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923
923화 위험하다고?
두 사람의 치열한 전투를 지켜보던 여부자가 원천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 상대는 어디 있소?”
원천은 잠시 침묵한 후 입을 열었다.
“여부자,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만약 지금이라도 반항을 멈추고 서옥을 내놓는다면, 서영족은 너희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하하하! 보아하니 서영족의 비장의 무기가 생각보다 강력한가 보군. 하지만 지금까지 선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 삼대 금역의 강자들을 위해 아껴두려 하는 건가?”
“…내 충고를 받아 들일 건지나 말해라.”
이에 원천이 웃으며 장천척을 뽑아 들었다.
“이것이 내 대답이라면?”
“그럼 죽어야지……. 살(殺)!”
원천의 음성이 떨어진 이때, 여부자가 깜짝 놀라며 뒤를 향해 장천척을 휘둘렀다.
땅-!
알 수 없는 힘이 장천척을 때리는 순간, 여부자가 수백 장 뒤로 밀려났다. 이와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장천척 표면에 길게 금이 만들어졌다.
여부자는 당황하지 않고 자신을 공격한 주체를 눈으로 좇았다.
그녀의 앞에는 검은 장포를 뒤집어쓴 남자가 서 있었다. 전신을 전부 가린 와중에 두 팔만은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는데, 이는 마치 시체처럼 핏기가 전무한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몸에선 생기 대신 진득한 사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활사인(活死人)!”
여부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치자, 원천이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보였다.
“과연 여부자의 지식이 깊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군. 활사인을 알아볼 줄이야.”
“자신의 백성을 아무렇지 않게 활사인으로 만들다니, 너희 서영족은 정녕…….”
활사인.
이는 상고의 비법이다. 여부자는 오래전 선각자와 함께 이것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해야만 했다. 왜냐면 제련방법이 너무나도 비인간적이기 때문이었다.
활사인을 만들기 위해선 사람의 생기에 틈을 내, 그곳에 조금씩 사기를 집어넣어야 한다. 활사인은 엄연한 생명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시체와 크게 다르다고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투력을 제외한 신체의 모든 감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가장 잔인한 부분은 활사인이 된 후, 영혼이 영원토록 몸 안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육신이 완전히 박살 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활사인이 된 무인은 영영 죽지도 못하고 환생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굳이 장점을 꼽으라면 그건 바로 말이 되지 않을 정도의 강한 전투력과 불사에 가까운 단단한 육신을 얻는 것이었다.
이때 여부자의 불쾌한 표정을 본 원천이 고개를 저으며 항변했다.
“오해하지 말거라. 이는 우리가 강제한 것이 아니라, 선조께서 스스로를 활사인으로 제련한 것이다. 선조들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단 하나, 우리 서영족이 오유계의 패권을 차지하고 육유계(六維界)로 진입하길 원하셨기 때문이다.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활사인이 된 선조들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
원천을 바라보는 여부자의 표정이 다소 기이해졌다.
“육유계라니, 참으로 대담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군. 하지만 육유계가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후후, 너는 아닐지 몰라도 우리는 확신한다.”
“하지만 선생조차 그것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가 네게 말해 주지 않은 이유를 알 순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육유계는 존재하고, 선각자는 유상 이래로 가장 그곳에 근접한 존재라는 점이다.”
“육유계가 존재한다니……. 대체 무슨 근거로 확신하는 거지?”
이 물음에 원천이 대답 대신 품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가 꺼낸 물건은 작고 둥근 형태였고, 알 수 없는 재료로 뒤덮여 있었다. 반짝이고 투명한 덮개 안에는 세 개의 서로 길이가 다른 바늘들이 있었다. 바늘들은 서로 맞물리는 일 없이 매우 정교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바늘이 가리키고 있는 숫자들은 그들 세상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이었다.
이 물건의 양쪽 끝에는 가죽으로 된 끈이 달려 있었는데, 손목에 묶으면 딱 맞을 정도의 길이였다.
다소 당황하는 여부자의 표정을 보고는 원천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는 언젠가 선조 중 한 분께서 우연히 획득한 것이다. 어떠한 영기도 진법도 없지만, 햇볕이 드는 곳에 잘 놓아둔다면 스스로 움직이지. 특히나 이 세 개의 바늘은 매우 규칙적으로 움직이는데, 여기에 무슨 법칙이 숨겨져 있는 것인지는 아직까지 알아내지 못했다.”
여기까지 말한 원천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오유계 전체를 뒤져 이 신물을 만든 자를 찾아보았지만,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선조께서는 이 물건이 육유계에서 왔다고 단정 지으셨지.”
육유계!
원천의 말을 들은 여부자는 매우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의 손안에 있는 작은 물건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생전 처음 보는 모양의 물건이었다.
이때 원천이 조심스레 손안의 물건을 갈무리하며 말했다.
“우리 서영족의 선조들은 말로만 듣던 육유계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래서 스스로의 몸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태로 만들어 버린 건가?”
“후후, 육유계를 발견하기만 하면 다시 부활할 텐데, 활사인이 되는 것 정도야 감수할 수 있지. 그렇지 않나?”
“내가 보기에 당시 너희들이 오유계의 모든 인간들을 죽이려 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겠군.”
“하하하! 그럼 우리가 정말 변태라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가?”
여부자가 반문했다.
“육유계로 가는 것과 오유계 생령들의 전멸이 무슨 상관이 있지?”
“그것은… 서영족만의 비밀이다.”
원천이 음흉한 미소와 함께 입을 다물자 여부자는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한 가지 의외인 사실은 서영족이 오유계를 멸망시키려 했던 까닭이 바로 전설 속의 육류계로 가기 위해서였다는 것이었다.
육유계가 존재하는가?
여부자는 알지 못했다.
물론 언젠가 선각자에게 호기심으로 물어보긴 했지만, 그는 웃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여부자의 상념은 여기서 그쳤다.
“여부자, 내가 왜 굳이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줄 아느냐?”
“…….”
“하하하, 그건 네가 장문수와 달리 대화가 통하는 상대라 그런 것이다. 이제 내 말을 알아들었을 테니, 마지막으로 한번 더 기회를 주겠다. 지금이라도 서옥을 포기하겠다 약속한다면, 너희 넷의 안전은 내가 장담하마!”
이때 여부자가 웃으며 대꾸했다.
“참 이상해……. 육유계로 가는데 왜 만유서옥이 필요한 거지?”
“서옥 안에는 우리 서영족에게 아주 중요한 물건이 있다. 또한, 육유계와 관련된 것들이 보관되어 있지. 이 세상에서 육유계와 가장 근접한 자가 선각자라고 한 것을 기억하느냐?”
선각자…….
여부자는 문득 선각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원천의 말대로 육유계가 실존한다면, 선각자는 단연 그곳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리라.
그러나 정말 그런 게 있을까?
여부자는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유계도 다 이해하지 못하는데 육유계로 가서 뭘 한단 말인가?
여부자는 일단 생각을 떨쳐 내고서 원천을 바라보았다.
“서영족의 목적이 어찌 되었건 서옥은 절대 내어줄 수 없다.”
그 말에 원천이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은 했다만… 그렇다면 다음 생을 기약하는 수밖에!”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원천의 뒤편에 두 명의 활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걸로 활사인의 수는 총 셋!
국면이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가볍게 장천척을 쥔 손에 힘을 주어보는 여부자.
순간 하얀 기운이 그녀의 몸을 타고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이윽고 원천의 손이 여부자에게로 향했다.
“살(殺)!”
음성이 떨어진 순간, 활사인 둘이 늑대처럼 여부자를 향해 돌진했다.
* * *
어느 어두운 성공.
중년인 하나가 엄중한 표정으로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종주, 저 서영족의 활사인은 너무나도 지독합니다.”
곁에 있던 노인의 말에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 중년인은 바로 무적종의 종주 진독고(陳獨孤).
그 역시 누군가의 육신을 빼앗아 부활한 상태였다.
“서영족에게 저런 수가 있을 줄이야. 참으로 대단하구나. 참, 조사하라 이른 것은 어찌 되었느냐?”
진독고가 노인을 바라보며 묻자, 노인이 곧바로 대답했다.
“서영족이 얻고자 하는 만유서옥이란 것은 선각자라는 인물이 남긴 것이라 합니다.”
“자세히 말 해 보거라.”
“소문에 의하면 선각자는 오유계의 입지적인 인물로 실력으로만 놓고 봤을 때 9호보다도 더 강한 자인 듯 합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9호보다도 더 강하단 말이냐?”
진독고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묻자,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저 소문을 취합한 것일 뿐, 완전히 단언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낮게 봐도 9호보다 약하진 않을 것입니다.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난 그는 곧바로 오유계의 삼대 금역을 진압하고, 뒤이어 서영족의 족장을 죽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합니다. 마침 저기 저 여인과 장문수라는 자가 그의 제자입니다.”
노인이 여부자를 가리키며 말하자, 진독고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저 정도 제자를 길러낼 정도라면 그의 실력은 보지 않아도 명확하군.”
“정확하십니다. 특히 선각자는 허무계에 들어가고도 무사히 빠져나왔다고 하더군요.”
“뭐라고?”
진독고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노인을 돌아보았다.
노인이 방금 한 말은 최근에 들은 말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다.
허무계!
그곳은 무적종의 시대에도, 아니 그 이전부터 이미 있었던 지역이었다. 젊은 날 그 역시 허무계로 들어가 보려 했지만, 그에게 막혀 어쩔 수 없이 후퇴하지 않았던가!
그는 바로 허무계의 묘지기!
당시 진독고가 느꼈던 묘지기 노인은 결코 넘을 수 없는 벽과도 같았다.
“그 노인이 어떤 존재란 말인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간부터 존재했던 자가 아닌가! 그런데 그 역시 선각자를 막지 못했단 말인가!”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각자의 실력은 현재로서는 가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어느 날 만유서옥을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졌다 합니다. 그리고 그 만유서옥의 열쇠가 바로 엽현에게 있는 그 계옥탑입니다.”
“흠……. 그나저나 연흠을 죽인 여인에 대해서는 알아보았느냐?”
연흠이란 천녀를 찾아갔다가 죽임을 당한 옥라연의 본명이었다.
노인이 말하기를 주저하듯 고개를 저었다.
“아무런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알려진 것이라고는 그녀가 엽현에게 검을 전수한 배후라는 것뿐입니다. 게다가 이 여인의 실력 또한 선각자와 마찬가지로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늠할 수 없는 실력!
잠시 침묵에 빠져 있던 진독고가 문득 아래쪽의 여부자를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서영족이 만유서옥을 쉽게 차지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되겠구나. 물론 지금은 지켜봐야 할 때지만 말이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찬가지로 활사인과 전투 중인 여부자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저 아이는 오래 버티기 힘들 것 같습니다.”
* * *
부문종.
심성하는 여전히 문 앞에서 엽현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바로 이때, 낯익은 얼굴의 노인이 심성하 앞에 나타났다. 그는 바로 엽현의 정보책인 천책종의 현천책이었다.
심성하를 발견한 현천책은 인사도 잊은 채 다급하게 소리쳤다.
“심 종주, 엽 신사는 아직 나오지 않은 게요?”
“진정하고 말 해 보시오. 도대체 무슨 일이오?”
현천책이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는 찰나, 방문이 열리고 엽현이 밖으로 나왔다.
엽현의 발에 흙이 묻기도 전, 현천책이 그의 앞으로 황급히 다가갔다.
“엽 신사, 큰일 났소! 여부자가 위험하오!”
“여부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