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932
932화 멍청한 것
먹을 거?
엽현은 순간 당황했다. 혹시 먹지 못해 죽은 귀신이라도 되는 걸까?
계옥탑을 뒤적인 엽현은 급한 대로 사탕 한 알을 꺼냈다.
사탕을 건네받은 여인은 한입에 쏙 넣고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엽현이 돌아보니 소녀는 아직 잠에서 깰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의 시선이 다시 여인에게로 향했다.
“여긴 도대체 어떤 곳이오?”
“…….”
붉은 치마의 여인은 열심히 사탕을 쪽쪽 빨기만 할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내가 여기 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렇소. 뭐 하는 곳인지 좀 알려 주시오!”
순간 여인이 동작을 멈추고 엽현을 빤히 바라보았다.
“떠나라.”
떠나?
엽현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 역시 떠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박차고 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비록 바깥세상에서 무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깨에 힘 꽤나 주고 다니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영생지 안에서는 한 마리 개미 마냥 목숨이 간당간당 한 느낌이었다.
이때 여인이 문득 잠들어 있는 소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위험해.”
“위험…해? 혹시 저 아이의 정체가 뭔지 아시오?”
“…….”
“말하기 어려운 것이오?”
“…위험해.”
여인은 원하는 대답 대신 사탕을 오물거리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엽현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소녀가 위험한 존재라는 건 그 역시 매우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당시 헐레벌떡 도망가던 두 이수만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엽현은 소녀의 신분이 매우 궁금했다.
이때,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길 왜 왔지?”
“바깥에 날 죽이려는 자들이 있소.”
“멍청이……. 여기는 더 위험하다.”
“왜 그런지 알아듣게 설명해 줄 수 있소?”
“…….”
다시 입을 다물어 버린 여인.
이에 엽현이 사탕 하나를 건네자, 여인이 재빨리 낚아채며 대답했다.
“백악기(白堊紀).”
백악기?
그 말을 곱씹어 보던 엽현의 표정이 일순 크게 변했다.
백악기라면 무적종에서 만났던 연무가 말한 백악시대를 뜻함이 아닌가!
영생지가 백악시대와 관련이 있다는 소린가?
“이곳은 백악기와 무슨 관련이 있소?”
“오래 전… 오유겁으로 인해 백악시대가 저물고 있을 때, 한 기인이 나타났다. 그는 《이수경》이란 책을 이용해 많은 이수들과 인간들을 그 안에 집어넣었지. 그 직후 이수경은 중상을 입어 숙면에 들어갔고, 그렇게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바깥세상과의 왕래가 끊기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수경이 가까스로 깨어났고, 이수들은 다시 바깥세상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러나 이때, 그 남자가 나타났다. 매우 강했던 한 남자가…….”
엽현은 여인의 눈빛이 다소 거칠어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강했기에 그러는 것이오?”
“그때 그 남자는… 대붕의 날개를 종잇장처럼 찢어 버렸다.”
“…….”
이때 여인이 문득 엽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네게서 그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의 기운?
“내게서 그 남자와 같은 기운이 느껴진단 말이오?”
“그렇다.”
잠시 생각하던 엽현은 결국 범인을 찾아냈다.
대붕의 날개를 찢은 그 남자는 바로 선각자였던 것이다.
자신에게 있는 계옥탑은 원래 선각자의 것이었으니, 그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엽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대체 선각자는 얼마나 강하기에 대붕조차 비둘기 취급을 해 버린단 말인가!
여인이 말을 이어갔다.
“그 남자는 우리가 이곳을 나갈 수 없다고 했다.”
“어째서?”
“…이곳에 있는 이수들의 기운이 너무나 강해서 바깥세상의 존재들이 멸망해 버릴 거라 하더군.”
엽현은 선각자의 행동이 이해가 됐다.
예를 들어 대붕이나 거대 원숭이만 하더라도 오유계를 초토화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오유계를 관장하던 선각자의 입장으로서는 당연히 막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원래 우리는 그 말을 무시하고 나가려 했다. 왜냐하면 이곳의 영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이곳에 매우 질 좋은 영맥을 심어 우리가 살기에 괜찮은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우리도 굳이 남자와 적이 되는 것보다 이곳에 남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혹시 밖으로 나간 이수가 있었소?”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없었다.”
“나가고 싶은 자들이 있었을 텐데?”
“물론이다. 하지만 이수경이 아직 완전한 상태로 회복된 것이 아니기에, 억지로 밖으로 나가려 했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굳이 그런 도박을 할 필요는 없었지. 다만, 이수경이 완전히 회복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걸 어찌 아시오?”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내 감이 말하는 것이니까.”
“…정리해 보자면, 이 영생지는 곧 이수경이고, 이 안에 백악시대의 이수들과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오?”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악시대!
엽현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고대 백악시대 존재들이 있는 곳이라니.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리라곤 그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어쩐지, 수많은 강자들이 들어갔다가 살아 나오지 못한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때 엽현이 문득 잠들어 있는 소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럼 저 아이는 누구요?”
여인은 소녀를 흘끗 보고는 다시 입을 닫았다.
“아니면 그대 역시 알지 못하는 것이오?”
“그녀는… 천맥자(天脈者)다.”
천맥자?
“그게 도대체 무엇이오?”
엽현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묻자, 여인이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람에게 기경팔맥(奇經八脈)이 있는 걸 알고 있겠지?”
“물론이오!”
“저 아이는… 기경팔맥뿐만 아니라, 천맥이란 특별한 혈맥을 타고난 존재다. 백악시대에 이수경을 만든 자 역시 천맥자였지. 그때 당시만 해도 천맥자는 곧 무적을 의미했다.”
무적…….
“그러면 이곳에서 가장 강한 자는 바로 저 아이라는…….”
엽현의 말에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지. 왜냐하면 한 번 미쳐버리면 아무도 말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엽현은 소녀를 바라보며 무섭다기보다는 어쩐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초가집 주변에는 누가 먹다 만 뼈나 사체가 있었는데, 대부분 피가 묻어 있는 상태였다. 아마 소녀는 지금까지 날것으로만 영양분을 섭취했으리라.
이것이 바로 소녀가 익힌 닭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 이유였다.
이때 여인의 은근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가 관심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엔 한 가지 보물이 존재한다.”
보물?
이 소리에 엽현의 눈이 반짝였다.
“어떤 보물 말이오?”
“…영생검.”
영생검!
엽현은 순간 가슴이 떨림을 느꼈다.
“영생검이 정말 실존한단 말이오?”
“물론이다. 그러나 그곳은 다소 위험해서 함부로 접근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도전해 보겠느냐?”
“음… 그 검이 있으면 영생한다는 것이 사실이오?”
줄곧 끄덕이던 여인이 이번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사용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구나.”
“음… 그나저나 다소 의아한 점이 있소. 그대는 왜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려는 것이오?”
“네가 그 검을 갖도록 도와줄 테니, 너는 나를 데리고 이곳에서 나가 다오. 어떻게 생각하느냐?”
“억지로 이곳을 벗어나면 죽는다고 하지 않았소?”
그 말에 여인이 엽현의 복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 안에 있으면 괜찮을 것이다.”
엽현은 그제야 여인이 계옥탑의 존재를 알고 있음을 알아챘다.
“음… 영생검이라……. 좋소! 거래성립!”
“그럼 지금 곧바로 떠나도록 하자. 마침 밤이 깊었으니 이수들도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그럼 저 아이는…….”
엽현이 소녀를 쳐다보자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웬만한 이수들은 감히 그녀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한다. 위험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야…….”
잠시 머뭇거리던 엽현은 소녀 곁에 다가가 머리맡에 영과와 사탕 한 주먹을 올려놓고 돌아섰다.
“이제 갑시다!”
이렇게, 엽현은 붉은 치마 여인의 안내를 받아 대도촌을 떠났다.
두 사람이 막 자리에서 사라진 이때, 잠이 든 줄 알았던 소녀가 돌연 번쩍 눈을 떴다. 소녀의 시선은 잠시 머리맡에 남겨진 영과와 사탕에 머물렀다.
한편, 엽현과 붉은 치마의 여인은 칠흑과 같은 어둠을 뚫고 나아가고 있었다.
사방은 음산하고 산속 깊은 곳에선 야수의 울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잔뜩 긴장한 채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엽현.
이를 본 여인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뭘 그리 두려워하는 게냐. 이 근처에 이수들은 없다.”
“뭐, 조심해서 나쁠 것 있겠소? 그나저나 얼마나 더 가야 하오?”
“거의 다 와 간다.”
이로부터 대략 반 시진 가량이 더 지난 후, 두 사람 앞에 거대한 고목 한 그루가 나타났다. 엽현은 나무를 살펴보던 중, 나뭇가지 위에 걸려 있는 검 한 자루를 발견했다.
영생검?
순간 엽현의 두 눈이 번뜩였다. 그러나 섣불리 움직이진 않았다.
“저게 바로 영생검이다. 그러나 검을 얻기 위해서는 저 부적을 제거해야만 한다.”
여인이 손을 들어 고목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과연 고목의 몸통 부분에 황금색으로 빛나는 부적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순간, 엽현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부적의 등급이 그가 가지고 있는 천지부보다도 더 높은 것이 아닌가!
천지부보다 더 강한 부적이 존재했단 말인가!
“누, 누가 저딴 걸 붙여 놓은 것이오?”
“그 남자다. 당시 그는 이곳을 지나던 중 영생검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물론 제압하긴 했지만, 그 포악함을 우려한 나머지 이곳에 봉인해 버린 것이지.”
“그런 검을 내가 통제할 수 있겠소?”
엽현이 걱정스레 묻자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다. 왜냐하면 지금이야말로 영생검이 가장 약한 시기니까.”
“그렇다면 왜 다른 자들은 도전하지 않았소?”
그 말에 여인이 황금빛 부적을 가리켰다.
“저 부적이 붙어 있는 한 가까이 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부적을 잠시 응시하던 엽현은 결국 고목을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바로 이때, 부적이 웅웅 소리를 내며 환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놀란 엽현이 황급히 후퇴하려 하는 순간, 기이하게도 부적이 뿜어내던 빛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를 보자 붉은 치마 여인의 눈가에 기이함이 흘렀다.
이때 여인이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엽현을 향해 말했다.
“부적은 너를 해칠 마음이 없는 것 같구나. 떼어내 버리거라.”
그 말에 엽현이 다시 고개를 들어 장검을 바라보았다.
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검.
하지만 엽현은 여전히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게 정말로 영생검일까?
“이 부적만 떼버리면 된다는 것이오?”
“그렇다. 검을 구속하고 있는 부적만 사라지면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단, 약속했던 대로 검을 얻으면 반드시 나를 데리고 이곳을 떠나야 한다!”
“후후, 사나이 엽현, 거짓말은 하지 않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엽현은 눈앞의 부적을 떼어내 버렸다. 그 순간, 엽현 앞의 고목이 크게 흔들림과 동시에 사방 공간에 잔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엽현이 황급히 고개를 들어보니, 나뭇가지에 걸려 있던 검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후였다.
순간, 일이 잘못된 것을 느낀 엽현이 황급히 부적을 다시 고목 위에 붙이려 할 때, 강대한 기운이 불어와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러자 엽현은 몸이 굳은 것처럼 전혀 움직일 수도, 심지어 현기조차 운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당했다!
엽현은 머리가 새하얘지는 느낌이었다.
바로 이때, 붉은 치마의 여인이 홀연히 엽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흉측한 미소를 지어 보인 여인은 그에게서 받은 사탕을 꺼내 발밑에 떨어뜨렸다.
“멍청한 인간 녀석, 이까짓 사탕으로 내 환심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느냐? 꿈이 너무 크구나!”
엽현이 여인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 못생긴 년! 너는 대체 누구냐!”
“내가 누구냐고? 하하하하하!”
산이 떠내려가라고 웃어젖히던 여인의 눈이 일순 독사의 눈빛으로 변했다.
“내가 바로 그 빌어먹을 선각자에게 당해 무수한 세월을 봉인돼 있었던 이수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