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919
919화 세상을 구하려 했다
여부자의 말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알아보니 지난번의 그 옥라연이라는 자는 이미 태고족의 옥라연과 동일인이 아니었소. 아마도 나와 함께 무적종을 찾았을 때, 누군가에게 몸을 빼앗긴 것 같소. 다만 그들이 왜 서영족과 붙어먹고 있는지는 알 수 없구려.”
“흠… 아직 시간이 있으니 사람을 시켜 그들에 대해 자세히 조사해 보도록 하겠다.”
“여 교존께서 그래 주신다면 안심이오. 그럼 나는 부문종에서 처리할 일이 있어 먼저 가 보겠소. 모두 삼 일 후에 봅시다!”
“잠깐, 기다리거라. 그 전에 서영족이 기습을 가하지 않을까 우려되는구나.”
여부자가 말하는 동시에 주먹만 한 돌 하나를 꺼내 엽현 앞에 내밀었다.
“공간전송석(空間傳送石)이란 것이다. 위급할 때 사용하면 나와 문수가 빠르게 합류할 것이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돌을 받아 들었다.
“그럼, 우리는 이만 가 보겠소.”
말을 마친 엽현은 엽령을 데리고 부문종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엽현이 떠난 후, 자리에 남은 세 여인.
“왜 서영족과는 이치를 따지려 하지 않는가?”
잔녀의 물음에 여부자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사람을 봐 가면서 하는 것이오.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을 땐 바로 주먹을 내는 것이 상책 아니겠소?”
“후후, 그도 그렇군. 선각자가 있었을 땐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
이때 장문수가 여부자를 보며 물었다.
“그동안 사부에 대해 좀 알아낸 것 없어?”
그 말에 여부자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 세상에 사부를 해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즉, 그분이 사라진 것은 본인의 의지였다는 것이지.”
“…그래서,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거야?”
이에 여부자가 먼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쩌면 사부는 세상을 구하고 싶었는지도 몰라.”
“…….”
여부자의 아리송한 말에 두 여인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서영족의 대전 안.
원천이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이미 육신을 완전히 회복한 모습이었지만 아직은 다소 불안정해 보였다.
아무래도 육신이 파괴되었을 때의 충격이 여전히 영향을 끼치는 듯했다.
잠시 후, 원천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을 들어 정면의 원전을 바라보았다.
“그 여자는 도대체……. 둘째 숙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흠… 그 검에 담긴 힘은 나라고 해도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위력만 놓고 보자면 9호보다 강할지도 모른다.”
그 말에 의자 손잡이를 잡고 있던 원천의 양손에 힘이 들어갔다.
원전의 안색 역시 어둡기는 매 한 가지였다.
두 사람 모두 엽현의 배후라는 여인이 이 정도까지 강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를 찾아간 옥라연은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걸 보아 살해당한 것이 분명했다.
옥라연 정도 되는 자를 죽이라면 설령 육대강자가 직접 나선다 해도 쉬운 일은 아닐 터.
그런 그가 죽었다는 것은 그 여인의 실력이 육대강자 이상이라는 의미가 아닌가!
“흐음…….”
원천은 낮은 신음을 흘리며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원래 계획은 엽현의 지인들을 인질로 삼아 그를 사유계로 유인한 뒤, 함정을 파서 살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엽현의 배후에게 보기 좋게 막혔을 뿐만 아니라, 하마터면 오유계의 멸망을 불러일으킬 뻔했다.
원천은 문득 그날 보았던 검을 떠올렸다.
멸천의 위력을 담고 있던 검.
과연 누가 막을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자신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떡하지?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압도적으로 강력한 존재의 등장에 원천은 절망을 느꼈다.
이때, 원전이 말했다.
“아직 좌절하기엔 이르다. 그 여자가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엽현을 도와 우리를 칠 생각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단순한 예상이지만, 어쩌면 그녀는 오유계로 올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올 수 없다?”
원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녀가 지금 이 자리에 나타난다면, 우리 서영족은 변변한 반격 한번 해 보지 못하고 멸망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능력이 있음에도 지금까지 침묵을 지켜왔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오유계로 올 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
“…….”
원전이 호흡을 가다듬고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지금 우리 서영족은 퇴로가 없다. 설령 이제와서 꼬리를 내린다고 할지라도 엽현이 우리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놈은 앞으로도 빠르게 성장할 것이고, 언젠가 때가 되면 서영족을 잡아먹으려 들겠지. 그러니 그 전에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만유서옥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이 엽현에게 맞설 희망이 생길 것이다!”
만유서옥!
원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숙부 말씀이 옳습니다. 이미 우리에겐 퇴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때, 대전 문이 열리고 한 노인이 황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대존! 만유서원이 삼 일 후에 우리 서영족을 치겠노라고 전 오유계에 공표했습니다!”
선전포고!?
그 말을 들은 순간 원천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이때, 원전이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쩔 수 없다. 허무계로 가서 관을 열자꾸나!”
“숙부… 우리가 정녕 그 지경까지 왔단 말입니까?”
원천이 난감한 표정을 짓자 원전이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에겐 네 명의 절정 고수들이 있다. 막을 수 있겠느냐?”
잠시의 침묵이 지난 후, 마침내 원천이 입을 열었다.
“허무계로 가겠습니다!”
* * *
허무계.
오유계에서 가장 신비한 곳으로, 이곳에 들어갔다가 살아 나온 사람은 선각자뿐이라고 알려져 있다.
때문에 허무계는 오유계 무인들에게는 두려움과 동시에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이날, 원천과 원전은 함께 허무계를 찾았다.
다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입구에 멈춰 서서 깍듯하게 예를 올렸다.
“천로(天老)를 뵈러 왔습니다.”
잠시 후.
두 사람 앞에 노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심하게 굽은 등과 푸석한 백발을 통해 얼마나 긴 세월을 살아왔을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비록 늙고 병약해 보이는 인상이었으나, 두 사람은 감히 노인 앞에서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허무계의 묘지기.
오유계 육대강자조차 범접하지 못하는 허무계의 주인이 바로 이 노인이었던 것이다.
“무슨 일로 왔느냐?”
천로라 불린 노인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묻자 원천이 공손히 대답했다.
“관을 찾으러 왔습니다.”
“너희 서영족이 맡긴 관은 총 여섯 개인데, 몇 개나 가져가려느냐?”
“세 개면 될 것 같습니다, 천로.”
그 말에 천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무계 안으로 사라졌다.
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원천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숙부, 천로의 실력이 과연 어느 정도나 됩니까?”
“그건 아는 이가 극히 드물 것이다.”
“듣자 하니 선각자가 이곳에 들어갔다 나온 적이 있다는데, 무슨 일이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음… 사실 우리 선조 중 한 분께서도 천로와 겨뤄 본 적이 있었다.”
“정말입니까?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결과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후에 이런 말이 나돌았지. 세상에 천로를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선각자밖에 없다고 말이다.”
선각자…….
원천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유계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하게 세상을 장악한 유일한 무인.
만약 선각자가 지금까지 남아 있었더라면 오유계는 여전히 평화로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그의 기세에 눌린 거대 세력들은 감히 기침 소리도 내지 못했고, 심지어 그가 사라진 후에도 한동안 밖으로 나와 보지 못할 정도였으니.
서영족도 포함해서 말이다.
이때, 천로가 다시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소매를 펄럭이자, 원전 앞에 세 개의 관이 나타났다.
“감사합니다, 천로!”
원천이 황급히 예를 차렸지만, 천로는 대꾸 없이 가만히 그의 얼굴을 응시하기만 했다.
이에 원천이 황급히 품 안에서 검은 병 하나를 꺼내 천로에게 건넸다.
병 안에는 백만이 넘는 영혼체들이 들어있었다.
검은 병을 받은 천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무계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원천과 원전은 세 개의 관을 가지고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이런 기분 나쁜 곳에서 한 순간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 * *
부문종.
엽령과 부문종으로 돌아온 엽현은 곧장 자신의 거처로 들어가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바로 여부자에게 받은 천지부에 관한 고서였다.
천지부! 칠색 부적보다 상위에 있는 부적!
만약 성공만 한다면 육대강자와도 충분히 겨뤄볼 만할 것이다. 물론 이길 수 있을지는 직접 겨뤄봐야 알겠지만.
그런데 빠르게 책을 훑어보던 엽현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천지부를 만드는 조건이 생각보다 매우 까다로웠던 것이다. 심지어 혼돈지기 조차도 천지부의 재료가 될 자격이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재료들은 머리털 나고 난생처음 듣는 것들뿐.
생각보다 어렵구나!
엽현은 부적의 난이도가 매우 높은 탓에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때, 엽현의 눈이 갑자기 번뜩였다.
맞아! 소령이 있었지!
엽현에게 있는 것 중 혼돈지기보다 정순한 영기는 없었다.
하지만 소령이라면 달랐다.
소령이 연단할 때 사용하던 영기라면 천지부의 재료가 될 자격이 충분할 것이다.
이제 문제는 나머지 재료들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엽현은 자신의 방을 떠나 심성하를 찾았다.
엽현은 곧장 심성하에게 천지부와 관련된 책부터 내밀었다.
“심 종주, 한 번 보시오.”
엽현을 한 번 쳐다본 심성하가 눈앞의 고서를 집어 들었다. 말없이 읽어 내려가던 중, 점점 그의 표정이 진중해져 갔다.
“사조, 이것은…….”
“그렇소. 선각자가 연구해 놓은 것이라면서 여부자가 내게 준 것이오. 듣자 하니 천지부를 제작해 낸 사람은 지금까지 조사와 선각자 단둘 뿐이라 하오.”
“그 위력이야 의심할 것이 없겠지마는 이 중 두 가지 재료는 매우 희귀한 것으로 우리 부문종에도 없을 것입니다.”
“어떤 재료 말이오?”
“성공석(星空石)과 봉황목(鳳凰木), 두 가지입니다.”
“그럼 그것 말고는 다 구할 수 있단 말이오?”
“그렇긴 하지만 수량이 많다고 할 수는 없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심성하가 엽현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장 얻기 어려운 것은 아무래도 영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면 매우 정순한 영기가 필요한데, 사조의 혼돈지기 정도로는 기준에 미치지 못할 듯싶습니다.”
그러자 엽현이 활짝 웃으며 대꾸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순수한 영기라면 이미 구했으니까.”
“그, 그게 정말입니까?”
“하하, 사실이오. 단지 다른 재료들이 없을 뿐이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없는 재료들은 제가 책임지고 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면… 저와 함께 죄성에 한 번 다녀오는 게 어떻겠습니까?”
“죄성(罪城)? 그게 뭐 하는 곳이오?”
“온갖 종류의 인간들이 모여 있는 아주 혼란스러운 곳입니다. 다만 우리 같은 부문사들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습니다. 죄성이라면 어떤 재료도 구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음… 그렇다면 쇠뿔도 단김에 뽑으랬다고, 바로 가 보도록 합시다!”
“바로 채비하겠습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부문종을 떠나 죄성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