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937
937화 거래를 합시다
“너였구나!”
이수경의 외침에 엽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게 누군데?”
엽현의 물음에 이수경은 가만히 눈을 마주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해! 죽고 싶지 않으면!”
엽현이 흉악한 표정으로 소리치자, 이수경이 눈을 가늘게 뜨고 엽현을 바라보았다.
“지금 네가 날 협박하는 것이냐?”
“그렇다면?”
엽현과 이수경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향해 살기를 뿜어냈다.
바로 이때, 소범이 다시 검을 들어 자신의 목을 겨눴다.
이를 보자 이수경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만약 엽현이 혼자였다면 크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비록 계옥탑이 위협적이긴 하지만 그 정도는 이수경의 능력으로도 충분히 대항할 수 있었다.
다만 소범이 끼어들게 된다면 이야기는 매우 달라진다.
엽현과 소범이 동시에 덤빈다면 아무리 이수경이라 해도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심 끝에 이수경이 입을 열었다.
“현와(玄訛). 이수방(異獸榜) 서열 십 위에 드는 자다. 모든 이수를 통틀어 가장 똑똑한 녀석이다. 그녀가 천맥자가 아끼는 개를 죽인 것은 우리가 서로 죽을 때까지 물어뜯도록 유도하기 위함일 것이다.”
“어째서지?”
“그야 이곳의 이수들은 내 동의가 없는 한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지. 그들은 네 손에 내가 죽길 바라는 것이다.”
“네가 죽길 바란다면 이수들이 직접 힘을 합쳐 널 죽일 수도 있지 않나?”
“흥! 멍청한 녀석! 저들이 날 죽일 수 있었더라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가 있었겠느냐?”
그 말을 들은 순간 엽현은 상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곳의 이수들은 모종의 이유로 인해 이수경을 적대하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당시 선각자가 이수경만 봉인해 놓은 이유도, 그녀만 제압한다면 다른 이수들 역시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흠… 이치를 따진다면 이수경의 세상에 속한 이수들은 모두 너의 통제에 따라야 할 것인데.”
“…….”
“지금 보니, 이미 네게는 저들을 통제할 힘이 없는가 보구나. 아니면 반대로 오랜 세월이 지나 이수들의 실력이 널 뛰어넘었거나. 내 말이 맞나?”
“흥… 현와 년만큼이나 똑똑한 녀석이로구나!”
말을 마친 이수경이 자리를 떠나려는 듯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이때, 그녀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는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이 방향으로 대략 삼천 리쯤 가면 청구산(青丘山)이라는 큰 산이 하나 나온다. 현와 년은 그곳에 살고 있으니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거라!”
이 말을 끝으로 이수경은 괴조와 함께 먼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청구산?
엽현은 이수경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에 잠겼다.
이때,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소범이 엽현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엽현이 그녀를 바라보자, 소범이 손으로 자신을 가리킨 다음 멀리 청구산 방향을 가리켰다.
엽현은 그녀가 혼자 청구산으로 가겠다는 의미인 것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위험할까 봐 겁나는 거야?”
소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엽현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같이 가자.”
“…….”
“출발!”
곧 두 사람은 청구산을 향해 이동했다.
사실 엽현은 처음부터 이수경의 말을 믿지는 않았다. 자신을 죽이려 한 자가 하는 말을 믿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수경이 얼마나 오만한 존재인지를 감안한다면, 이런 음흉한 짓을 하진 않으리라는 건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게다가 소범의 앞에서 강아지를 죽인 것은 명백히 소범의 분노를 이용해 이수경을 죽이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했다.
잠시 후, 엽현과 소범은 어느 깊은 산맥 속으로 들어갔다. 어검비행으로 이동하던 그들이 막 산맥 영역에 진입했을 때, 이수 한 마리가 그들을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이 이수는 두 사람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이수들의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에 엽현은 어검비행을 통해 영역을 통과하는 것은 이수들을 자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다만 이빨을 드러내며 다가오던 이수들은 소범이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얌전히 물러가곤 했다.
반면 점점 깊은 곳으로 향할수록 엽현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만난 요수는 열 마리 정도로, 하나하나가 엄청난 기운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더도 덜도 말고, 그들이 만난 요수들만 데리고 나가도, 서영족 정도는 순식간에 멸망시켜 버릴 수 있으리라.
엽현은 다시 한번 이곳을 봉인시켜 준 선각자의 혜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각자야 말로 지금의 오유계를 있게 해 준 구원자였던 것이다.
이때 엽현은 문득 허무계와 무변지하성이 몹시 궁금해졌다.
모르긴 몰라도 같은 금역으로 취급받는 만큼, 영생지 보다 결코 시시하지는 않으리라.
물론 그 지역들을 방문하기 앞서 해야 할 일은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간 후, 서영족을 물리치는 것이었다.
잠시 후, 엽현과 소범은 마침내 청구산에 도착했다. 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두 사람 앞에 웬 여인 하나가 나타났다. 수수한 치마 차림의 여인은 긴 머리에 청순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평범한 인간과는 달리 귀가 매우 뾰족하다는 것이었다.
이수!
여인을 발견한 순간 소범이 철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때 소범과 엽현을 바라보던 여인이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그대들은 분명 저 아이 때문에 온 것이겠구려.”
말과 함께 한 곳을 가리키는 여인.
그녀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린 두 사람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곳엔 작은 강아지, 소범의 강아지가 있는 것이 아닌가!
죽은 것이 아니었나?
바로 이때, 소범이 바람처럼 강아지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자 강아지가 ‘왕’하고 짓더니 그녀의 손을 핥기 시작했다.
강아지를 유심히 바라보던 엽현은 그것이 환상 따위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엽현의 시선이 다시 여인에게로 향했다.
“그대가 현와인가?”
“후후, 그렇소.”
“어째서 그런 짓을 한 거지?”
엽현이 윽박지르듯 묻자, 현와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먼저 사과부터 하겠소. 지난번 저 강아지의 환상을 이용해 그대들에게 혼란을 준 것은 나의 잘못이오. 굳이 그 이유를 밝히자면 그대가 예상한 바와 같이 천맥자가 이수경을 죽여주길 바랐던 것이오.”
“내 생각이 맞다면 너희들 이수들은 만큼은 이수경에게 속박되어 있고, 그녀를 죽일 수도 없다. 내 말이 맞나?”
“그렇소. 이 안에서 유일하게 그녀의 통제를 벗어난 존재가 있소. 그건 바로 천맥자요. 오직 그녀만이 이수경을 죽일 수 있소.”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이 안에 이수가 아닌 다른 생령이나 인간은 없나?”
“예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죽었소.”
“죽임을 당한 건가? 아니면 수명이 다해 죽은 건가?”
이 질문에 현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인간, 그대는 보기보다 꽤나 똑똑하구려. 이 안에 있던 다른 종족들은 물론 이수에 공격을 받은 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수명이 다해 죽은 것이오. 이 안에서 그 기나긴 세월을 뚫고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은 오직 우리 이수들뿐이었소. 물론, 천맥자도 포함해서.”
천맥자.
엽현은 문득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묻고 싶어졌다.
“천맥자가 도대체 어떤 존재지?”
그 말에 현와가 검은 강아지를 꼭 끌어안고 있는 소범을 흘끗 쳐다보며 대답했다.
“내가 살았던 시대만 해도 천맥자 같은 건 전설에 지나지 않았소. 세상에 오유겁이란 환란이 닥치기 전까지는 말이오. 오유겁이 있기 바로 전, 어떤 기인이 나타나 이수경을 편찬한 것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는 이 이수경에 백악시대 모든 이수들을 총망라했으며, 이것을 통해 우리들을 통제하기까지 했소.”
“너희는 그 기인을 증오하는 건가?”
“증오?”
현와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가 비록 우리를 통제하긴 했지만, 한 번도 해치거나 한 적은 없소. 오히려 보호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오. 당시 그가 우리를 이수경 안에 집어넣지 않았더라면, 지금 살아 있는 이수들의 대부분은 오유겁 당시 모두 죽었을 것이니 말이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너희는 이수경을 만든 자를 증오하진 않지만, 이수경에 속박되는 것은 원치 않는 것이었군.”
“제대로 보았소. 다만 안타깝게도 우리 이수들이 전부 힘을 모은다 해도 그녀를 어찌할 순 없소. 그러니 천맥자의 손을 빌리려 했던 것이오.”
엽현은 잠시 현와를 빤히 바라보았다.
“역시, 이수경의 말대로 이수들 중 가장 총명한 자 답군.”
이는 빈말이 아니었다. 만약 현와가 단지 소범을 자극하기 위해 정말로 강아지를 죽였다면, 소범은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이수들을 쓸어버리려 했을 것이다.
현와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강아지를 정말로 죽이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거래 하나 하겠소?”
“거래?”
“그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소. 이런 말 하기 미안하지만, 그대의 실력은 이곳에 들어오기에 충분하지 않소. 게다가 그대가 이곳에 온 날, 두 명의 외부인들이 그대를 따라 들어왔소. 이런 정황들로 볼 때, 그대는 무언가에 쫓겨 이리로 온 것 같은데… 내 말이 맞소?”
“…그렇다.”
현와가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도 이수경이란 존재가 그대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소. 지금이야 천맥자가 그대를 지켜주고 있기에 문제가 없으나, 시간이 지나 그녀가 모든 힘을 회복한다면 그땐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오. 즉, 이곳의 모든 이수들이 그녀의 명령을 듣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대는 물론 천맥자 역시 위험해질 수 있다는 말이오.”
“…….”
“그대는 지금 당장 나갈 수도,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곳에 웅크리고 있을 수도 없는 처지요. 그러니 우리를 도와주시오. 그대가 우리를 이곳에서 나갈 수 있게 도와준다면, 우리 역시 바깥세상에 있는 그대의 적을 제거하도록 도와주겠소. 어떻소?”
현와의 제안을 들은 엽현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겉보기에 둘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제안 같지만, 일단 이들 이수들이 밖으로 나가게 됐을 때 발생할 상황도 따져 봐야 했다. 하나하나가 오유계 최강자 급의 위용을 가진 이수들이었다. 만약 이들이 무더기로 오유계에 나타난다면, 그에 따른 파장도 엄청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때 엽현의 생각을 읽은 현와가 웃으며 말했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소. 그대는 세상의 구원자가 되기에는 너무나 약하오. 게다가 현재 그대의 상황에서 지금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소.”
“…만약 내가 거절한다면?”
엽현의 질문에 현와가 소범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바깥세상에는 오직 인간들만 존재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소? 그대들 인간이 대관절 무엇이기에 우리의 자유를 억압한단 말이오? 이 우주는 주인이 따로 없으니, 어떤 생명체라도 존재할 수 있소. 그렇지 않소?”
“…….”
“우리 이수들의 입장은 명확하오. 그대가 우리를 도와주면, 우리도 그대를 도와준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