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94
94화 무도를 연마하는데 왜 검도가?
엽현의 눈물을 보고 주변 사람들, 특히 평소 그와 가깝게 지내던 강구나 묵운기와 같은 자들은 깜짝 놀랐다.
엽현은 피는 흘릴지언정 눈물은 보이지 않는 강인한 사나이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엽현이 엽령의 말 한마디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다니!
이것만 보아도 엽령이 엽현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분홍 저고리의 소녀 역시 의아함을 느꼈다. 일찌감치 이곳에 와 있던 그녀는 이미 엽현이 싸우는 장면을 모두 볼 수 있었다.
비록 그녀는 엽현을 썩 달가워하진 않았지만, 그가 방금 전 전투에서 보여준 과감함, 용감무쌍함 등은 그를 사나이로 인정하기에 충분한 장면들이었다.
그런데 동생의 앞에서는 마치 어린 소녀와 같이 여린 눈물을 보이고 있으니…
이해할 순 없지만, 그가 진정으로 동생을 아낀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물론 무인에게 있어 이런 마음은 사치일 뿐이지만.
이때, 엽령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오빠, 나 강해지고 싶어!”
엽현이 아무 말 없이 엽령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엽령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더 이상 오빠의 짐이 되기도 싫고, 나쁜 사람들에게 끌려가서 오빠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도 않아. 내가 하고 싶은 건, 지금보다 강해져서 오빠를 도와주는 거야!”
엽현이 엽령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선 후 그녀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오빠가 못나서 동생 하나 지켜주지 못했구나…….”
엽령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다 내가 쓸모없는 탓이야. 어려서부터 항상 오빠에게 짐만 돼왔어…….”
“울지 마 바보야… 얼굴이 얼룩얼룩해졌어… 하하…….”
엽령이 엽현을 끌어 앉히고는 그의 눈물을 닦아 내었다.
“오빠, 나 반드시 강해질 거야. 그래서 오빠가 나한테 해 준 것처럼 내가 오빠를 지켜줄 거야!”
엽현이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으며 엽령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이때, 분홍 저고리의 소녀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흠흠, 네 동생의 체질이 특수하다는 것은 너도 잘 알 것이다. 화령(火靈) 따위를 써봤자 결국 얼마간 생명을 연장해 주는 것이 전부다. 결국은 나와 함께 북한종(北寒宗)으로 가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엽현이 소녀를 올려다보자 소녀 역시 엽현의 눈을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네가 언제까지고 그녀를 보호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결국 네 동생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해. 그리고 우리 북한종은 최선을 다해 그녀를 키워낼 것이다.”
“저 아이의 말대로 엽령의 특이한 체질은 북한종만이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샌가 나타난 기원장이 엽현의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그러자 엽현이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령이는 제게서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기 원장이 그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때, 엽현의 머릿속에 소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직도 네가 처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냐? 네 동생은 너와 같이 있다간 반드시 죽을 것이다. 반면 우리 북한종은 그녀를 지킬만한 힘이 있다. 네가 동생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지금 너의 행동은 동생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드는 이기적인 것이다!”
‘내가… 이기적이라고!?’
엽현의 두 주먹에 점차 힘이 들어갔다.
사람들은 모두 엽현의 입에서 나올 말만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엽현이 결심이 선 표정으로 엽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좋아! 허락할게!”
그의 허락을 받은 엽령은 오히려 세상이 떠나갈 듯 울기 시작했다.
그 말은 이제 그들 오누이가 헤어져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울지 마….”
엽현이 엽령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더니 엽령의 손을 이끌고 소녀의 앞으로 데려갔다.
“제 동생을 잘 부탁드립니다!”
소녀가 아무 말 없이 엽령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제 동생은 마음이 여려 남들과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북한종에 가서 혹시라도 남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지나 않을까…….”
“걱정 마라! 내가 있는 이상 감히 이 아이를 깔보는 자는 없을 것이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 반지 하나를 꺼내서 엽령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것은 예전에 그가 획득한 납계(納戒)였다. 그 안에는 지금까지 자신이 모은 전 재산이 들어 있었다.
“북한종에 가서는 절대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돼. 누가 너를 깔보면 반드시 두 배 세 배로 갚아줘야 해. 정 이길 수 없는 상대라면 나중에 내가 가서 혼내줄게. 알았지?”
엽령이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작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이때, 소녀가 엽현을 향해 말했다.
“그 납계는 네가 가지고 있는 게 좋을 것이다. 어차피 북한종 안에서는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내가 내 동생에게 주겠다는데 무슨…….”
“그럼 좀 좋은 걸로 주던가! 애한테 이런 쓰레기들만 모아서 주면 어쩌라는 거야! 북한종에선 이런 거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놀림만 당한다고!”
그녀의 말에 엽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극상품 영기(靈器) 들만 모아 놓은 건데 이게 다 쓰레기라고?’
이때 기 원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아이의 말이 맞다. 그 물건들은 네가 요긴하게 쓰거라. 북한종에도 그런 물건들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엽령이 엽현에게 납계를 돌려주고는 품 안에서 작은 나무 인형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나는 이거만 있으면 돼!”
그 인형은 엽현의 모습을 본뜬 것이었다.
이때, 소녀가 엽령의 손을 잡고서 자리를 떠나려는 것을 보자 엽현이 다급히 물었다.
“북한종이 어디 있습니까?”
소녀가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왠지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보였다.
이때, 기 원장이 소녀를 향해 말했다.
“저 놈을 북한종에 데려다 놓는다면 최상은 아니더라도 결코 약한 축에 들지는 않을 게다. 게다가 훗날 저 놈이 검주나 검황 혹은 그보다 높은 경지의 무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인데 지금 관계를 잘 맺어 놓으면 북한종의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소녀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사실 그녀가 관심 있는 것은 엽령이었다. 엽현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기 원장의 말마따나 엽현이 장래에 검주나 검황 혹은 불가능하겠지만 검선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북한종으로써는 대단한 용병을 얻게 되는 셈이다!
소녀가 침묵을 깨고 엽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중토신주(中土神州), 북경극한(北境极寒).”
소녀는 엽현에게만 조용히 말했다.
“우리 북한종은 너와 네 동생의 왕래를 금지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앞으로 네가 보여줄 성과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네가 서른 이전에 검주의 경지에도 이르지 못한다면 그때는 포기하는 것이 좋다. 네 존재는 저 아이에게 짐만 될 테니까.”
말을 마친 소녀는 엽령을 데리고 순식간에 하늘 높이 사라졌다.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던 엽현이 엽령이 사라진 곳을 향해 소리쳤다.
“령아! 조금만 기다려! 오빠가 꼭 데리러 갈게! 조금만 기다려…….”
이때 먼 하늘에서 작고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잘 지내…….”
하염없이 엽령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던 엽현이 그대로 바닥에 대자로 누워 버렸다.
그의 눈동자는 세상이 끝나기라도 한 듯 공허하기 그지없었다.
묵운기가 머뭇거리며 엽현을 위로하러 다가오자 기 원장이 고개를 저으며 그를 가로막았다.
“혼자 생각하게 내버려 두어라.”
사람은 살면서 어느 순간 큰 고비를 맞는다. 그리고 이를 해결할 사람은 본인 스스로 뿐인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엽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주먹을 불끈 쥔 그가 소리쳤다.
“나는 검주가 될 거야. 아니! 검황이 될 거야. 아니지, 아니지. 기왕 되는 김에 검선, 검선이 될 테다!”
검선(劍仙)!
‘만약 내가 검선이었더라면 창목학원이 감히 나를 괴롭힐 수 있었을까?
만약 내가 검선이었더라면 사람들이 감히 엽령을 업신여길 수 있었을까?
만약 검선이었더라면…….
그래, 모든 것은 내가 약하기 때문이다.
약한 것이 바로 죄다!
힘이 없는 자는 가족, 우정, 사랑 어느 것 하나 지킬 수 없다!
세상은 약자에게 한없이 가혹할 뿐이다. 빼앗기지 않으려면 강자가 되어야 한다.’
이때, 엽현은 머릿속이 깨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구체적인 목적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검선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때, 엽현의 몸 안에서 영수검이 극렬히 떨기 시작하더니 이내 하늘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엽현의 머리 위에서 떨고 있는 영수검을 보자 장내의 사람들은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곁에 있던 기 원장이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엽현에게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땅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주변의 풍경이 크게 왜곡되고 있었다.
“비경이 사라지려 한다. 빨리 나가자!”
기 원장이 소리 지르며 오른손을 펼치자 장내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비경 밖.
밖으로 빠져나온 기 원장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갑자기 안색이 변했다.
하나가 부족하다!
‘엽현?’
기 원장이 돌연 비경의 관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관문은 이미 사라지고 난 후였다. 이에 기 원장이 몸을 날리려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잠시 후, 기 원장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 자가…….”
* * *
한편, 엽현은 둔기로 머리를 맞는 것처럼 머리가 띵하고 무거웠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 느낌은 점차 줄어들었다.
엽현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자신이 동굴처럼 생긴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의 앞에는 가부좌를 틀고 있는 중년인이 보였다. 하얀 장포를 입고 있는 중년인의 모습이 자뭇 기품 있어 보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의 환상일 뿐이었다.
엽현이 중년인을 향해 말을 걸었다.
“누구…신지?”
그러자 중년인이 눈을 뜨고서 엽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가 마침내 미소를 지으며 엽현에게 말했다.
“검무쌍수에 숨겨진 경지. 게다가 이 숨겨진 경지 역시 남들과는 다르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단전이 없는데도 전혀 약하지 않다는 것. 특히 네가 지니고 있는 검의는… 내가 이때까지 많은 검수와 검의를 보아 왔지만, 너의 검의처럼 특별한 것은 처음이구나. 상당히 놀랍군.”
중년인이 엽현의 눈에 가득한 경계심을 느끼자 웃으며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다. 나는 네게 결코 악의가 없으니. 단지 네 사부가 누구인지 조금 궁금하구나. 네 사부의 존함을 알려 줄 수 있겠느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 강요는 하지 않는다. 무(武), 체(體), 검(劍), 이 중 체와 검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무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다. 만약 너의 사부가 개의치 않는다면 내가 너에게 무도에 대해 조금 알려줄 수 있다.”
엽현이 잠시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당연히 개의치 않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하하하! 만약 훗날 우리 저국(貯國)에 위기가 닥친다면 네가 조금 도와줄 수 있겠느냐?”
“저국 사람이시군요.”
“문제라도 있느냐?”
“전혀 없습니다.”
중년인이 빙그레 웃었다.
“네게 한 수 전해주마. 전의응취(戰意凝聚)라는 것이다.”
말과 동시에 중년인이 손을 펼쳤다. 순간, 그의 손바닥 위로 한 줄기 전의(戰意)가 세차게 흘러나왔다.
“너는 전의를 사용할 순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강하다고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너의 마음속에 있는 전의가 약하기 때문이다. 전의란 결국 ‘전(戰)’이란 한 글자에서 시작한다. 마음속으로 네가 처음 전의를 깨쳤을 때의 장면을 떠올려 보거라.”
‘처음 전의를 깨달았을 때?’
엽현이 머릿속으로 그 당시를 떠올렸다.
그때는 양계성 밖에 있을 때였다. 수천 기의 기병들이 그를 향해 달려왔다.
그 순간엔 죽음도 여동생도 없었다. 단지 그의 머릿속엔 단 한 글자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전(戰)!
상대가 누구인지, 숫자는 얼마나 되는지, 이런 것들은 중요치 않았다.
그저 죽을 때까지 맞서 싸울 뿐!
이때, 영수검이 그의 몸 안에서 빠져나왔다. 영수검 안에서 한 가닥의 의경(意境)이 요동쳤다.
지금 영수검이 내뿜고 있는 기운은 검의가 아닌 바로 전의였다!
엽현의 상황을 유심이 지켜보던 중년인의 표정이 순간 당혹감에 휩싸였다.
“자, 잠깐. 이거 뭔가 이상하구나. 우리는 지금 무도를 연마하고 있는데 왜 갑자기 검도가…….”