
차를 한 모금 비워낸 여부자가 먼저 가볍게 운을 뗐다.
“언제부터 알았소?”
“그게 중요한가?”
“설마 아니오?”
엽령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를 신경 쓰는 이유는 그가 전생에 무엇이라서가 아니라, 지금 내 오라비기 때문이오. 내게 있어 그는 단지 엽현이라는, 내가 목숨을 걸고서 지켜야 하는 한 남자일 뿐이오.”
“…….”
“나는 오히려 그대가 왜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소.”
이에 여부자가 가볍게 미소를 머금었다.
“그대 말이 맞소. 사는데 그리 복잡할 필요는 없지. 하지만 어떤 일은 쉽게 처리하려 해도 그럴 수 없을 때가 있소.”
“…….”
“후… 처음에는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줄로만 알았소. 하지만 그 여인이 나타나고 난 뒤부터는… 모든 일이 전부 꼬여버렸소.”
“…전후 사정이 어찌 되었든, 내게 있어 그는 내 오라버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오.”
“후후, 모든 사람이 그 말을 믿어 준다면 얼마나 좋겠소?”
순간 엽령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믿지 않는다면, 죽여서라도 믿게 해 줄 수밖에.”
“…….”
이때 엽령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나저나, 서옥 안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 것이오?”
“서옥… 하하, 그대 예상대로 모든 사람들을 미치게 할 만한 것이 있소.”
“예를 들자면?”
“예를 들면 서옥에 있는《윤회경지비(輪迴境之秘)》라는 책을 그대가 얻는다면 손쉽게 윤회경에 이를 수 있다는 정도?”
윤회경!
순간 엽령의 표정에 가벼운 변화가 일었다.
이때 여부자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물론 서옥에는 이것 외에도 많은 보물들이 들어있소.”
“말이 나온 김에 개방해 버리는 건 어떻소?”
여부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더욱 복잡해질 것이오.”
“그대와 나, 그리고 장문수가 있는데 뭘 두려워한단 말이오?”
“만약 서옥을 노리는 것이 서영족 뿐이었다면 그럴 필요는 없었을 것이오. 게다가 몇몇 특별한 세력들 역시 서옥을 주시하고 있소.”
엽령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특별한 세력이라면?”
“예를 들어, 허무계, 영생계, 그리고 무변지하성 같은 자들 말이오.”
엽령은 잠시 말이 없었다.
이 세 지역은 일반 무인은 물론 엽령이라 해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오유계 최고의 금역이었다.
“당시 사부께서 버티고 있었을 때는 충분히 통제 가능한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알다시피 그럴 수가 없는 실정이오. 지금까지 그들이 움직이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하나, 서원 내에 설치된 진법 때문이었소. 그러나…….”
“그러나?”
“아마 그들도 그곳에 웅크리고만 있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있을 것이오.”
“…귀찮게 됐군.”
엽령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만약 이 세 금역의 존재들이 이번 일에 끼어들게 된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게나 말이오.”
여부자가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몰려오는 먹구름을 응시했다.
“어쩐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군.”
“…….”
바로 이때, 장원 문이 열리고 한 여인이 장내에 들어섰다.
다름 아닌 장문수였다.
이때의 장문수는 머리색이 온통 황금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 또한 예전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장문수가 엽령과 여부자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몸이 근질근질한데… 너희 둘 중에 누가 덤빌 테냐?”
“…….”
“…….”
* * *
엽현은 만유서원 내 어느 빈 장원을 찾아 들어왔다. 그가 막 여부자가 준 고서를 꺼내 든 순간 연천이 그의 앞에 나타나더니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 책은 바로 봉인도칙, 즉, 연천 자신에 관한 것이었다.
“연천, 이것만 있으면 도칙들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까?”
빠르게 책을 훑어본 연천이 책을 덮으며 엽현을 바라보았다.
“가능하다. 도칙의 장악뿐만 아니라, 도칙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다른 책들 역시 보물이나 다름없는 주인의 책들이니 잘근잘근 씹어서라도 완전히 연구하도록 하거라.”
엽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 그중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럼, 대지도칙부터 시작해볼까!”
엽현은 곧 책을 펴들고 집중해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현재 그는 몇 가지 도칙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장님 문고리 더듬는 수준일 뿐, 제대로 된 위력을 뽑아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도칙이라는 엄청난 무기를 들고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는 꼴이었다.
그렇게 대지도칙을 연구하던 중, 엽현은 읽으면 읽을수록 이 도칙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가를 알 수 있었다.
그 위력도 위력이지만, 더 무서운 것은 얼마든지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 고서 안에는 그 방법에 대해 상세히 서술하고 있었다.
엽현은 그제야 연천이 왜 그리 조급하게 자신과 관련된 책을 집어 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안에 있는 내용이 도칙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대단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