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930
930화 밥해줄게!
엽현의 눈앞에서 족히 천 장 높이는 되어 보이던 대산 하나가 그대로 가루가 되어 무너졌다.
천지가 뒤집어지는 굉음과 동시에 엽현의 머릿속에도 공백이 찾아왔다.
뭐 저딴 괴물이 다 있지?
말 그대로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장면!
이때 구층 존재의 경악이 섞인 음성이 들려왔다.
[정말이지 무지막지한 놈이로구나!]엽현은 아직까지 쿵쿵 뛰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거대 원숭이가 보여 준 힘은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였다. 설령 서영족의 활사인이 온다 해도 한 입 거리에 지나지 않을 것처럼 여겨졌다.
바로 이때, 먼 하늘에서 무언가 날카롭게 찢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엽현이 고개를 들자, 하늘 끝에서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새가 한 번 날갯짓할 때마다 놀랍게도 주변의 산이 무너져 내렸으며, 그의 머리 위를 지날 땐 마치 어둠 속에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어두컴컴해졌다.
그 거대한 날개가 태양을 모두 가렸기 때문이다!
“어… 엄청나게 큰 새다!”
“멍청한 녀석, 대붕(大鹏)이라는 것이다.”
“대붕?”
엽현이 궁금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자 구층 존재가 설명했다.
[대붕이란 전설 속의 생령으로 기서(奇書)《이수경(異獸經)》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북쪽 바다에 곤(鯤)이란 물고기가 살았는데, 그 길이가 몇천 리에 달했는지 알 수 없다. 곤이 어느 날 한 마리 새로 변하니 이를 붕(鵬)이라 불렀다. 그 날개를 모두 펴면 족히 수천 리에 달하는데, 구름 위를 날아갈 때면 태양을 사라지고 밤이 찾아오곤 했다.’ 전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세상에 정말로 대붕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혹시 저 새와 싸워서 이길 수 있소?”
엽현의 질문에 어이없다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나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게 아니냐?]엽현은 대답 대신 작은 태풍을 일으키며 유유히 날고 있는 대붕을 응시했다. 어쩌면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광경에 엽현은 지금껏 자신이 본 것은 오유계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 구층 존재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아는 한, 대붕을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단 셋뿐이다. 먼저는 선각자, 다음으로 네 배후의 여인, 마지막으로는 네 몸 안에 잠들어 있는 9호. 참, 아슬아슬하게 나도 낄 수 있겠군. 지금 저 대붕이 오유계로 나간다면 장담컨대 다른 두 금역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막을 자가 없을 것이다.]엽현은 문득 머릿속에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조금 전, 말한《이수경》이란 책은 어떤 것이오?”
[그건 오유계 탄생 초기에 세상에 존재했던 이수들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혹자는 그 책 안에 이수들을 다스리는 법이 있다고도 하지만, 진위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그런…….”
바로 이때, 하늘을 날고 있던 대붕이 거대 원숭이를 향해 돌연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엽현이 황급히 고개를 돌려 두 이수들을 바라보았다.
“뭐야, 싸우기라도 할 건가?”
이때 화가 난 듯한 거대 원숭이가 가슴을 두들기던 주먹으로 대붕을 향해 일격을 가했다. 이와 동시에 대붕의 발톱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콰쾅-!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주변의 산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를 본 엽현은 황급히 멀찌감치 물러났다.
만약 근처에 있다가 휩쓸리기라도 한다면 뼈도 추리지 못할 것 같았다.
젠장, 뭐 이딴 세상이 다 있어?
꽤나 많이 떨어졌다고 생각한 엽현.
하지만 두 이수들은 여전히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원체 너무나 거대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괴물들이 하늘을 부수고 땅을 가르며 싸우는 장면과 비교하면 서영족과 자신의 전쟁은 소꿉장난에 불과할 지경이었다.
말 그대로 귀신조차 눈물 쏙 빼며 달아날 정도로 엄청난 전투였다.
저들 중 한 마리만 이곳을 빠져나가도 오유계는 아수라장이 될 수 있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영생지의 공간이 견고한 탓에 두 괴수들의 힘을 견뎌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때 근거리에서 싸우던 대붕이 돌연 하늘 끝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다시 한번 세상이 어두워진 이 순간, 대붕이 머리를 아래로 한 채 벼락처럼 지면으로 떨어졌다.
아래쪽에 있던 거대 원숭이 역시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하고는 날아오는 대붕을 향해 양 주먹을 내밀었다.
콰쾅-!
두 괴수가 정면으로 충돌한 순간, 주변의 산들이 순식간에 평지로 변했고, 그 여파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엽현이 황급히 양손을 교차해 보았지만,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편으로 튕겨져 나갔다.
울컥-!
수십 리 밖에 멈춰 선 엽현은 곧장 입으로 선혈을 쏟아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너무나 큰 충격에 온몸의 신경이 마비된 탓이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엽현.
그는 눈앞에서 여전히 다투고 있는 괴물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 충격일진대, 직접 대면하게 되면 어떤 위력일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때 구층 존재의 입에서 흥분 섞인 음성이 터져 나왔다.
[과연 전설 속의 이수들이로구나! 저놈들이 이수방(異獸榜) 몇 위에 있는지 꽤나 궁금하군!]“이수방? 그런 게 있다면 저놈들은 당연 일이 위를 다투지 않겠소?”
엽현은 눈앞의 이수들보다 더 강한 괴물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만에 하나 있다고 하면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이 순간, 엽현은 자신의 존재가 무척이나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게다가 이곳에서 받은 충격만큼, 무변지하성이나 허무계 역시 엄청난 존재들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엽현은 문득 나머지 두 금역도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당장의 실력으로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지금도 할 수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니까.
한편, 지칠 줄 모르고 계속해서 싸우고 있는 두 이수.
지금까지의 상황만 놓고 보자면 둘 모두 승부를 결정짓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만큼 둘의 실력이 막상막하였다.
“저 괴물들의 선혈을 얻을 수만 있다면 굉장한 일이 되겠군.”
[어찌, 해볼 생각이냐?]“하하, 그저 혼자 중얼거린 것뿐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놈들의 피는 물론 대단할 것이지마는, 천룡의 피가 합쳐진 네 혈맥은 그보다 더 훌륭하다. 어쩌면 소문의 범인혈맥(凡人血脈)과 맞먹을지도 모르겠구나.]범인혈맥?
엽현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범인혈맥이란 게 무엇이오?”
[사실 그것은 나 역시 아는 바가 크게 없다. 일종의 매우 특수하고 강력한 혈맥이라는 것뿐. 다만 네 혈맥 역시 한 번 발동하면 동귀어진하는 듯이 미쳐버리는 것만 빼면 아주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미쳐버린 혈맥!
그 말에 찬성하듯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맥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신지가 사라지게 되면 동귀어진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미쳐 날뛸수록 더욱 강해지는 혈맥,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엽현 역시 더 많은 조사가 필요했다.
바로 이때, 굉음과 동시에 천지가 또다시 진동하더니, 엽현이 재차 튕겨져 나갔다. 이제는 상당히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십여 장 뒤로 밀려난 엽현은 오장육부가 찢겨 나가는 듯한 통증과 함께 입으로는 선혈을 뿜어냈다.
바로 이때, 땅이 진동을 멈추고 장내가 고요해졌다.
불길한 예감에 고개를 든 엽현.
순간 그는 두 이수가 자신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제길, 틀켰나!?
엽현이 황급히 도망가려는 찰나, 두 줄기 무형의 기운이 날아와 그의 몸을 휘감았다.
순간 질식할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은 엽현은 어쩔 수 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자신 있으면 들어와 봐! 단, 한 마리씩!”
바로 이때, 엽현이 있는 쪽을 응시하던 대붕이 날개를 펴고 반대쪽으로 날아갔다. 마찬가지로 거대한 원숭이 역시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더니 산맥 너머로 사라졌다.
갔다?
도망친 건가?
“…혹시 나한테 겁먹고 도망간 건가?”
[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그러면 왜…….”
바로 이때, 문득 옆을 바라본 엽현이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그곳엔 산발을 한 소녀 하나가 도망치는 이수들을 응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중요한 것은 그녀가 바로 옆에 올 때까지 엽현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구층 형씨, 왜 사람이 왔다고 말해 주지 않았소?] […나도 몰랐어. 그리고 지금도 기운이 느껴지지가 않아.] […….]그 말을 들은 순간, 엽현의 등 뒤로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불쑥 나타난 소녀!
꽃무늬 치마 차림의 소녀는 재 투성이 얼굴에 머리는 산발이 되어 다소 너저분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다 녹슬어가는 철검을 쥐고 있는 소녀의 곁에는 검은 강아지 한 마리가 엽현을 향해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엽현은 한눈에 대도촌에서 만났던 강아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때 엽현은 다소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도대체 이 소녀는 언제 나타난 걸까?
모양새를 봐서는 한동안 자신의 곁에 서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뭐지? 어떡하지?
바로 이때, 검은 강아지가 ‘왕’ 하고 짖더니 엽현의 발에 대고 비비적대기 시작했다.
잠시 고민하던 엽현은 다시 영과 하나를 꺼내 강아지 앞에 놓았다. 소녀는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녀가 바라본 것은 다름 아닌 영과였다.
이때, 소녀의 입가에 침방울이 고여 있는 것을 본 엽현이 황급히 영과 하나를 더 꺼내 들었다.
“자, 너도 하나 줄게!”
이때 엽현의 시선에 문득 소녀의 철검이 들어왔다. 얼핏 봐도 천주검 이상이었다. 혹여라도 검이 몸에 박힌다면 흡수는커녕 비명에 횡사하고 말리라!
엽현을 한 번 쳐다본 소녀는 영과를 받아 들고는 게걸스럽게 베어 물었다.
소녀를 바라보는 엽현은 불안한 마음뿐이었다.
[구층 양반, 이 아이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겠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바로 이때, 소녀가 엽현의 복부를 유심히 보더니, 갑자기 검을 들어 자기 자신의 목을 그었다.
[으악-!]외마디 비명소리가 계옥탑으로부터 울려 퍼졌다.
순간 깜짝 놀란 엽현이 황급히 속으로 말했다.
[무, 무슨일이오? 여보시오!]순간 잠잠해진 계옥탑.
엽현은 가슴일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이미 죽어버린 걸까?
이때, 구층 존재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야 이 시키야… 나한테 말 걸지마, 나 죽는 꼴 보고 싶어?]“…….”
바로 이때, 소녀가 다시 검을 자신의 목에 가져다 댔다.
[녀석아 빨리 막아야지 뭘 보고만 있느냐! 저 검에 한 번 더 타격을 입으면 너와도 영영 작별이란 말이다!]그 말을 듣자 엽현이 빠르게 품을 뒤져 방금 전보다 더 큰 영과를 꺼내 들었다.
과연, 예상대로 소녀는 더 이상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지면에 검을 박아 넣고서 영과를 한 입 베어 물은 소녀는 반쪽을 갈라서 강아지에게도 던져 주었다.
그리고 잠시 동안, 한 소녀와 강아지의 식사 소리만이 고요한 숲속에 울려 퍼졌다.
이를 본 엽현은 그제야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소녀의 식탐을 이용하면 한동안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때 좋은 생각이 떠오른 엽현이 슬금슬금 자리를 이동했다. 이때, 소녀가 검 자루를 향해 손을 뻗자, 엽현이 황급히 두 손을 내저었다.
“어, 그게 아니라, 밥… 밥 해 주려고!”
“…….”
엽현을 향해 고정된 소녀의 시선.
그녀의 눈은 마치 사람이 아닌 것 마냥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때, 소녀가 뻗었던 손을 다시 거둬들였다. 무언의 승낙이었다.
역시… 밥이란 말에 마음이 흔들린 게 틀림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