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929
929화 조심해
“제기랄, 귀신처럼 쫓아 오는구나!”
엽현이 잔뜩 인상을 쓰며 황급히 공간도약을 시전하려 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공간 안으로 진입할 수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때 구층 존재가 말했다.
[바깥세상과 이곳의 공간은 서로 다르다. 그러니 공간도칙은 이 안에서 무효가 된다.]“말도 안 돼!”
엽현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건 무려 선각자가 만들어 낸 도칙이란 말이오!”
[떼써도 소용없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 게다가 이곳의 공간은 너무나 빽빽해서 네 실력으로 뚫을 수 없을 것이다.]황급히 주변을 둘러본 엽현은 그 말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매우 빽빽하게 뭉쳐 있는 영생지의 공간은 천주검으로도 파괴하기 어려울 듯 보였다.
[일단 이곳을 빠져 나가거라.]엽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황급히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참 미친 듯 달려가던 중, 엽현의 시야에 웬 마을 하나가 들어왔다.
산기슭 아래 위치한 마을은 그리 크지 않은 위치였는데, 그 입구에는 돌로 된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엽현은 곧장 비석 앞에 신형을 멈춰 세웠다.
“대도…촌?”
대도촌(大道村).
순간 엽현의 두 눈이 길게 가늘어졌다. 상당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름임이 틀림없었다.
고개를 돌려 마을 안을 들여다보자, 인기척이라곤 전혀 없는 것이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인 듯했다.
바로 이때 구층 존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떤 생명체가 접근 중이다.]생명체?
그 말에 엽현이 재빨리 칼을 꺼내 들고 출수할 태세를 갖췄다.
그리고 이때, 무언가 움직임을 느낀 엽현이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자신을 향해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 검은 강아지 한 마리였다.
“이런 곳에 웬 개가… 혹시 전설 속의 신견(神犬)이거나 하진 않겠지?”
[그럴지도.]“…….”
영생지 안에서 발견한 생명체를 어찌 겉모습으로만 판단할 수 있겠는가. 엽현은 작은 강아지를 앞에 두고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뉘 집 개님(?)이신지 모르겠지만, 나는 절대 나쁜 뜻으로 이곳을 찾은 것이…….”
왕!
이때, 강아지가 짧게 짖자 엽현의 안색이 기이하게 변했다.
마침내 보통의 강아지라는 것을 눈치챈 엽현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하하하, 일단 신견은 아닌 모양이로구나.”
“…….”
어쨌거나 가슴을 쓸어내린 엽현은 계옥탑을 뒤적여 영과 한 알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었다.
향긋한 영과가 바닥에 떨어지자, 검은 강아지는 순식간에 그것을 먹어치웠다.
이 모습을 본 엽현은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두 개의 영과를 던져 주었다.
[연민의 감정이라도 느낀 게냐?]연민?
구층 존재의 말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스스로가 개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청성에 있을 때는 그보다 더 못한 삶을 살지 않았던가.
어쨌거나 개나 사람이나 모양만 다를 뿐, 태어나서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
엽현은 결국 마을로 들어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어떤 경우엔 호기심이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법이니까.
그렇게 엽현이 자리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독고와 원전 역시 마을 앞에 나타났다.
입구에 세워진 비석을 본 진독고가 가볍게 인상을 썼다.
“대도촌?”
바로 이때, 한쪽에서 영과를 먹고 있던 강아지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경계심을 드러냈다.
“흠… 그냥 평범한 강아지로군.”
진독고의 말에 원전 역시 강아지를 바라보았다. 이때 원전과 눈이 마주친 강아지가 돌연 ‘왕’하고 짖자 원전이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소매를 펄럭였다. 순간 한 줄기 기운이 강아지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이를 본 진독고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개 한 마리도 가벼이 볼 수 없는 법.
하지만 그가 말리려 했을 땐 이미 원전이 손을 쓴 후였다.
바로 이때, 강아지를 막 가격하려던 원전의 기운이 돌연 눈 녹은 듯 사라졌다.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 진독고.
설마 잘못 본 것일까?
바로 이때, 진독고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나타난 것은 십여 장 떨어진 곳이었다.
그리고 그가 원래 있던 곳엔 웬 소녀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여덟 살쯤이나 되었을까, 꽃무늬가 수놓아진 치마를 입은 작은 소녀는 다소 헝클어진 긴 머리에 검은 두건을 두른 상태였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었다.
소녀는 왼손에 다소 녹이 슨 듯한 철제 검을 쥐고 있었는데, 검 날에는 따끈따끈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오른손에는 선혈의 주인인 듯한 자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그 머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원전.
아직 목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그는 죽을 때까지도 영문을 모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소녀를 바라보는 진독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이 몸을 피한 그 찰나의 순간에 이미 원전은 죽고 없었던 것이다. 과연 이 소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소녀는 원전의 머리를 한쪽에 던져 놓고는 강아지에게로 다가갔다.
소녀의 손길을 느낀 강아지가 먹고 있던 영과를 내버려 둔 채 그녀의 손에 머리를 비벼댄다.
소녀가 떨어져 있던 영과 하나를 들어 닦지도 않고 한 입 베어 물었다.
바로 이때, 문득 소녀가 우두커니 서 있던 진독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 실례했소! 식사 맛있게 하시오!”
소녀와 눈이 마주친 진독고가 빛처럼 빠른 속도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바로 이때, 소녀가 녹슨 검을 들어 자신의 목에 가볍게 가져다 댔다.
이 순간, 이미 수만 장 밖을 달리고 있던 진독고가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 멈춰 섰다. 순간 피를 뿜으며 솟구치는 진독고의 머리.
하지만 그의 영혼은 아직 살아 있었다.
무언가 낌새를 눈치챈 그 순간에 이미 몸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눈 깜빡할 사이, 그는 다시 비석이 있던 갈림길에 도착했다.
이미 영혼 상태이긴 하지만, 그의 표정은 말 그대로 넋이 나간 것과 다름이 없었다.
방금 전, 아주 조금만 판단이 느렸더라면 영혼조차 건지지 못했을 것이다.
저 소녀는 도대체 누구인데 저리도 강하단 말인가!
아무리 물어도 답을 내려 줄 사람은 없었기에 진독고는 잠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들어올 때만 해도 그는 상당히 자신감에 차 있었다. 상대가 9호나 소복의 여인이 아닌 바에야 여차하면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지금 보니 이 영생지 안에도 9호 같은 괴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나에 그칠지는 미지수라는 점이었다.
진독고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살아 돌아온 길을 응시하고는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더는 앞으로 나아갈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목숨을 부지한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한편, 진독고가 영생문을 통해 밖으로 나오자, 무수한 시선들이 그에게로 쏟아졌다. 순식간에 그는 엽령과 원천 등에게 둘러싸였다.
이때 진독고가 영혼체인 모습을 보자, 장내 무인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이때 원천이 진독고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숙부님은 어찌 되었소!?”
진독고가 고개를 저었다.
“신혼(神魂)이 완전히 소멸돼 죽었다.”
신혼 소멸!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이오?”
원천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소리쳤지만, 진독고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이때, 진독고의 눈에 무언가를 갈구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엽령이 들어왔다.
이에 진독고가 고개를 저었다.
“네 오라비는 보지 못했다. 당연히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엽령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무언가 말하려 할 때, 곁에 있던 원천이 엽령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모두 네년 때문이다! 숙부님이 죽은 건 망할 너희 남매 때문…….”
말이 끝나기도 전, 엽령의 손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쾅-!
예상치 못한 기습에 원천의 신형이 튕겨지듯 날아갔다. 이와 동시에 세 구의 활사인들이 엽령을 향해 달려들었고, 이에 여부자 등이 응전하며 갑작스런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영생지, 대도촌 입구.
소녀와 검은 강아지가 사이좋게 영과를 하나씩 먹고 있다. 한 입 베어 물때마다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이 영락없는 시골 아이의 모습이다.
대략 일각이 지난 후, 영과를 깨끗이 먹어 치운 소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검을 한 손에 쥔 소녀는 천천히 엽현이 사라진 방향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물론 검은 강아지는 그녀의 동행이 되어 주었다.
녹슨 철검을 어깨에 걸친 채, 발길을 재촉하는 소녀의 얼굴은 마치 감정을 제거한 살수의 그것처럼 차갑기만 하다.
작은 마을을 떠난 엽현은 다시 첩첩산중에 접어들었다. 앞에 보이는 것이라곤 끝없이 길게 늘어져 있는 산맥.
그 외에 다른 것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엽현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자 했다.
목적지가 딱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 원전 등이 따라붙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선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오솔길을 바라보며, 엽현은 상념에 잠겼다.
이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제 하나.
과연 서옥을 개방해야 할까?
서옥도 있고 열쇠도 있다. 서옥을 열어보는 것은 그의 마음 먹기에 달린 일.
하지만 어째서인지 망설이고 있었다.
이때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구층 존재가 말을 걸어왔다.
[선각자가 남긴 서옥, 보통 물건이 아님은 확실하다. 나 역시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매우 궁금하구나.]잠시 고민하던 엽현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결국에 가서는 열어보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서옥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 상황에서 서옥을 여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
서옥을 개방하지 않는다면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다.
곧, 마음은 흔들리겠지만, 이성을 잃고 달려들지는 않을 것이란 뜻이다.
반면 서옥을 개방했을 때, 엄청난 보물이 튀어나온다면 아무리 점잖던 사람이라 해도 이성을 잃을 수 있다.
엽현의 이와 같은 생각은 곧 구층 존재를 두고 염두에 둔 것이었다.
지금까지 보여진 모습은 매우 호의적이었으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경계를 놓을 순 없다.
게다가 초절정 강자 둘이 쫓아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괜히 서옥을 열었다 예기치 못한 사고라도 발생하게 된다면 그 시각 부로 자신의 목숨은 없는 걸로 쳐야 했다.
엽현은 생각을 접어 두고서 걸음을 재촉했다.
바로 이 순간, 사방의 지면이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조심해라, 강대한 기운이다!]강대한 기운?
엽현이 표정을 가볍게 일그러뜨리는 이때, 멀리 떨어진 두 개의 산 사이로 거대한 원숭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이미 주변의 산보다도 훨씬 커다란 원숭이는 마치 머리로 하늘을 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주었다.
크다!
엽현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눈앞의 거대한 생명체와 비교한다면 자신은 한 가닥 머리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천천히 그러나 성큼성큼 엽현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 원숭이.
두 개의 검붉은 눈동자가 빛날 때마다 포악한 기운이 밀려 나온다.
바로 이때, 갑자기 방향을 튼 원숭이가, 포효함과 함께 옆에 있는 산에 주먹을 내질렀다.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